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77화 (77/200)

77화 대육군의 아카데미(1)

시간은 흐른다.

누군가에게는 바람처럼 빠르게, 누군가에게는 느리게.

그러나 꾸준하게, 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오늘날의 전장에서 대부분의 기병은 승마보병에 가깝게 변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기병의 가치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며, 오늘날 프랑스에서도 대부분의 기병이 기갑으로 전환되었다 한들 수색대대 등에서는 여전히 기병이 존속하고 있습니다.”

“수색대대는 경정찰차량, 기병, 자전거보병, 지원화기 운용병, 이 네 가지로 구성된 부대로, 모두 알다시피 대대당 2대의 경정찰차량, 자전거중대, 기병중대, 중화기소대, 통신소대를 필요에 따라 다양한 비율로 조합하는 것으로 구성됩니다. 경야포와 박격포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기병중대에는 박격포가 없지만 기관총 보유 수량은 자전거중대와 동일하며, 자전거중대는 박격포를 운용합니다. 중화기소대는 경야포 역시 보유하므로, 수색대대는 단순히 정찰임무만이 아니라 각 사단장 등의 단위제대 지휘관들의 결심에 따라 투입할 수 있는 위력정찰 임무나 예비대로써 활용될 수 있습니다.”

교수의 설명에 수강생들은 정신없이 받아적었다.

물론 그 수강생들 상당수는 풋풋한 대학생들은 아니었다.

수염이 잔뜩 난 중년들이 대부분에 젊은 청년들은 한 줌에 불과했다.

교복은 따로 지정된 것이 없었지만, 대부분은 군 정복을 입고 있었고, 그건 맨 앞자리에 앉아 있는 젊은 청년도 마찬가지였다.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원수복을 입고 있지만 그것이 용인되는 존재.

그의 아버지는 공적인 자리에서 대원수복을 입으므로, 장남인 그는 아버지보다 한 단계 낮은 원수복을 입고 나타났다.

프랑스 제국의 황태자 샤를 보나파르트는 빠르게 교수의 말을 필기하고, 동시에 눈으로는 군 편제 도식을 훑었다.

학점이 의미 없는 지위에 있었지만 그래도 그는 군에 대해 큰 관심을 보여 왔으며, 장차 군부를 장악하기 위해서라도 아카데미에서 장차 군의 세대교체를 이뤄낼 주역들과 친근해지는 건 필요한 일이었기에 이곳에서 수학하고 있었다.

-기병들과 자전거보병은 같은 병력이라도 화력에 차이가 있다. 자전거보병들만 보유하는 박격포 등의 중화기를 계산하지 않더라도, 그리고 기병보다 자전거보병의 양성이 훨씬 쉽다는 걸 제외해도 기병들은 하마해서 교전을 벌일 경우 실제 병력의 4분의 3만이 교전에 들어갈 수 있다. 나머지 4분의 1은 기병들의 말을 관리해야 한다. 기관총과 철조망으로 인해 최소한 서유럽에서 기병돌격의 성공률이 0에 수렴하는 시대가 온 오늘날.........

빠르게 필기를 해 나가던 샤를은 만년필의 잉크를 갈아줄 때가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펜이 안 나오는 것이었다.

그때, 옆에 있던 학생 하나가 슬쩍 보고는 자기 펜 하나를 빌려주었다.

“아,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리자, 이 자리에 동석한 유일한 동양인이 그 자리에 있었다.

***

아카데미에 유색인종이 입학할 일은 없다고 생각되어 왔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제국주의 시대, 열강의 사관학교에 유색인종이 들어온다는 것도 특별한 조약 등으로 허가된 게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운데, 반쯤 장성 보장 코스이자 엘리트 장교용 코스인 아카데미에서 교육받는 유색인종이 있을 가능성은 낮다고 보는 게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프랑스 제국은 뭐 본보기용으로 출세시켜줘야 할 식민지 인물도 그다지 없었다. 프랑스의 식민지는 죄다 태평양의 도서 지역이니까 프랑스 식민통치에 반발할 세력은 대부분의 인구가 백인인 뉴질랜드나 대만 정도는 되어야 했다. 나머지는 너무 인구가 적었으니까.

