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83화 (83/200)

83화 깽판(1)

러시아 제국의 발트함대는 현재 20척의 군함으로 구성되어 있다.

러시아 해군 총기함 팔라다급 방호순양함 오로라, 7천 톤급 독일제 장갑순양함 포템킨과 이즈마일.

4천 톤급 프랑스제 순양함 트리 스뱌티텔랴, 드베나드차티 아포스톨로프, 게오르기 파베다노세츠, 로스티슬라프,

3천 톤급 방호순양함 스베를리나. 이쟈슬라프

2천 톤급 장갑순양함 시노프, 류리크, 바랴그, 2천 톤급 방호순양함 블라디미르 모노나흐, 드미트리 돈스코이, 알마스, 노빅,

프로펠러 슬루프 오르페이, 데르츠키.

구난함 볼호프, 등대순시선 페르노프,

이 중 전함의 범주에 들어가는 함선은 단 한 척도 없었지만, 문제는 이들이 러시아 해군의 사실상 전력이라는 것이다.

수만 톤의 배수량을 지닌 16인치급 전함들이 건조되는 시대에 러시아 해군 총기함이 7천 톤급 순양함이라는 사실은 기가 막힐 노릇이었지만, 현실이었다.

“그리고 현 상황에서 프랑스에 주문한 전함의 대금이 제대로 나올지도 의문입니다. 아시다시피 건조비가 폭증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상정 예산의 두 배가 넘게 생겼다.

“강구트급 전함 4척도 건조할 예산이 없어서 답보 상태입니다.”

“해군 성금이라도 걷어봐야 하는가.....”

자본가들과 귀족들이 재산을 털면 그깟 돈쯤은 마련할 수 있다.

문제는 그놈들이 순순히 내놓으려 들지 않을 거라는 거지만.

해군조약에서 약속받은 배수량 쿼터가 넉넉하면 뭐하는가, 국가재정이 그걸 채우지를 못하는데.

러시아 제국의 황태자 알렉세이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차라리 귀족들이 반역이라도 일으켜줬으면 좋겠군,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재산을 몰수할 수 있을 텐데.”

“전하.”

“그냥 해본 소리네.”

“살 떨리는 말씀 하지 마십시오.”

“하하! 나도 자네가 있으니 이런 말이나 하는 거지, 표트르.”

표트르라 불린 장년의 남자 앞에서 웃음을 터트린 황태자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아나스타샤는 어떤가?”

“..... 별로 좋지는 않습니다. 왜 그러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후.”

여동생이 무슨 마음을 품고 있는지는 안다.

그래서 아버지가 영국 왕세손에게 시집보낸다는 걸 반대하고 있는 게 아닌가.

담배를 입에 문 황태자는 연기를 흘려보냈다.

“표트르, 비테가 물러나면 다음 재상으로는 자네가 올라갈 걸세.”

표트르 스톨리핀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직 건강하시지만, 만일 아버지께 무슨 일이 생긴다면 즉각적으로 나는 그대를 재상으로 임명할 거고.”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자네는 이 나라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 제가 논할 부분은 아닌 듯 합니다.”

“이 나라는 개혁되어야 해, 개혁이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어, 하지만 설령 개혁을 성공하더라도 외교관계에서 일어나는 폭풍은 우리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네, 1년전쟁의 굴욕은.. 그땐 난 어렸지만, 자네는 기억하지 않나.”

“그렇습니다.”

“우리의 우방 프랑스가 아니었다면 상트페테르부르크가 함락되는 꼴을 보았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우리는 지금 프랑스와 손을 끊을지 말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어, 영국과 손을 잡을지, 말지를 놓고.”

“프랑스와 손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버지의 생각은 간단해, 설마 프랑스와 독일이 손을 잡겠냐는 거지, 둘이 뭉치지 못하면 각개격파당할 뿐이니까. 하지만 영국과 우리도 손을 잡을 수 있다면, 프랑스와 독일이 우호관계를 맺지 않을 거란 보장은 어디 있지?”

“사교계에 풍문이 있습니다. 증거는 없습니다만.”

“풍문이라면?”

