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불길(2)
보헤미아, 프랑스군 지휘부.
“전선의 러시아군의 수가 엄청납니다. 수가 아군의 최소 4배입니다.”
FAB03 소총을 등에 맨 전령의 보고에 1사단장 필리프 패탱은 얼굴을 구겼다.
“무슨 적들이 그렇게 많지?”
“프로이센군도 피해가 크니 증원병력을 보내달랍니다.”
“빌어먹을, 우리도 예비대 없네, 지금 가지고 있는 건 문자 그대로 최후의 예비대야!”
프랑스군의 단위전투력은 동수의 러시아군 징집병 따위는 별 피해도 없이 순식간에 쓸어버릴 정도로 강하지만, 그 수가 2배, 3배를 넘어 4배에 육박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다행히 적들의 병력 투입이 효율적이지 못합니다.”
“그랬으면 벌써 뚫렸겠지.”
“장군님, 전차중대에서 보고입니다. 러시아군의 전차부대와 접촉했답니다.”
***
“저건 뭐야?”
한창 교전이 벌어지던 와중, 전차장이 외쳤다.
“적 전차 확인!”
프랑스군은 다포탑전차를 운용하지 않는다. 타국은 다 운영하지만.
그렇기에 프랑스 전차부대의 피아식별 방식은 간단하다. 다포탑인가 아닌가. 포탑이 두 개 이상 달렸거나 주포가 두 개 이상 달린 전차는 일단 아군이 아니라고 간주한다.
동맹군이 있을 때는 예외지만, 보통은 작전구역을 철저하게 나누기에 마주칠 일도 없고 말이다.
“발사!”
75mm 포탄이 날아가 적 전차의 포탑을 맞혔다.
그러자 갑자기 전차가 뒤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뭐야?”
“저 놈 아직 살아있어! 한 발 더!”
“장전 완료!”
“발사!”
명중한 포탑은 탄이 기적적으로 유폭하지 않았는지 포신이 축 쳐져 있었고, 다른 포탑 하나는 뒤로 도망가다가 건물에 충돌한 전차에서 그대로 벗겨져서 바닥에 떨어졌다.
게다가 그 충격으로 궤도가 벗겨진 모양, 조종수가 공황에 빠져 급발진한 모양이었고, 저걸 못 잡으면 전차 타면 안 된다.
-콰앙!
폭죽처럼 폭발해 불덩어리가 된 전차를 지나친 프랑스군은 전선을 종횡무진하기 시작했다.
-타타타타타타타타!
전차를 호위하던 보병들은 러시아군 보병들과의 교전도 벌여야 했다.
그리고, 시가전에서는 긴 모신 소총을 든 적들보다 짧은 자동화기로 무장한 프랑스군은 거의 일방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우위를 가지고 있었다.
7mm 탄에 벌집이 되어 나동그라진 적들의 시체를 넘어간 프랑스군 보병들은 건물을 장악하고 경기관총을 거치했다.
하늘을 전투기들이 날아갔다.
프랑스군의 쌍발 폭격기들과 호위를 맡은 레굴루스 전투기들은 편대를 이루어 적 후방의 모든 목표를 타격했다.
러시아군의 쌍발 폭격기-우습게도 프랑스제였던-들이 다수 이륙해 프랑스군을 공습하기 위해 날아들었고, 즉각 프랑스군의 전투기들이 대응했다.
그러나 몇 대는 기어코 폭탄을 투하했다. 폭발을 본 고참병들이 가스탄인 줄 알고 방독면을 착용했지만, 한참을 지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머쓱해하면서 방독면을 벗었다.
“이쯤이면 독가스를 사용할 법도 한데.”
“일단 양쪽 다 명분이 궁색하고, 거기에 러시아군은 독가스를 사용하면 피해가 클 겁니다. 방독면이 제대로 안 갖춰져 있으니 말입니다.”
“빌어먹을.”
아직 퇴거하지 못한 민간인이 많다. 그리고 민간인들이 있는 이상 독가스를 펑펑 써댈 수는 없다.
명분상 이곳의 주민들은 그들이 반군에 맞서서, 그리고 그 반군을 지원하는 러시아군에 맞서서 지켜내야 할 자들이었으니까.
***
“실질적인 효과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젠장, 영국 놈들 무기 하고는, 비싸기만 하고 엉터리야!”
