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94화 (94/200)

94화 결혼식장 난입(2)

“황태자 전하!”

“드골 중위? 이게 무슨......”

황태자는 결혼식 도중에 난입한 드골 중위의 행동에 얼이 빠졌다.

하필 타이밍도 결혼식에 이의 있냐고 묻는 찰나였는데, 순간 몇 초 정도 샤를은 결혼식에 이의 제기한다고 드골이 외치러 온 줄 알았다.

“황제 폐하의 명령입니다! 당장 튈르리궁으로 오시랍니다! 결혼식 끝났든 하는 중이든 상관없이 오시랍니다!”

“무슨 일인가?”

“....... 영국, 러시아, 네덜란드, 독일, 아무튼 대사분들도 다 자리에 계시니 겸사겸사 통보하겠습니다.”

숨을 들이킨 샤를 드골은 차분하게 낭독했다.

“제1부 전시태세 돌입, 제2부 프랑스 제국 정부, 3부 1210분, 4부 상황 하나, 보헤미아 반군이 세운 자칭 ‘자유 보헤미아 왕국’이 러시아로의 합병을 결의, 이에 따라 러시아군이 보헤미아 영내로 진입하는 중, 상황 둘, 러시아 제국 지중해 함대가 출항했음이 포착, 상황 셋, 프랑스 제국, 북독일 연방, 남독일 연방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영내로 러시아군이 진입할 시 프랑스-이중제국 간의 상호방위조약에 의거해 군사개입할 것을 러시아 제국 정부에 통첩한 바 있음, 이에 따라 프랑스 제국 정부는 러시아 제국 정부와의 전쟁상태에 돌입함.”

낭독을 마친 샤를 드골 중위는 첨언했다.

“현재 국민의회가 소집되었고, 국민의회 의결이 끝나면 정식으로 황제 폐하께서 발표하실 겁니다. 이미 최후통첩이 오간 이상 요식행위에 불과하니 지금쯤은 의결이 끝났을 겁니다. 길어야 1시간 정도 일찍 통보받았다고 생각하십시오.”

아마 지금쯤이면 열심히 외무부가 선전포고문의 문구를 작성하고 있거나, 완성된 선전포고문을 열심히 전보로 보내고 있을 것이다. 아마 몇몇 대사관에는 이미 선전포고문이 도착했을 것이다.

최근 성문화된 선전포고에 관한 국제법에 의거하면 선전포고문의 발송 자체는 외교 관계가 있는 모든 국가에 해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국과 그 국가가 어떠한 이유로 인해 개전하게 되었다고 제3국들이 통보를 받아야 하니까.

예를 들어 프랑스와 독일이 전쟁을 해서 독일이 선전포고를 했다고 가정하면 독일 외무부는 영국, 네덜란드, 오스트리아-헝가리, 러시아, 스페인, 포르투갈 대사관 등등에도 프랑스에 보내진 선전포고문의 사본을 제출하면서 양국이 전쟁 상태에 들어갔음을 통보해야 한다.

그러면 대사관의 직원들도 열심히 본국에 전보를 날리겠지만 거기서부터는 각국 외무부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다.

잠시 뒤, 결혼식장은 혼란에 빠졌다.

“준비하십시오.”

“알겠네, 그런데 자네 전문 그렇게 읽어도 되나?”

“거기 대사급 인원들 다 있을 테니 아예 다 모인 자리에서 전문 한번 낭독해주고 오라고 황제 폐하께서 지시하셨습니다. 굳이 길게 해명할 것도 없을 거라고 말입니다. 기밀도 없고요.”

“하긴 몇 시간 내에 여기 있는 사람 전원이 어차피 알게 될 이야기였지, 아, 그런데....”

신부를 보고, 주례석을 바라본 황태자는 끙 소리를 냈다.

“이거 어떻게 하나? 결혼 서약을 아예 안 했으면 나중에 날 잡아서 하고, 결혼 서약을 했으면 결혼식 끝났다 치고 가면 되는데 하다 말았네만.”

“두 분이서 예 했습니까?”

“그랬네.”

“그러면 혼인 성립한 겁니다.”

물론 상당히 애매하다.

일단 관습법적으로는 그게 맞는데, 결혼에 이의를 제기하는 딱 그 찰나에 일이 터졌다.

