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65화 (65/200)

65화 의화단 운동(5)

“연합군과 협의도 없이 여기까지 진격해오다니, 프랑스군은 대체 연합이란 개념을 아는 거요?”

“저희는 북경을 공성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전쟁을 조기에 종결하기 위해 청 수뇌부의 탈출을 막고 있었을 뿐이지요, 게다가 북경 내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는 국민들에 대한 정보를 알아봐야 했습니다.”

말장난이다. 매일같이 박격포를 북경성 안으로 갈겨댄 건 공성행위가 아닌가? 모든 수운과 육로를 막은 건 공성이 아닌가?

“어찌되었든 동맹군도 도착했고 포대도 있으니 우리끼리라도 공성을 시작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카자크 기병들은 몸만 온 건 아니었다. 중대급 포병들도 같이 왔고, 이들의 화력은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프랑스군이 도수운반해온 소구경 박격포들을 훨씬 상회했다.

“공성이라.”

“어찌되었든 귀측 병사들도 굉장히 기대하고 있지 않습니까? 북경은 부유하기로 유명한 곳인 데다 저희는 프랑스 제국의 국민들의 생사가 무척 걱정되는군요. 게다가 북경 내에 프랑스 거류민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유럽의 문명인들도 있지 않습니까?”

“으음.........”

일단 프랑스가 내세운 명분은 말이 된다. 베이징에서도 외국인 거주구가 있고, 그쪽의 사정은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거류민들이 텐진으로 탈출했다는 정보, 혹은 아직 잔존 인원이 있다는 정보가 상반되고, 아직 안에서 버티고 있는지 아니면 이미 전부 학살당했는지도 파악하기 어렵다.

그리고 해외에 나간 그들의 국민이 생사도 확인하기 어렵다면, 이미 전쟁까지 일어난 마당에 당연히 최대한 빨리 그들이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살았는지 죽었는지라도 확인해야 한다.

살았으면 최대한 빨리 구출한 뒤 구호해야 하며, 죽었다면 철두철미하게 복수해줘야 한다. 시간상으로 봤을 때 거류민이 아직 버티고 있다고 해도 탄약이든 식량이든 의약품이든 간에 물자가 심각하게 부족해져서 한게에 몰렸을 가능성이 높으니 최대한 빠르게 이동해야 했다는 프랑스의 논리를 반박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실리적인 문제도 있었다. 프랑스가 말했듯이 카자크들이 북경이든 어디든 간에 약탈을 하는 걸 기대하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한창 톈진을 약탈하다가 급하게 불려와서 굉장히 불만이 많다는 것도 사실이었고.

솔직히 말하자면, 극동 러시아는 법보다 주먹이 우선하는 동네였다. 카자크 기병을 딱딱 규율에 맞춰서 행동하게 하는 것만큼 무의미한 건 없었다. 그곳에서 오랫동안 복무한 그로써도 잘 알고 있는 일이었다.

아니, 극동만 그런가? 우랄 산맥만 넘어도 러시아는 그들을 하나로 묶어놓기는 하되, 차르의 법령과 칙령들은 상대적으로 멀게 느껴지는 동네였다. 치안도 당연히 열악하기 그지없고. 유목민들은 차르를 그들의 주군으로 섬기면서도 자신들의 습속을 보전해왔다.

그리고 저들은 그저 카리스마와 이득에 복종하는 자들이다. 유목기병답다면 유목기병다운 모습이었다.

다르게 말해, 그들이 원하는 걸 안 들어주면 뭔 사단이 날지 몰랐다.

처음부터 약탈을 못 했으면 모를까 하다가 자기들만 쏙 빼서 먼길을 달렸는데 불만이 없을 리가 있는가.

그리고 마찬가지로, 러시아 제국 상부는 이곳, 극동의 군단을 완벽하게 통제할 능력이 없었다.

“후, 좋소, 포병대는.....”

“그저 집중포격만 해주시오, 귀국 포병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저딴 허접한 방어선 따위는 경량형 기관총으로만 긁어도 뚫릴 것 같긴 하구려.”

기관총은 프랑스군에도 있다. 자동소총 이야기가 아니라 브라우닝제 가스압식 경기관총은 자전거부대도 들고 다닐 만 했다. 박격포랑 별로 차이도 없었고.

그렇게 급하게 공조된 두 세력은 즉시 북경 공격을 결의했다.

***

“화의를 해야 하지 않겠소?”

“양이들과 화의는 무슨 화의를 논하는가!”