이 시대, 게릴라전에 관해서 가장 많은 데이터가 쌓인 국가는 러시아 제국일 것이다.
그만큼 많은 수를 잡아 죽였으니까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의 동맹으로써 영국은 러시아의 경험을 공유받을 수 있었고, 식민지에서든 어디서든 벌어질 수 있는 게릴라전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게 된 영국은 추가적인 연구를 진행했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게릴라는 민심이 그들을 지원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그렇다면 민심을 게릴라에게서 이반시킨다면?
가장 간단한 방법은 민간인들을 모조리 수용소에 몰아넣고 곳곳에 요새를 세워 죄다 굶겨죽이는 거지만, 인구가 너무 많으면 그조차도 어렵다.
즉, 게릴라와 민심을 분리하는 공작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영국 정부는 다양한 연구를 했다.
그리고 그 연구들 가운데 일부가 의학과 만났다.
세실 로즈 정권 시절 우생학을 연구하던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연구진은 체취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던 중, 인간의 성욕과 체취가 연관이 있다는 연구가 나온 것이었다.
물론 논문이라고 보기에는 그 근거가 굉장히 부족했지만, 사회진화론을 통해 인종차별을 정당화시키려 하던 세실 로즈 정권의 후원을 받아 연구가 계속되었다.
결론적으로 인간의 체내에 모종의 화학물질이 기화되어 배출되면서 성욕을 유발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자 이는 영국인들에게 제법 지지를 받았는데, 빅토리아 시대의 엄숙주의에 질린 이들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를 완성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논문을 접한 영국군은 이 화학물질을 포탄에 실어서 대량으로 뿌려버리면 게릴라 세력이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사고를 칠 거고, 이를 통해 사기를 떨어트리고 주민들의 민심 이반을 유도한다는 작전을 기획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MKU 가스탄은 체코 내에서 민심이반을 일으켜 서방의 명분을 약화시키기 위한 사전작업으로써, 겸사겸사 군기문란을 일으킬 목적으로 프라하에 대거 투발되었다.
물론 과학적으로는 개소리였다. 인간은 페로몬을 받아들이는 유전자가 퇴화하고 있는 데다 설령 가스 형태로 페로몬을 그렇게 퍼붓는 게 효과가 있다고 해도 몸이 힘든 게릴라나 군인들이 욕구가 동할 리가 없었다.
천리행군이 끝난 직후에 맥심을 갖다줘도 자기개발행위에 몰두하는 군인이 있을까? 물론 단 한 명도 없지는 않겠지만, 그만한 별종은 별로 없다.
심지어 그 페로몬을 정제할 능력도 없어서 사람의 땀을 모아서 정제하니 효율도 바닥, 결정적으로 그런 가스가 필요한 양을 생각해 보면 같은 양의 일반 고폭탄을 뿌리는 게 효과가 더 좋을 거라는 게 명백했다.
즉 좀 적나라하게 말해서 여자가 흘린 땀 추출물을 프라하 상공에 살포한다고 해도 프랑스군이 무슨 곤충들도 아니고 갑자기 무슨 얇은 책에 나오는 미약 뿌린 듯이 미쳐 날뛸 리가 없었던 것이다. 애초에 페로몬이 아니라 LSD라도 살포하지 않는 이상 그런 상황이 나올 리도 없었다.
물론 사용한 당사자인 러시아군은 그런 건 몰랐다.
영국 육군은 그냥 피폭 지역의 군기문란과 비행, 전쟁범죄를 유도해 러시아의 정당성을 강화해주고 현지인들의 반발을 불러와 전황을 유리하게 해 줄 거라는 말만 했고, 러시아인들은 그걸 믿고 한 번 쏴 본 것 외에는 없었다.
내용물을 알았으면 그런 병신같은 무기는 니들이나 갖다 쓰라면서 상트페테르부르크 앞바다에 전부 던져버렸겠지만, 안타깝게도 러시아군은 그 가스의 정체를 몰랐다.
아마도 앞으로도 알 일이 없을 터엿다.
“프라하는 뺏긴 거나 다름없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도 기갑부대를 투입한다. 영국 놈들 무기 따위에 기대를 건 게 바보짓이었지. 1, 2, 8기갑사단을 선두에 투입하고, 나머지 병력은 지원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8기갑사단이라, 박쥐 전차들이 실전을 경험해보겠군요.”
