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93화 (93/200)

93화 결혼식장 난입(1)

“이놈의 결혼식은 어디 마가 꼈나.”

파리의 국방성에서 나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연적에 의해 누명을 뒤집어쓴 신랑이 결혼식장에서 끌려나간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생각해 보니 그것도 프랑스 소설이었다-결혼 전야에 초대형 사건이 터져서 결혼식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도 불투명해지는 법이 대체 어디 있는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는 총동원령이 내려졌습니다. 반군은 프라하를 중심으로 보헤미아의 상당 부분을 장악, 독립을 선포했고요.”

“배후에는 러시아가 있나?”

“알 수 없지만, 그렇든 아니든 간에 러시아는 개입할 겁니다. 보헤미아를 강제 병합하겠죠.”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수법인데. 전생에 봤나.

“내일쯤 보헤미아가 러시아로의 합병을 결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망할, 아들놈 결혼날인데.”

“..... 뭐 어쩌겠습니까. 일단 준비한 건 준비한 거니 그대로 치르더라도 하객들은 좀 줄여야겠죠.”

“아내만 자리하고 있게 생겼군, 하.”

원하지 않는 상대와 결혼시키는 것도 미안해 죽겠는데, 결혼식에는 가지도 못하게 됐으니...... 샤를 녀석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하나.

“함대는 작전준비를 완료했습니다. 현재 지중해 함대와 대서양 함대가 각각......”

“지상군은? 북독일 연방의 국경 개방을 받아냈나?”

“북독일 연방이 주저하고 있습니다. 일단 라인 공국에 4개 기갑사단과 4개 보병사단을 열차 탑승 상태로 투입했고, 후속 부대도 계속 집결하고 있습니다.”

“그놈들이 국경 개방 안 해주면 이미 개판인 이탈리아를 지나가든 바다를 건너가든 스위스를 지나든 해야 해, 스위스 대사 불러서 국경개방 요구해놓고, 북독일 연방에 빨리 대응하라고 해.”

“반란 시작부터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습니다. 8개 사단이나마 급하게 라인 강까지 보낸 것만 해도 빠른 겁니다.”

그건 안다.

“지금 우리 군이 거기까지 이동할 수 있으면 반군의 세력을 크게 꺾을 수 있을 텐데.”

아직 편성이 덜 되기는 했지만 신속대응군으로 꾸려진 기갑사단 4개는 폴테아가 전차들로 보유한 전차들을 전부 채우고 있다.

게다가 보병사단들도 주무장을 FAB03 소총으로 다 전환해서 시가전 등에 특화되어 있는 만큼 아직 저쪽도 제대로 된 준비는 못 했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 프라하 등에 있는 원점을 빠르게 타격하면 바로 박살내버릴 수 있다.

설마 저놈들이 대전차무기를 대량으로 가지고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기껏해야 화염병만 주의하면 끝인데, 보병 엄호만 받으면 화염병에 전차가 구워질 일은 없을 거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터였다.

물론 북독일 연방도 선뜻 우리에게 국경 개방을 약속하기는 어려울 거라는 건 알지만, 아까운 시간이 흘러가는 것 같아 속이 탔다.

“어차피 보헤미아까지 사단이 이동하고 부대를 재편해 작전개시까지 가려면 하루이틀은 넉넉히 걸리고, 보급물자도 전부 본토에서 실어와야 하는데 그것도 한참 걸릴 겁니다. 거기에 비해서 지금 북독일 연방이 끌고 있는 몇 시간쯤은 별것도 아닙니다.”

“그건 알지만, 그래도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운 건 사실이네.”

아직 의회도 소집되지 않았을 거라는 것도 안다, 애초에 북독일 연방은 문자 그대로 연방인지라, 국경개방 같은 경우는 프로이센이 마음대로 할 수 없기도 하다. 형식적으로는 입헌군주정이기도 하고, 융커들의 세력이 강하기도 하니까.

“후, 그래, 진정해야지..... 일단 라인 공국에 그 시간 동안 물자를 더 추진해두도록, 탄약, 교체 부품, 연료, 뭐든, 그리고 러시아 대사에게 경고...... 아니, 내가 직접 만나지.”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긴장으로 인해 바싹 마른 입술이 갈라져 있는 게 느껴졌다.

“빌어먹을, 몇 년이나 됐다고 또 전쟁이냐.”

***

“황제 폐하, 러시아 제국은 보헤미아에서의 소요사태와 무관합니다.”

“그렇다면 보헤미아의 무도한 반역자들이 러시아 제국으로 합병을 결의한다거나 하는 경우에도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겠소? 대사.”

“..........”

니콜라이 2세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지금 왕좌나 따뜻하게 데우고 있는 신세고, 범슬라브주의에 광분한 러시아 제국 군부는 명백히 폭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차르도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

“보헤미아가 러시아 제국에 합류하겠다고 선언하더라도 러시아 제국군이 보헤미아로 진입하지 않을 거라고 보장할 수 있느냐고 물었소, 대사.”

