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79화 (79/200)

79화 동맹의 역전(1)

“러시아의 움직임이 묘합니다.”

“묘하다라.”

“우선, 현재 러시아에서는 아예 공식적으로 동원령을 내리는 것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동원령?”

“예.”

“국내 경제 부담이 보통이 아닐 텐데.”

“러시아가 그걸 신경썼는지는 둘째쳐도, 세르게이 비테 총리가 극약처방을 고려할 정도로 러시아의 상황이 나쁩니다.”

“설명해보도록.”

“먼저, 러시아의 각지에서 반란이 빈발한다는 것부터 말씀드려야겠습니다. 현재 러시아 상비군 전력의 절반이 우랄 동쪽에 투입되어 있습니다.”

“나머지 절반은 발칸과 아나톨리아겠지.”

“그렇습니다. 그런데 러시아 군부의 행동이 특이합니다. 우선, 작전지역의 남성들을 무조건 연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무조건?”

“총 들고 서 있을 능력이 있으면 무조건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랄 산맥 이동에서 징집된 남성들은 상당수 시베리아 황단철도 부설에 투입되지만, 나머지는 페르시아 방면이나 발칸, 아나톨리아에 치안유지를 위해 투입됩니다, 반대로 페르시아, 발칸, 아나톨리아에서 징집된 자들은 전부 횡단철도 부설에 동원되거나 극동에 투입되고요.”

“그 많은 사람을 어떻게 옮기지? 아무리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거의 완공되었다고는 해도 그렇게 많은 인원을 단시간 내에 옮기는 건.....”

“영국이 협조하고 있습니다.”

순간 나는 얼굴을 구겼다.

“.... 영국 놈들이?”

연합왕국 상선단. 그들이 움직였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영국 놈들이 러시아의 명줄을 붙여주느라 바쁘군.”

이 상황이었으면 내부 반란으로 무너지고도 남았어야 할 텐데,

“이미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대부분이 부설되었습니다. 바이칼 호 인근을 포함해 10여 곳의 철로가 끊어져 있는데, 길어도 2년 내에 모든 구간이 개통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국 놈들이 도대체 얼마의 자금을 투자한 건가?”

“러시아에서는 뭐든 싸잖습니까.”

“하, 그렇긴 하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노동자들 임금도 헐값이지, 자원은 지천에 널렸지, 기술만 받쳐주면 될 텐데 그 기술은 영국인들이 제공해줬을 테니.”

“육체노동자들이라면 먹여주고 재워주기만 해도 되었을 겁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징용으로 남자들을 있는 대로 끌고 왔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영국 입장에서도 제법 출혈이 컸던 모양입니다. 월스트리트에서도 제법 시끄러웠다는군요.”

“게다가 말도 안 통하는 이민족들로 말 안 듣는 지역을 통제하게 하면 좋겠지, 둘 다 러시아를 싫어한다고 해도 말이 안 통하니 뭉쳐서 반항할 수도 없을 테고.”

“거기에 인간은 본래 간사한 존재입니다. 점령군이 가지고 있는 권력을 놓기 싫어서라도 충설할 수밖에 없죠.”

굳이 비유하자면 이등병 때 부조리를 당했던 군인이 병장 단 뒤에 그 부조리를 고스란히 신병들에게 하는 건가? 이렇게 비유하는 게 맞는가 모르겠네.

“게다가 ‘적’을 설정해놓고, 양측 간에 피가 튀기기 시작하면 독이 올라서 원수를 질 수밖에 없지, 흔하지만 그만큼 효과적인 수단이야, 극동에서 징집한 병력으로 페르시아를 통제하고, 페르시아에서 징집한 병력으로 발칸을 통제하며, 발칸에서 징집한 병력으로 극동을 통제한다.”

물론 극동에서 징집된 병력이 발칸으로 가거나 페르시아에서 징집된 병력이 극동으로 가기도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애초에 점령지 기득권의 힘을 대부분 인정해주고 충성맹세만 시킨 데다 영국인들이 러시아의 식민통치를 지원해주는 이상 러시아가 적어도 당장은 급한 불은 껐다고 봐야겠습니다.”

“미국 국무부에서 비공식적으로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전함 건조에 관해서 본국의 협력을 구한답니다.”

“전함 건조?”

“신형 16인치급 전함 구매, 기술 구매, 기타 등등 다양한 해군 분야에서의 협력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자체건조가 아니라?”

