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97화 (97/200)

97화 캐터펄트 작전(1)

채널 제도 인근, 프랑스 제국.

여름이라고는 해도 새벽 4시는 태양이 뜨기는 이른 시간이다.

그러나 야간임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제국 해군 함대는 정지하지 않고 계속해서 어둠 속을 기동했다.

레이더가 나오기는 아직 많이 이른 시기, 기계공학 기술은 10년 이상 성숙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전자공학 기술은 원 역사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은 이상, 프랑스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시야 확보를 하기 위해서 견시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견시가 아무리 잘나도, 오늘의 영국해협은 달은커녕 별도 안 보일 정도로 구름이 짙었다. 등화관제가 이루어지고 있기에 견시들은 인근에 있을 구축함의 항적조차 보기 힘들었다.

프랑스 해군의 전함이자, 북대서양의 영웅 로렌 함 역시 이 야간순찰에 투입된 참이었다.

강구트급 전함 4척이 출격해 프랑스 북부 해안을 공격할 거라는 정보를 입수한 해군성은 즉시 이들을 격침시켜버리기 위해 프랑스 해안지대에 전함들을 출격시켰다.

거기에 대서양 함대의 전력이 저하되었다는 것도 해군성의 우려를 부채질했다.

기존 전함의 3분의 2가 지중해로 떠났다. 아무리 지중해 함대의 사실상 전체 전력이 합류한다고 한들 우려가 안 될 수가 없었다.

거기에 영국이 함대를 집결시키는 움직임을 보이자, 프랑스 해군은 대부분의 전투함을 항구 밖으로 내보내 경계 태세를 갖추게 했다.

그러고 나서도 수 일간 영국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출항한 지 오래된 순서대로 브레스트로 복귀시키는 와중이었다.

로렌은 그 첫 타자로써 귀항하는 중이었다.

그때, 견시가 고함을 질렀다.

“어뢰 항적 접근 중! 270에서 어뢰 항적 다수 접근 중!”

그 외침에 순식간에 갑판이 소란해졌다.

“회피해!”

“사격 원점 어디야!”

늦었다. 거대한 전함이 번쩍 들렸다가 그대로 수면 위로 내동댕이쳐졌다.

배가 뒤집히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용골에 피해를 주기에는 충분한 위력이었다.

“공격받고 있다! 서치라이트 켜!”

“하지만 함장님!”

“우리 위치는 이미 드러났다! 서치라이트 켜!”

그렇게 외친 순간, 곁에 붙어 있던 순양함에서 서치라이트를 켜며 공격자들의 정체가 드러났다.

“로열 네이비...”

선전포고도 없이! 그렇게 외치려 했지만, 그 말은 함장의 입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함교를 짓뭉갠 강철의 폭풍이 함장의 육신을 짓이겼고, 로렌은 가라앉기 시작했다.

호위하던 4척의 구축함과 순양함 1척 역시 얼마 가지 않아 최후를 맞았다.

***

“제독님, 보고입니다. 프랑스 해군의 로렌급 전함 1척, 순양함 1척과 구축함 4척 격침,”

“5분까지는 아직 조금 남았는데, 어쩔 수 없지.”

나중에 이걸 트집잡혀 군사재판에 설 일만 없기를 바랄 뿐이었다.

“뭐, 4분쯤 전에 공격했다고 프랑스인들이 좀팽이같이 굴지는 않겠지?”

걸린 시간을 감안해 보면 로렌급이 통신을 보내지 못했더라도 호위함들이 통신을 보냈을 것이다.

“우리가 전쟁에서 지면 반드시 그럴 겁니다.”

“......후우, 난 처칠 그 양반의 계획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증명이라도 남겨놔야 하나?”

자조적으로 웃은 젤리코는 함대를 재촉했다.

사실, 야음을 틈타 덮친 게 아니더라도, 어뢰에 맞은 뒤에야 공격당한다는 사실을 파악한 게 아니라 대낮에 눈치챘더라도 로렌에게는 희망이 없었다.

그녀를 공격한 함대는 전함만 세 척에 다수의 구축함과 순양함으로 구성된 본격적인 전투함대였으니까.