물론 드골이 결혼식에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지만, 관습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거나 영원히 침묵하라고 하고, 사제가 혼인 성립을 선언하기 전까지 누가 되었든 간에 혼인 서약에 이의를 제기하면 혼인이 애초에 없었던 것, 무효가 된다.

“그럼 빨리 혼인 성립 선언 하십시오, 제가 증인으로 설 테니 말입니다.”

본래 하객들 전원이 증인이지만 혼인이 성립하려면 증인이 한 명만 있어도 된다. 무엇보다 전쟁 발발 소식에 대사관 직원들은 전속력으로 대사관으로 달려가고 있고, 자리한 장성들도 전부 근무지로 급하게 복귀하는 와중인데 혼인 성립을 들어줄 정신머리가 남아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의문이었다.

“저도 서죠.”

그때,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나스타샤.”

“출발 준비하고 있어요, 꺽다리 중위, 증인은 제가 서 줄 테니까요.”

드골은 잠깐 당황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돌아보다가 밖으로 나갔다.

“아나스타샤, 난......”

“조용.”

아나스타샤의 푸른 눈이 샤를을 바라보았다.

“신부를 봐요, 증인을 보지 말고.”

“........”

“당신을 사랑하니까 당신의 아내가 되기를 포기했어요, 당신을 사랑하니까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어요, 제가 당신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거라고는 이것뿐이군요.”

아나스타샤는 사제석을 바라보았다.

“혼인 성립을 선언해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보던 사제는 침착을 되찾고 엄숙하게 선언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두 사람이 주님 앞에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합니다.”

***

“그렇게 됐습니다.”

“그렇군.”

나는 보헤미아로 진격하는 기갑부대의 작전상황을 훑으며 물었다.

“그래서 공주는 어떻게 하겠다던가? 귀국?”

“아닙니다. 일단 프랑스에 남아 있겠다는데.....”

“별장.”

“예?”

“네가 가지고 있는 별장 하나 빌려주도록, 외부와 접촉하지 않도록.”

“알겠습니다.”

“괜히 누군가와 접촉한다거나 하면 귀찮아질 수밖에 없다. 귀국할 의사가 있다면 돌려보내는 것도 방법이지만 본인이 자기 의지로 남겠다고 해주면 우리 알 바 아니지.”

나는 딱 거기까지만 말하고 아나스타샤에 대한 정보를 머릿속에서 지웠다.

“보헤미아의 상황은?”

“프로이센군이 이미 도착, 우리 군은 접근 중입니다. 프로이센군은 즉시 보헤미아 반군을 상대로 교전을 개시했고, 우리 군 역시 24시간 내로 작전을 개시할 예정입니다.”

동원은 이루어지고 있다.

가급적이면 보헤미아 지역에서만의 국지전으로 끝나기를 바라고 있으며, 실제로 보헤미아 지역 이외의 다른 곳에서 교전이 벌어졌다는 보고는 없다. 국경 내에서야 방어선이 열심히 구축되고는 있지만, 실제로 선공이 가해지지는 않는 것이다.

‘만약 공격하면 그 즉시 확전이다.’

어느 쪽도 보헤미아를 제외한 서로의 영토를 침공해들어가고 있지는 않기에 이 미묘한 상황이 유지되는 것이다.

“보헤미아의 일이니 보헤미아에서 끝났으면 좋겠군.”

다르게 말해 보헤미아 바깥에서 총성이 울리는 순간, 그 누구도 그 뒷감당을 할 수 없으리라.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추정상속인, 사실상의 황태자.

사실 아들도 아니고 동생도 아니고 사촌동생이라는 애매하기 그지없는 위치였지만, 살아 있는 사람 중에서는 가장 황제와 혈연적으로 관계가 가까운 인물이었기에 오스트리아-헝가리의 다음 대 황제로 점쳐지는 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은 황제의 집무실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갔다.

“황제 폐하.”

“아, 프란츠, 무슨 일인가.”

“발칸 방면으로 군을 보내실 계획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네.”

“이탈리아 방면에 군대를 보내고도 제국이 여유가 그렇게 있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무슨 소리인가, 여유가 없으니까 해야 하네, 저들을 먼져 쳐서 전선의 폭을 줄여놓아야 그 다음이란 게 있다고.”

