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캐터펄트 작전(2)
해군성의 제독들은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그만큼 내 빡침은 강했다.
“아군 피해, 브레스트급 2척 격침, 낭트급 1척 격침, 툴롱급 2척 격침, 로렌급 2척 격침, 독일 해군 피해, 프리드리히급 3척 격침, 빌헬름 1세급 3척 격침. 적 피해, 엘리자베스급 1척, 강구트급 1척 격침, 전함 7척 대파, 내가 들은 게 맞나?”
“황제 폐하.”
“맞냐고 물었다!”
순양함 이하의 피해는 다 빼버렸다. 그쪽 교환비는 우리가 훨씬 우수하다지만 주력함인 전함을 이렇게 손실해서야.
“설명해라. 전함 다수를 잃은 것까진 넘어가겠다, 기습? 그 놈들이 양아치처럼 선전포고하기 전에 우리를 먼저 친 거니까 기습에 당한 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고 말해줄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 전함 4척이 침몰하는 동안 적함 한 척이 침몰하냐고!”
“적 함대의 데미지 컨트롤 능력이 예상보다 뛰어났습니다.”
한 명의 제독이 변명하듯 말했다.
“적 전함 중에는 탄약고가 유폭했는데도 살아돌아간 전함이 3척 가량이나 있습니다. 그 정도로 왕립해군의 전함 설계는 안정성이 강합니다. 반면 우리 전함들은......”
“수병의 훈련이 부족했다고?”
“그 외에도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의 장거리 항해 직후 개시된 통상파괴에 대응한 장기작전으로 인해 수병들의 피로도가 높았고, 이로 인해 함포 운용에도 문제가 다수 발생했......”
“그리고.”
“포탄의 과도한 적재량으로 인해 유폭이 쉽게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기껏 출격한 뇌격기들은 영국 항공대의 방공망 때문에 돌입 타이밍을 놓쳤고, 포격전이 개시되는 바람에 상공만 빙빙 돌다가 귀환했습니다. 함대와 항공대 간의 신호 미스가.....”
“그리고.”
“..........”
“그리고.”
침묵이 이어지자, 나는 제독들을 노려보았다.
“변명은 그게 끝인가?”
“해군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제 책임이 큽니다, 폐하, 사임하겠습니다.”
“저 역시 사임하겠습니다. 현장에서 당시 지휘를 맡았던 지휘부는 브레스트 함의 침몰로 인해 전원 사망한 만큼, 부디 저희 둘이 책임을 지는 것으로 부하들은 눈감아주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여기 쳐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이 병신새끼들을 어떻게 조져야 잘 조졌다는 소문이 날까 고민하면서 달려왔다.
물론 언론에는 영국이 이미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도중에 선전포고문을 전달했다는 소식만 부각하면서 항구에 얌전히 대기하고 있던 프랑스 대서양 함대가 영국의 기습으로 괴멸적인 피해를 받았다는 식으로 보도되었기에 이것이 정부에 대한 성토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다른 놈이 룰을 어기면서 뒤통수를 후려깔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고 정부를 비난하는 건 기자새끼들이 생각해도 양심에 찔리는 모양인지, 아니면 국제법을 시원하게 어긴 영국을 욕하는 게 신문 발행부수에 유리해서 그런지는 모르겠다만.
지금 영국 대사관에는 짱돌이 날아들고 있고 파리에 있는 영국인들은 분노한 군중에게 린치당할까 봐 외출을 자제하는 형국이다. 영어 쓰면 죽일놈 되는 거고.
그러나 국민들은 아직 해볼 만 하다고 여기고 있다. 전함 6척이 날아갔어도 프랑스 제국이 보유한 전함은 10척에 달한다.
브레스트급 4척, 낭트급 2척, 톨롱급 2척, 로렌급 2척.
게다가 동맹인 독일은 이번에 한 번에 6척을 날려먹었다고 한들 6척이 아직 남아 있다. 들리는 바로는 순양전함의 약점인 종이장갑을 야간전에서 제대로 찔려서 한참 아랫급의 함선들에게 벌집이 되어 유폭당했다던데 내가 알 바는 아니고.
즉 아직 전함 숫자는 16대 11, 우리가 더 많다. 게다가 이번에 우리를 엿먹인 퀸 엘리자베스급은 1척만 남은 데다, 순양전함이기는 해도 북독일 연방에 18인치급 전함은 4척 더 있다.
