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동맹의 역전(2)
“손 대인. 프로이센이 협상을 주선하겠다고 합니다만.....”
“보로서가 장강에 이권을 가지고 있으니 그를 염려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대인, 현실적으로 혁명군의 능력으로 북양을 도모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이었다. 일단 혁명군 간에 연계는 거의 되지 않는 판, 병력은 오합지졸에 요충지는 죄다 무너졌고, 탄약과 필수물자도 거의 비축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북양군벌과 정면대결을 하면 몰살이다.
“위안스카이에게 혁명정부의 대총통 자리를 약속한다면......”
“영국이 개입한다 해도 그렇겠소?”
“영국이 개입한다면 북양군벌은 분명 분쇄될 것입니다.”
북양이 아무리 잘났어도 유럽의 정규군을 상대할 능력은 없으니, 영국이 적극 지원한다면 혁명군은 반드시 승리한다.
하지만 그 뒷수습을 하는 건 절대 불가능하지 않느냐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다.
이곳에 모인 다섯 사람은 모두 중화민국의 핵심 인사였다.
중화민국 초대 대총통 쑨원, 혁명군 사령관 황신, 법제국 국장 쑹자오런, 쑨원의 심복이자 상하이 지구 사령관 천치메이, 후베이성의 군벌이자 호북군도독 리위안홍.
영국에게 빚을 지면 질수록 상황이 악화된다는 걸 모를 리가 없엇다.
“일단 급한 건 무기입니다.”
“소총과 탄약 정도는 홍콩 총독부가 공급해주기로 약속했지만, 야포와 기관총이 절실하오,”
“야포, 기관총...... 할 수 있으면 전차까지.”
구식 전차라도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아일랜드가 어뢰정과 프랑스에서 수입해 온 야포들로 해안을 도배해놓은 탓에 영국이 총력을 기울여도 상륙 시도 자체가 매우 위험하다는 평가를 받은 것과는 반대로 이스라엘은 프랑스가 팔아넘긴 기갑전력을 대거 보유함으로써 유사시 인도 전역에 대한 공격능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영국 전체가 뒤집어진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를 막기 위해 영국 역시 대규모 병력을 인도에 상주시켜야 했고, 이는 영국에게 있어서 막대한 국력 소모를 강요했다.
“일단 영국에게만 의존하는 건 명백히 어리석은 짓이오, 승냥이에게서 벗어나 범 소굴에 들어가는 격이니.”
“동의하오.”
“그렇다면 지금 중요한 건 무기를 받는 것이오, 소총은 몰라도 야포나 전차를 팔아줄 국가가 있을지....”
“온 세상을 돌아보면 하나쯤 없겠습니까.”
***
“이상하군.”
위안스카이는 인상을 구긴 채 중얼거렸다.
“이상해.”
“각하, 혹시 불편하신 점이라도?”
“저놈들이 뭘 믿고 있는 거지?”
위안스카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어차피 저 혁명군이라는 자들은 오합지졸, 북양군벌이 움직이면 순식간에 저들을 태평천국과 같은 꼴로 만들어주기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위안스카이가 움직이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더 많은 권력을 바라고 있었기에 그러했다.
청조를 저들의 손을 빌려 멸하고, 저들이 위안스카이를 알아모셔서 알아서 저 손문이란 자가 대총통에서 물러나고 대총통 자리를 자신에게 바치는 것.
이것이 위안스카이가 그린 이상적인 그림이었다.
그러나.
“왜 이놈들이 가만히 있는 거지?”
분명 저놈들은 알아서 기어야 했다.
그런데 왜 아직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인가? 외국, 특히 프로이센의 개입이 두렵지도 않은 것인가?
‘달리 믿는 구석이 있나?’
믿는 구석,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도무지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믿는 구석, 믿는 구석.’
또 다른 외국?
‘멍청한 짓이다, 그러면 프로이센은 무조건적으로 개입해.’
그 뒷수습은 절대 못한다. 애초에 반외세 폭동으로 시작된 게 저 혁명군의 실체인데, 청을 몰아내고 집권한 세력이 또 다른 외세에게 이권을 팔아넘긴다? 단숨에 국가가 공중분해될 터.
“알아볼까요?”
