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태동(1)
“덴노 헤이카 반자이이이!”
-탕! 탕탕탕!
총이 불을 뿜었다.
러시아군은 과거 레버액션 소총을 사용하던 오스만군에게 큰 피해를 입은 뒤로 프랑스제 샤스포 소총을 사용했으나, 이 역시도 단발식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이를 통해 게베어 88식 소총과 비교한 단발식 소총의 한계를 1년전쟁 당시 뼈저리게 느낀 러시아 제국은 다양한 장비를 해외에서 도입했다. 프랑스 제국에서는 브라우닝 백작의 1894년식 레버엑션 소총을 구매해 기병대에 지급하고, 슈미트-루빈 소총을 스위스에서 대량 구매해 급한 소총의 소요를 채웠다.
그러나 완전히 새롭고 독자적인 소총의 필요성을 자각한 러시아 제국은 영국의 협조를 얻어 .276탄을 사용하는 독자적인 소총을 개발했고, 세르게이 모신에 의해 모신 소총이 개발되었다.
그리고 그 소총들은 달려드는 사무라이들을 향해 가차없이 불을 뿜었다.
당연하지만, 칼 든 사람과 총 든 사람을 비교하면 당연히 총기로 무장한 사람이 압도적으로 이긴다.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말에 탄 코사크 기병들이 총격을 가했다. 레버액션 소총을 쏴대면서 달려드는 사무라이들을 쏘아 쓰러트린 코사크들은 탄창의 탄을 다 소모하자 여유있게 기병도를 꺼내들었다.
그때 총성이 다시 울렸다.
-타앙!
임진왜란 때 마지막으로 쓰였을 법한 조총이 코사크 기병 하나를 낙마시켰다. 너무 어이없는 전과였다.
물론 코사크가 갑옷을 입은 것도 아니었으니 조총이라도 맞으면 죽는 건 마찬가지지만, 상대에게 총화기가 없을 거라는 예측이 빗나간 것이었다.
그걸 신호로 베르단, 샤스포 등 온갖 구닥다리 무기들이 러시아군을 향해 불을 뿜었고, 러시아군 쪽에서도 모신 소총과 94식 레버액션 소총, 슈미트-루빈 소총이 불을 뿜었다.
화력 차가 어마어마했기에 순식간에 사무라이 반란군들은 패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병을 상대로 등을 보이는 건 자살행위다. 순식간에 반란군은 전멸당했다.
“빌어먹을 놈들, 무슨 저항이 이렇게 지독하지?”
러시아 제국은 국권을 빼앗을 때 기존의 황실과 왕실들을 어느 정도 존중했다. 당대의 군주들을 폐위시키기는 했지만, 그냥 자리를 뺏지 않고 기존 가문들에 공작위를 줘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거주하게 해주었던 것이다.
이는 조지아의 바그라티온 왕조 때도 했던 방식이었다. 러시아 제국이 1810년 조지아를 완전 합병하면서 당시 조지아의 군주였던 바그라티온 가문에게 공작위를 인정해준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니콜라이 2세는 나름 선례를 찾아보고 조지아가 러시아 제국에 성공적으로 합병된 사례를 참조해 행동했을 뿐이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러시아 제국은 1만 명에 달하는 병력을 증파했고, 5690명을 사살하거나 체포해 시베리아로 쫓아내야 했다.
육지로, 철도로 연결된 지역들은 철도를 이용해 강제이주를 시켜 그들을 지원할 민간인 자체를 다 물리적으로 없애버리는 방식으로 제거하기 용이했지만, 일본은 이야기가 좀 많이 달랐던 것도 문제였다.
영국이 조금씩은 도와줬지만 그 많은 일본인들을 죄다 선박으로 끌어다가 중앙아시아로 보내버릴 수도 없었던 만큼 일본은 상당히 후순위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통치를 느슨하게 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암살시도, 폭탄 테러, 저항군.
극동의 각 지역들은 러시아의 지배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
키프로스. 지중해.
키프로스는 오스만 제국의 마지막 남은 잔재였다.
물론 그 키프로스를 누가 통치해야 할지는 논란이 많았다.
우선 그리스인들은 키프로스를 그리스인들만의 국가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튀르크인들은 이곳을 이슬람 국가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타협이 되지 않는다면 남는 것은 전쟁뿐이었다.
그리스계 민병대는 영국에서 사들인 토르니크로프트 카빈으로 무장하고 튀르크인들을 공격했고 모스크를 폭파했다.