“제 권한 밖의 답입니다. 저 역시 본국이 작금의 사태에 대해 어떠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뭐, 좋소,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히 전하시오, 보헤미아가 러시아 제국으로의 합병을 결의하든 어떻게 되든, 러시아 제국이 오스트리아-헝가리의 국경 내로 군대를 보내는 순간 프랑스 제국은 이를 러시아가 삼국동맹을 파기한 것으로 간주하고 개전할 것이오. 이는 최후통첩이오.”

구두다, 서면이 아니다.

당연하지만 개전을 위해서는 국민의회의 동의가 있으면 좋은데, 아직 소집 중이라서 정식으로 최후통첩을 하지는 못했다.

물론 내가 독자적으로 선전포고를 해버려도 안 될 건 없지만, 국민의회가 의결하는 게 모양새가 훨씬 좋으니까. 헌법상 선전포고의 권한은 내게 있기는 하지만 의회의 뜻을 ‘존중’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 존중이라는 말이 참으로 애매모호하기 그지없으니, 뒷말이 안 나오려면 의회 의결도 받아내는 수밖에 없다.

즉 이 최후통첩은 내게도 시간을 벌어주는 셈이다. 의회를 소집해서 선전포고에 대한 권한을 위임받을 시간을.

***

유럽 각국이 러시아의 확장 야욕을 막기 위해 모였다.

최후통첩을 보낸 국가는 프랑스 제국, 북독일 연방, 남독일 연방이었고, 네덜란드 역시 우려를 표했을 뿐 아니라 보헤미아로 진격할 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싸워야 한다는 걸 감안하면 사실상 전 유럽을 상대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폐하, 동원령을 허가해주십시오.”

“그대들이 약속한 대로 보헤미아 일대에서의 국지전으로 끝낼 수 있다면 왜 동원령을 내려야 하는가? 지금 동원령을 내리면 북독일 연방을 과도하게 자극하지 않겠는가?”

“폐하, 부분 동원령을 내리면 오스트리아인들은 총동원령을 내릴 텐데, 이렇게 되면 군사적인 대응이 늦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참호전에서 보였듯이 적들이 유리한 곳을 차지하기 전에 아군이 점령하지 않으면 그 지역을 점령하기 위해 막대한 희생을 치를 수밖에 없습니다.”

니콜라이 2세는 계속해서 반대 의사를 내비쳤지만, 군부로써도 물러날 수가 없었다.

“보헤미아인들은 제국으로의 합병을 결의했습니다. 저들을 우리가 버리면 슬라브인의 종주국으로써의 이름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알렉산다르 카라조르제비치 대공은 전쟁의 필요성을 강변했다.

여기에서 꼬리를 말아버리면 제국의 위신도 위신이거니와 대슬라브주의의 원칙이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대슬라브주의자들로 가득한 군부만 문제가 아니라 모든 슬라브인들의 차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차르의 권위마저 훼손된다.

그렇게 주장한 장성들은 전쟁은 이미 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미 독일인들은 동원령을 시작했습니다.”

북독일 연방, 프로이센은 이미 전쟁을 각오하고 있었다. 빌헬름 2세도 다른 전쟁을 벌인다는 것에 찝찝함을 느끼고 있었지만, 융커들의 요청에 의해 동원령을 내린 순간부터 이미 돌이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동원령을 중간에 중단하면 그 혼란을 수습하는 데 족히 한 달은 걸리고, 그 사이에 러시아가 공세를 시작하면 몇 안 되는 기병연대 외에는 대응 가능한 부대가 없었다.

기갑부대가 없지는 않다고 하지만 기갑부대는 엔진의 신뢰성 문제 때문에라도 열차로 실어나르는 게 일반적이었고, 그건 전차의 종주국인 프랑스도 딱히 다르지 않았다.

전차부대를 수송하기 위해서는 열차에 실어서 옮기는 게 부대의 유지력을 위해서는 훨씬 좋다는 것은 당연한 일, 즉 동원령을 처로히할 경우 문자 그대로 몇 없는 기병대나 자전거부대를 제외하고는 예비대가 증발하는 거나 다름없어진다.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지역에 투입할 수 없는 전투부대는 사석이나 다름없으니까.

즉, 프로이센은 동원령을 철회할 수 없었다. 그리고 동원령을 철회할 수 없다는 뜻은, 결국 북독일 연방은 전쟁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것.

그리고 북독일이 전쟁을 일으키면 남독일, 프랑스 등도 자연스럽게 전쟁에 말려들 수밖에 없었다.

서로가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는 걸 신뢰한다면 이야기가 다를지 모르나, 당장 막 개업한 가게 앞의 종이인형마냥 팔랑거리는 니콜라이 2세가 아닌 군부에게 실권이 넘어가 있었고, 군부는 애초에 전쟁을 막을 의지가 없었다.

크게 져봤자 상트페테르부르크나 모스크바가 함락되기라도 하겠냐는 자신감이었다. 나폴레옹도 모스크바를 함락시켰을지언정 유지하지는 못하지 않았던가.

***

결혼식은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열렸다.

