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95화 (95/200)

95화 불길(1)

영국, 런던, 내각 회의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지금 해협 너머 화약고에서 피어오르는 불빛을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시오? 기탄없이 말해보시오.”

지금 이 순간에는 정당의 구분도, 지위의 구분도 없었다.

대영제국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일이라면 그런 것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우리가 지원한다면 그건 러시아가 되어야지, 프랑스나 독일을 지원할 수는 없습니다. 국민들이 납득하지 않을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양국 모두 본국을 위협할 능력과 의지가 충만합니다.”

“아예 중립을 지키는 방안도 있기는 합니다. 현재 본국의 재정은 건함을 수행하느라 제법 소모된 상태입니다. 게다가 전쟁을 하려면 기껏 재편되어 가던 산업계를 전쟁을 위해 재편해야 하는데, 적잖은 기회비용이 예상됩니다. 이 상황에서의 개전은 경제 파탄을 불러올 것이라는 것이 재계의 의견입니다.”

“전쟁을 통해 반드시 반환받아야 하는 식민지라고 해 봐야 인도 서부의 이스라엘 정도지만, 이스라엘군은 인도 주둔군만으로는 제압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확전될 경우 수에즈 운하는 봉쇄될 것이며, 희망봉 루트 역시 위험합니다. 결론적으로 전쟁에 참전해 이스라엘을 붕괴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밖에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함부로 참전했다가 이번에는 진짜로 인도 전체를 날려먹을 수도 있습니다. 신중해야 합니다.”

“단순히 전쟁을 안 하면 공황을 피할 수 있다는 주장은 눈앞의 문제만 생각하는 처사입니다, 전쟁이 개전하게 된 이상 경제 붕괴는 필연적입니다. 지난 1893년 이후, 각국의 경제는 더할 수 없을 만큼 긴밀하게 연결되었습니다. 이 축 하나가 무너지는 순간 도미노처럼 다른 국가들의 경제도 일제히 붕괴합니다.”

“그럼 어쩌자는 건가?”

“그간 연합왕국이 해 온 것처럼 해야겠지요, 캐스팅 보트를 행사해야 합니다. 러시아 제국은 그간 대량의 차관을 받아먹으면서 급속히 성장했고, 신뢰할 만한 출처에 따르면 프랑스 제국은 전의가 그리 높지 않습니다. 어찌되었든 과거의 동맹이었던 데다, 딱히 영토적으로 이득을 볼 일도 없으니 말입니다.”

“그건 그렇지.”

“그러니 압박을 넣어야 합니다. 보헤미아에서만 싸우고, 그 이상으로 전쟁을 확전시키려고 하면 대영제국 역시 참전할 거라고 말입니다.”

“러시아 대사는 러시아 제국은 추가적으로 영토를 요구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 차르의 의중임을 명확히 했습니다. 사실 이번 출병 자체도 순수히 슬라브인의 보호자라는 러시아 제국의 위신 때문이지 영토 야욕 때문이 아니라고도 했고요. 무엇보다 러시아는 아직 집어삼킨 영토를 채 소화하지도 못했는데 그렇게 금방 또 다른 영토를 원하기라도 하겠습니까?”

“딴에는 맞는 말이군요.”

“본국이 식민지를 하나 만드는 데 몇 년이 걸리는지를 생각해 보면 바로 나올 답입니다, 심지어 식민지도 아니고 본토이며, 그곳에 살아가는 이들은 아프리카 토인들처럼 야만스럽지도 않습니다. 러시아 제국은 전선을 늘리고 싶지 않아 합니다, 그리고 슬라브인들의 대규모 거주지는 보헤미아가 끝이지요.”

“더 이상 영토를 요구할 리 없다는 뜻이구려.”

“그렇습니다. 설령 전쟁에서 이긴다고 해도 요구사항 역시 상식적인 수준으로 내놓을 것이라는 확답을 받았으니 이제 제어해야 할 것은 프로이센뿐입니다.”

“프랑스가 부추기면 언제든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있겠지, 프랑스인들은 전선 확대에 대해 큰 부담을 느끼지 않을 거고.”