프로이센에서 판매한 570형 반자동 소총, 그리고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튀르크인들은 정교회 성당을 공격하고 민간인들에게 총격을 퍼부었다.
너무 오랜 기간 혼혈되어 인종적으로 거의 구분되지 않는 두 세력을 구분하는 것은 오직 종교뿐이었고, 오히려 그렇기에 타협이란 있을 수 없었다.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
이들에게는 전차는 없다. 그렇기에 구식 참호전이 벌어져야 했다.
그리고, 기관단총을 든 자는 압도적인 화력 우위를 지닐 수 있었다.
참호 아래 있던 그리스 민병대원들이 순식간에 벌집이 되어 나자빠졌다. 튀르크 민병대는 여유있게 참호선을 넘었다.
장거리 화력은 좀 떨어질지언정 튀르크 민병대의 주력 장비는 반자동 소총과 기관단총이었고, 압도적인 화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문제라면, 그리스인들은 장비가 후달릴지언정 이곳의 터줏대감이었다는 점이었다.
-타앙!
참호선을 넘어가 시가지에 진입하자마자 사방팔방에서 저격이 날아들었다.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한 명이 목숨을 잃는 꼴, 심지어 그 타겟들은 대부분 장교나 하사관의 역할을 맡는 숙련병이었기에 무형적인 피해는 말할 수가 없었다.
간부들이 다 죽어나간 상황에서 초짜 병사들만 시가전 장소 한가운데에 던져놓으면 장비를 뭘 들려주든 도움이 될 리가 없다.
그리하여 시가지에서는 그리스인들의 압도적 우세가 지속되었다.
-씨이이잉!
그리고, 이 모든 것에 평등한 것이 있었다.
포격.
150mm 로켓을 10정씩 탑재한 반궤도차량 18대가 전선 전역에 걸친 집중포격을 퍼부었다.
180발에 달하는 로켓들이 참호선과, 그 뒤의 마을과, 그 안에 있는 민간인과 병사들을 가리지 않고 타격했다.
로켓무기는 이미 전 유럽에서 상당한 메리트를 가지고 일반 야포와 함께 병행생산되고 있었다.
먼저 구조가 간단해 대량생산이 용이하다. 게다가 75mm 야포가 주력인 세상에서 150mm의 위력은 어지간한 열차포 수준이었고, 게다가 연사속도도 매우 빠르며 적들의 사기를 꺾는 데에도 용이하다.
공세작전시에는 반드시 다수의 다연장로켓이 공격부대에 배속되는 것이 주요 교리가 되었을 정도였다.
물론 단점이 명확하기에 기존의 야포를 대체하지는 못했다. 사거리는 동급 야포에 비해 짧고, 명중률이 떨어지며 무엇보다 발사대는 싸도 로켓은 당연히 포탄보다 비싸다.
그러나 정식 훈련을 받지 못한 인원이 대부분인 민병대들을 상대할 때는 이 단점들의 상당수는 상쇄되고 이점은 극대화된다.
민병대가 야포로 대포병 사격을 가할 수도 없고, 명중률이 떨어져봤자 포격을 뒤집어쓴 민병대의 사기는 부대 붕괴로 이어질 정도로 떨어진다.
로켓의 값은 어쩔 수 없는 요소에 가까웠지만, 그건 감수할 만했다.
그랬기에, 상당수의 군대는 어떻게든 로켓포를 보유하려 했고, 민병대들도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전함 급의 전략병기나, 프랑스의 최신형 전차급의 기밀장비가 아닌 이상 이 시대에는 ‘돈만 내면’ 어떤 무기든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중립국이 생산하는 기관총? 적국의 제식 소총? 돈만 내면 팔아준다.
그 돈의 출처가 뭐든 상관없다. 범죄를 저질러서 모았든, 약탈해서 모은 돈이든, 식민지를 착취해서 모았든, 세금이든 간에 돈은 돈이다.
군수공장을 소유한 기업에 돈을 주기만 하면 물건을 받을 수 있다. 오히려 기업의 행동에 대한 정부 규제가 21세기보다 덜한 게 이 시대의 현실이다.
원 역사에서는 대공황으로 끝장나기는 했지만, 어찌되었건 완전한 자유무역이 허용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시대, 기업들이 누리는 자유는 굶어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비싼 값에 식량을 팔 권리, 대량학살이 일어나는 곳에 기관총을 팔 권리 등등이 있었다.
