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67화 (67/200)

67화 나비(1)

쿠바는 오랜 기간 스페인의 식민지였다.

16세기 이사벨 1세 당시 정복된 쿠바는 스페인에게 있어서 최고의 전략적 거점으로, 쿠바를 점령함에 따라 스페인은 플로리다 해협을 통제하고 주요 항로들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으며, 그 자체적인 국부의 창출 효과도 어마어마했다.

스페인이 쇠락한 뒤조차 포기하지 않은 쿠바는 영국이 인도 제국을 보는 것과 거의 맞먹는 중요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노리는 이는 당연히 있었다.

아메리카 대륙의 패자를 내세운 국가, 미합중국은 1854년에도 쿠바에 양아치 수준의 방식으로 집적거리다가 스페인이 분노를 폭발시키고 유럽 열강들에 이어 자국, 정확히는 반노예 북부주에서까지 심각한 반발을 초래한 탓에 흐지부지되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미국은 쿠바를 원했다.

쿠바의 수출품 중 90%가 미국으로 팔려나가고 쿠바의 수입품 40%가 미국에서 올 만큼 쿠바의 경제는 이미 미국에 종속되어 있었다.

그리고 쿠바인들은 계속해서 독립을 원했다. 1868년에 한 차례 항쟁을 일으켜 10년간 투쟁했다가 실패하기도 하고 실패한 지 1년조차 되지 않아 다시 1879년 무장 봉기를 일으켰던 쿠바 독립세력은 1년 전쟁을 기회로 삼았다.

유럽 대륙에서는 막대한 소모전에 필요한 대량의 무기들을 찍어냈고, 전쟁이 끝나자 이들 대부분은 재고품이 되었다.

물론 장차전을 염려한 국가들은 상태 좋은 최신 잉여 무기들은 창고에 쟁여놓고 예비군용 치장물자로 전환시켰지만, 배상금을 내기 바빠 그럴 여유가 없는 패전국이나, 승전국이라도 주머니가 쪼들리는 경우는 망설이지 않고 세일즈에 나섰다.

신생 아일랜드군은 독립의 은인인 프랑스에게서 막대한 무기를 구매, 무장을 프랑스제로 통일하고 프랑스식 복제와 군사체제를 갖추고, 신생국에 맞지 않는 막대한 군비를 갖추고 예비무장을 갖추었다.

언젠가 영국인들이 다시 돌아오면 그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

이를 위해서 민병대 조직조차도 그대로 예비군에 편입시키는 등, 군사조직은 프랑스식이지만 국가조직은 프로이센에 가까운 군국주의적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한편 쿠바는 다름아닌 영국과 프로이센에 선을 댔다.

패전으로 인해 막대한 배상금을 물게 된 영국과 프로이센은 자금이 급했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운 이탈리아나 발칸에 무기를 밀수하는 것을 고려했으나, 최악의 경우 다시 전쟁이라는 리스크를 감안하면서까지 무기를 팔아 얻을 이득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영국과 프로이센은 다른 판로를 모색했다.

처음에는 극동과 발칸에서 반군을 진압하느라 정신없는 러시아에게 판매하기도 했지만, 러시아의 개판 5분 후인 재정 때문에 무기를 살 돈을 감당을 못하자 문자 그대로 그냥 돈 주는 데에다 팔아먹었다.

프로이센은 새롭게 세워진 이스라엘 공화국에 막대한 양의 무기를 팔아먹기도 했고, 영국은 남미 국가들에 무기를 팔아서 소소하게 외화를 확보했다.

무기시장의 제법 큰 손으로 부상한 두 국가에게 쿠바 독립군이 접촉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프로이센이든 영국이든 프랑스면 모를까 스페인을 무서워하지는 않았기에 대량의 무기를 팔아먹었으며, 쿠바는 워낙 부유한 동네였기에 영국과 프로이센이 납득할 만한 대금을 지불할 수 있었다.

특히 쿠바 독립군은 미국의 자금지원을 받았을 뿐 아니라 쿠바 내 부유층에서도 쿠바 독립 세력에 가담한 자들이 많았기에 대량의 무기를 사들였고, 암시장에 풀린 대량의 고성능 유럽제 무기들은 쿠바인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리하여 쿠바인들은 스페인에 맞서 전쟁을 일으켰고, 미국이 거기에 개입했다.

의외의 나비효과였다.

***

프랑스 제국, 파리, 내각 회의실.