지금 이 자리에, 대영제국이 보유한 모든 전함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적이 우리의 존재를 간파했다고 간주하고 행동한다, 구축함대와 순양함들을 선두로.”

“알겠습니다.”

야간전에는 구축함대가 선두에 선다. 구축함들은 적 구축함들이 전함 근처에 다가가지 못하도록 저지하는 데 뛰어난 능력이 있고, 적 전함에 가까이 다가가 뇌격을 선사할 수 있다.

오랜 항해에 지친 로렌과 호위함들의 승무원들이 상당히 풀어져 있었기에 가능했던 요행이었고, 그 다음부터는.......

“제독님, 소드피쉬에서 보고, 조명탄이 곳곳에서 오르고 있답니다.”

“경계태세군. 로렌급의 SOS를 수신했나.”

지금 프랑스 해군의 전함들은 한 척, 많아야 두 척씩 따로따로 떨어져 행동하고 있다.

사실 강구트급을 상대로는 서너 척씩 몰려다닐 필요가 없으니, 이대로 가면 개함 성능의 우위와 머릿수의 우위를 누리면서 일방적으로 찍어누를 수 있을 터.

하지만 저들이 뭉치면?

지지는 않을 것이다. 머릿수는 방금 로렌급 하나를 침몰시켰으니 16대 11, 별로 도움이 안 될 러시아의 강구트급을 빼도 12대 11이고, 엘리자베스급과 브르타뉴급은 수는 같은데 엘리자베스의 성능이 훨씬 우월하다.

함대결전을 벌이면 필승이다. 그 함대결전 이후에 함대가 얼마나 남느냐의 문제였다.

“저들이 합류하기 전에 최대한 많이 끊어낸다.”

이미 여명이 닥쳐오고 있다.

명백히 지금은 겨울보다는 여름에 더 가까운 시기, 그리고 여름에는 위도가 높을수록 해가 일찍 뜬다.

즉, 길어야 30분 내에 야음을 틈탄 작전은 불가능해질 거다.

“욕심내지 말고 시선에 넣은 한 개 전대씩만 공격하고, 하늘이 밝아지는 것 같으면 바로 빠지라고 해, 알겠나?”

“예!”

분산돼서 움직이는 전단이 하나씩만 끊어내도 전함 세 척을 탈락시킬 수 있다.

물론 성공 못 한다고 해서 나쁠 건 없지만, 구축함 여러 척을 희생시키고 전함을 끊어낼 수 있다면 차고 넘치도록 남는 장사 아닌가.

***

해가 완전히 떠올랐을 때, 두 함대는 마주보았다.

개전 전 기습효과 탓에 프랑스군의 움직임을 똑똑히 바라볼 수 있었던 젤리코는 이미 단종진을 형성하고 프랑스 해군을 두들길 준비를 끝낸 뒤였다.

프랑스 해군 전함 10척, 브레스트급 2척에 로렌급 3척, 툴롱급 2척, 낭트급 3척.

영국 해군 전함 12척, 넬슨급 5척, 킹 에드워드 7세급 5척, 엘리자베스급 2척.

러시아 해군은 후방으로 빠져 있는 상태였다. 애초에 통상파괴 전용인 함대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때, 통신이 급박하게 울렸다.

“수상기에서 입전! 프랑스 해군 쌍발 뇌격기 다수 접근 중!”

“우리 CAP가 처리할 거다. 함대전에 집중해!”

그 직후, 포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엘리자베스와 메리 자매가 일제히 불을 내뿜었다.

전방집중형 포탑에 달린 18인치 포 9문씩 도합 18발이 선두에 선 브레스트를 향해 날아들었다.

-콰앙!

원탄이다. 프랑스 해군의 포탄은 제법 먼 곳에 물기둥을 세웠다.

영국 해군의 포탄은 그보다는 조금 더 가깝다.

“..... 무슨 꿍꿍이지.”

젤리코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적 제독이라면 후퇴할 텐데, 선회하면서 한 번 해보자는 듯 달려들고 있다.

