99화 스칸다나비아 전역(1)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흡연자보다는 혐연자에 가깝다.
하지만 혐연자조차도 담배가 땡기는 상황이 살다 보면 한 번씩은 꼭 나온다.
“프로이센 정부는 독단적으로 덴마크를 러시아와 영국의 침략에서 보호하겠다고 선언, 병력을 북쪽으로 진격시키고 있습니다. 덴마크 정부에게 국경개방 요청을 하기는 했지만 덴마크 정부가 답변하기도 전에 병력이 덴마크 국경을 넘었습니다.”
덴마크 정부가 뭔 짓을 해도 프로이센군에 맞설 수는 없다.
“덴마크 국경수비대와 지상군이 저항을 좀 시도했지만, 대부분 순식간에 무장해제당한 걸로 보입니다. 두 시간 전, 덴마크 정부가 전군에 프로이센군에 저항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어차피 히틀러마냥 영토를 합병해버릴 것도 아니고, 프로이센의 명분상 러시아의 명분 없는 침략에서 스칸다나비아를 보호하기 위해 진격한 것이니 덴마크인들을 압제할 수는 없다 그런 생각인가.
문제는 덴마크의 중립이 깨지고 강제로 동맹국에 합류해야 한다는 건데, 어차피 전쟁이 스칸다나비아로 번진 이상 계속 중립을 지키는 건 지정학적 위치상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걸 모르지는 않을 거다.
“노르웨이가 침공당하거나 하지는 않았나?”
솔직히 말하자면 전쟁 내내 스칸다나비아 3국이 중립국의 의무를 지켰다고 할 수는 없었다.
스웨덴은 대량의 철을 독일에 판매하고 있고, 노르웨이는 프랑스에 항구를 개방하는 등 명백히 친 동맹국적이다. 덴마크 역시 자국 영해 관리하는 꼴을 보면 중립국이라기도 뭐시기하고.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영국이라도 지정학적 위치상 노르웨이를 제압할 필요성을 느낄 것 같다. 노르웨이가 우리랑 독일 눈치보면서 해군이 항구 쓰게 해주는데 그것만으로도 이미 국제법 위반이거든.
노르웨이 입장에서야 할 말이 굉장히 많긴 하겠지만, 영국 입장에서는 말이 중립이지 참전했다고 볼 수도 있었다.
“아직은 아닙니다만, 분명 가능성이 높고, 징후도 관측됩니다.”
“노르웨이 정부에 통고하게, 영국이 노르웨이를 침공할 시, 프랑스군은 노르웨이의 요청이 있는 즉시 노르웨이에 대규모 부대를 보내줄 계획이 있으니 유념하라고.”
노르웨이의 요청, 이게 중요하다. 나중에 침략자라고 까이지 않으려면, 명분을 챙기면서 싸워야 한다.
명분 없이 전쟁을 벌이면 고립되는 건 시간문제니까.
사실 노르웨이가 공격당했는데 우리한테 지원 요청을 안 하면 누구한테 하겠냐마는.
“현재까지 영국 본토의 병력은 정규군 4개 사단, 급히 신편한 예비군 16개 사단, 근위사단 1개입니다. 러시아가 스웨덴을 넘어 노르웨이까지 갈 여력은 없을 테니 노르웨이를 침공하겠다면.....”
“근위사단 포함 정규군 5개 사단을 우선 투입하고 예비군 10개 사단을 예비대로 준비할 가능성이 높겠지, 노르웨이 혼자서라면 5개 사단으로도 차고 넘치지만 스웨덴이나 우리 프랑스, 독일군의 공세를 당하면 피해가 커질 수 있으니 15개 사단을 쏟아붓겠지.”
덴마크가 독일 손에 넘어가지만 않았어도 5개 사단으로 끝냈겠지만, 넘어간 이상 예비사단을 넉넉하게 투입해야 한다.
전함은 없어도 영국 해군의 수송능력은 충분하니까.
“다만 그러려면.....”
“쾨펜하운에 정박해 있는 프리드리히 빌헬름급 전함을 상대하려면 그년이 기어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엘리자베스.”
프리드리히 빌헬름급이야 14인치 방호도 안 되는 유리몸이지만 18인치 전함이 있어야 안전하게 상대할 수 있다.
7척에 달하는 전함이 1년 이상의 수리기간을 요하게 된 지금 상황에서는 더더욱.
“게다가 숫적으로도 4대 1, 밀리지.”
“한다면 러시아 발트함대와 공동작전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쾨니히스베르크를 공격하려 하면 프로이센 함대는 튀어나갈 수밖에 없고, 그동안 노르웨이를 치려 하지 않겠습니까.”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다. 프로이센 입장에서 쾨니히스베르크가 위협당하는 건 뭔 일이 나도 용납할 수 없으니까.
그러면 노르웨이에는 우리 함대가 가야 한다.
“해군장관, 어떤가, 함대는 출격 가능한가?”
“로렌급 두 척과 톨롱급 2척은 지금 당장 출격이 가능합니다. 낭트급은 손상에 대한 수리를 마치지 못했지만, 두 척 모두 열흘 내에 작전배치가 가능합니다.”