발트 해 봉쇄한다고 이번에 참전을 안 해서 그렇지.
즉 신문에 나온 내용들만 보면 선전포고 없는 기습에 한 방 크게 먹었기는 해도 아직 싸워볼만한 상황이라고 보이는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 대 크게 맞았다고 영국에 항복한다는 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트라팔가 해전인가.’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트라팔가 해전은 아우스터리츠 전투와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아우스터리츠는 프랑스의 대승이었고, 나폴레옹은 트라팔가 해전에서의 패배에 분노했을지언정 자신의 패배라고 여기지 않았다.
실제로 나폴레옹의 몰락은 한참 더 있어야 했고.
상황이 비슷하다. 우리는 지금 러시아를 상대로 압도적인 우위에 있으니까.
“바르샤바는 3일 내로 점령이 가능할 듯 합니다. 우리 국민들에게 희망을 보여주겠습니다.”
“러시아는 직접 쳐들어가는 것보다 스스로 무너지게 하는 게 더 쉬운 국가다. 디어 프로젝트는?”
“진행 중입니다. 동유럽, 인도, 중동,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영국의 식민지와 본토에 병합되지 않아 저항 세력이 존재하는 곳 전부에 미친 듯이 뿌려대고 있습니다. 남아시아, 중앙아시아와 인도는 이스라엘이 제공한 비행장에서, 동유럽은 북독일 연방, 중동은 키프로스에서, 아프리카는 잔 다르크급 항공모함과 사르데냐를 모 기지로 해서 대거 투하되고 있습니다.”
무기를 뿌려서 반란을 선동하는 작전, 생산공정은 최대한 단순화한, 무기 같아 보이지도 않는 데다 재장전 시간은 생산시간보다 더 오래 걸리는 단발식 권총을 수백만 정 생산해서 각지로 옮겨뒀다.
지금은 프랑스 국경 내에 남아 있는 건 내가 개인적으로 소장한 2정뿐이다. 나중에 운 좋으면 박물관에 들어갈 지도 모르지.
나머지는? 전쟁 가능성이 보이자마자 열심히 옮겨서 쌓아뒀다. 이스라엘이랑 키프로스에 그 무기들과 조종사들이 하루아침에 가 있었겠는가. 미리 다 준비해놓은 거지.
물론 기관단총도 아니고 한 발 쏴서 암살하고 무기를 뺏어 쓰라는 식인지라 실전성은 별로 없긴 하다.
그래도 무기가 투하된다는 것 자체만으로 러시아군이나 영국군이 지랄할 이유는 되고, 그러면 현지인들도 분노하겠지.
누가 그랬던가? 누가 널 보고 반란 일으킬 것 같은 놈이라고 하면 그 반란을 꼭 일으켜주라고.
그러면 그만이다. 제대로 된 무기 같으면 적군 손에 들려져서 우리를 겨눌지 모르지만 어느 미친놈들이 총열을 돌려 빼서 한 발 장전하고 쏴야 하는 총을 돌격소총으로 중무장한 군대랑 전면전에서 제식으로 쓰냐.
총알이야 악용될 수 있겠는데 총 한 자루당 총알 세 발.... 누구 코에 붙이냐?
“최대한 빨리 싹 다 뿌려, 어차피 남겨봤자 우리가 쓰지도 못할 물건들인데.”
“물론입니다.”
세계 최초로 돌격소총을 제식화한 나라에서 저런 권총을 쓸 이유도, 가치도 없다.
게릴라들에게 싹 뿌려주고 장사 접어야지.
“미국에서 구매한 자원들은 어떻게 되나?”
“미국 측에서 자국 선박으로 날라주겠다고 합니다.”
“..... 그거 영국 참전하기 전에 계약한 거지?”
“물론 그렇습니다. 아마 상황이 바뀌었네 뭐네 떠들 것 같긴 합니다만....”
솔직히 말하자면 미국 배에 영국이 포탄이든 어뢰든 갈겨 줬으면 싶기는 하다. 그럼 미국 조야도 분노로 들끓어 주긴 할 텐데.