그리고 대만인 가운데에서는 아직 그 정도로 출세한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대만에서 협조적인 인물들을 그랑제콜에 입학시켜준다 한들 아카데미까지 들어오는 건 불가능하거나, 최소한 20년은 걸리리라고 예측되어 왔다.

그러나 그 예외를 만든 사람이 있었다.

“아까 고마웠습니다.”

펜을 돌려준 황태자는 상대를 슬쩍 바라봤다.

프랑스 유학을 온 청 유학생들을 이끌기 위해 보내진 청나라 친왕이 프랑스에서 낳은 자식인지라 유색인종일지언정 프랑스 국적법상 프랑스 국적도 가지고 있는 청 황족이자 최초의 유색인종 아카데미 학생.

입학 신청을 넣었을 때 나폴레옹 4세조차도 관심을 보였을 정도로 유명해졌지만, 어찌되었든 간에 입학 허가가 내려졌다.

물론 은근히 기피되는 건 사실이지만 대놓고 차별을 할 만큼 멍청한 인간은 아카데미에 없었고, 샤를의 경우는 상대에게 제법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열강의 지도자치고는 드물게 반제국주의적이고 우생학에 대해 비판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영향일 수도 있었다.

“수업 진도는 따라갈 만 하십니까? 현우 씨?”

“쉽지는 않습니다.”

프랑스어는 어차피 파리에서 태어난 탓에 유창하지만, 어릴 때부터 최연소 아카데미 학생이 되겠다고 발버둥친 황태자도 몇 년간 공부만 한 뒤에야 간신히 입학한 곳이 아카데미였다. 물론 그는 사서 고생한 것도 있지만, 아무튼 특별편입된 학생이 따라가기는 어려울 터였다.

체면상 말은 못 하지만 수업 내용 중 반이나 이해할까 모르겠다. 샤를 본인도 간신히 간신히 진도를 따라가는 판이었으니까. 명색이 이국의 황족이고 황제의 승인을 얻은 특별입학생이라 낙제시키기도 골치가 아파온 교수들이 시험도 턱걸이로 통과시키는 게 아닐까.

모든 시험은 논술형이기에 그런 부정 아닌 부정도 가능하기는 했다.

“뭐, 혹시 학업 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드리겠습니다. 도움을 받았으면 보답을 해야 하니 말입니다.”

“괜찮습니다.”

예상했던 대로지만 정중한 거절이 돌아왔다. 인사치레 삼아 했던 소리니 샤를도 딱히 미련을 가지지는 않았다.

***

“전함의 판매라.”

나는 피식 웃었다.

러시아 제국 정부에서 들어온 전함 판매 요청서를 훑으며 고민했다.

아직도 명목상 동맹인 저놈들의 요청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것이었다.

프랑스 제국의 건함기술은 유럽 최고로 치부된다. 기존 잔 다르크급을 퇴역시킨 뒤, 그녀의 설계에서 사골을 우려가면서 각종 문제점들을 전부 보완한 로렌급이 그 위치를 대체했다.

그 뒤를 이을 가스코뉴급의 경우, 16인치 장착도 논의되는 지경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설계안이 있지 않나?”

“예? 그 설계안이라면......”

“항공전함 설계안.”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거 한번 제시해 봐.”

“외람된 말씀이오나 그건 저희도.....”

“그 정도 함선은 만들어본 적도 없다 이거지?”

“그렇습니다.”

게다가 예상 비용이 너무 비싸고, 무엇보다 항공전함이라는 이유로 내가 퇴짜놓은 물건이다. 아직 제대로 된 항공모함도 없긴 하지만.

아직 항공모함을 만든 적이 없어서 기술축적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전금속제 단엽 전투기로는 레굴루스 시리즈가 있기는 하다. 현재 프랑스 제국의 주력 전투기가 된 레굴루스 시리즈는 마침 함재기에 필요한 요소들도 갖추고 있었고, 이놈들을 개조해서 함재기로 올려놓으면 함재기 문제는 끝날 터.

“그런데 러시아가 그...... 만재배수량 7만 톤에 달하는 전함의 건조비를 지불할 수 있겠습니까?”

“계약서에 따르면 초도함 하나만 우리가 만들어주고 나머지는 그쪽에서 라이센스 생산할 텐데, 한 척도 지불 못 할까 설마, 그리고 이건 기회다.”

