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72화 (72/200)

72화 새로운 바람(1)

프랑스, 튈르리 궁. 파리.

나는 소박하지만 그래도 나름 공들여 자리를 준비했다. 아마 어지간한 외교관을 상대하더라도 이 정도의 준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곳에 초대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카데미를 자기 실력만으로 가겠다고 설치다가 여태 죽만 쑤고 있던 샤를 녀석도 원래는 동석시키려고 했지만, 다른 일 때문에 파리를 비워야 해서 관뒀다.

샤를의 명예를 위해 말해두자면 애초에 그 녀석도 지금 이 자리에 올 사람들과는 다르게 천재는 아니니까 비공식적이지만 아카데미 입학 시험에서 계속 입구컷당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아무튼, 오늘 이 자리의 주인공들이 들어왔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박사.”

“박사는 아닙니다만......”

“이런 대단한 이론을 발표했는데 박사가 아니라니요, 박사가 원한다면 우리 한림원에 자리 하나쯤은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이오.”

나는 껄껄 웃으며 20대 후반의 남자와 악수했다.

“그리고 이쪽 부부는 이미 알고 계시리라 생각하오만.”

“과학에 뜻을 둔 자로써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교수님.”

나는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정식으로 소개드리겠소, 이쪽은 얼마 전 노벨상을 수상하셨던 소르본 대학교의 교수 내외이신 피에르 퀴리와 마리 퀴리 부부, 이쪽은 불과 얼마 전에 전 세계 학계를 뒤집어놓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박사입니다. 나 역시 과학도는 아닐지언정 학계에 어느 정도 관심을 둔 인물로써 세 분을 모시게 되어 영광이오.”

“감사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난번 노벨상 수상 때 부인 쪽이 과학 아카데미 회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노벨상을 못 받을 뻔했을 때 내가 개입하려고 했었소, 다만 여러 문제 때문에.... 그리고 그때 알다시피 미국이랑 스페인 쪽에서 문제가 생겨서 내 정신이 다 거기에 쏠리는 바람에 큰 도움을 주지 못했소, 그래도 두 분 모두 노벨상을 수상했으니 그나마 다행인 일 아니오?”

“실로 그렇습니다.”

“한림원의 학자들은 콧대가 높고 편견에 가득해 있소, 남자든 여자든 흑인이든 황인이든 백인이든 주님 앞에서는 다 같은 어린 양이고, 남자가 하는 일을 여자가 무조건 할 수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오. 물론 모든 여자가 남자 같을 수는 없어도 그게 가능한 여자가 있소. 심지어 어떤 여자는 어떤 남자보다 훨씬 낫기도 하지,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나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여제를 생각해 보시오. 그들이 표트르 3세나 펠리페 3세보다 못하다고 하면 전 유럽이 비웃을 일이지. 학문을 연구하려면 기본적으로 열린 마음을 지녀야 하는데 명색이 상아탑의 학자면서 안 된다, 안 된다, 안 된다만......”

황제가 평소에 학자들에게 유감이 제법 있었던지 짜증을 부린 황제는 헛기침을 하고는 말을 멈췄다.

“흠, 잠깐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올라서 추태를 보였구려.”

“괜찮습니다, 폐하.”

“흠, 아무튼 간에 짐이 이번 만남을 주선한 까닭은 따로 있소, 지난번에 발견된 폴로늄과 라듐의 특성, 그리고 아인슈타인 박사가 주장한 질량-에너지 등가 법칙이 연관성이 있다는 주장이 있었기 때문이오. 그리고 이것의 활용도.”

“활용입니까?”

“라듐과 폴로늄이 발생시키는 방사능 현상이 극미량의 질량이 에너지로 변환해 불가시선의 형태로 방출된다는 주장이고, 여기에 담겨 있는 에너지를 전기로 변환할 수 있다는 제안이오. 안타깝게도 국가 기밀 사항이라 누가 이 제안을 했는지는 알려드리기 어렵다는 점, 양해해 주시오. 또한 아직 확실하게 증명된 것도 아니라..”

“페하께서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까?”

“프랑스 제국이 이 기술을 선점하는 것이오, 아인슈타인 박사가 에너지는 질량과 광속의 제곱이라고 했으니, 1g의 질량이라도 온전히 에너지로 변환된다면 그 에너지는 프랑스 제국 전체가 1년 동안 펑펑 쓰고도 남아돌아 해외에 송전할 수도 있지 않겠소? 물론 질량을 에너지로 변환하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이미 극미량의 질량이 에너지로 자연적으로 변하는 것을 두 교수 부부께서 증명했는데, 이를 이용하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거요.”