“프랑스의 다음 황후는 호엔촐레른 가문의 사람이 될 것이란 것 말입니다.”

“.............”

비텔스바흐 출신의 프랑스 황후는 아직 건재하다. 어디 아프다는 소식도 없다.

그렇다면, 다음 황후라 함은......

“아나스타샤에게는 나쁜 소식이군.”

“예?”

순식간에 알렉세이의 머릿속에서는 정보들이 짜맞춰졌다.

‘갑자기 국혼이 선포된다면 국민들이 달가워하지는 않겠지만 은근히 공공연한 소문이 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애초에 그런 스캔들은 프랑스인들이 환장하는 내용이기도 하니까.’

프랑스와 독일의 동맹.

그렇다면 그 소문의 출처는 프랑스 정부일 터였다. 황태자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다.

그 둘의 결혼은 연애결혼처럼 보이는 정략결혼이어야 한다, 심지어 집안의 반대까지 고스란히 받아내어야 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이를 매우 흥미진진한 연애담으로 보겠지.

그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하지만 알렉세이는 한 가지 사실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가운데 하나다.

그 사실과 조합해 보면, 결론은 나온다.

“불쌍한 녀석.”

“예? 누구 말입니까?”

“...... 표트르, 자네가 내 아버지라고 하면, 내게 심한 마음의 상처를 주는 대신 우리를 위협하는 적들에 맞설 강력한 동맹을 끌어들일 수 있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겠지?”

“자식을 잘 길러내는 건 아버지의 책무지만, 국가를 안전하게 하는 건 군주의 책무입니다. 군주의 책무는 아버지로써의 책임보다 앞섭니다. 당연한 일이죠.”

“그럼 반대로, 내가 아는 몇 사람의 마음을 갈가리 찢어놓는 대가로 제국의 적들이 맺은 동맹을 헝클어놓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마땅한 거겠지?”

“....... 답은 이미 알고 계시잖습니까.”

“그래.”

한숨을 쉰 황태자는 중얼거렸다.

“난 나쁜 자식이다, 그런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지.”

누군가의 가족으로써 낙제점이다.

하지만, 군주로써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다.

그게 옳으니까.

“아버지께서는 요즘 뭐 하시나?”

“기도회에 참석하셨습니다. 이러다 수도회에 들어가시겠다고 할까 진지하게 걱정될 정도입니다.”

“설마 그 정도일까.”

황태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부친이 신실한 신자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설마 황제가 되어서 수도원에 들어갈까 싶은 것이었다.

“그보다 해군부 놈들은 아직도 정신 못 차렸나?”

“예, 강구트급 전함 만들게 예산을 더 달랍니다. 북독일 연방의 함대에 대응하는 데 필요하다고.....”

전 유럽은 함선 하나하나를 돈을 쳐발라가면서 뽑아내고 있는 상황이다. 예산 조달이나 그런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고.

어차피 이것들을 다 뽑은 뒤에는 한동안 새로 건함하지 못한다면 뽑는 김에 최고급품으로 건조하자는 것이 해군조약 이후 건함 경쟁의 새로운 트렌드가 되어 있는 마당인지라 각국은 문자 그대로 빚을 내서라도 전함을 최대한 고성능으로 건조하고 있었다.

덕분에 군축 조약에서 프랑스는 제법 손해를 본 셈이었다. 추가 건조가 막혀버렸으니까.

프랑스는 현재 14인치와 15인치급 전함만 10척을 보유하고 있었다.

후속함급인 브레스트급은 16인치급으로 계획되고 있었지만, 아직 6척 중 단 한 척도 진수되지 못한 상태.

미국의 사우스캐롤라이나급은 14인치급이니 그렇다 쳐도 미국이 발표한 컬럼비아급 계획에 따르면 18인치급으로 건조될 예정이다.

영국의 경우, 넬슨급과 킹 에드워드 7세급은 13.5인치, 15인치급이며, 독일 해군은 프리드리히급이 13.8인치, 현재 계획 중인 전함이 15인치부터 18인치까지 다양한 설계안이 있다는 것 등을 감안하면 장기적으로는 프랑스의 독보적인 해군력도 빛이 바랠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그렇다고 조약을 체결 안 했으면 멀쩡했겠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문자 그대로 그 수준에서 각국의 해군력을 묶어 놓는 데에 의의를 두었으니까.

