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87화 (87/200)

87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2)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알폰소 13세는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베르베르 야만인들에게 스페인군이 패하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는 말이다!”

알폰소 13세는 스페인군에 대해 큰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에 스페인군의 참패를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미국-스페인 전쟁 당시 미국과, 그리고 미국과 야합한 프랑스에게 영토를 빼앗긴 뒤, 스페인군은 절치부심했다.

군대를 키웠고, 해군은 포기하더라도 육군만큼은 제법 해볼 만하게 키웠다.

군제개혁과 군비증강의 결과로 설령 프랑스가 침공해 오더라도 패배를 피할 수 없을지언정 프랑스도 상당한 피해를 각오해야 할 거라고 자화자찬하던 장성들은 분노한 국왕 앞에 유구무언인었다.

프랑스군도 아니고, 북독일이나 남독일 연방도 아니고, 오스트리아-헝가리도 아니고.

베르베르 반란군 따위에게 완패했다.

곳곳에서 들고 일어난 반란군들에게 스페인군은 각개격파당하고 있었고, 심지어 수적 우세조차 살리지 못하고 학살당하기도 했다.

20대의 젊은 국왕이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삿대질을 해 대도 유구무언이었다.

“세 번 대규모 전투가 벌어지고 세 번 전부 패배했소! 열강도 아니고, 유럽에 있는 국가도 아니고! 고작해야 창칼을 든 아프리카 토인들에게!”

그 토인들은 기관총과 야포를 보유하고 열강의 군사고문단에게 훈련까지 받은 정예부대가 소규모나마 있었지만, 지금 분노한 국왕에게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적어도 지난 전쟁에서는 해군은 참패했을지언정 육군은 미국을 상대로 선전했었소! 그런데 이게 뭐요! 군제개혁의 결과가 이거요? 미국을 상대로 선전하던 군대를 아프리카 토인을 상대로 패배하는 약군으로 만들어놓은 것?”

“폐하, 저희는......”

“듣기 싫소! 현지에서 지휘를 맡은 장군들을 전부 이 시간부로 해임하겠소! 당장 후임자를 뽑아 증원부대와 함께 보내시오, 이번에도 패배하면 그때는 스페인의 위신은 완전히 바닥으로 쳐박힐 거요!”

사실 지금 그 모로코 반군이 영국이 비밀리에 보낸 군사고문단에 의해 훈련되고 영국이 준 무기로 무장하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지금의 미군이 쳐들어가도 고전을 면치 못할 상황이기는 했다.

당연하지만 똑같이 모로코를 통해 지브롤터 해협의 완전장악을 꿈꾸던 영국은 절대 반군이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게 하지 않았다. 당장 포르투갈을 거쳐 들어가는 영국의 탄약만 끊겨도 모로코는 끝이었지만, 적어도 스페인을 완전히 격퇴하기 전까지는 그럴 일이 없었다.

이유야 당연히 프랑스였다. 영국이 스페인과 전면전을 벌인다면 프랑스는 어떤 식으로든 개입할 터였고, 그 결과가 영국에 긍정적일 가능성은 0에 수렴했다.

애초에 영국이 모로코의 완전병탄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모로코가 독립하고 독립을 지원해 준 영국에 대한 ‘호의’로 세우타를 넘기는 거면 충분했으니까.

지브롤터와 세우타.

두 지역을 점령하면 수에즈와 공조해 지중해를 병마개마냥 막아버릴 수 있었다.

본래 세우타까지 점령할 것도 없이 지브롤터만 점령하면 충분하다고 판단했던 영국 정부의 판단이 변한 것에는 당연히 1년전쟁에서의 패배가 있었다.

1년전쟁에서 완패한 영국은 자국의 해군력이 더 이상 세계 1위가 아니라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고, 지브롤터가 제압된 경험도 겪었다.

당장 대륙에서 코앞인 수도를 옮겨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도 나오는 판이었지만, 수도를 이전하면 어디로 이전하느냐도 그것대로 문제였다.

뉴포트, 에든버러, 글래스고 등 여러 지역이 논의되었지만, 결국 어느 지역도 합의에 이르지 못해 영국의 수도는 여전히 런던이었다.

***

“세우타라.”

세우타에 영국이 해안포 기지라도 세우면 제법 귀찮아지는 것은 분명하다.

“어쩌시겠습니까?”

“어쩌긴 어쩌겠는가.”

나는 보고서를 내려놓았다.