나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이에 대해 연구해주시오, 그리고 아인슈타인 박사 역시 퀴리 박사의 연구팀에 합류해 주면 감사하겠소, 물론 대가는 충분히 지급하리다, 연봉도 넉넉하고 연구비도 아끼지 않고 지급하겠소, 무엇보다 이 연구는 결과적으로 전 인류를 위한 일 아니겠소? 이 연구가 무한에 가까운 에너지를 공급해 준다면 그 결과로 인류 전체의 삶이 윤택해질 테니 말이오.”

거짓말이다.

내가 진짜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치솟는 버섯구름, 사람들의 피부를 벗겨져내리게 하는 방사능. 모든 유기물들을 증발시키는 열폭풍.

핵무기.

그게 내가 원하는 거다.

물론 여기 있는 사람들이 아무리 희대의 천재들이라도 핵무기를 당장 내놓으라고 할 순 없다. 기술이 아무리 원 역사에 비해 발전했다고 한들 핵무기라는 게 쉽게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일단 원자력 기술에 대해 운을 띄워놓는 걸로 만족해야 할까. 겸사겸사 아인슈타인도 영입하고. 대충 20년쯤 뒤에 핵이 만들어지면 최적이겠지.

“아인슈타인 박사, 어떻소? 인류에 공헌할 기회요. 물론 말했지만 대우도 섭섭하지 않을 거요.”

아직 20대에 불과한 아인슈타인에게 저 정도의 파격적인 대우는 거절하기 쉽지 않은 조건일 거다. 심지어 황제의 초청이 아닌가?

“한 가지 확실하게 해두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건 프랑스 정부에서 추진하는 겁니까? 아니면......”

“공식 프로젝트는 군부 내에서 추진되고 있소, 예산 끌어오기도 용이하니까. 특히 해군이 퇴역하는 순간까지 연료 보급이 필요 없는 배가 나올지도 모른다고 하니 좋아라 하더군, 물론 그걸 해군만 쓰란 법은 없긴 하오만.”

“그럼 프랑스군 신분이 되어야 하는 겁니까?”

“그럴 필요는 없소, 프랑스 학계의 일원이 될 뿐, 관직을 원한다면 줄 수 있지만 원한다면 그냥 교수직이나 연구원 등의 직위를 유지하면서 프로젝트에 참여해도 되오, 다만 프랑스 정부에 대한 충성 맹세는 하지 않더라도 비밀유지 서약은 해야 할 거요.”

나는 변명하듯 덧붙였다.

“학계에 여러 이론을 본인들 명의로 발표하는 건 괜찮지만 기술적 세부사항은 밝혀서는 안 되오. 프랑스 군부도 괜히 여기 투자하는 게 아니니까.”

“그 정도라면......”

그러나, 퀴리 부인의 얼굴은 여전히 흐렸다.

자신의 연구가 군부에 귀속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계속 저랬다.

“그..... 기술이 개발된 뒤에, 이를 군사 병기에도 적용하실 생각입니까?”

“그러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소?”

“........”

피에르 퀴리는 곤란한 표정으로 아내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한 가지를 깨달은 나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프랑스군이 그 기술로 무장하면 폴란드의 독립에도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알 수 있겠나요?”

생각해 보니 퀴리 부인은 폴란드계로, 평생 동안 조국의 독립을 바라왔다. 괜히 폴로늄에 폴로늄이라는 이름이 붙은 게 아니지.

깜짝 놀란 퀴리 부인에게 난 쓴웃음을 지어주었다.

“다들 알지 않소? 최근 프랑스와 러시아의 관계도 예전같진 않다는 것 정도는, 하지만 그 문제는 알려진 것보다 심각하오. 일단 그 정도로만 이야기합시다. 원래는 황태자도 이 자리에 동석시키려 했지만 그 일 때문에 지금 자리를 비웠지.”

“그 일이라면.....”

“루스의 곰탱이들이 적당히를 모르고 있다.... 이 정도로 해둡시다. 무엇보다 폴란드 출신인 부인이 프랑스 제국의 국방에 큰 공헌을 하면 조야에서도 폴란드를 지지하는 여론이 다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 아니오? 일단 유명세는 확실히 얻을 테고 말이오.”

의화단 사건 이후 프랑스-러시아 관계는 악화일로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물론 일반 시민들이 체감하는 수준은 그렇게 크지는 않았고, 삼국동맹도 유지되고는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 제국이 영국에서 시베리아 횡단철도에 필요한 자금을 투자받자 프랑스와 러시아의 관계는 한 차례 더 악화되었다.

러시아는 프랑스가 돈을 빌려주지 않으니 영국에서라도 빌린 것 아니냐고 했고 프랑스인들은 어떻게 미국 같은 중립국도 아니고 적국이었던 영국과 붙어먹느냐는 반응이 나왔다. 가뜩이나 러시아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았던 마당에 이는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었다.