“피란 갈 길도 전부 막혔는데 그럼 대체 어쩌자는 말입니까?”

이제 와서 화의를 청하면 본인의 권력은 날아간다는 걸 아는 서태후는 추하게 발악했다.

의화단을 지원한 것도 서태후, 선전포고를 한 것도 서태후.

게다가 대체제가 없는 것도 아니고 실각했다지만 공친왕은 아직 멀쩡히 살아있었다. 공친왕이 자기를 양이들에게 던져버리고 권력을 되찾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는가.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시간이 도래했다.

“폐하! 대청문(후일의 천안문)이 양이의 포격에 무너졌나이다! 양이들이 성내로 밀려들고 있나이다!”

“에잇! 성내의 병사가 몇인데 그 정도를 못 막는단 말이냐! 의화단은 뭘 하는 게냐!”

물론 의화단 따위가 천이든 만이든 간에 기병으로는 이 시대에도 충분히 일류 축에 들어가는 카자크 기병과 기관총과 박격포, 반자동화기들을 들고 왔으며 참호전에서 얻은 전술로 근접전 능력은 의화단의 사이비 무술 따위보다 훨씬 뛰어난 프랑스군의 정예 충격보병들을 막으려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멍청한 짓이었지만, 서태후가 알 바는 아니었다.

황궁 근처까지 총성이 울리기 시작하자, 현실을 받아들인 서태후는 명을 내렸다.

“모든 이들은 이곳에서 자리를 지키고 위엄을 보여라!”

해괴한 궤변을 섞어 가면서 본인의 명령을 정당화했지만, 이런 상황이 되면 보통 자결을 강요하는 등의 조치가 취해지는 후궁이나 궁녀들, 심지어 황족 여성들까지 전부, 그것도 딱 보이기 좋은 자리에 놔둔 건 애초에 다른 생각이 있어서였다.

양이들이 신이 나서 약탈하고 겁간하는 동안 본인은 가장 중요한 광서제만 챙겨서 개구멍으로 빠져나가겠다는 얄팍한 생각을 해낸 서태후는 광서제만 데려가서 다른 군벌들에 합류할 작정을 한 뒤였다.

***

자금성은 지옥이었다.

저항하는 자들은 전부 죽이고, 여자들은 보이는 대로 아무데나 끌고 가서 옷을 벗기고 겁탈하는 병사들이 보였다.

“이년! 어딜 도망가느냐!”

“아악!”

한 젊은 여인이 남장을 하고 도망가려다 걸렸는지 머리채를 잡힌 게 보였다. 얼핏 봐도 제법 미인이었다.

차라리 평범하게라도 생겼거나 뭔가 하자가 있으면 그냥 죽든 겁탈당한 뒤에 죽든 하겠지만 제법 예쁜 여자라면 그 운명은 죽느니만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미 톈진에서도 지겹도록 본 일이니까.

“쯧.”

겁간당한 뒤 강제로 첩이 된다거나 하는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 게 뻔한 여인의 운명에 동정을 표해 준 몇몇 병사들은 성큼성큼 앞으로 나섰다.

그들은 다른 동료들처럼 여자를 안거나 패물을 약탈할 틈이 없었다.

그들의 최우선 임무는 황제의 확보, 그리고 청나라의 실권자이자 이번 전쟁의 원흉이며 의화단의 최고책임자로 알려진 서태후의 확보였다.

어찌되었든 간에 연합군은 책임자를 잡아죽여야 했다. 하지만 의화단은 애초에 통일된 조직이 아니었고 그 스펙트럼도 다양했다. 심지어 여성만으로 구성된 조직도 존재할 정도였으니.

물론 그 조직은 차라리 그냥 총 맞아 죽은 쪽이 훨씬 나은 대접을 받았지만, 어찌되었든 통일된 조직이 없으면 책임을 일일이 묻기 애매해진다.

그런고로 서태후를 잡아조져서 이 모든 학살, 약탈, 강간 등의 책임을 묻는다는 게 연합군의 결정이었다. 황제를 찾는 건 통제불능이 된 병사들 가운데 우발적으로 황제를 살해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보호함이 목적이었고, 서태후는 책임을 묻기 위해서라도 살려서 끌어내야 했다.

“저쪽에 누가 있는 것 같은데?”

“문 부숴!”

물론, 그 임무를 맡은 병사들이라고 해도 황궁의 구조가 어떻게 되어먹은 구조인지 알 도리가 없었고, 황제와 서태후가 어디 있는지는 더더욱 몰랐던 탓에 장님 문고리 찾기 수준의 추적을 해야 했지만 말이다.

