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92화 (92/200)

92화 태동(3)

“키프로스에서의 전훈은 간단하군.”

“저격수에게는 저격수로 맞대응하는 게 가장 효율적입니다. 어떤 종류의 포격과 폭격도 도시를 평탄화할 수 없으며, 저격수는 잔해 속에서 몸을 숨기고 상대 지상군의 희생을 강요할 수 있습니다. 기갑부대는 몰라도 보병 투입이 필수적인 시가전에서 이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오로지 명중률만을 중시한 신형 소총이 필요합니다. 이는 제식소총만큼은 아니지만, 만에 하나 대규모 전쟁, 1년전쟁 이상의 대규모 전쟁이 발발할 경우 시가전에 대비해 최소 만 단위의 저격수를 양성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나는 보고서를 읽었다.

“그럴 시간이 있을까 모르겠군.”

“예?”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이탈리아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애를 먹고 있고, 슬라브 민족주의자 세력은 노골적으로 보헤미아를 원하고 있는데 니콜라이 2세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어.”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의 충언을 듣지 않는 건 아니다.

듣고 고개를 잘 끄덕여 놓고 다른 놈이 쪼르르 가서 조잘거리면 귀가 팔랑거리면서 ‘어? 그런가?’ 이런 식으로 나가버리니까 문제지.

“그리고 루돌프 황제는 막말로 무능하다. 그가 지금의 난국을 타개할 가능성은 낮아.”

물론 완전히 무능한 사람은 아니다. 적어도 최소한의 능력은 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그 ‘적당히’ 능력 있는 걸로 살아남을 상황이 아니라서 문제지.

민족주의의 광풍이 휘몰아치고 있고, 제국을 하나로 묶어놓은 건 합스부르크 왕가라는 구심점 하나뿐이다.

그 합스부르크 가문이 저 모양으로 마비되어버리면, 제국 붕괴는 필연이다.

그리고 합스부르크 제국의 붕괴는 필연적인 전쟁을 불러올 것이다.

“레굴루스 전투기의 생산량을 300대 정도 더 늘렸으면 좋겠군.”

물론 해본 소리다. 레굴루스 전투기는 프랑스도 그리 많이 보유하지 못한 고성능 전투기다.

생산량을 확 늘리고 싶다고 해서 확 늘릴 수 없는 장비라는 의미다.

세계 최초의 전금속제 단엽기라는 건 제조에 그만한 비용을 필요로 하니까.

“물론 저격소총 정도는 외주를 줘도 된다. 이미 병기국이 한계까지 굴러가고 있으니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브라우닝 백작을 비롯한 병기국 인원들을 슬쩍 흘겨본 나는 바닥을 구두 뒷굽으로 툭툭 쳤다.

“정밀한 총 만들 수 있는 곳으로 가서 주문하도록, 총이 제시간에 올지는 모르겠지만 손 놓고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

공적인 일도 그렇고, 사적인 일도 그렇고, 실로 뻑적지근하기 그지없는 나날이다.

사적인 일이 뭐냐고?

아들놈 결혼한다.

‘마음 정리는 잘 했으려나.’

물론, 샤를 녀석도 자신이 결혼을 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이해를 하고 있는 상태다.

그저 그 필요성과 개인 감정의 대상이 일치하지 않을 뿐.

그리고 나는 그 두 가지 중 어느 게 우선순위가 되어야 하는지 혼동하지 않게 가르쳤다고 자부한다.

황족인 이상, 황태자인 이상.

자신을 호의호식하게 해 준 국가를 위해 자신의 개인적인 행복을 포기해야 한다면 기꺼이 해야 한다는 것.

그들이 일반적인 국민이었거나, 하다못해 황태자만 아니었어도 사랑하는 이와의 감정을 통해 생겨난 결실은 축복받아 마땅한 것이었겠지만, 황태자이고, 황제가 될 자인 이상 자신이 가진 권력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조국이 그 대가로 개인적인 행복을 요구한다면, 지불해야만 한다.

샤를도 이해하고 있다. 적어도 이 세상에서는 왕관과 거리가 제법 멀 에드워드 8세마냥 사랑에 미쳐서 국가에 거대한 똥을 싸지르지는 않게 확실하게 교육시켰다고 자부한다.

