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62화 (62/200)

62화 의화단 운동(2)

프랑스가 제일 빠르게 움직이기는 했지만, 청의 움직임이 프랑스의 예측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한 이상 타국의 움직임도 결국 프랑스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서태후는 서양 열강 전체에 대해 전쟁을 선포하는 자살행위를 했고, 정신줄을 놓아버린 청을 응징하기 위해 8개국이 모였다.

그레이트브리튼 연합왕국, 프랑스 제국, 북독일 연방, 미합중국, 러시아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네덜란드 왕국, 스페인까지.

8개국이 모여 결성한 연합군은 러시아령 다롄에 집결했다.

***

8개국의 국기를 휘날리는 24척에 달하는 전함을 포함해 총 70여 척에 육박하는 전투함들이 부두를 가득 메웠다.

그리고 7만에 달하는 전투병력을 중국 본토로 실어나를 수송선들도 빠질 수 없었다.

그 앞에서 연합군 병사들이 사열을 하고 있었다.

러시아군이 수병연대와 코사크 기병대 포함 2만 명, 프랑스군이 해병대 포함 1만 7천, 영국군 역시 해병대 포함 1만 2천, 독일군이 육전대 포함 8천, 미군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각각 5천 명, 네덜란드가 2천, 스페인이 1천 명.

도합 7만에 달하는 병력은 유럽 본토에서 치고받고 싸울 때 단 한 번의 공세에서 프로이센군 10만이 1.4km를 전진하면서 갈려나간 일 등을 기억해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았지만, 유럽 밖으로 원정을 나온 것이라는 걸 감안하면 굉장한 규모였다.

특히, 사열식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위치에 있는 장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프랑스군이 동원한 1개 대대급 예비장비까지 총 50여 대에 달하는 신형 전차.

르노 재규어.

외형만 보면 샤를마뉴의 차체높이를 낮게 재설계하고, 양 측면의 무기는 전부 제거, 차체 전면에도 기관총 한 정만 남기고 포탑에 47mm 포를 달아놓은 외형이었다.

물론 문제가 있었다. 예를 들어 포탑이 2개라든가 하는 문제였다.

물론 프랑스 제국이 이런 끔찍한 물건을 가져온 것도 이유가 있었다.

첫째, 전차 같은 물건은커녕 야포라도 있을지 의문인 의화단을 상대로는 구세대 전차인 샤를마뉴를 끌고가도 고장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제법 활약이 가능하다, 이번 실전 테스트가 엔진과 궤도, 현가장치와 무기체계 등의 총체적 테스트에 가깝다는 걸 감안하면 다포탑 전차라는 문제는 상대적으로 작아진다.

둘째, 이게 가장 중요한 문제였는데, 다른 7개국을 엿먹일 수 있다.

프랑스군 단독작전이어도 정보가 샐 가능성이 높은데 의화단 제압 작전에 투입하면 100% 확률로 그 개념이 유출될 터, 그리고 1년 전쟁이 종전한 이후 전 세계가 열심히 독자적인 전차를 만들고는 있지만 현재 전차의 종주국은 프랑스이니, 전 유럽과 미국까지 열심히 프랑스제 전차를 따라 만들려고 들 거다.

얼핏 보면 그럴듯해보이는 다포탑 전차를.

그러면 프랑스군은 잽싸게 이번에 테스트하는 장비들의 설계를 기반으로 단 한 개의 포탑과 한 개의 주포만을 가진 전차를 양산하면 되는 것이다. 이미 폴테아가(panthère : 표범)라는 이름으로 대략적인 설계안도 나와 있으니까.

프랑스군은 오로지 타국을 엿먹이기 위해 두세 대 시험생산하고 끝날 물건을 1개 대대분을 만들어온 것이다.

물론, 그 효과는 굉장히 탁월했지만.

“워, 워!”

러시아 제국의 코사크 기병들은 날뛰려는 말들을 진정시켰다. 저 육중한 지상의 전함들이 내뿜는 엔진 소리에 말들이 놀란 것이었다.

“맙소사, 개구리 놈들이 미쳤군.”

혀를 내두르는 장교도 있었고, 누군가는 빠르게 스케치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몇몇 병사들은 아예 홀린 듯이 프랑스군의 국적표지를 단 강철의 기수들을 바라보았다.

“멋지군........”

전면으로 향한 47mm 주포와 후미로 향한 28mm 부포, 앞뒤로 달린 기관총좌.