황제, 총리 이하 주요 인사들이 모두 착석했고, 즉시 회의가 시작되었다.

의화단 사건의 뒤처리보다도 현 사태가 더욱 중요했다.

“보고하게.”

“스페인은 이미 여력이 없습니다. 스페인군은 쿠바 혁명군에 맞서 일패도지하고 있고, 미국은 대놓고 쿠바인들을 지원하고 있으며, 쿠바인들은 미국과 영국, 프로이센제 무기로 중무장하고 있습니다, 반면 스페인인들은 무장이 너무 허약합니다.”

“스페인 정부가 영국이나 프로이센에 외교적 항의를 했나?”

“해 봤자 듣겠습니까? 저들이 사갈 무기를 스페인 정부가 대신 사가기라도 하지 않는 한....”

“스페인 정부는 그럴 돈이 없을 겁니다. 이번에 받을 배상금을 통째로 전쟁자금으로 전용해도 어려울 판인데, 그마저도 일시불이 아니라 10년 분할 납부입니다.”

“채권 형식의 판매는? 청에서 받을 배상금을 담보로 잡고 채권으로 대금을 지불한 뒤 무기를 산다면?”

“그러면 불가능하지는 않아도 스페인이 받을 배상금은 8개국 중 최저 수준입니다. 정확한 수치도 아직 실무 협상에 들어가지도 않아서 확정되기 어렵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돈은 ‘지금’ 필요합니다. 스페인 입장에서는 협상을 서두르고 싶겠지만.....”

“미국은 역으로 협상을 질질 끌려고 하겠지.”

당연한 일이다.

쿠바가 독립하면 미국은 낼름 먹어버릴 생각으로 가득할 테니까.

“미국 정부와 교섭해보는 건 어떤가? 우리가 쿠바 병합을 도와주는 대신 하와이와 괌 등 태평양의 스페인령 도서 지역은 우리에게 달라고.”

“예?”

“스페인이 미국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가?”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스페인은 이미 이빨도 모자라 발톱도 빠진 사자인데 미국은 날아오르는 독수리다.

당장 이스라엘인들이 무장하는 것도 미국에서 흘러들어오는 유대계 자본도 한 몫을 하고 있을 정도로 미국이 가진 국력은 이 시기에도 차고 넘치도록 강력하다.

심지어 전장은 자기들 앞마당이다.

“쿠바와 필리핀을 미국이 가져가는 대신 괌 등의 태평양 내 스페인령 도서 지역은 우리가 챙겨가는 거지, 물론 우리가 참전하는 건 아니니 미국이 종전 조약에서 넘겨받은 다음 우리에게 싸게 팔아넘기는 식으로 말이네. 아, 하와이도 그렇지.”

하와이는 미국이 집적거리고는 있지만 미국의 것은 아니다. 내가 알기로는 아직 미국의 속령조차 아니다. 이게 원 역사에서 변동이 생긴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미국의 정치인들이 아무리 배짱이 좋아도 1년전쟁에서 영국과 독일을 모조리 족치고 승전한 지 5년도 안 되는 프랑스를 가지고 하와이 때문에 전쟁하자고 하거나 스페인에 프랑스가 붙어서 다 잡아놓은 쿠바 놓치는 꼴을 보느니 하와이 포기하고 말걸?

지금 우리가 태평양 식민지 내놓으면 미국이 쿠바 집적대는 거 막아주겠다고 스페인에 제안하면 스페인 정부는 얼씨구나 하고 받을 가능성이 크고.

어쩌면 아직 하와이가 합병되지 않은 것도 그 영향일 가능성이 크다. 1년전쟁의 승전국인 프랑스가 대놓고 태평양에 관심을 보이니까 프랑스가 눈독들이는 하와이에 대놓고 깃발 꽃기는 껄끄러워서 그랬을지도.

“미국은 참전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미국은 반드시 참전할 거네.”

어떻게 아냐고? 시기는 모르겠지만 원 역사에서 참전했던 걸로 기억하니까.

쿠바 독립전쟁에서 미 해군 전함이 폭침한 사건을 명분으로 스페인이랑 전쟁을 해서 이겼지 아마? 그게 메인 함이었나?

몇 년도였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미서전쟁, 미국-스페인 전쟁이 일어난다는 건 아무튼 간에 쿠바 문제로 미국과 스페인이 조만간 대판 싸운다는 거 아닌가.

