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1)
북경 시내 곳곳에서 총성이 울렸다.
“반란군을 죽여라!”
“배신자 쉬스창을 죽여라!”
“반역자는 네놈들이다! 펑궈장 놈의 포를 떠라!”
위안스카이를 제외하고, 북양군벌의 실력자를 꼽자면 세 사람이 있다.
펑궈장, 돤치루이, 쉬스창.
그리고 위안스카이가 죽자, 펑궈장은 곧장 쉬스창을 공격했다.
청 황실에 우호적이던 쉬스창이 청 황실을 폐위하고 노골적으로 황제가 되려는 야욕을 품은 위안스카이와 충돌한 끝에 위안스카이를 암살했다는 명분이었다.
그럴듯하기는 했다.
주장한 사람이 펑궈장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대총통이 황제가 되면 네놈이 북양군벌을 이어받지 못할까 봐 대총통을 시해한 거 아니냐! 펑궈장 이 개자식아!”
펑궈장의 별명 중 하나는 배신자 장군이다.
문자 그대로 배신을 밥먹듯이 해온 존재.
펑궈장이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대부분의 사람은 절대 믿지 않을 것이다. 그게 권력과 관련된 거라면 더더욱.
그러나,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말은 세계 보편적인 말이지만, 그 중에서도 중국에서는 더 현실로 다가오는 법.
그리고 쉬스창이 가지고 있는 총구의 숫자는 펑궈장에 비해 모자라다.
북양 내에서 펑궈장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돤치루이, 그러나 돤치루이는 지금 북경에 없었다. 장강에 내려가서 중화민국을 무너트릴 공세를 준비하느라 바빴으니까.
‘돤치루이는 빠르게 대응할 상황이 아니고, 쉬스창을 때려잡고 그 세력을 흡수하면 돤치루이도 현실을 깨닫고 숙일 거다.’
돤치루이가 쉬스창과 손잡는다면 그가 밀리지만, 쉬스창을 1대 1로 때려잡고 돤치루이를 압박하면 돤치루이의 세력이 밀린다.
그러면 명실공히 북양의 1인자가 될 수 있다.
이 기회를 어떻게 놓치겠는가.
“쉬스창은 반역자다! 반역자에게 대총통 각하를 배신한 대가를 치르게 해 줘라!”
펑궈장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안 그래도 위안스카이가 황제까지 올라갈 준비는 다 마쳐두었다.
그러면, 위안스카이 대신 그가 제관을 써도 나쁠 건 없지 않은가? 어차피 위안스카이든 자신이든, 근본 없기로는 도긴개긴이니 말이다.
***
장강 이북, 북양군벌 대 중화민국 전선 사령부.
돤치루이는 싸늘한 기운을 풀풀 풍기면서 자리에 앉았다.
“충....”
“집어치우게, 중요한 이야기부터 하지, 대총통 각하께서.... 돌아가셨다.”
그냥 제 명이 다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측근이었던 만큼 돤치루이는 애초에 위안스카이의 건강이 그렇게 좋은 편은 못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본인부터가 칭제 문제에 관해 슬쩍 의향을 물어보았을 때, 진심이었는지는 영영 알 길이 없지만 황제가 되어도 원씨 가문에 60을 넘긴 사람이 없는데 몇 년이나 황제를 해먹겠냐면서 자조하기도 했고.
하지만 이건 시신을 보기라도 하지 않는 이상 알 길이 없고, 실제로 그랬는지 아닌지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펑궈장이 쉬스창 군을 쉬스창이 청제의 폐위와 청 황실에 대한 핍박에 앙심을 품고 대총통을 시해했다면서 공격했다는 것.
그리고 기습당한 쉬스창 군은 일패도지하고 있다는 것이 있었다.
“쉬스창이 애신각라에 충성스럽기는 해도 그것 때문에 대총통을 시해했을 가능성은 낮다. 그리고 쉬스창이 정말 그럴 작정이었으면 군에 대비를 시켜뒀겠지, 하지만 저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양새입니다.”
“대총통 각하가 전혀 다른 요인으로 쓰러지셨든가, 아니면 쉬스창이 머저리거나, 그도 아니면......”
애초에 이 모든 게 펑궈장의 음모였거나.
“어쩌시겠습니까?”
“우리가 지금 거병한다고 해도, 제때 개입할 수 없지.”