물론 이걸로 엘리자베스급을 잡기는 무리다. 하위함급은 몰라도 엘리자베스급은 18인치 포탄에 대한 방호능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미 엄청난 충격을 받은 전함을 집중포격 끝에 장갑을 깨트리고 포탄을 유폭시킨 뒤에야 간신히 가라앉혔을 정도다.
이미 그 정신나간 방어력은 배수량이 훨씬 큰 미국의 콜로라도급 전함과 동급이거나 그 이상이라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한 번 당했으면 족하지 두 번 당하지는 않는다. 프랑스군은 이미 퀸 엘리자베스의 대응책을 준비했다.
“뇌격기들이 압도적인 수로 덮친다. 피해가 얼마나 나든 엘리자베스만 격침시키면 끝이다.”
엘리자베스만 날려버리면 무슨 용 뽑는 재주를 부려도 영국군은 북해를 돌파할 수 없이 해상봉쇄를 당해야 한다.
이거 하나를 위해 기존에 보유한 항공기 중 어뢰 장비가 가능한 기종들이 북부로 이동되었다.
현재 프랑스군이 보유한 항공기는 7종, 비행선까지 하면 8종이다.
전투기가 신형과 구형 1종씩, 뇌격기와 지상공격기, 폭격기 등이 4종, 민간에서는 여객기로도 쓰이는 수송기 겸 중폭격기가 1종, 해군에서 다용도로 이용하는 비행선 1종.
그 중 어뢰 장비가 가능한 기종이 넷, 하나는 구닥다리 복엽기고 나머지 중 둘은 소량생산됐거나 구형이라 퇴역 준비를 하는 기종, 하나는 현역으로 활약 중이지만, 이번 작전 하나를 위해 보유한 기체 전체가 스칸다나비아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그 드넓은 북해 어디에서 전투가 벌어질지 모르니 어쩔 수 없었다. 전선의 빈자리는 프랑스군의 전폭기로 전환된 구식 전투기가 메웠다.
CAS가 그다지 중요한 입장도 아니고, 전략폭격은 애초에 중폭격기 몫이니까. 물론 그 중폭격기들은 디어 작전을 수행하고 있긴 하다만.
무엇보다 전략폭격은 굉장히, 굉장히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심리적 저항감이 크다. 어지간해서는 전략폭격을 수행하자는 소리가 동의를 얻기는 힘들 모양이다.
‘할 필요성도 떨어지고.’
지금 우리 항속거리 내에 있는 주요 공장지대라면 바르샤바 정도인데, 그 바르샤바 지금 포위당했다.
영국 본토에 대한 전략폭격은... 해서 얻을 이득이 별로 없다. 명분도 모자라고. 공습을 가해야 한다면 차라리 V1을 만들어서 쏘고 말겠다. 기술적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니까.
“지난번에는 항공기와 함대 간의 통신이 원활하지 못해서 뇌격기들이 지원할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대공포 사거리 밖에서 선회만 하다가 연료 부족으로 철수했습니다. 이번에는 그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야지.”
“스웨덴에서 구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군이 스웨덴 전군의 5배에 달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발트 해가 만만한 바다가 아니고 러시아인들이 수가 많은들 배의 숫자가 한계가 있으니 그 정도는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만 그래도 스웨덴군이 견뎌내기는 어려울 겁니다. 증원군을 보내야 합니다.”
***
“신혼인데 불러낸 건 미안하게 됐다.”
“아닙니다, 아버지.”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는 모두 군사적 요충지다, 반드시 지켜내야 하지.”
나는 지도를 가리켰다.
“너는 스웨덴으로 가라, 가서 스웨덴 왕세자비랑 회포라도 풀거라.”
“예?”
“내가 너에게 장성으로써의 움직임을 기대해서 스칸다나비아로 보내는 게 아니다. 황태자로써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다.”
“그건.......”
“우리가 스칸다나비아를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메시지를 보내라. 언론에도 자주 노출하고, 파파라치 사진이든 스파이 카메라든 간에 최대한 노출돼라.”
“다른 것을 노리십니까?”
“그래. 하지만 네가 알아야만 하는 건 아니다, 네가 알아야 하는 건, 우리 군이 스웨덴군을 지원하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파병했다는 거다.”
나는 권총 상자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영국은 지상군 투입은 없이 해전으로만 승리할 수 있기를 원하고 있다. 뭐, 그게 그들이 대대로 해온 짓이지.”
기습 한 번으로 제대로 도박 하나 성공시켜봤으니 해군이면 다 된다고 믿고 있을 터, 자국 육군이 병신이란 것도 뻔히 아는 영국인들은 전선을 더 늘리고 싶지 않을 거다.
노르웨이 침공도 같은 맥락에서, 황태자에 더해 프랑스군이 대규모로 들어왔다고 판단하면 손절하고 나갈 가능성이 높다.