“알아내라, 상하이에 입항한 배들이 뭐가 있는지, 어느 나라 국적이고 뭘 싣고 왔는지, 자금의 흐름이 어떻게 되는지, 전부 알아내.”
“알겠습니다. 각하.”
***
네덜란드, 인도네시아 식민지, 자카르타.
“이렇게까지 해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잉글랜드 개자식들에게 엮인 일 아니었소?”
“뭐..... 그건 맞습니다만, 그렇다고 해도......”
“당신들도 알고 있으니 거래를 제안했겠지만, 영국인들은 위험한 족속이오. 대통령 각하부터 최하층 시민들까지 모두가 하나로 합치된 생각이 있다면, 그들에게 보복하는 것, 그리고 그들의 손아귀에 놀아나는 자들이 하나라도 줄어드는 것이지.”
“그래서 도와주시는 겁니까.”
“영국인들의 음흉한 속내를 알고 그걸 끊어내기 위해 무기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싶다는데 우리가 뭐라고 하겠소?”
“.........”
“일단 당장 판매해줄 수 있는 건 구형 장비들이오, 프랑스에서 사온 1년전쟁기 이전 물건이지만 중국에서는 제법 쓸 곳이 있겠지, 신형장비, 특히 25mm 대전차포, 미미 로켓, 194mm 포, 이 3가지는 단시간 내에 판매가 어렵소, 전차 역시 어렵고.”
“전차는 기대하지 않았습니다만......”
“194mm 포는 본국에서도 잉글랜드 군에 대응할 해안포로 사용하느라 여분이 없고, 오히려 프랑스에서 더 사들여야 할 물건이오, 귀국에 판매할 물건들의 빈자리를 채우기만도 여분이 없어서 수출 승인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거요, 25mm 대전차포는 아일랜드군의 주요 대전차장비고, 미미 다연장로켓은 포병대의 주력 장비인지라 양쪽 다 쉽사리 판매 허가가 나지 않을 거요.”
“그보다 구세대 장비라도 괜찮습니다.”
“본국에서 여기까지 실어오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네덜란드 배를 통해 실어오겠소, 귀국의 건투를 빌겠소, 영국 놈들에게 엿도 먹여주고.”
아일랜드 남자는 위스키 잔을 들어올렸다.
영국이 프로이센의 식탁을 제 자리로 만들기 위해 판을 깨버린다면, 아일랜드는 영국이 음식을 뺏더라도 식사조차 할 수 없도록 음식 위에 소변을 싸지를 작정이었다.
프로이센을 도와 영국을 막는 것도 방법이겠으나, 어찌 되었든 영국은 어느 정도 이득을 챙기고 물러서리라.
그렇다면 애초에 아무도 못 먹게 만들어버리면 영국은 손해만 잔뜩 본 채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아일랜드를 위해.”
“중화민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
아일랜드에는 기갑차량이 있다.
프랑스에서 수입한 농업용 트랙터 위에 25mm 대전차포를 얹고, 철판을 둘러 장갑을 씌운 뒤 기관총을 거치한, 부활절에 만들어졌다고 해서 이스터 전차라는 이름이 붙은 장비다.
당연히 회전포탑은 없는 대전차자주포에 가까운 물건이지만, 아일랜드 정부에서는 이걸로도 충분하다고 보고 있었다.
상륙할 만한 지역 전역에 194mm 야포가 배치되어 있고, 프랑스 고문단을 통해 양성한 부대는 빠른 기동력으로 상륙 자체를 무산시켜서 프랑스군이 올 때까지는 잉글랜드의 공격을 버텨낼 수 있으니까.
벨파스트에 주둔한 기갑부대인 성 패트릭 기갑연대는 이스터 전차로 무장한 기갑부대와 프랑스의 로켓의 복제품인 미미 다연장로켓을 트럭에 연결한 차량화 다연장로켓부대로 구성되어 영국의 침략 야욕을 감시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 부대의 거취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스미스 의원,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성 패트릭 기갑연대에서 인원을 차출해 상하이로 군사고문단을 보내자고 제안했습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성 패트릭 기갑연대가 정예부대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저들은 기갑부대인데, 중화민국군은 단 한 대의 전차도 가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설마 이스터 전차를 중화민국에 판매할 생각입니까? 아니, 판매하더라도 그들에게 대금을 받을 수는 있습니까?”