프랑스 제국의 황태자의 결혼답게 화려하고, 각국 대사들을 포함한 국내외 귀빈들이 초청되었지만 신랑과 신부의 부친은 모두 자리에 없었다.

빌헬름 2세는 부랴부랴 베를린으로 돌아갔고, 나폴레옹 4세 역시 군 사령부에서 정보부를 총동원해서 전쟁의 발발 여부를 검토하고 있었다. 아들 결혼식이라고 해서 참석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부모가 참석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혼식이 무효가 되는 건 아니다. 유럽에서는 전통적으로 교회나 가족, 국가가 승인하지 않는다고 해도 성인 남녀가 스스로의 의지로 갈대로 반지 모양 만들어서 나눠 끼고 신 앞에 맹세했다면 그 결혼은 법적으로 유효하다.

더군다나 부모가 전쟁 일보 직전에 놓인 국가원수라는 특정한 상황에 놓여 결혼식장에 못 갔을 뿐, 이미 결혼 날짜 다 잡아놨는데 미루기도 어려워서 결혼식을 강행한 것일 뿐이니 더더욱 문제가 될 리가 없다.

물론 모양이 빠지는 건 사실이었다.

“축하해요, 샤를.”

그러나, 아무도 진짜 오리라고 생각하지 않은 사람도 그 자리에 하객으로 참석해 있었다.

샤를의 연인, 아나스타샤 공주.

사랑했던, 사랑하는 상대의 결혼식장에 하객으로 참석한다는 것은 비극적인 스토리였지만, 주변인들을 더 당황하게 한 건 그녀가 아직 프랑스에 있다는 것 자체였다.

“아직 안 돌아갔습니까?”

“제가 돌아가야 할 이유가 있나요? 프랑스 정부가 절 해칠 것도 아닌데 말이죠.”

“..........”

사실 돌아갈 배를 물색할 틈도 없었기는 했지만, 여유가 있었더라도 결혼식은 볼 생각이었다.

그래야 마음이 조금 정리될 것 같았기에.

“.... 혹시 문제가 생기면 도와드리겠습니다. 함부로 밖에 나가지 마십시오, 지금 상황이 많이 안 좋아서 말입니다.”

흥분한 군중들은 뭔 일을 벌일지 모른다, 무슨 의미인지 이해한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뒤, 식이 시작되었다.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식이 진행되다가, 아나스타샤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샤를 조제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그대는 프로이센의 빅토리아 루이제를 아내로 맞아 가난할 때나 부유할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고, 수호하며, 남편으로써의 의무를 다할 것을 맹세합니까?”

“예.”

“빅토리아 루이제 폰 프로이센, 그대는 샤를 조제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남편으로 맞이하여 가난할 때나 부유할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고, 수호하며, 아내로써의 의무를 다할 것을 맹세합니까?”

“예.”

“만일 이 결혼식에 이의가 있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말씀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영원히 침묵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의 시선은 알게 모르게 그 유명한 스캔들의 주인공이자, 이곳에 하객으로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한 아나스타샤 공주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물론 담담하게 받아들였느냐고 물으면 아니었다.

하지만 받아들여야만 했다.

지금 그녀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받아들여서, 깔끔하게 승복하고 물러나 거리를 두는 것 뿐이었으니까.

한때는, 그에게 질척거리며 달라붙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제대로 된 사랑이 아니었다. 사랑은 무한한 관용이며 완전한 자기 망각이다. 그 질척거림은 그녀의 이기심의 발로일 따름이라고 그녀는 생각하게 되었다.

그녀에게 재산이 있는가? 그다지 없다. 로마노프 가문은 세간의 생각처럼 그렇게 부유하지는 못하고, 재산의 대부분도 현금화가 어려운 문화재 등인지라 실질적인 가용 자금은 적다.

심지어 황제도, 후계자도 아닌 그녀의 재산은 거기에서 한 줌에 불과하다.

명예는? 러시아 제국의 유일한 황녀라는 이름은 있지만 상대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프랑스 제국의 황태자로써 태어났다.

심지어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감안하면 그녀와 그는 서로를 멀리 할수록 이득인 관계다.

반면 저기서 드레스를 입고 있는 여자는 그에게 강력한 동맹을 찾아다 줄 수 있는 존재다. 사실 프랑스 황실이 그의 반려를 선택한 기준은 그거 단 하나뿐이었을 것이다.

프랑스 황실이 쉽게 선택을 내리지 못하게 보내졌고, 처음에는 그럴 작정이었지만.

마음을 자각하고 나니 도리어 냉정해졌다.

그녀와 그는, 아무리 사랑한들 함께하는 것이 도리어 그에게 손해를 입힐 뿐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그를 진정 사랑한다면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답은 오래전부터 나와 있었다.

그녀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했을 뿐.

잠시 시간이 지나고 성혼이 선언되려는 찰나, 예식장에 하나 있는 문이 부서지듯이 열렸다.

본래 예식이 시작된 뒤에는 신랑과 신부만이 드나드는 문인데, 갑자기 활짝 열려버리자 모두의 시선이 한데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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