“황제 폐하께서 제법 기대를 건 무기체계니 활약해주면 좋겠는데 말이네.”
***
프랑스군 지휘부에서는 사진정찰기가 찍어온 적 부대의 모습을 보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이거... 이 건 뭡니까? 저건 초기형 전차 같습니다만.”
좌익과 우익 지역에서는 포탑 없고 대구경으로 추정되는 주포 하나만 고정형 전투실에 탑재된 전차들이 다수 확인되었다.
문제는 정면에서 달려오는 무슨 마차바퀴 같은 걸 양쪽에 달고 오는 큼지막한 물건이었다.
“여기 보이는 한 쌍의 바퀴는 사진 축척을 고려할 때 약 9m, 무게중심을 잡는 뒷바퀴는 1.5m 정도 되어 보입니다. 차체와 포탑에 다수의 주포가 장착되어 있고요.”
“다포탑 육상전함인가?”
“무한궤도가 없는 전차는 처음 봅니다. 저게 전차가 맞다는 전제 하에 하는 말입니다만.”
“신개념 장비 같습니다.”
일단 신개념이라면 경계를 하고 봐야 마땅하다. 전차든, 잔 다르크급이든 간에 전장에서 드러난 신개념 병기들은 높은 확률로 전장을 바꿔놓고, 세상을, 역사를 바꿨다.
물론 다포탑, 다주포 전차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병기체계에서 쓰레기에 가깝다는 결론이 난 지 오래지만, 저 형태는.....
“어지간한 참호로는 빠지지도 않겠군요.”
“장갑도 제법 두껍겠지, 골치아프게 됐군. 중포사격을 요청해서 제압해야 하나.”
패탱은 그러나 저 사다리꼴 모양 전차가 더 문제라고 판단했다. 전고가 낮아서 노출 면적이 작아 맞추기 어렵고, 주포의 모양새로 보아 피격되면 위험할 가능성이 있었다.
“포병대 지원을 요청한다. 저 루스 놈들에게 제대로 된, 화끈한 불꽃놀이를 선사해 주자.”
“알겠습니다!”
저놈들이 바퀴벌레마냥 많은 수로 그들을 위협한다면, 화력으로 찍어누를 뿐이다.
“황제께서도 말씀하셨지, 포병은 전장의 신이라고.”
그렇다면, 신의 위업을 보여줄 뿐이다.
***
북해, 셰르부르 인근, HMS 퀸 엘리자베스.
“제독님, 본토에서 전문입니다. 암호해독 중입니다.”
“완성되는 대로 줘.”
“거의 다 끝났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잠시 뒤 암호해독이 끝나자 젤리코 제독은 넘겨받은 전문을 죽 읽어내렸다.
<대영제국 왕립해군 해군성 최우선 송신문>
<발신 : 대영제국 왕립해군 해군성>
<수신 : 대함대 사령관 존 러쉬워스 젤리코 제독>
<제목 : 붉은 깃발 작전>
<분류 : 1급 기밀, 열람 전용>
<송신 시간 : 그리니치 표준시 1915년 5월 21일 1605시>
<내용 시작>
<16일 전, 내각과 의회는 국왕 폐하의 승인을 얻어 프로이센 왕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확전을 자제하라는 최후통첩을 발송, 그러나 수 시간 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이 드라비 강을 도하했으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에 의해 트리에스테가 공격당함에 따라 최후통첩이 묵살되었음.>
<이에 따라 내각은 최후통첩 묵살로 말미암아 각국과 대영제국이 전쟁 상태에 돌입했음을 확인한 바, 의회와 내각에서의 논의 결과 전쟁 선포가 의결되어 국왕 폐하의 최종적인 재가가 내려졌음.>
<현 시간부터 12시간 후인 새벽 04시 05분을 기해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그리고 그 두 국가를 지원하고 있는 프랑스 제국과 네덜란드에 대한 선전포고문이 발송될 예정, 그 시간에 맞추어 프랑스 대서양 함대를 타격, 초전에 붕괴시킬 것을 명령함.>
<대영제국 해군 장관 윈스턴 레너드 스펜서 처칠>
<내용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