그래도 사람 마음이 말같이 그렇게 쉽게 맺고 끊어지는 건 아니겠지.

‘찾아가서 위로나 해줘야겠군.’

아버지로써, 자식에게 미안한 마음 역시 어쩔 수 없었다.

‘아들아, 사랑하는 이와 결혼을 허락해줄 수 없었던 이 아버지를 용서해주길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너 역시 언젠가 이해하게 될 거다. 아니, 너는 현명한 아이니 이미 이해하고 있겠지. 가슴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지언정, 내가 어떤 의도에서 행동하는지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하고 있을 터.’

그리고 무엇이 더 중요한지,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

지중해, 프랑스 제국 영해, 사르데냐 섬 인근.

레굴루스 전투기 한 대가 비행갑판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이함 성공!”

“절반은 성공이군.”

함장은 중얼거렸다.

세계 최초의 순수한 항공모함을 책임지는 함장으로써는 무력한 일이지만 지금 당장 함장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 하늘을 날고 있는 조종사는 굉장한 베테랑이니, 착함 시에도 잘 해주리라 믿을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사고가 나면 빠르게 구조하기 위해 육지 인근에서 시험하고, 선박들도 여러 대 띄웠다. 그만큼 아직 항공모함 이착함 기술은 불안정한 기술이었다.

함선 취역 이전에 이착함 테스트를 하면서 어느 정도 된다는 건 확인했지만, 그게 진짜 바다 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환경에서도 전부 대응이 가능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리고 그 다양한 환경에서 현재의 설계로 이착함이 잘 되는지를 알아보는 게 우선 과제였다. 물론 어지간한 전함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 덩치 덕분에 관계자들 대부분은 그렇게 걱정할 건 없다는 게 중론이었다.

비행갑판이 길고 넓을수록 항공기의 이착륙이 쉬워진다는 건 상식이고, 거기에 배가 클수록 파도를 견디기 쉬워지니까.

이착륙에 방해되지 말라고 함교도 구석진 데로 치워놓고, 자체 무장도 대공포 이외에는 아예 없다.

항공모함은 문자 그대로 움직이는 비행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호위가 반드시 필요한 이 반쪽짜리 배가 누군가의 기대처럼 전함을 능가하는 강자로 부상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대의 부름이었다.

아직은 아닐지언정 말이다.

***

“북독일 해군의 전함, 프리드리히급, 빌헬름 1세급, 프리드리히 빌헬름급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화력은 유지한 상태에서 대응방어를 포기하고 속도를 올려 고속성능을 확보한 것이죠, 다만 프리드리히급은 예외로, 주포가 35cm 2연장 2기뿐으로 화력 역시 매우 약합니다. 빌헬름 1세급은 38cm 주포 2연장 3기, 프리드리히 빌헬름급은 16.5인치 2연장 4기를 보유해 화력이 월등하게 강해진 것과는 대조적이죠.”

여기에는 순양전함이라는 분류가 없지만, 만약 분류가 생긴다면 독일에는 전함이 없고 순양전함만 존재한다고 해야 할 상황.

“이러한 콘셉트로 설계된 전함은 북독일 연방 외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의 마리아 테레지아급 전함이 있습니다. 마리아 테레지아급은 15인치급 주포를 장착해 화력만큼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에서 가장 강력하나, 방어력은 14인치급 전함인 산타 루치아급에 비해 밀리고 12인치급 전함인 도나우급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어차피 해군조약에 의해 각국 전함의 속도와 장갑, 주포 수와 구경 따위는 전 세계에 밝혀졌다. 그리고 조금 생각이란 게 있는 해군 장교면 각국의 건함 사상 역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거에는 전혀 관심이 가지 않았다.

학점이고 나발이고 눈에 들어오는 게 없었다.

‘.......... 아프다.’

몸이 아픈 게 아니다.

이게 어떤 종류의 감각인지는 안다, 아니, 정정하자, 안다고 생각했다.

좋은 사랑을 했고, 이제는 끝났다.