“돈을 더 쓰더라도 가급적 수송은 미국 선박과 하는 쪽으로 해라. 영국인들이 해상봉쇄를 할 여력은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전함들 절반 이상이 장기수리에 들어갔는데 해상봉쇄는 개뿔. 통상파괴나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아직 항공력은 대규모 공세를 통해 전투 항해 중인 전함을 격침시키기에는 쉽지 않다.
물론 뇌격기들이 제때 공세를 가했다면 피해가 한참 줄었겠지만.
“전함들이 수리되는 대로 다시 전투를 벌여, 이번에는 승리를 가져와야 한다.”
“1개월 내로 5척의 수리는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에는......”
“이겨서 돌아와라. 그 빌어먹을 년, 엘리자베스는 별 피해를 안 입었다고 했지?”
“예, 그렇습니다.”
“다음 해전에서는 놈을 격침시켜라,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대규모 해전이 일어나게 된다면, 놈은 반드시 기어나올 겁니다. 그때가 그 마녀가 영원히 수장되는 날일 겁니다.”
“믿고 있겠네.”
차라리 브레스트급 4척이 지중해로 떠나서 다행이다. 브레스트급이 더 격침됐으면 내가 여기 있는 놈들을 다 쏴죽였을지도 모르거든!
그때, 탁자 위에 설치된 붉은색 전화기가 울렸다. 전령이 일일이 뛰어다니지 않고 바로바로 보고를 받을 수 있게 설치한 핫라인이다.
나는 수화기를 들었다.
“무슨 일인가?”
-긴급상황입니다, 폐하, 현재........
“뭔가, 영국이 이스라엘을 침공했나?”
-그건 아닙니다. 아직은요
“그럼 러시아가 스웨덴을 침공하기라도 했나?”
-어떻게 아셨습니까?
“........ 뭐?”
아니, 이 새끼들은 또 미쳤나? 영국이야 나름 이유가 납득이 가지만 러시아 놈들은 왜 또 중립국을 침공하고 지랄이지?
-명분은 스웨덴이 프로이센에 협조해 발트 해를 봉쇄하는 데 협조하며 중립 원칙을 깼다는 것입니다만.......
“미친 거 아냐?”
“폐하, 무슨 일입니까?”
나는 간단히 답했다.
“루스 놈들이 스웨덴을 침공했다. 니콜라이 2세는 자기가 무슨 표트르 대제인 줄 아는가? 스웨덴을 침공하게?”
표트르 1세는 실제로 스웨덴과 여러 번 전쟁을 벌였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이야기가 다르지 않은가.
그것도 많이.
“...... 바르샤바.”
“응?”
“현재 발트 해에는 아군 함선이 없습니다. 개전 이전에 함대가 전부 킬과 빌헬름스하펜으로 집결해 있어서였습니다. 주요 항구들은 소형함들과 기뢰, 해안포로 보호되고 있죠. 대형함들은 영국 참전 이후 전부 빌헬름스하펜으로 재배치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육로로 연결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침공 경로는 해로가 주가 될 수밖에 없고, 이는 독일 전함들이 발트 해를 못 비우게 만듭니다. 아마 그게 목적일 것 같습니다.”
“....... 프리드리히 빌헬름급들이 발트 해에 발을 묶이게 만든다, 그러면 엘리자베스, 그 썩을 년을 상대할 전함은 대서양에 없으니까, 영국의 요구인가?”
“처음부터 참전 대가로 요구했을 수도 있습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먹기였겠죠. 애초에 선전포고를 그렇게 무계획적으로 했을 리도 없고요.”
대영제국의 업보에 한 줄 추가구나, 빌어먹을 놈들.
“발트함대가 스웨덴을 공략할 정도로 여유가 있던가?”
“발트함대가 스웨덴 해군 정도는 압도할 겁니다. 발트함대 기함이 순양함이라지만 스웨덴 해군도 사정은 똑같고, 수는 더 적습니다. 훈련도도 미지수고요.”
“지상전에 들어가면 러시아군을 스웨덴군이 상대하기는 어렵겠지, 하지만 발트해를 완전히 봉쇄하려면 덴마크까지 제압해야 할 텐데.”
나는 빌헬름 2세를 떠올렸다. 그리고 융커들도.
‘내가 아는 프로이센 정부라면 아마 지금쯤 덴마크에 국경 열라고 우리가 안 끼어들어도 알아서 협박하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