노르웨이를 점령해봤자 노르웨이군의 저항, 스웨덴에서 진격해오는 프랑스군 등을 동시에 상대해? 상대가 전략안이 눈곱만큼이라도 있다면 집어치우고 그 병력을 불릴 생각이나 하겠다.
그래도 영국이 기어코 노르웨이를 침공해준다면? 그러면 원래 계획대로 가야지.
영국이 상식적으로 노르웨이를 포기한다면? 그러면 스웨덴 전선을 최대한 길게 끌면서 러시아의 인력을 빨아먹는다.
노르웨이가 공격당하면 나르빅 항이 막힌다. 나르빅 항은 노르웨이 북부에 있는 부동항으로, 해류 덕에 얼지 않는다.
스웨덴과 인접한 보트니아 만은 겨울에 얼어버리는데, 나르빅까지 막히면 우리 군의 보급이든 철의 수급이든 다 골치아파진다. 즉 최대한 빠르게 전역을 끝내는 길밖에 남지 않는다.
러시아의 전선을 하나 더 늘려서 저놈들의 인력이든 물자든 최대한 많이 고갈시킬 작정인 내게 있어서는 별로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거기에 영국놈들이 노르웨이에 상륙해버리면 우리 병력과 물자도 만만찮게 소모될 거고.
“이건 선물이다, 프랑스 제국에 단 두 자루 있는 권총이다.”
“이거 그 막 찍어내서 하늘에서 던진다는 그거 아닙니까?”
“맞아.”
권총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단발총을 본 샤를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2주 내로 보유량이 고갈될 물건이다. 이미 보유량의 70%가 소모됐다더군, 아마 아껴놓으면 나중에는 부르는 게 값일 거다.”
“..........”
“농담이다, 이건 메시지다. 스칸다나비아에 보내는.”
“메시지요?”
“프랑스는 이 전쟁에서 발을 빼지 않을 것이라는, 그러니 우리에게 버림받을 걱정은 하지 않고 싸우라고, 정부보다는 국민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되겠지.”
설령 스칸다나비아에서 밀려나더라도 무기를 공수투하해주면서라도 계속 싸우겠다는 메시지.
스웨덴인들의 항전의지는 내 계획에 필수적인 부분이었으니까. 덴마크처럼 허망하게 무릎꿇어버리면 나도 뒷목을 잡지 않고는 못 배길 거다.
***
인도 부왕령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미묘하다.
일단 이스라엘은 프랑스군의 비행장을 영토 내에 짓게 해주고, 치외법권 지대라는 이유로 프랑스군 기지 부지 내에는 손도 대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함부로 이스라엘을 압박했다가 엄연히 친프랑스 국가인 이스라엘군이 서가츠 산맥을 넘어오면 문자 그대로 인도 전체가 뭉개져도 이상하지 않다.
1년 전쟁의 패배 때도 어떻게든 협상 끝에 지켜낸 인도를 이런 식으로 허망하게 잃어버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프랑스가 하는 짓이라고 해 봐야 선전물을 뿌리고 실용성은 아무리 봐도 쥐뿔도 없는 권총을 항공기로 던지는 정도. 폭격도 아니고 이 정도는 감내할 만 했다.
물론 총은 총이다. 그 조잡한 단발식 권총은 테러나 범죄에 사용되면서 영국 식민당국의 혈압은 착실하게 올려주고 있었다.
삐라는 어차피 무식쟁이 인도인들이 삐라의 내용을 읽을 수는 있는가? 그 생각을 프랑스인들도 못한 건 아닌지 삐라에는 그림이 많았지만, 결국 내용은 영국에 맞서 떨쳐 일어나라 정도.
그런데 인도인들이 떨쳐 일어나서, 제대로 된 정부의 발끝이라도 만들 수 있을까? 적어도 영국인들의 생각에는 그럴 리가 없었다.
설령 분쟁이 일어나더라도 카스트 간의 분쟁, 지배세력과 피지배 세력의 분쟁, 이슬람교와 힌두교의 분쟁으로 끝나지, 영국의 지배력에 해가 될 수준은 아니다.
인도인이 인도인을 죽이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한가? 경찰들이야 총기를 사용한 원한, 금전, 치정 등으로 인한 살인사건이 자주 일어나니 머리가 아파오긴 하겠지만 그거야 어차피 미개인 사이의 일이다.
한 마디로 인도 부왕령에게 이스라엘의 존재는 이빨 사이에 깊숙이 박혀서 양치질을 해도 잘 빠지지 않아 귀찮게 하는 음식물 찌꺼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도 이젠 끝자락인 모양이었다.
“본국의 명령이 확실한가?”
“그렇습니다. 본국에서는 이스라엘이 명백히 적대적 행위를 보인 이상 이들을 제압하고, 옛 인도 부왕령의 영토를 되찾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어떤 미친 새......누가 제안한 거지?”
“윈스턴 처칠 해군장관이 강력하게 요청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대영제국의 왕관의 보석 인도를 온전한 형태로 되찾자는 거였고, 국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어 통과되었습니다.”
이미 한 번 크게 이겼으니까.
사태를 파악한 인도 주둔군 사령관은 이마를 감싸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