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63화 (63/200)

63화 의화단 운동(3)

출정 이전, 대영제국, 내각 회의실. 런던.

“명백한 사실이지만, 현재 대영제국은 초유의 위기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해군력 복구부터가 쉽지 않다. 일단 프랑스와의 해군조약으로 묶여 있는 것도 있지만, 조약을 파기하고 전쟁을 건다고 해도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최근 북독일 연방은 의욕적으로 식민지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본국과 충돌할 가능성이 엿보입니다. 특히 최근 수단에 북독일 연방이 손을 뻗치는 정황이 여럿 포착되고 있어 외무부에서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수단.

이집트와 인도 제국을 잇는 항로를 유지하기위해 홍해 지역의 항로를 유지해야 했고, 여기에 빠질 수 없는 부분이 수단이었다.

물론 수단은 그 자체만으로는 대영제국에게 큰 가치가 없었다.

1885년까지는.

1881년 발생한 마흐디 운동으로 촉발된 수단 독립운동 세력은 1883년 사이칸 전투에서 대영제국 육군 대령인 월리엄 힉스의 휘하 영국-이집트 혼성군을 전멸시키고 힉스 대령의 목을 잘라 효수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1885년, 영국 총독인 찰스 조지 고든 총독이 하르툼에서 참수된 뒤 효수당하면서 영국의 분노는 절정에 달했고, 총리가 사임해야 했다.

그 기억이 잊혀지기에는 너무 이른 7년 만에 영국은 또 다른 굴욕을 처절하게 맛보았다.

무려 본토가 프랑스군에게 짓밟히고 평소 하얀 흑인이라며 깔보던 아일랜드인들이 브리튼 섬을 짓밟으며 학살과 방화와 강간과 약탈을 저질렀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원한을 고려하면 사필귀정에 가까웠지만, 원래 모든 인간은 자기가 당한 일을 주로 떠올리는 법.

믿고 있던 로열 네이비가 프랑스군에 완패하고 굴욕적인 협상을 맺는 수모까지 당하자, 모두에게 한 가지 공포가 밀어닥쳤다.

대영제국의 몰락. 그것은 단지 그들의 생활수준 후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닌, 그간의 업보를 청산하는 시간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당장 제국 왕관의 보석이라는 인도에서 큼직하고 핵심적인 조각을 강탈당해 그 하잘것없는 유대인에게 넘겨주게 될 정도로 대영제국은 모욕당했다. 여왕의 옷을 찢어 국부를 가리는 천을 거지에게 던져줘도 이만큼 수치스럽지는 않았으리라.

그러나 당장 복수에 나설 수는 없었다. 나폴레옹 4세를 나폴레옹 1세 이상의 위험인물로 분류한다고 해도-물론 나폴레옹 1세나 4세가 영국에 적대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게 두 번 모두 영국 스스로였다는 건 제쳐두고-영국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북독일 연방은 지상전에서는 프랑스를 상대도 못 하는 주제에 식민지 욕심만 많습니다, 도무지 신뢰할 만한 맹방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이번만 해도 수단을 놓고 제국과 충돌이 벌어지지 않았습니까.”

“문제는 저자들을 제외하고는 우리에게 동맹이랄 게 남소?”

이탈리아는 망했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이번 전쟁 최대의 수혜자중 하나이자 프랑스의 강력한 동맹이며, 바이에른 왕국은 체급이 너무 작다. 스칸다나비아 국가들은 죄다 중립국이 된 지 오래였고.

즉 도움 안 되는 자들과 프랑스의 우방을 빼고 나니 유럽에 나라랄 게 없어졌다는 허탈한 결과물을 받아들어야 했던 것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사실 프랑스에게 큰 도움이 안 될 겁니다, 그럼 하나밖에 없지 않습니까?”

“러시아 제국? 그들이 도움이 되긴 하오?”

“그래도 서부전선을 한 번 붕괴당했다지만 어찌되었든 이겼고, 조선과 일본까지 진격하기는 한 자들입니다. 끌어들일 수 있다면 좋은 우방이 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해군력은 상당히 잃어버린 데다 한동안은 영토를 소화하느라 고생하고 있어야 할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건 우방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을’때를 가정한 것 아니오? 그리고......”