애초에 그러니까 일을 저질렀겠지만.
게다가 군을 움직인다고 해도 그렇게 될 경우 돤치루이는 앞뒤에 적을 두게 된다.
돤치루이는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돤치루이의 별명은 북양의 용.
올곧은 성격에 담백하고 검소한 성품을 겸비했으며, 동시에 비타협적이고 완고한 성격을 가졌기에 얻게 된 별칭이었다.
그렇기에, 그의 수하들도 진정 그를 존경하고 따랐다.
“각하, 명을 내려주십시오.”
“펑궈장은 반역자입니다! 거병하시면 적어도 북양의 절반은 각하의 기치를 뒤따를 것입니다!”
“북양의 개라는 이름도 아까운 놈을 벌하십시오! 각하!”
돤치루이의 주요 측근 다섯 명, 쉬수정, 우광신, 진윈펑, 푸량쭤, 취퉁펑이 일제히 연명으로 외쳤다.
“각하, 부디 뜻을 세워 주십시오!”
“..... 병법에 앞뒤에 적을 두고 싸우는 짓은 어리석은 일이라 하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돤치루이는 말을 이었다.
“우리는 분명 저들을 진압하라는 명을 받았다. 그러나 그 명을 내린 대총통 각하께서는 시해당하셨고, 나는 대총통 각하의 명보다는 대원수 각하를 등 뒤에서 찌른 자들을 치벌하는 것이 우선이라 여겼다. 또한 대총통 각하께서도 저들과 협상할 뜻을 누차 내비치셨다. 물론 번번이 결렬되었지만.”
마음이 조급해진 위안스카이가 영국의 지지를 받는 중화민국이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를 해댔던 것이 원인이었지만, 아무튼 간에 협상이 시도된 건 사실이었고, 그 자리를 주선한 건 분명 돤치루이였기에 그의 말에 설득력이 있었다.
“중화민국에 연통을 넣어라. 저들과 힘을 합쳐 저 망탁조의에 비견될 역도 펑궈장을 토벌하겠다.”
***
“그게 현 상황입니다. 돤치루이는 육군총장직만 약속받고 중화민국 혁명세력과 손을 잡았고, 펑궈장은 순식간에 궁지에 몰렸습니다.”
“..... 돤치루이가 수하들을 다 끌고 혁명군에 투신할 거란 생가은 못 한 건가?”
“돤치루이가 받은 명령은 어찌되었든 간에 혁명군을 진압하란 거였습니다. 워낙 고지식한 사람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권력을 넘어 제위가 눈앞에서 왔다갔다 해서 눈이 멀어버린 거 아니겠습니까.”
하긴, 권력 앞에서 미친짓하는 인간들이 어디 한둘인가, 너무 전형적인 케이스라 되려 할 말이 없다.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왜지?”
“혁명군은 권력을 잡으면 우리가 중국 대륙에서 가진 이권을 축소하려 들 겁니다. 게다가 영국의 후원까지 받고 있으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죠. 돤치루이는 프로이센에 선이 있으니 프로이센은 그렇다쳐도 저희 이권에 손을 대려 들지 않겠습니까? 얼뜨기들이니까 더더욱 말입니다.”
“얼뜨기라.”
“당장 러시아 제국도 가만있지 못할 겁니다. 지금 조선반도, 만주, 일본,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날뛰는 반러시아 세력을 후원하는 게 그 쑨원 패거리입니다. 무기, 물자 등등. 군을 움직일 상황이 못 되어서 침공을 못 하는 거지, 시베리아 횡단철도만 완성되면 그날부로 개전할 겁니다. 하룻강아지들이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격이죠, 복서들과 다를 게 없습니다.”
나는 말끔하게 면도된 턱을 매만졌다.
분명 독립군을 중화민국 세력이 후원하는 건 사실이지만, 쑨원 본인이 아니라 그 아래의 중간간부들이다.
쑨원은 분명 인망이 있지만, 그의 권력기반은 그다지 탄탄하지 못하다.
‘돤치루이는 권력욕이 크지 않은 사람이지만, 그 무게감을 감안하면 달라고 하지 않아도 쑨원이 최소 부총통이나 총리직은 줘야 할 거야.’
그리고 당장 혁명군도 단일세력이 아니다. 돤치루이가 그들을 잘 단도리해서 하나의 군사력으로 결집한다면 강하겠지만, 글쎄? 장제스도 때려치운 걸?