“영국이 모로코 반군에게 물자를 공급하는 루트는 포르투갈을 경유하는 경로뿐이지, 그럼 포르투갈을 압박하면 그만 아닌가?”

스페인은 세우타를 포기하지 않을 거다.

모로코는 충분히 세우타를 포기할 수 있다.

세우타가 누구 손에 들어가게 될지를 생각해 보면 우리가 취해야 할 포지션은 명확하지 않은가?

“해군을 동원해서 대서양에 인접한 아프리카 연안에 접근시켜라. 라바트, 카사블랑카, 알자디다, 사피, 에사우이라.... 북쪽부터 남쪽까지 전부 봉쇄하고, 접근하는 배들은 전부 검문해, 지브롤터 해협 방면에도 함선들을 고정배치하도록.”

모로코 반군을 말려죽인다.

모로코 내에는 탄약을 생산할 시설이 부족하고, 있다고 한들 원료부터 기술까지 문제가 수두룩하다.

그 상황에서 영국에서 들어오는 탄약 수입선까지 막힌다?

탄약, 식량, 의료물자 없이는 어떤 강군이 기어들어와도 못 싸운다.

하물며 베르베르 반군이야.

물론 내가 제국주의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반군 세력이 영국과 손을 끊고 세우타를 영국에게 넘기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주지 않는 한은 나도 어쩔 수 없다.

이 상황에서 영국과 손 끊으면 베르베르인들은 다 죽은 목숨이지만...... 솔직히 우리 알 바는 아니잖아.

“민간 상선들을 격침시킬 수는 없지만, 입검 과정에서 무기가 발견되면 이를 국제적 문제로 만들 수는 있으니까.”

영국이 베르베르인들에게 무기를 공급해 스페인인들을 공격했다는 증거가 드러나면 영국은 외교적으로 상당히 불리해진다.

당장 영국이 요즘 친해지려고 기를 쓰는 러시아만 해도 불쾌해할 거다. 러시아도 스페인과 별로 다르지 않게 사방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피지배 민족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으니까.

그게 싫으면 모로코에서 손 떼야지.

물론 모로코에서 영국이 손 뗀 뒤로도 스페인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모로코 점령을 못 해내면... 그러면 독립을 인정해준다. 대신 세우타는 100년간 어떤 국가에도 할양 못한다고 박아놓고.

세우타 문제만 아니면 모로코의 독립, 인정 못해줄 게 뭐가 있나.

그게 스페인의 마지막 남은 식민지건 뭐건 관심없다.

그리고 기껏 독립한 모로코가 어디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되더라도 그게 영국만 아니면 상관없다.

“세포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아직 나온 게 없나?”

그러자, 곧장 장성 하나가 보고서를 올렸다.

“퀴리 부인이 우라늄에 중성자를 충돌시켜 바륨과 조성이 유사한 물질을 발견했답니다.”

나는 짧게 쓴웃음을 지었다.

몇 년 전, 피에르 퀴리가 죽었다. 역사대로 교통사고였다.

내가 나름 군사기밀을 다루는 만큼 경호도 붙여줬지만 21세기든 20세기든 술 먹고 차든 마차든 모는 미친놈을 막을 수는 없었다.

만취 상태에서 체포된 마부는 프랑스의 노벨상 수상자를 죽였다며 시민들에게 구타당한 뒤 재판장에 끌려나와 무기징역을 언도받고 감옥에 쳐박혔다.

그리고 슬픔을 달래려는 듯 퀴리 부인은 더욱 연구에 힘썼다. 나도 미래의 정보를 아는 대로 정리해서 보내줬다.

다행히 퀴리 부인은 군사 기밀상의 이유로 연구에 참여한 과학자들을 팀으로 나누고 누가 연구실 소속인지 알려주지 않으며 연구 성과의 일부만을 서로 공유한다는 점을 납득해주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그 두 사람은 본인과 연구를 같이 할 이를 신원조회를 거친다는 전제 하에 본인이 직접 정할 수 있게 해주는 것에 만족했다.

물론 불만이 못 나오게 필요한 장비와 기자재들은 달라는 대로 주고 있지만.

“콩고에 대규모 우라늄 광산이 있을 텐데, 오랜만에 루이 녀석과 연락을 좀 해봐야겠군.”

현재 콩고는 네덜란드의 관리 하에 있는 지역, 까놓고 말해 식민지다.