“우방으로 끌어들일 방법이 있느냐고 물으시면,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러시아 제국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면서 대영제국에게는 위협이 가지 않을 방법이 말입니다.”

“그런 기발한 방법이 있소?”

“그렇습니다.”

외무장관은 말을 이었다.

“시베리아, 그리고 극동.”

“.........”

“러시아는 극동에서 막대한 영토를 얻었지만, 통치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대영제국의 입장에서 극동은 상대적으로 양보할 만한 공간이고, 오히려 러시아 제국이 태평양으로 진출하면 본국보다는 태평양 전역에 식민지를 가지고 있는 프랑스 제국과 충돌할 여지가 더 큽니다.”

“러시아가 태평양으로 진출하도록 유도한다?”

“정확히는 극동 경영에 도움을 주는 거지만, 예, 타 지역에 비해서 극동의 발전세가 두드러지면 러시아도 결국 태평양 진출로 가닥을 잡게 될 겁니다. 페르시아 등을 통해서 바다로 나가 인도를 위협하는 대신, 타이완과 태평양 유역을 위협하면서 프랑스와 마찰을 일으키게 되겠죠.”

“어떻게 말인가?”

“러시아 제국은 한창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랬다.

물론 이건 니콜라이 2세가 사치를 부려서 그런 건 아니었다.

간단히 말해, 사회체제가 너무 개판이었다.

조금 모자라고 귀가 얇을 뿐 선량하고 신실한 인물인 니콜라이 2세는 황실의 재산까지 헐어 가면서 빈민구호 등에 쏟아넣고는 했지만, 세금제도부터가 아직도 지역에 따라 봉건제의 잔재가 남아 있을 정도로 개판인 것에 이어 부도덕하고 타락한 상당수의 귀족들과 자본가들은 혁명을 부채질하고 있기도 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러시아의 경제체제, 사회체계, 그리고 교통체계가 총체적 난국 상태라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시베리아 횡단 철도라는 대역사를 진행하는 건 쉬운 일이 절대 아니었다. 그러나 극동 영토의 운영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이었고, 러시아는 조만간 타국에 손을 벌릴 것이었다.

“아마 제일 먼저 프랑스를 찾아가겠지만, 상식적으로 봤을 때 프랑스가 러시아에 돈을 빌려줄 동기가 없습니다.”

당연하다. 러시아는 이미 프랑스에게 제법 밉보였고, 무엇보다 프랑스가 대량의 배상금을 뜯어냈다고 해서 돈이 남아도는 건 절대 아닌 것이다.

프랑스 정부도 전쟁은 애국채권을 팔아 가면서 진행했고, 이 채권은 결국 이자 쳐서 갚아야 하는 돈, 게다가 잔 다르크급 전함의 건조는 또 돈이 얼마나 드는가?

돈 많이 드는 식민지들을 구조조정하고, 배상금을 뜯어내도 도움 되는 게 없는 동맹에게 마냥 퍼줄 정도로 프랑스 황제가 호구일 리는 없었다.

아니, 프랑스 황제가 주고 싶다고 해도 국민의회가 반대할 것이다. 지난 전쟁 내내 똥만 싸댄 무늬만 우방국에게 갚을 수 있을지 아닐지도 확신할 수 없는 돈을 무작정 빌려준다?

그럴 리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도 그리 넉넉한 상황은 아니지 않는가.”

프랑스에게 내야 할 배상금은 절대 가벼운 게 아니었다. 물론 세율을 올리고 채권을 팔아 가면서 어떻게든 돈을 마련하고 있지만, 안전자산으로 평가받던 대영제국의 국채는 잔 다르크 쇼크를 맞아 똥값이 되어 있었고, 영란은행 지하에 있던 금과 산업시설 등은 약탈당하거나 파괴당했다.