무슨 기회? 항공모함 건조기술을 축적할 기회!

아이디어는 많다. 기존에 있던 군함들을 개조해 깐 나무 갑판이 아니라 전문적인 항공모함에서는 장갑갑판을 깔자거나, 함재기의 대형화를 위해서는 다층 격납고보다는 차라리 큰 격납고 하나를 쓰는 게 낫다거나, 심지어 캐터펄트와 경사갑판 등의 아이디어도 이미 있다.

실제로 군함을 건조해보면서 적용해보지 않았을 뿐.

그렇기에 아직 이에 대한 신뢰성이나, 실제로 건조했을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등에 대한 데이터가 전혀 없다.

그리고 이 데이터를 러시아군 신형함을 건조해보면서 얻어내보자는 것이다.

어차피 본격적인 항모도 아니고 항공전함인 이상 한계도 뚜렷하니까.

“설계상으로는 16인치 3연장 4문을 달았으니 화력도 꿀릴 것 없고, 부포는 6인치 양용포, 대공포는 개틀링 포를 예정해놓긴 했었는데, 부무장으로 뭘 달지는 사실 지엽적인 문제지.”

이 전함이 완성되면 자국의 최신형 함선이라고 해도 2선급 함선에 불과한 러시아 제국 입장에서는 금이야 옥이야 운용할 터였다.

‘무엇보다 항공전함이 어떠한 종류의 물건인지는 전혀 정보가 없다.’

항공모함에 대구경 주포를 안 된다? 그런 개념도 없다.

비행갑판을 단 군함은 있지만, 그건 전부 기존에 있던 전함이나 순양함을 대충 개조해서 만든 것일 뿐, 설계 당시부터 전적으로 항공기 운용에 특화된 형식으로 만들어낸 군함은 없었다.

심지어 이미 퇴역한 잔 다르크급도 퇴역 직전 비행갑판을 깔았었다. 물론 데이터 다 뽑아내자 바로 스크랩했지만.

비행갑판이 없어도 군함이 탄착관측용으로 수상기 두어 대쯤 운용하는 게 이상한 것도 아니기도 했고.

아무튼 간에, 불곰 놈들도 생각보다 혹할 거다. 우리 프랑스의 전례가 있으니까.

명백히 프랑스는 현재 군사학의 트렌드를 이끌어가는 국가다. 그래서 다른 나라들을 속여서 다포탑 전차를 몇백 대씩 뽑아내도록 유도도 할 수 있고, 영국인들은 누가 홍차에 아편타서 마시는 놈들이 아니랄까 봐 돌격소총이라는 개념은 무시하고 브라우닝이 만든 새로운 돌격소총의 불펍 형식이라는 데에만 주목했다.

그래서 리-엔필드 소총을 불펍형으로 개조하고 사용탄을 .276 엔필드 탄으로 바꾼 토르니크로프트 카빈까지 채용하지 않았나.

볼트액션 불펍 소총이라니, 이 무슨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생각이란 말이냐. 그런데 그걸 만들었다, 심지어 우리보다 더 빨리.

그리고 제식 채용까지 했다. 뭐, 우리가 뭐라 할 바는 아니지만. 명목상 성능은 리 엔필드보다 좀 더 낫다는 듯 하다. 내가 뭐라 할 처지는 아니다만...... 거 참.

그래도 미국-스페인 전쟁에서 우리가 끼어들자 스페인이 일찍 항복하는 바람에 아직 정신 못 차리고 아직도 남북전쟁기 총 쓰는 미군보다는 낫나.

‘러시아 놈들도 저게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 절대로 못 한다.’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냐는 말이 있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누구도 된장을 먹어본 적이 없다면 어떨까.

결국 누군가가 먹어봐야 한다. 역사가 그렇다. 누군가는 독버섯을 먹고 죽었고, 다른 이들은 먹고 죽은 이를 보고는 독버섯을 먹지 않는다. 누군가는 독사에 물려 죽었고, 다른 이들은 그걸 보고 독사에 주의한다.

인류가 쌓아온 지식에는 피비린내가 묻어 있다. 세상은 지뢰밭이고, 수많은 인간들이 제멋대로 나아가다가 폭사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폭사한 흔적들을 보고 생로를 걸을 수 있다.

이번에는, 지뢰를 밟을 국가가 저들일 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