그리고 현재, 드레드노트, 아니, 잔 다르크급의 원조인 프랑스는 해상에서는 아무도 덤비지 못할 상대다, 나름 노력하긴 했지만 대영제국도 아직 잔 다르크급의 핵심 요소를 파악하고 구현하지 못한 탓이다.

세계 최강이라 불리던 로열 네이비를 바다 위에서 끝장내고 영국 본토를 불바다로 만드는 데 핵심적인 전공을 세운 세계 최고의 전함들을 보유한 국가와 해상에서 정면대결을, 2류 열강 미국이 과연 결심할 수 있을까?

심지어 미국이 보유한 전함은 6척뿐인데 잔 다르크급만 해도 5척이다. 잔 다르크가 선체의 불균형 문제로 인해 대서양이나 태평양을 건너기 어렵다는 건 알려지지 않았으니 그렇다 치고, 메인함이 폭침하면 5척이 되네? 전드레드노트급으로 1대 1의 머릿수로 드레드노트급을 상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내가 미 해군 제독이라도 자살 마려울 거 같은데.

아날로그식 컴퓨터에 가까운 사격통제장치와 증기터빈 엔진을 구현해내지 못하면 미국이고 영국이고 드레드노트는 못 만든다. 협차 못하는 느려터진 드레드노트를 어디다 쓰냐.

즉, 미국은 우리가 쿠바의 스페인 귀속을 지지하겠다고 나서면 눈물을 삼키며 물러설 수밖에 없다. 그게 싫으면 우리랑 손잡고 스페인 식민지를 갈라먹든가.

물론 우리라고 미국과 척져서 좋을 건 없으니 미국에 먼저 제안을 보내는 거지만.

“선택은 자유지만 그 후의 책임은 스스로 져야지.”

“저, 폐하, 그래서 청나라의 제안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일단..... 젠장, 그쪽이 더 급한 문제기는 하지?”

“쿠바 쪽은 저희가 제안을 보내는 입장이지만 이쪽은 저희가 답변을 주는 입장이니 말입니다.”

“일단 확언은 주지 말고, 긍정적으로 고려해보겠다는 쪽으로 돌려서 답변하도록. 대고포대 정도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지만..... 영국과의 관계는 다른 문제니까.”

“굳이 그렇게 신경쓰실 필요가 있습니까? 영국은 과거의 대영제국이 아닙니다. 인도야 간신히 유지했다지만 알짜배기는 떨어져나갔고, 캐나다도 불안불안합니다. 뉴질랜드가 떨어져나가면서 호주에서도 흔들리고 있는 데다 다른 식민지들도 다들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게다가 본토까지 쑥밭이 됐으니 저들이 입은 피해를 복구하려면 족히 한 세대가 걸릴 겁니다. 프로이센도 이번에 입은 인구 손실을 복구하려면 그 정도는 걸릴 거고요.”

“..........”

지금 저 둘 중에 우리 인구를 추월했거나 조만간 추월하지 못할 놈들이 없다는 거 알고 말하는 거냐 모르고 말하는 거냐.

물론 우리는 루르를 독일에서 독립시켰다. 그리고 영국은 불바다가 되었고, 저걸 복구하려면 제아무리 영국이라도 제법 고생해야 할 거다.

영국은 대영제국의 이미지가 강해서 그렇지 절대 식민지 원툴 국가가 아니다. 본토의 국력만 쳐도 이미 충분히 강대국이다.

문제는 그 국력의 원천인 잉글랜드의 산업기반이 철저히 초토화되었단 거지만... 어떨까, 이미 비슷하게 박살났던 독일인들이 원 역사에서 라인 강의 기적을 일으키는 데, 일본인들이 기록적인 고도 경제성장을 이뤄내는 데에 40년은 걸렸던가?

우리와 아일랜드가 아무리 짓밟고 파괴했다고 해도 저들의 머릿속에 있는 지식과 손에 익은 기술은 파괴할 수 없다. 그 와중에 별로 실리도 없는 문제로 이미 이류로 추락한 영국의 자존심을 더 긁어놓는 게 과연 좋은 판단일지.

“모르겠군, 일단 시간을 끌도록, 어차피 배상금 액수 산정만 해도 최소 몇 달은 걸릴 거고, 돌아가는 거 보고 결정해도 늦지는 않다. 미국 정부에 적당히 간을 보도록, 지난번에 캐나다를 놓고 미국과 영국을 싸움붙이는 건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기를 바라네, 외무장관.”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황제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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