민간 피해는 말하기도 싫을 정도, 이 피해를 극복하려면 족히 한 세기까지는 아니어도 반세기는 넉넉히 걸릴 거라고 관료들조차 자조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시베리아 횡단 철도에 투자를 하자고? 얼마나 돈과 시간이 들지 모를 초대형 프로젝트에?

“다음 전쟁에서 프랑스를 유럽에서 고립시키고 승리하면 됩니다. 배상금은 전쟁에서 이기면 무효화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는 지금 배상금의 담보로 지브롤터를 잡고 있지만, 무력으로 회복하면 된다.

물론 평시라면 대영제국에서 이런 따서 갚으면 된다는 막장스러운 발상이 내각 회의 중에 대놓고 나올 가능성은 0에 수렴했으나, 지금은 달랐다.

대영제국의 자존심은 사정없이 구겨져 땅에 쳐박혔고 런던이고 지방이고 본토가 통째로 쑥밭이 된 데다 해군력의 무력함까지 명백히 드러났다.

이제 와서 신전함을 건조하자면 기반시설을 복구하고, 기술을 축적하고 하는 데 또 시간이 걸릴 거고, 그나마도 해군 조약에 의해 제약이 가해졌다.

그러니, 이대로 추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전쟁을 한 번 더 해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들이박아 보자는 극단적인 주장도 고개를 들 수 있었던 것이리라.

***

현재, 8개국 연합 원정군 사령부. 톈진 조계.

“진심이십니까?”

뭐 이상한 거 안 붙였냐는 듯 ‘러시아인들’이 물었다.

그들 스스로도 황당했던 것이었다.

극동 총독부는 막 확장되어 혼란스럽고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자금난에 시달리는 데다 이제 막 깔기 시작해서 언제쯤 완공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등 이렇게 취약해진 시기에 영국이 극동을 찌르려고 시도하는 게 아니라 러시아를 옹호하고 지원한다고? 농담이 아니라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인들 스스로조차 경악하든 말든 얼굴에 철판을 깐 영국인들은 태연하게 물었다.

“저희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있습니까? 대영제국은 언제나 진실을 추구합니다.”

그 순간 모두가 생각했다.

‘니들보다 정직한 국가가 유럽의 국가 개수만큼은 있겠지.’

‘분명 뭐가 꿍꿍이가 있어. 저놈들이 선의만으로 행동한다고? 그럴 리가 있나, 이간질을 하려고 하든 뭔가 엿을 먹이려고 하든 간에 뭔가 있으니까 지지한다고 말한 거겠지 괜히 도와주겠다고 말할 리가 있나, 미국 독립전쟁 시절부터 자존심 하나 때문에 목숨 거는 게 종특인 프랑스라면 차라리 믿을 만 했겠지만.’

‘영국이 거짓말을 안 해? 진실을 추구? 프랑스인들이 와인이랑 달팽이를 끊는다는 말을 믿겠다.’

물론, 뻔뻔함은 언제나 영국인들의 특기였다.

그들의 신뢰성이 영국 요리가 맛있을 확률보다 낮다고 할지언정 멋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전혀 켕기는 것 없이 진실만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철면피를 두른 그들은 답했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에 이어 대영제국과 척질 정도로 맞서기도 영 그런 사안이었다. 사실 타 6개국이 러시아의 북양함대 획득에 반대하는 것도 그렇게 성의 있게 반대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들에게는 중요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아무튼 간에 북양함대를 손에 넣어서 러시아가 극동을 강화하는 것쯤이야 이곳에 모인 열강들에게는 그리 중요한 사안이라고 할 수 없었다. 정원과 진원쯤이야 프랑스 식민지 해군으로는 좀 귀찮아질 수 있어도 잔 다르크급이 움직이면 한 끼 간식거리밖에 안 되며, 무엇보다 둘은 현재 아직까지는 우방이었으니까.

그리고 타국들은 러시아가 북양함대를 가진다고 해서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았고, 따라서 반대해야 할 동기도 별로 없었다, 그에 따라 러시아의 요구는 합의안에 반영될 수 있었다.

우습게도, 그 회의가 끝날 때까지 걸린 시간은 연합군이 베이징까지 진격하는 데 걸린 시간보다도 더 길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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