거기에 미국-스페인 전쟁이 터지면서 문제가 심각해졌다.

프랑스 제국은 미국의 편을 들어 스페인을 압박하며 스페인의 태평양 식민지를 미국과 나누어 먹었는데, 이를 놓고 은근히 비판하는 발언이 러시아 고위급 외교관의 입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미국의 언론플레이로 인해 스페인이 외교적으로 고립되었기에 미국-스페인 전쟁의 대의까지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프랑스는 엄연히 부외자인데 왜 끼어드냐 대충 그런 식의 반응이었고, 당연히 여론이 폭발했다.

심지어 북독일 연방에서도 원론적으로 좋게좋게 협상으로 해결하는 게 좋겠다는 소리 한 마디 딱 하고 입 다물었는데 아무리 사이가 악화되었고 명분이 모자라도 그렇지 동맹국 외교관이라는 작자가 우리 뒤통수를 그런 식으로 쳐버리자 여론은 더욱 악화되었고, 다급히 러시아 외무부가 수습에 나섰지만 이미 여론을 수습하기는 늦은 뒤였다.

물론 외교관 개인의 일탈로 치부해 그 한 명을 본국으로 소환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고, 동맹도 파기되지 않고 유지는 되는 상태였지만 이미 반러 감정이 프랑스 내에서도 심각해진 상황이었다.

“그것도.... 그렇군요.”

“그러니 이건 폴란드에 있어서도 나쁜 일은 아니오, 오히려 폴란드의 독립을 불러올지도 모르지, 그걸 생각하면 부인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이 참여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겠소?”

퀴리 부인은 잠시 침묵했다.

물론 나는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았다. 모두 ~할 수도 있다. 는 식으로 말했지.

그러나 받아들이는 입장은 다를 터였다.

“..... 저 역시 합류하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소.”

나는 웃었다.

***

베를린, 북독일 연방, 프로이센 왕국.

특별열차가 멈춰 서는 걸 느낀 남자는 눈을 떴다.

특실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잠시 뒤 노크 소리가 들렸다.

“마티외 대위입니다. 황태자 전하. 도착했습니다.”

“알고 있네, 지금 내리지.”

모자만 대강 고쳐쓴 청년은 문을 열었다, 푸른색 정복을 입은 군인의 경례를 받은 청년은 자신의 군 정복의 주름을 폈다.

“내리자마자 대사관으로 가서 전보부터 확인하지, 별 소식 없었으면 좋겠군.”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소리가 있다.

어차피 그가 황제도 아니고, 황태자니 그에게까지 전달되는 소식은 그가 알아야 할 필요가 있거나, 너무 큰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알아야 할 정보는 다 본국에서 들어두고 왔으니까.

“그럴 여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저 밖에 군인들이 잔뜩 몰려 있군요.”

“프로이센에서는 제복 입었다고 전부 군인은 아니네, 이 동네는 공무원들도 제복을 입..... 정말 군인들이군. 환영 준비가 화끈하게 되어 있는 것 같은데?”

농담이 아니었다. 몰려온 군인들은 대열을 짜고 사열을 준비하는 모양새였다. 이미 붉은색 카펫이 깔려 있었고, 군악대도 연주 준비를 하고 있었다.

“프로이센 근위대군, 별일이야.”

“예?”

“보통 이런 경우는....... 한 가지 의미밖에 없거든. 아무래도 제법 긴장해야겠네.”

잠시 뒤, 차장이 나타났다.

“황태자 전하, 프로이센 측에서 사열 준비가 거의 끝났으니 내려오셔도 된다고 합니다.”

“그래. 아무래도 대사관을 들러볼 여유는 딱히 없을 것 같군? 프로이센의 국왕 폐하께서 날 쉽사리 놓아줄 것 같지 않으니 말이야. 대위.”

프랑스 제국의 황태자 샤를 보나파르트는 어께를 펴고 당당하게 걸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구령과 함께 총성이 울렸다.

한 번, 그리고 한 번 더.

총성이 멎었을 때, 그는 카펫의 끝자락에 가 있었다.

그 끝에는 몇몇 사람이 서 있었다. 그 맨 앞에 있는 사람은 그 역시 매우 잘 알고 있는 상대였다.

“프랑스 제국의 황태자의 베를린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바요.”

“저 역시 그렇습니다. 국왕 폐하.”

북독일 연방의 의장, 그리고 프로이센 왕국의 국왕.

빌헬름 2세가 자녀들을 대동하고 프랑스의 황태자를 친히 환영하러 나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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