“이스터 전차는 생산량이 부족한 물건입니다. 기갑부대를 늘려도 모자랄 판에 보유한 장비를 해외에 판매할 여력이 있습니까?”
“프랑스의 독립보장만 믿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 역시 우리 스스로를 지킬 능력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본국의 방어능력을 과히 약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이스터 전차의 기반이 되는 트랙터는 라이센스 생산하지만 25mm 대전차포는 전량 수입이고, 장갑은 철판 여러 장을 겹치고 콘크리트를 주입해 만들어낸 것으로, 아일랜드에서 완전히 자기 기술만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부품이다.
한 마디로 아일랜드의 군사력은 프랑스에 굉장히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방력에 한몫을 하는 전차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부분에서.
철저히 수탈당한 아일랜드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이상할 것까지도 없었다.
“더 이상은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아일랜드가 언제까지 프랑스에게 국방을 구걸해야 합니까? 물론 프랑스는 우리의 전우입니다.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게 우리가 프랑스의 개가 되어야 한다는 건 아닙니다.”
“스미스 의원, 지금 영국을 옹호하는 거요?”
“저는 영국을 옹호할 생각이 전혀 없지만, 프랑스가 우리의 새 주인이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일랜드는 그 홀로 오롯해야 하는 국가이지, 다른 누군가의 속국이 되기 위해 독립한 것이 아닙니다!”
***
우창, 장강 인근.
“발포!”
수십 발의 포탄이 장강을 향해 날아갔다.
-탕! 탕! 탕!
델리에서 제조되어 이스라엘령 뭄바이항을 통해 중화민국에 넘어간 영국의 제식 소총탄인 .276 엔필드 탄이 강을 도하하던 북양군벌 병사들을 강 속으로 줄줄이 떨어트렸다.
장강을 두고 중화민국과 북양군벌은 일진일퇴를 거듭하고 있었다.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위안스카이가 공세를 통해 북양군벌의 힘을 보여주고, 동시에 오합지졸 혁명군만으로 혁명을 완수하겠다는 꿈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보여주겠다는 뜻에서 개시된 공세였다.
그러나 정말, 정말로 의외였지만, 혁명군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혁명군은 장강을 방어선으로 삼아 위안스카이의 공격을 저지하고 있었고, 장강 이북으로 진격할 수는 없어도 북양군벌이 장강 이남으로 진출하는 것만은 저지하고 있었다.
간신히 장강 남쪽에 닿은 보트에서 북양군벌 병사들이 뛰어내렸다.
-타타타타타타타타!
영국제 기관총이 보트를 벌집으로 만들었지만, 몇몇 병사들은 잽싸게 몸을 숨기고 엄폐했다.
곧장 국민혁명군과 북양군벌 간의 격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북양군벌이 화력 우위에 있었다. 소총도 부족한 혁명군과 위안스카의 직속부대로써 맹훈련과 좋은 대우를 받고, 독일제 신형 반자동소총으로 무장한 북양군벌 간의 전투력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프랑스의 자동소총을 모티브로 해서 7.92mm 마우저 약장탄을 사용하도록 만든 북독일 연방의 제식 반자동소총은 싸고 간단한 구조에 내구성도 제법 튼튼하고 잘 맞는 등 중국에서 좋아할 만한 요소가 가득했다.
그리고 위안스카이는 이를 수만 정 단위로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프로이센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그로써는 그러지 않을 이유를 찾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 총은 북양군벌의 정예부대에게 지급되어 혁명군을 향해 불을 뿜어댔다.
-탕! 탕탕탕!
“엄호사격!”
“엎드려! 큭!”
“수류탄!”
-콰앙!
난전이 벌어지고, 포탄과 기관총탄이 어지럽게 강변을 수놓고, 강을 건너온 북양군벌 병력은 꾸역꾸역 전진해가면서 혁명군의 피로 땅을 덧칠했다.
그러나 혁명군의 수는 북양군벌 병사들의 수보다 훨씬 많았고, 숫적 열세는 북양군벌로 하여금 쉽사리 교두보를 형성하지 못하게 했다.
그야말로 찰나의 순간이면 균형이 깨질 듯한 아슬아슬한 접전은 며칠 내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