이대로 가면 불리해질 뿐이라는 걸 모르나?

아니면 프랑스 본토의 지원을 기대하나? 그 지원이 그렇게 빨리 오지는 않을 텐데.

지상 발진 항공기들의 도달을 기대하려면 애초에 포격전을 시작했으면 안 된다. 포탄이 날아다니는 와중에 뇌격기를 밀어넣으면 뇌격기와 파일럿들을 세트로 다 죽여버리겠다는 소리밖에 더 되는가.

“제독님, 해군성에서 급전입니다!”

“뭐지?”

설마 브레스트급이 남아 있었나?

“HMS 리코니아에 의해 카이저마리네 확인! 7척에 달하는 전함이 고속으로 현 위치로 향하고 있답니다!”

“리코니아와의 거리는 어떻게 되지?”

리코니아는 영국 해군 잠수함으로, 북해에 파견되어 있었다.

“240마일 정도입니다.”

“240마일......”

속도를 중시한 독일 해군의 전함은 기본적으로 카탈로그 스펙 상 30노트 대의 최고속도를 가진다.

그렇다면 쉬지 않는다고 가정할 때......

‘지금부터 7시간.’

얼핏 보면 넉넉해 보이지만, 전함 간의 포격전 자체가 느릿느릿하게 벌어지는 경우가 상당하다.

오늘 하루 종일 이대로 포탄을 주고받아도 양측 중 단 한 척의 전함도 격침되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현 시간은 오전 8시.’

오후 3시쯤에 적 함대가 도착하면 전황 자체를 뒤집어버릴 수도 있다.

“그럼 그 전에 적 함대에게 최대한 피해를 입혀야 한다.”

물론,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포문 숫자가 차원이 다르니까.

넬슨급 5척에 14인치 주포 각 10문이니 14인치가 50문, 킹 에드워드 7세급이 15인치가 50문, 엘리자베스급이 18인치 18문.

프랑스 해군은 브레스트급이 16인치 18문, 툴롱급과 낭트급 합쳐서 15인치 40문, 로렌급이 14인치 48문.

전체 포문 수는 그들이 압도하지만, 그래도 프랑스군이 발악하면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압도적인 우위에 있는 18인치 함포를 이용해서 함대전을 끝내려 했건만.

-콰앙!

“적 브레스트급 전함 1척에 명중탄 발생!”

환호가 울렸지만, 젤리코의 표정은 굳을 대로 굳어 있었다.

“전 함대, 접근하여 포격전을 개시한다.”

그렇든 말든, 이미 젤리코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적 전함을 몰살시켜야만 했다.

그 직후, 미칠 듯한 난타전이 시작되었다.

구경에 비해 높은 방어력을 지닌 것은 영국 해군 전함의 특징이었기에 프랑스 해군이 맹포격을 쏘아내는 것을 몸으로 견뎌내며 접근한 영국 해군은 포탄을 쏘아냈다.

로렌급 전함은 영국 해군 전함전대의 주 목표였다. 한 척만 격침시켜도 전대 전체의 화력이 급감하는 탓에 영국 해군 전함들의 주 목표가 된 로렌급 전함 한 척은 거의 5척에 달하는 적 전함에게 15인치 탄으로 두들겨맞아 해체되다시피 한 뒤 침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두 척의 넬슨급 전함이 14인치 포탄을 뒤집어쓰고 대파되어 전열에서 빠져나가야 했다.

한편, 퀸 엘리자베스를 상대하던 브레스트는 이미 한 방 맞은 상태에서 근접전에 돌입했고, 얼마 가지 않아 불꽃을 토해내며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상대가 사라지자 퀸 메리가 상대하던 브레스트급 로리앙으로 목표를 바꿨다.

순식간에 상대가 둘로 늘어난 로리앙은 15분도 지나지 않아 탄약고가 유폭하면서 침몰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퀸 메리가 방향을 틀었습니다! 프랑스 전함열로 돌진 중!”

“뭐?”

“퀸 메리에서 입전! 키 고장!”

“이런 빌어먹을.”