‘중일전쟁에 가까운 무슨 일이라도 터지지 않는 이상 그럴 리가 없지.’
뭐 갑자기 태국이 승천해서 눈 뒤집혀서 대동아공영권을 외친다거나......? 근데 우리가 1년전쟁 때 되팔아준 영토 그거 싹 네덜란드에게 도로 뺏기고 나라가 망하냐 마냐인 놈들인데 그게 가능할 것 같지도 않고.
“무엇보다 이번 사건으로 펑궈장은 전 중국을 적으로 돌려버렸다.”
아무도 펑궈장의 주장을 믿지 않는다,
이미 누가 별달리 선동을 하지 않아도 펑궈장은 쉬스창의 주장대로 권좌가 탐나서 주군을 시해하고 그걸 애꿎은 동료에게 뒤집어씌운 천하의 파렴치한이 되어 있었다.
“제 업보지. 그런 펑궈장을 억지로 자리에 앉혀놓는다고 해도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군.”
“그렇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극동함대를 동원해서 압박하는 정도면 몰라도 본격적으로 들어가지는 말도록, 결과적으로 우리는 이권만 지키면 그만이다.”
무엇보다 극동의 문제에 신경쓰기에는 우리 턱밑에서 다른 문제가 터졌다.
“스페인 놈들이 크게 당했다고?”
“예, 모로코의 반군이 독립을 선포했습니다.”
프랑스는 원 역사와 다르게 모로코에 손을 대지 않았다.
괜히 위신 세우기용 식민지를 세우고 유지하기도 품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복수를 명목으로 알제리도 포기했는데 모로코가 대수겠는가.
그래서 스페인이 단독으로 모로코를 집어먹었다.
거기에 각국이 군비를 증강하면서 좋은 철이 많이 필요해졌고, 스페인은 상당히 다급하게 철광을 찾아 개발했다.
모로코의 리프 지역의 철광을.
이 철광에서 나오는 철광석은 품질이 좋아서 찾는 곳이 많았고, 당연히 스페인이 국가수입에 큰 도움이 될 철광을 개발하는 데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광산을 파면 당연히 광독부터 시작해 부수적인 문제가 생기는 게 당연하지만, 스페인이 그걸 신경쓸 리가 없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모로코 현지 원주민, 베르베르인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분노가 일어나는 게 당연했다.
그리고 원주민들은 마침내 한데 뭉쳐 들고 일어났다.
스페인 침략자들을 몰아내기 위해서.
“모로코 내 스페인군은 수도 많지 않은 데다 무장 상태와 훈련도도 빈약하고 모로코 전역에 흩어져 있습니다. 각개격파해달라고 애원하는 꼴이죠. 게다가 여기도 영국이 개입되어 있다는 정황이 있습니다. 증거는 없습니다만.”
“문제는 이겁니다. 모로코 따위야 어찌되든 상관없지만, 모로코에서도 쫓겨나게 된다면 스페인 현 정부와 왕실은 사이좋게 끝입니다. 아니면, 내전이 벌어질 겁니다.”
“내전이라.”
“근왕파와 공화파.”
“다른 건 몰라도 모로코에 영국이 집적거린다는 게 문제인데.”
“스페인이 토해내면 먹어치울 작정일 겁니다. 그렇게 되면 지브롤터 해협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게 되니 말입니다.”
“그 꼴은 못봐주지.”
솔직히 저놈들이 성금 모아서 기어이 지브롤터 기지 되찾아가는 꼴 보면서 속이 제법 쓰렸는데 반대편까지 꿀꺽하는 꼴을 보라고?
“하여튼 라이미 놈들은 안 끼는 데가 없는데, 스페인을 지원해야 하나?”
“문제는 이미 스페인 자체의 국력이 한계에 달했다는 겁니다. 영국이 러시아 지원하는 수준으로 한도 끝도 없이 병력과 자금을 잡아먹는 수렁으로 변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지 않습니까.”
“몸에 맞지도 않는 걸 삼키려고 하니 그 꼴이 나지.”
우리도 라인란트 어거지로 삼키려고 했으면 저 꼴 났을 거다. 먹더라도 연방 형태로 묶든가 해야지 어거지로 흡수하려고 하면..... 진짜 나라가 거덜났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