미국이 자체건조를 할 기술력이 없는 건 아니다. 좀 성능이 뒤떨어질지언정 건조 자체는 가능할 거다.

“그리고, 은근히 암시된 내용이 있었습니다만.......”

“말하도록.”

“태평양 식민지, 특히 하와이를 약속해준다면, 미국은 장차전에서 캐나다를 공격하고 유럽에도 군대를 파병하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양심들이 없으시군.”

“어쩔까요?”

“후자는 묵살해버려, 어차피 미국 정부는 상황에 이끌려서든 자국민들의 요구에 의해서든 참전한다. 전자의 경우...... 해군장관.”

“예, 황제 폐하.”

“현재..... 임시명칭 안티아급 전함은 어떻게 되어 가나?”

“1번함 안티아와 2번함 루치아가 기공에 들어갔습니다. 3번함과 4번함은 자재구매 단계입니다.”

“외무장관, 그리고 재무장관, 현재 러시아의 재정상태를 보고하도록, 러시아가 대가를 지불할 수 있을 것 같나?”

“건조비가 십중팔구 폭증할 겁니다. 게다가 악화되는 양국 관계를 생각해보면 러시아 제국이 안티아급의 1번함을 인수하는 것도 벅찰 것 같습니다. 영국에서 또 돈을 빌려야 하는데, 과연 영국 정부가 그렇게 할지, 기존에 있던 해군 예산도 다 다른 용도로 전용되는 판국입니다.”

“한 마디로.....”

“러시아 측에서 인수 거부를 할 가능성이 제법 높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미국 측과 사전협상을 해도 문제는 없겠군, 러시아 제국이 재정적 문제로 잔액 지불과 인수를 거부했을 때 미국이 본국의 손실을 보전해준다면 즉시 전함을 양도한다는.”

러시아가 우리와 관계를 유지해야겠다는 일말의 생각이라도 하고 있으면 뭔 짓을 해서든 사야 한다. 이건 우리의 마지막 제안이니까.

그러지 않을 경우, 우리 역시 삼국동맹에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겠다는 최후통첩이기도 했다.

하지만 인수할 재정적 여유가 부족하다는 건 둘째쳐도 이미 러시아는 여러모로 영국과 프랑스를 저울질하는 모습이 명백하다.

“국제사회는 명분으로 돌아간다, 즉, 이번 사태를 명분으로 러시아와 절연한다. 도움 안 되는 동맹을 굳이 쥐고 있을 이유가 없지.”

물론 영독관계 역시 파탄이 나도 진작 났다. 프로이센이 청의 숨을 붙여놓은 상태에서 식민지를 확장하려 하고, 영국이 러시아와 협력해 이를 적극적으로 막고 있는 게 그 증거다.

***

청, 우창. 후베이성.

“중화민국 만세! 공화국 만세!”

“혁명 만세! 쑨원 선생 만세!”

곳곳에서 만세 소리가 울렸다.

“대인! 총독 서징은 도주했습니다, 우창은 이제 우리의 것입니다!”

들뜬 상태로 보고하는 부사관에게 대충 고개를 끄덕여준 남자는 지팡이를 짚으면서 내실로 향했다.

여전히 곳곳에서는 환호가 들려오고 만세 소리가 들리고 있었지만, 남자에게는 거의 들리지 않는 듯 했다.

얼마 뒤, 안까지 들어오자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겉보기에는 한인이었지만 서양식 정장을 입은 청년은 중절모를 벗어 내려놓았다.

“대인, 그간 현양하셨습니까. 대인의 위명이 화북을 넘어 바다 건너에까지 위명을 떨치더이다.”

“허허..... 대인께서 이 늙은 몸의 얼굴에 금칠을 해주시는구려.”

“저야 천박한 장사꾼일 뿐이지요.”

“그 장사가 잘 되어야 자강도 이룰 수 있는 법 아니겠소?”

“그 자강은 청조를 무너트림으로써 시작될 것이고요.”

“..... 대인, 이미 청조는 틀렸소, 그대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잘 알지만, 청조는 공친왕 전하께서 남경 순방 도중 쓰러지시고, 선제께서 자금성에서 숨을 거두신 이후 그 마지막 불씨마저 꺼졌소.”

“캉유웨이 같은 이들도 있지 않았습니까?”