국제사회는 무법의 공간이었다. 국제법이라는 틀 역시 정형화되지 않았고, 그저 관습적으로 움직일 뿐이었다.
***
미합중국, 워싱턴 D.C. 전쟁부.
“대통령 각하께서 멕시코 내전에 개입할 준비를 갖추라고 지시하셨습니다.”
“미치겠군.”
연방군이건 주방위군이건 간에 실탄훈련도 못 시키는 판이다. 그리고 볼트액션 소총은 훈련받지 않은 병사들이 다루기 어렵다.
조금 간단히 말해서 그냥 병사들이 총 쏘는 법을 모르는, 아니, 그 이전에 당장 병사들 인원수 맞춰 총이 있긴 한지를 우려해야 할 판이었다.
뭐, 그 외에 미군이 가진 여러 문제점은 열거해 봐야 입만 아플 지경이었다. 도입한 지 얼마 안 된 7.92mm 탄이 아직도 만들자마자 구시대의 유물 취급받고 밀려난 30-03 스프링필드 탄과 심지어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썼던 30-40 크라그 탄을 밀어내지 못해서 혼용된다거나, 1년전쟁의 지독한 참호전으로 인해 기관단총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는데도 정작 전군을 뒤져봐도 기관단총이 한 자루도 없다거나.
그런 마당에 언감생심 멕시코라니.
“대통령 각하께서는 베라크루스 항에 대한 점령을 검토하고 있으시다는데, 그건 해군이랑 해병대가 할 일이니 그렇다쳐도, 우리가 지상으로 밀고들어가는 건.... 쉽지는 않겠지.”
30-03 스프링필드 탄은 생산량 자체가 그리 많지 않았던 탓에 거의 다 소모되었지만, 30-40 크라그 탄은 아직도 잔뜩 남아 있다.
이 말은 30-40 크라그 탄을 쓰는 스프링필드 M1899나 그보다 이전 세대의 소총이 아직 후방에서나마 현역으로 쓰이고 있다는 말과 같다.
그런 마당에 언감생심 침공이라니.
“전투가 개시되면 탄약이 얼마나 남아날까를 우려해야 할 판이군요.”
“탄약과 총기의 생산능력이 진지하게 우려되는 바입니다. 우선 비숙련병들이 참호에서 교전을 벌일 수 있도록 기관단총을 구매해야겠는데.....”
“의회가 예산을 내줄까요?”
“일단 개전이 결의되면 내주겠지, 하지만 그 전에는 도입할 화기 후보를 추려놓는 것이 좋겠습니다.”
“일단 일이 나면 연방 체신청에게 갖고 있는 기관단총 좀 내놓으라고 해봐야지.”
현금수송 업무 중에 무장강도가 극성을 부리자 연방체신청은 산탄총 대신 하이드 기관단총을 도입, 현금수송차량을 털려는 무장강도를 벌집으로 만들어주고 있었고, 이는 미국 연방정부 예하 행정조직이 기관단총을 보유한 유일한 경우였다.
군부는 예산을 안 줘서 기관단총 도입을 그동안 못 하고 있었으며, 계약을 새로 체결하고 도입수량에 예산 확정하고 하려면 시간이 엄청나게 오래 걸린다.
따라서 새로 후보 선정하는 등의 도입사업을 추진하면 백악관이 원하는 시일에 맞추어 병력을 무장시키기는 불가능에 가깝기에 기관단총 비슷한 거라도 들려주려면 체신청 무기고를 털어야 할 판이었다.
일단 가져다가 쥐어주고 괜찮으면 더 도입한다. 그렇게 안 하면 드럼탄창에 개머리판 단 루거 권총으로 버텨야 할 판이니 어쩔 수 없었다.
사실 그렇게 해도 체신청이 보유한 기관단총 자체가 얼마 안 되기에 참호에 돌격해야 하는 미군 중 상당수는 루거 권총에 의지해야겠지만 말이다.
“퍼싱 준장.”
“예.”
“백악관에서는 이번 개입이 본격적인 내전 개입은 아니라고 했지만, 거기에서 끝날 리가 없겠지, 안 그런가?”
“그렇습니다. 장관님.”
안 봐도 뻔했다. 저 마굴에 발을 들이미는 순간 멕시코인들은 반미의 기치 아래 미쳐 날뛸 거고, 미군은 끝없이 튀어나오는 게릴라와 싸워야 할 터였다.
“미국의 아들들을 최대한 많이 살려오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