로리앙의 마지막 발악은 헛되지 않았다. 젤리코가 당황한 표정을 지은 순간, 퀸 메리는 프랑스 함대 전함열로 돌진했다.

그리고 수많은 포탄들이 일제히 퀸 메리를 향했다.

6척의 전함이 퍼붓는 포격을 초근접 거리에서 정신없이 난타당한 퀸 메리는 사실상 영거리 사격을 퍼부었고, 거기에 재수없게 얻어맞은 톨롱급 전함 한 척이 대응방어를 한참 뛰어넘는 타격을 받고 유폭을 일으켰다.

그러나, 퀸 메리의 운도 거기까지였다. 하필 함교도 박살나고 모든 포탑들이 손상되어 반쯤 시체 상태로 떠 있던 브레스트가 그 경로 위에 위치하고 있었고, 퀸 메리는 브레스트에 정면충돌해버렸다.

이미 퇴함 절차를 밟고 있던 브레스트는 그대로 뒤집어지면서 침몰했지만, 퀸 메리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으며 천천히 멈춰 섰다.

멈춰 선 전함에게 남는 건 죽음뿐이다. 프랑스 해군은 자기가 죽더라도 퀸 메리만큼은 길동무로 가야겠다는 듯 포격을 퍼부었고, 그 함선들과 포격전을 벌인 끝에 톨롱급 한 척을 더 침몰시킬 수 있었지만, 퀸 메리의 침몰을 막을 수는 없었다.

“..... 현재 시각은?”

퀸 메리의 생존자들이 바다로 뛰어내리는 걸 보며 젤리코 제독은 물었다.

“정오입니다.”

“...... 기습 효과에, 한참 유리한 정보적 우위에, 화력적 우위에. 심지어 전투 전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까지 했네.”

중얼거린 젤리코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전부 다 가지고 싸웠는데도 이 꼴이군.”

“제독님?”

“함대 후퇴시켜, 대파된 킹 조지 7세, 썬더러, 애이젝스... 아무튼 여섯 척 다 당장 런던으로 돌아가라고 해, 퀸 메리는 개구리 놈들이 구조해주기를 바라야겠군. 저놈들이 우리를 추격해오지는 못하겠지만.”

새벽의 기습에서 로렌급 1척과 낭트급 1척을 잃었고, 해전에서 톨롱급 2척과 브레스트급 2척을 잃었다.

하지만 브레스트급은 프랑스에 6척이나 있고, 아직도 4척이나 남아 있다.

그런 반면 퀸 엘리자베스급은 단 2척뿐이고, 그 중 하나가 지금 침몰하고 있다. 로렌급과 낭트급, 툴롱급의 손실은 뼈아프지만 수복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남은 전함들은 상대적으로 멀쩡해보였다.

만면 영국의 전함도 6척이 대파되었고, 나머지 전함들도 수리하느라 한동안 기어나오지 못할 테니 오히려 이기고도 제해권을 뺏기지나 않을지 걱정을 해야 할 판. 당장 격침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인 전함이 셋이나 나왔다.

‘감방의 죄수가 간수를 한 대 후려치고 감방으로 돌아가는 꼴인가.’

생각이 거기까지 이어진 순간, 급박한 통신참모의 목소리가 들렸다.

“러시아 함대에서 지원 요청! 카이저마리네와 조우했답니다! 현재 전함 한 척이 침몰했고, 나머지 3척은 전속 도주중이랍니다!”

“....... 그래?”

카이저마리네가 직행한 게 아니라 러시아군에게 한눈이 팔렸다.

젤리코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미 진형을 거두어 브레스트로 후퇴하는 프랑스군은 고이 보내줘야겠지만, 카이저마리네는 한 번 더 털어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접근해오는 함종 가운데 프리드리히 빌헬름급이 있었다면 당장 도망가야겠지만, 상대는 기껏해야 빌헬름급, 프리드리히급뿐.

애초에 도망간다고 해도 속도 차이가 워낙 나니 쉽게 추격을 뿌리칠 수도 없으니 확실하게 털어먹고 가는 게 나을 듯 했다.

“전 함대에 알린다, 야간전을 준비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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