이유는 간단하다. 벨기에가 1년전쟁 때 줄을 잘못 서서 분할당할 때, 그 형식은 벨기에가 우리에게 왈롱을 떼어준 다음 네덜란드에 합병되는 형태를 취했다.

당연히 벨기에의 해외 영토는 네덜란드의 것이 되었고, 콩고에 대해서는 아예 레오폴트 2세의 만행을 수습할 책임을 네덜란드가 승계한다는 게 조약에 명시되기까지 했다.

아무튼 간에 콩고의 광산에 접근하려면 당연히 네덜란드의 조력이 필요하고, 네덜란드 여왕의 남편이 내 동생이다.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는가?

“우라늄을 대량으로 매입해서 연구 목적으로 지원해주도록.”

어차피 우라늄 오래 보관해놓는다고 상하는 것도 아니고, 자연상태의 우라늄은 방사능도 거의 안 나온다. 농축을 해야 나오고, 전 세계 어디에도 농축기술이 없다.

‘우라늄의 원자번호는 92번, 그런데 원자번호가 절반 정도인 바륨과 유사한 화학적 조성을 가진 물질이 나왔다면 핵분열을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는 거지.’

내가 알기로 핵분열이 처음 관찰된 게 1935년, 맨해튼 프로젝트가 시동이 걸린 게 아인슈타인이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편지를 쓴 1939년, 첫 핵무기가 나온 게 그 6년 뒤인 1945년이다.

물론 우리도 그럴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일단 핵물리학이라는 분야가 워낙 생경한 분야라서 마리 퀴리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비롯해 프랑스에서 손이 닿는 모든 인재들을 가능한 선에서 긁어모아 한데 투입한 데다 내가 아는 미래지식까지 다 긁어모아서 갖다줬음에도 5년의 연구 끝에야 간신히 핵분열이라는 개념을 관측하는 데 성공한 거니까.

‘우리가 미국이 맨해튼 프로젝트에 쏟아부은 수준의 예산을 써도 10년 내에 핵 만들 수 있을까.’

솔직히 부정적이었다. 사실 20년 걸려도 1930년대에 핵을 들고나오는 거니 충분히 위협적인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쉽지 않을 거라는 계산만 나왔다.

당장 계측도구 같은 것부터가 한참 모자라니까. 당장 내가 중수랑 사이클로트론, 흑연, 원심분리, 우라늄 235와 238, 플루토늄 239, 포신형과 내폭형 등의 키워드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으면 원자핵 연구를 위해 입자가속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도 몰랐을 거다. 막스 플랑크의 양자역학이 1900년에 나오고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을 통해 이론상의 구축이 다 끝나 있었으니 구상하자마자 만들 수 있었던 거지.

근데 방사능 측정기 같은 건 나도 이름들만 들어봤지 만들 줄 몰라서 거기서는 도움이 안 된다. 가이거 계수기라든가, 안개상자라든가.... 뭐 실물로 본 적이 있긴 한데 내가 그거 원리를 어떻게 아냐.

그리고 예산도 문제다.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예산을 대줄 수 있었는데, 건함경쟁도 끝났겠다 해군 예산을 국민의회가 줄이려고 하면 골치아파진다.

‘적어도 예정된 전함들이 다 취역하기 전까지는 아니긴 하겠지만.’

현재 각국의 기조는 제한된 척수 내에서 전함을 최대한 호화판으로 만들어놓는 것인 상황, 덕분에 전함 한 척에 쏟아붓는 예산이 팍 늘었다. 미국만 해도 전함 두세 척 뽑을 예산을 한 척에 집중시키는 판이니.

그래서 기술개발비랍시고 한 주먹씩 떼어가도 눈치를 못 채는 거긴 하지만, 그래도 예산이 언제 잘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연구를 진행한다는 건 많이 아슬아슬하긴 하다.

‘그러나 언제든 핵무기가 개발되기만 한다면 막대한 힘이 되어줄 거다.’

여기서는 1차대전이 안 터질 테니까 퀴리 부인이 X선 장비를 다루다가 백혈병으로 죽을 일은 없을 거다, 이 세상에서 아인슈타인과 퀴리 부인이 핵을 만들었다고 기록되겠지? 아, 근데 원 역사에서도 아인슈타인이 핵 만들었다고 아는 사람들 많으니까 상관없나.

‘그리고 나 역시.’

오늘은 아니고, 내일도 아니겠지만. 언젠가 핵무기는 만들어진다.

나는 그 시점을 당겨왔을 뿐이다.

단지 그것뿐이지만, 묘하게 입맛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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