“공친왕과 선제께서 돌아가시자 순식간에 구심점을 잃고 각자도생하는 자들일 뿐이오, 의기가 높아도 머리가 꽉 막힌 성선회와 황족들이 말을 들어먹고 있지를 않잖소. 그들은 촛불이 꺼진 뒤 하늘로 올라가는 연기일 뿐이지. 이미 불은 꺼졌소.”

“...... 동의합니다. 애초에 이 말을 전해드리려고 온 것이고요.”

“전하러?”

노인의 주름진 눈가와, 그에 비교되게도 날카롭고 사나운 눈빛이 눈앞의 청년을 향했다.

애초에 저 자는 전령일 뿐이다.

그는 상하이로 돌아가 제 주인에게 보고를 할 것이고, 그 보고는 홍콩과 인도를 거쳐 저 너머 구라파 열국 가운데 하나, 연합왕국으로 갈 것이다.

“어째서인가.”

“노서아는 황제국이니 타국의 황제를 끌어내리는 것 역시 불경하다 하여 저들의 황상에게 진노를 살 일이지요, 하지만 ‘저희’는 조금 다릅니다.”

혁명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철도 부설 문제부터가 프로이센과 직접적으로 엮인 이권이었다.

의욕적으로 이권을 강탈해나간 결과 프로이센은 현재 유럽에서 가장 청에서 뜯어낸 이권이 많은 국가가 되어 있었다. 이를 통해 프랑스에 내야 할 배상금마저 프랑스의 예상보다 빠르게 상환했고, 이전의 국력 역시 빠른 속도로 회복되어 가고 있었다.

현재, 프로이센이 건함계획도 세우고 과거의 성세를 빠르게 회복하는 원인 중 하나는 영국이 인도 쥐어짜듯이 청을 가혹하게 쥐어짜고 있어서였다.

물론 프로이센이 청을 독차지한 것도, 청을 완전히 식민화한 것도, 그리고 기술적인 착취 능력도 영국에 비해 부족했기에 정만 인도 수준의 효율이 나오지 않았지만, 그 대신 더욱 가혹하게, 더 많이 쥐어짜는 걸로 갈음했다.

게다가 여기에는 의도치 않은 착각도 있었다.

본래 역사에서 열강이 청을 완전히 식민지로 떨어트리지 않은 것은 의화단 운동 당시 청이 얼마나 넓고 사람이 많은지를 실감했기 때문이었다. 황제가 도망쳐 시안까지 쫓아가서 잡아와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황제가 시안으로 피란을 가기는커녕 자금성에서 붙들렸으니 열강은 청이 그 덩치만으로도 가볍게 씹어삼킬 수 있는 먹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고, 이는 뒷일을 더욱 생각하지 않는 착취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는 반감을 불렀다.

노인은 표정을 감추며 청년에 살의를 품었다.

아니, 청년이 아니다.

저자의 뒤에 있는 그림자를 노려보았다.

‘지금은 우리가 힘이 부족해 네놈들의 힘을 빌리지만, 곧 상황이 변할 거다.’

그들은 이 나라를 한 승냥이에게서 건져 다른 늑대에게 던지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니었다.

오롯이 한족을 위한 국민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외세에 억압받지 않고 오롯한 ‘중화민국’을 위해서.

“보로서와 불란서의 개입은 저희가 막을 것입니다. 노서아는 관여치 않을 것이고요.”

저희라.

그 말마저 우스웠다. 영길리든, 아니면 다른 양이든 간에 피부에 색이 있는 족속들을 자신들의 일부로 대우해 준 적이 있던가.

“영길리의 힘 역시 지난 전쟁 이후 제법 쇠락했다고 들었는데, 불란서와 보로서 모두를 막을 수 있겠소?”

“불란서는 제 이권만 가만히 놔둔다면 민국이 되든 청조가 유지되든 주명이 복원되든 관심이 없을 것입니다. 돈을 넉넉히 먹이는 것으로 갈음할 수 있지요, 그리고 보로서는 조금 골치가 아프기는 하지만 어떻게든 막을 수 있습니다. 대영제국이 쇠락하였다 한들, 그들보다는 윗줄입니다.”

물론 프랑스의 자존심을 긁는다면 장담할 수 없지만, 애초에 프랑스는 아시아에 별반 관심이 없는 게 명확했다.

“대영제국은 새로이 세워질 민국의 우호국이 될 것입니다. 민국 역시 대영제국의 우정을 잊지 말아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저 독사놈을 콱 배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애써 웃은 노인 역시 손을 내밀었다.

“여부가 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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