누군가는 말하리라, 누구 마음대로 끝났다고 하냐고, 누가 끝을 정하냐고, 아직 그 불꽃이 꺼지지 않았는데, 누구 마음대로 끝을 정하냐고.

그러나 그것을 끊어내야 하는 건 그 스스로였다.

사랑하고 있음에도 자신의 손으로 사랑을 끊어내야 한다.

꿈을 꾸었다. 사랑하는 상대와 함께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꿈을.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그가 황태자인 이상,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걸 아는 꿈을.

알고 있었다. 이 순간이 영원히 뽑히지 않을 가시가 되어 영원히 그의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을 흉터를 남기기라고.

결혼식은 5월 5일로 예정되어 있었다.

***

1915년 5월 2일, 보헤미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경고한다, 즉각 귀가하라, 그대들은 지금 제국의 법률을 어긴 불법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즉시 해산하지 않으면 발포하겠다!”

“합스부르크의 개들은 꺼져라!”

“슬라브 연방 만세!”

“대슬라브 만세!”

돌이 날아들고, 화염병이 던져진다.

-펑! 펑펑!

최루탄이 터지고, 중무장하고 곤봉을 든 헌병들이 달려든다.

“반란 분자들을 밟아버려!”

기병들이 앞으로 나갔다.

이쯤 되면 몽둥이를 휘둘러대는 헌병들에게 최루탄을 뒤집어쓴 시위대는 개처럼 두들겨맞고 잡혀갈 놈은 잡혀가고, 도망갈 놈은 도망가고 하면서 시위가 적당히 해산되어야 했다.

평소에는 그랬다.

평소에는.

그리고 그날은 평소가 아니었다.

-타타타타타타타타!

총을 겨눈 사람이 없었는데, 어디선가 총성이, 그것도 총기의 ‘연사음’이 울려퍼졌다.

그리고 피가 튀었다.

기병 몇이 바닥을 뒹굴고 있엇다.

“무, 무슨?”

“시위대가 무장했다!”

“엎드려! 엎드리라고!”

다급하게 헌병들이 부상자를 수습해서 후퇴하기 시작했다. 탄약이라고 해 봤자 절반은 공포탄만 들고 온 헌병들에게 있어서 자동화기를 시위대가 보유하고 있고, 그게 한둘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는 건 전멸을 우려하게 할 문제였다.

“전령! 당장 본부에 지원 요청해! 저놈들이 기관총을 가졌다! 후퇴! 후퇴!”

급하게 도망치는 헌병들을 보며, 한 남자가 대충 쌓은 상자 위에 올라섰다.

상당수의 시위대는 너무 놀라서 몸이 얼어붙은 모양새였지만, 시위대 사이에 섞여 있던 이들 중 여럿이 총기를 꺼냈다.

“슬라브의 형제들이여! 오늘,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열 것이다! 우리의 손으로 세계가 바뀔 것이다!”

프랑스의 혁명가들은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해 혁명의 기치를 올렸다.

그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과 100여 년 전의 혁명가들이 다른 점은 단 하나, 그들은 그들의 사명인 자유, 평등, 박애의 힘으로 움직였지만. 이곳에 있는 청년들은 민족을 위해, 자명한 운명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러시아제 소총 하나를 움켜쥔 남자는 상자 위에서 포효했다.

“오늘 우리는 합스부르크의 개를, 우리의 자명한 운명을 막는 이들을 이 도시에서 몰아낼 것이다! 모든 민족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하며, 우리 역시 예외가 아니다!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합스부르크에게 맡기지 않으리라! 우리는 세상과 싸워서 우리의 길을 개척할 것이다!”

과격한 주장을 하는 이들은 소수지만, 그들의 행동력은 뛰어나다.

오스트리아에서 완전히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은 소수고, 대부분은 그저 제국 내에서 보헤미아인들이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와 동등한 발언권을 얻는다면 만족할 이들이었다.

헝가리의 반대가 만만찮았을 뿐더러 황제가 그들과 협상할 의지가 별로 없었던 것 뿐이었다.

그리고, 협상으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면 과격한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였다.

“프라하여! 궐기하라!”

반란의 불씨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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