***

서태후는 자신의 몸에 박힌 금속 덩어리를 보았다.

피가 그녀가 걸치고 있는 비단옷에 검게 번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쇠붙이를, 칼을 쥐고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청의 황제, 광서제였다.

“네...... 네.......”

“이걸 바라고 그 짓을 했나?”

서태후는 대답할 수 없는 처지였다.

가슴과 하반신이 훤히 드러난 여인의 시체가 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훤히 짐작할 만한 것이었다.

서태후가 탈출하자는 말에 고분고분 따르던 광서제는 일순간 돌변해 서태후를 칼로 찔렀다.

아니, 이 모습을 눈에 담으며 도망쳐야 했던 순간부터 광서제는 이 마녀를 자기 손으로 죽여버리겠다고 결심한 뒤였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마녀로 인해 고통받고 죽어야 했는가.

그걸 생각하면 저 마녀를 칼로 찔러 죽이는 건 너무 자비로운 처사였지만..... 이렇게 직접 칼로 찔러버리는 게 아닌 이상, 그리고 주변에 사람이 없을 기회가 없는 황제의 특성상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그가 서태후를 정치적으로 실각시킬 만큼 정치력이 있지도 않았고, 반쯤 허수아비인 황제가 실세인 섭정에게 대가를 치르게 할 기회는 지금이 아니면 결코 없을 거라는 직감 하에 칼을 잡았고, 성공했다.

꺽꺽거리던 서태후의 늙어빠진 몸뚱이가 뒤로 넘어갔다.

피 묻은 칼을 들고 멍하니 서 있는 순간, 문이 부서지고 총을 든 사람들이 나타났다.

잠시 얼굴을 보고 굳은 병사들 중 책임자로 보이는 이가 앞으로 나섰다.

“이름, 무엇.”

“..........”

“당신, 황제, 인가? 얼굴, 비슷하다. 황제면, 보호한다, 우리가.”

“....... 그래, 내가 대청의 황제다.”

“혹시, 어디 있나? 아는지? 태후, 서.”

왜인지 서태후를 찾는 그들에게 광서제는 내뱉었다.

“너희들 발 앞에 있지 않나.”

말은 안 통해도 손가락질의 의미는 아는지 당황한 병사들이 급히 쓰러진 서태후를 뒤집어 보았다.

이미 숨은 끊어져 있었다.

“죽었나? 당신?”

“그래, 내가 죽였다.”

“왜? 아니, 아니다.”

자기의 짧은 중국어 실력으로 의사소통하기를 포기한 장교는 급히 부하를 잡고 물었다.

“젠장, 서태후 맞아?”

“얼굴이 일치합니다, 복장을 보아서는 도망가려 했던 거 같은데.....”

“이런 젠장, 저 양반이 찌른 거 맞지?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 양반 황제 맞습니까?”

“얼굴은 맞는 것 같고, 본인도 맞다고 한 것 같.... 아니, 했어.”

“일단 딱 봐도 칼도 들고 있고, 칼에 피도 묻었고, 뭣보다 여기 시체는 하나밖에 없잖냐. 딱 봐도 배에 한 방 쑤신 거네.”

“그러니까 왜요?”

“낸들 어떻게 아냐? 뭐 복잡한 사정은 저기 위에 계신 분들께서 알아서 헤아리시겠지, 일단 저 황제 데리고 나가고 시체는...... 시발, 저걸 어떻게 해야 하나.”

‘반드시 챙겨야 하는 두 목표 중 하나가 죽었는데 다른 한 목표가 그 목표의 배를 찔러버리는 걸 못 막았습니다? 젠장. 이걸 어떻게 보고하냐.’

그들의 책임자인 소령은 보고서 쓸 생각에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미치고 환장하겠네, 진짜로.”

작가의 말

이번 화 보충설명 : 의화단은 남자뿐 아니라 여자들도 많았습니다. 유명한 건 영화 황비홍에서도 나온 홍등조인데, 10대 이상의 젊은 여인들로 이루어진 의화단 분파였죠, 거기서는 꽤 얌전하게 독일군에게 총맞아 죽지만 원 역사에서 홍등조의 지휘관 린하이얼은 8개국 연합군에 포로로 잡혀 윤간당한 뒤 살해당했고 시체는 포르말린에 담가 인체 표본으로 만들어져 영국으로 보내졌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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