“불가능하네, 일단 안티아급 전함부터 인수받고 생각할 일이야.”

영국이 현재 기술 지원 및 설계도까지 다 그려주기는 했지만, 돈이 없었다.

***

파리, 튈르리궁.

“현재까지 파악된 함선 목록입니다.”

벽에는 해군의 주력함 일람표가 붙어 있었다.

이번 협정에서 확정된 전함들의 전체 목록이 붙어 있었고, 선수와 선미에 4연장 포탑이 하나씩 달린 전함이 벽에 그려져 있었다. 낭트급이었다.

프랑스 제국

- 로렌급, 14인치 4연장 4기, 4척(취역)

- 툴롱급, 15인치 연장포탑 4기, 3척(취역)

- 낭트급, 15인치 4연장 2기, 3척(취역)

- 브레스트급, 16인치 3연장 3기, 6척(건조 중)

미합중국

- 사우스캐롤라이나급, 14인치 2연장 5기, 4척(건조 개시)

- 컬럼비아급 전함, 18인치 2연장 5기, 3연장 1기, 8척(설계 중)

연합왕국

- 넬슨급, 13.5인치 연장포 5기, 5척(현역)

- 킹 에드워드 7세급, 15인치 연장포 5기, 5척(현역)

- 엘리자베스급, 18인치 3연장 3기, 2척(설계 중)

북독일 연방

- 프리드리히급, 13.8인치 2연장 4기, 4척(현역)

- 빌헬름 1세급, 15인치 2연장 3기, 4척(건조 중)

- X급 전함(함명 미정), 18인치 3연장 3기, 4척(설계 중)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 도나우급 전함, 12인치 3연장 4기, 2척(건조 중)

- 프로젝트 루돌프 전함(함명 미정), 13.8인치 2연장 2기, 3연장 2기, 3척(설계 중)

- 프로젝트 아돌프 전함(함명 미정), 15인치 3연장 3기,3척(기획 중)

러시아 제국

- 안티아급 항공전함(임시명칭, 본국에서 건조 중) 16인치 3연장 4기. 4척.

- 강구트급 전함(영국에서 설계도 제작, 여러 정보를 종합한 결과 북해 운용을 전제로 통상파괴전을 목적한 것으로 보임, 18인치 단장 2문 탑재) 4척(현재 설계도 존재, 재정난으로 건조 개시되지 않음)

이 함선 목록표는 제법 정확한 것이었다. 일단 베르사유에서 각국이 자국 함선의 현황표를 까고 협상해야 했던 것도 있고, 북독일 연방과 오스트리아-헝가리의 경우는 비공식적으로 신형함 제원을 공유해 주었다. 안티아급이야 프랑스가 건조해주는 물건이니 알 수밖에 없고,

미국은 로비를 통해서 함선들의 제원을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영국의 경우는 첩보 활동을 통해 엘리자베스급과 강구트급의 제원을 파악함으로써 프랑스 제국은 지구상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전함의 제원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래도 한 10년 있으면 저것들도 다 전력화되겠지.”

그리고 향후 10년 내에 전쟁이 일어날 것 같지도 않고.

“그러니 현재 우리가 취해야 할 전략은......”

“황제 폐하,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급히 문을 열고 들어선 장교에게 한 장성이 짜증을 부렸다.

“지금 뭐하는 건가!”

“죄송합니다, 급한 안건입니다!”

“말하도록.”

“저..... 러시아 황녀가 예정에 없이 파리를 방문했습니다.”

“...... 그게 뭐가 급하단 건가, 러시아가 선전포고라도 한 것도 아니고.”

“아니.... 그게... 행선지가 문제입니다.”

“어딜 갔나? 군항에라도 가겠다고 하나?”

“아니오, 팔레 루아얄입니다. 공개적으로요.”

“..... 뭐?”

잠깐 내 머리가 멎었다.

그 시각,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한 남자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아아, 이것은 치정극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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