자기들 피 대신 남의 피를 흘리면서 전쟁하고, 그 사이에서 이득을 취하는 것, 영국이 잘하는 짓이었기에 그들은 프랑스가 전선 확대를 원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함대를 집결시키고, 당사자인 북독일 연방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압박합시다. 그 둘이 반대하면 프랑스도 명분이 없습니다. 전선이 보헤미아 밖으로 확대되면 그때는 러시아를 지원해 참전하겠다고 말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참전하기를 바란다면? 현재 본국은 해군력에서 우위를 가질 수 있다는 확신이 없고, 불과 20여 년 전에 우리는 본토를 짓밟혔소, 프랑스인들이 비슷한 자신감을 가지고 기습 공격을 가해온다면?”

“해군은 23년 전 이후로 전함 외의 본토 방위 수단을 확보해 두었으며, 상륙이 예상되는 대부분의 지역에 대한 요새화가 완료된 지 오래입니다. 1892년이 두 번 반복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해군 조약에 걸리지 않는 보조함들의 강화와 더불어, 전함 외의 수단으로 전함을 상대할 수 있도록 영국 해군은 뼈를 깎는 노력을 해 왔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프랑스 해군이 왕립해군을 20년 전의 왕립해군으로 생각한다면 큰코다치게 될 것입니다.”

제1해군경의 말에 내각의 각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고개만 끄덕인다고 되는 건 아니었지만.

“일단 너무 늦기 전에 조속하게 프로이센과 이중제국 정부에 통첩을 보내는 게 어떻겠습니까? 프랑스에는 보내지 않고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프랑스의 대응을 며칠이라도 늦출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수 일은 대영제국의 본토 방어를 확고히 해 주는 수 일이 될 것이다.

아차 하면 프랑스에게 본토를 위협당할지 모르는 위치에 있다는 문제 자체를 없앨 수는 없어도, 그 외에 인간의 능력으로 해결이 가능한 종류의 문제들을 해결하거나 최대한 대비할 수 있게 해주는 수 일.

아무리 못해도 최소한 기뢰를 부설할 시간은 벌 수 있지 않겠는가.

“네덜란드 정부는 어떻습니까?”

“네덜란드는 중립을 지키고 있기는 합니다만, 일단 유사시에 연합왕국을 지지해줄 확률은 낮은 것으로 사료됩니다.”

“빌어먹을 놈들.”

“개전시에는 네덜란드 역시 잠재적 적국으로 분류해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유사시에는 선전포고와 동시에 선공을 가하면 되지 않나.”

“처칠 장관, 그게 무슨 소리요?”

“문자 그대로의 말이오. 야음을 틈타 프랑스 제국 근해에 등화관제 상태로 함대를 접근시키고, 군항에 정박해 있는 함대를 일방적으로 기습하면 승산이 있다는 말이지.”

처칠은 말을 이었다.

“우리 정보부의 보고에 따르면 프랑스 함대는 현재 세력을 나눈 상태요. 우선 기존의 지중해 함대는 현재 대서양으로 향하고 있고, 대서양 함대에 소속된 브레스트급 4척이 차출되어 지중해로 향하고 있다고 하더군. 상트페테르부르크급 전함의 성능을 감안하면 동수의 브레스트급 전함이 있어야 안정적으로 상대가 가능할 테니 우리 해군의 제독들도 예상하고 있던 바네만.”

프랑스의 기존 함대 배치는 영국과 러시아와의 양면전선을 고려한 것, 그러나 영국이 끼어들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대서양 함대를 지중해로 배치하는 건 괜찮은 생각이다. 어차피 강구트급 따위야 순양함으로도 대응이 가능하고, 발트함대는 그냥 고철더미니까.

현재 러시아의 1급 함대는 지중해 함대, 2급 함대는 무르만스크를 모항으로 하는 북해함대, 3급 함대는 발트함대다. 너무 멀어서 다른 함대들과의 연계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실제로 무장상선이 대부분이라 통상파괴전이면 모를까 해전에서 유의미한 전력도 아닌 극동함대는 아예 논외다.

“그러니 브레스트급 2척은 우리 퀸 엘리자베스급이 상대하는 동안 나머지 전함들이 대대적인 공격을 가하면 대서양에서 프랑스 해군이 운신하기가 불가능할 정도의 피해를 줄 수 있네. 물론 수적인 열세가 문제인 만큼 프랑스 함대를 끌어내줄 러시아 북해함대의 지원이 있어야겠네만.”