“..........”

“프랑스와 프로이센이 모두 우리 편이네,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어떻게 러시아를 발칸에서 쫓아내겠나.”

“발칸의 제국 영토는 러시아에 판매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군사력으로 빼앗긴 게 아니라 말입니다.”

“그게 중요한가?”

“.........”

“러시아인들은 어디 명분이 있어서 그리스를 점령했나? 하, 제 3의 로마? 말 같지도 않은 소리지. 그게 명분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보다는 제국의 발칸 영토 탈환이 훨씬 명분적으로 우월하지 않나.”

“프랑스 정부가 비공식적으로 전달했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전투가 보헤미아 외부로 확대되지 않기를 바란답니다.”

“러시아가 확답했나? 보헤미아 밖에서는 싸우지 않겠다고.”

“그건 아닙니다만.”

“프란츠, 발칸 영토는 보헤미아인들이 기어오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네.”

루돌프 황제는 차갑게 답했다.

“발칸을 팔아넘긴 뒤로, 보헤미아인들의 목소리가 너무 커졌어, 짐은 그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들어주려 했지만, 저들은 이제 불경하게도 아예 독립을 논하고 있지.”

발칸의 소민족들이 제국에서 사라진 만큼 보헤미아의 발언권은 제국에서 커졌다.

그 결과가 이 반란이다.

“짐은 충분한 관용을 베풀었네, 그런데도 기어오르는 놈들이 있다면, 더 양보해야 하는가? 그러면 어디까지 양보해야 하는가? 제위를 내려놓을까? 제국이 갈가리 찢겨지게 만들까? 프랑스는 그럴 염려가 없지, 북독일 연방도 그럴 염려는 없어, 하지만 이중제국은 그런 염려를 해야 하네. 이 나라는 민족 없는 국가니까.”

제국의 대표 민족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적 주도권을 잡고 있는 독일계조차도 북독일 연방과 남독일 연방이라는 대안이 존재한다.

애초에 그 기원부터가 합스부르크 가문이 보유하고 있던 영지들을 얼기설기 엮은 것에서부터 출발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오스트리아-헝가리는 굉장히 어정쩡한 위치의 국가다.

언어마저도 과하게 다른 이 나라의 제위에 앉아 있는 인물은, 제국의 해체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합스부르크 왕가뿐이었으니까.

“보헤미아인들의 반란을 진압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의 역심을 내리누르려면 그들의 반대쪽에 추가 더 얹어져야 하네.”

남독일 연방과 북독일 연방을 병합해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독일인의 민족국가로 재탄생한다는 건 현재 그들의 국력으로는 망상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더 많은 민족을 제국의 패권에 집어넣어 그들이 통일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는 수밖에 없고, 그들이 진출할 수 있는 경로는 발칸밖에 없었다.

‘보헤미아인들에게 자치권을 주는 것도 어렵다.’

오스트리아 제국과 헝가리 왕국은 거의 따로 놀다시피 하는데, 보헤미아가 같은 권리를 얻으면 국내 반발과 특권 확대에 반대하는 마자르인들의 반발을 무릅써야 할 뿐 아니라 합스부르크 가문의 위신이 실추된다.

단순히 얼굴 좀 팔리고 말면 감수할 수 있겠지만, 이 상황에서 합스부르크 왕가의 위신이 실추된다는 것은 최악의 경우 제국 붕괴를 의미할 수도 있는 바. 화약고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꼴이다.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제안한 연방제의 실현이 불가능한 이유였다. 반란 전에는 제국 탈퇴를 언급하면서까지 격렬히 반발한 헝가리 때문에, 반란 이후에는 위신 실추 때문에라도 못 하게 된 것이었다.

“보헤미아인들은 무기와 힘에 의해 찍어누른 뒤, 그들의 반대쪽에 적절한 추를 얻어 올리면 해결될 수 있다. 그리고 연방제로의 개혁은, 최소한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무리다, 프란츠. 난 헝가리를 찍어누를 수 없었으니.”

루돌프 황제는 말을 이었다.

“하게 된다면, 그건 네가 황제에 즉위한 뒤에나 가능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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