처칠이 세워온 작전안을 들은 내각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작전명은...... 그래, 캐터펄트로 하는 게 어떻겠는가.”

***

중화민국, 베이징.

전쟁은 끝났고, 중화의 인민들은 하루빨리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복구를 서두르고 있었다.

아니, 복구가 아니었다.

진화, 도약, 뭐라 부르든 간에, 중화민국은 완전히 환골탈태해야만 했다.

산업화를 해야 했고, 교육 시설을 만들고, 군비를 증강해야 했다.

그리고 그러려면 조건이 있었다.

시장의 확대.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공단에서 열심히 물건을 찍어내봤자 살 여력이 없었다.

사실 그 공단도 제대로 지어진 게 많지 않기는 했지만, 이들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려면 시장이, 정말 큰 시장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시장이 생기려 하고 있다.

유럽에서 태동하고 있는 거대한 전쟁으로.

“러시아와 영국이 각각 군수물자 판매, 인력 지원에 대한 서를 보내왔소.”

영국은 머릿수가 부족하다. 러시아는 물자가 부족하다.

그렇기에 영국인들은 중국인들을 고용해서 비전투 노동력, 필요할 경우 총알받이로까지 사용할 계획을 구축하고 있었다. 물론 인도군도 별도로 훈련 중이지만, 그 인도군은 이스라엘을 경계해야 했으니까.

영국에는 변변한 전차가 없다. 해 봤자 탱켓이고, 이스라엘군이 보유한 경장갑 전투 차량과 전투력 면에서는 별 차이가 없는 물건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전차 개발에 예산을 안 줬기 때문이다. 전함 건조와 항공기 개량에 국방예산을 모조리 쏟아부은 영국은 거짓말처럼 전차 개발에 쓸 예산은 단 하나도 남지 않았다.

그나마 그 정도 쏟아부었기에 전함들이 그렇게 뽑혀나온 것이었지만.

“어쩌시겠소?”

“당연히 팔아야 합니다. 민국에게 있어서는 이건 일생일대의 기회입니다.”

인간을 인신매매한다는 것? 그게 무슨 상관인가? 저 너머 왜구들은 창녀들을 유럽에 팔아먹었고, 지금도 근절되지 않았는데 노동자에 용병이면 훨씬 건전한 거다.

이번 기회에 대대적으로 군수물자든 인력이든 팔아치우면 종잣돈을 마련할 수 있다.

그 종잣돈을 이용해 대대적인 산업화를 하고, 군을 현대화하고, 그렇게 해서 언젠가 양이에게 짓밟힌 중화의 영광을 되찾는다.

그것뿐이었다.

***

나는 미간을 꾹꾹 누르면서 외무장관에게 말했다.

“외무장관.”

“예, 폐하.”

“미국으로 가시오.”

“...... 잘 못들었습니다?”

“미국으로 가서, 국채 좀 팔아 보시오. 미국 정부 말고 사업가들에게.”

우리도 보험은 하나쯤 들어놔야겠다.

원 역사에서 미국이 독일에게 선전포고한 건 무제한 잠수함 작전 때문이 아니다. 명분은 그거였지만.

실제 원인은 러시아 혁명이 나서 러시아가 망한 뒤, 이대로 가다가는 독일이 전쟁에서 이기고, 영국과 프랑스에 빌려준 돈을 못 받게 된다는 공포에 젖은 미국 재계가 미국 정부를 강력하게 압박해서 전쟁이 나게 한 거다.

치머만 전보나 그런 건 미국에서 참전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게 한 유도제였을 뿐이다.

영국이 미국 화물선에 어뢰를 갈긴다거나, 아니면 러시아가 뇌절에 뇌절을 더해 뉴욕에서 폭탄테러를 벌인다거나, 캐나다군에게 미국과의 전쟁을 준비시킨다거나 하는 일은 있으면 우리에게는 호재지만 없어도 미국의 참전을 이끌어내는 일 자체는 지장이 없다.

‘물론 미국이 반드시 필요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미국을 끌어들일 카드는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배는 낫다.’

보헤미아 밖으로 전쟁이 번지지 않는다면 괜한 준비였겠지만, 뭐 손해볼 건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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