사각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프랑스군의 신형 전차의 모슴은 그들 모두를 경탄시키기에 충분했다.

속도도 샤를마뉴에 비해 확연하게 빨라졌고, 고장도 크게 줄어든 프랑스 제국의 신형 전차는 각국 무관단의 뇌리에 뚜렷한 인상을 남기는 데 성공했다.

전부 계획대로였다.

***

톈진, 청나라.

“돌격! 돌격 앞으로!”

기관총 소리가 미친 듯이 울렸다.

상륙의 선두에는 당연하다는 듯 프랑스군이 섰다. 다른 국가들도 군소리할 수 없었던 것은, 전차를 아시아까지 가져온 국가가 프랑스군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해군이 놈들 포대를 제압했으니 이제 진격한다! 앞으로!”

“비바 라 프랑스! 비바 랑펠로!”

포탄과 기관총탄을 몰려오는 의화단을 상대로 퍼붓고, 아예 무한궤도로 깔아뭉겐다.

전차들의 뒤를 바짝 따라붙은 프랑스, 영국, 독일 해병대는 전차의 사각을 엄호하면서 다가오는 의화단을 향해 아낌없이 탄환을 선물해주었다.

1년전쟁을 거치면서 교리는 더욱 선진화되었고, 신무기들도 등장했다.

-타타타타타타타타타!

북독일 연방군 병사들의 손에서 연발사격이 이루어졌다. 참호전을 위해 설계된 신무기가 퍼부은 9mm 탄에 창칼로만 무장한 의화단은 픽픽 쓰러져나갈 수밖에 없었다.

“끼요오오옷!”

의화단 한 명이 언월도를 들고 북독일 연방 해군 육전대원에게 달려들었다. 육전대원은 대응하려 했지만 탄통에 탄이 없었다.

급히 클립 묶음을 탄통에 밀어넣어 재장전하려 했지만, 너무 느렸다.

-탕! 탕! 탕!

곧장 총성이 울리고 달려들던 의화단원이 나자빠졌다. 반자동소총을 든 프랑스 병사가 언월도를 들고 달려들던 의화단원을 쏴버린 것이었다.

“젠장, 고맙군.”

“정신 똑바로 차려, 크라우트.”

굳이 한 마디를 더 붙인 프랑스 병사는 탄창을 갈아끼웠다. 80발짜리 클립 뭉치를 낑낑대면서 기관단총의 탄통에 집어넣은 독일 병사는 곧장 야삽을 이용해 기관단총을 거치한 뒤 다시 쏴대기 시작했다.

청은 넓고, 사람도 많았다.

그들의 화력이 우세했지만, 그 이상으로 의화단은 끝없이 밀려들어왔기에 총성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

단숨에 베이징 코앞까지 진격한 연합군을 가로막는 건 적이 아닌, 그 스스로의 문제였다.

연합군이라는 조직이라는 태생적인 문제.

내분이었다.

“우리 러시아 제국은 이번 전쟁이 끝나면 영토를 요구하지는 않겠소, 대신 중국의 북양함대를 우리가 전리품으로 가져가는 정도는 용인해주시리라 믿소. 이 합의를 문서화해서 기록해주기를 바라겠소.”

코사크 기병 1만 명을 포함해 2만에 달하는 병력을 파병했으며 항구와 보급 기지 등을 제공하는 등 원정군에서 명실공히 가장 지분이 크다고 할 수 있는 러시아 제국은 톈진을 점령하고 급한 불을 끄자 곧장 다른 7개국에게 북양함대에 대한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별다른 말을 더하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지금 2만에 달하는 병력과 보급선이 러시아의 관할 하에 있다는 점이었다. 러시아가 빠진다고 지지는 않겠지만 보급로에 장난을 친다면 진짜로 곤란해진다.

“크흠, 일단 그건 베이징에 가서 이야기하는 게 낫지 않겠소?”

‘야, 지금 전쟁 중인데 이렇게 뒤통수치기 있기냐? 니들이 보급로 잡고 있는 거 아니까 어련히 제 몫 챙겨줄까. 다물고 베이징이나 가자.’

“하하, 그래도 확실하게 문서로 남겨놓는 것이 최선이 아니겠습니까?”

‘베이징에 가면 전쟁 끝나는 거 뻔히 아는데 우리가 그래주겠냐? 전쟁 끝나기 전, 우리가 우위를 잡고 있을 때 확답을 받아놔야지, 전쟁 끝나고 톈진항이 도로 열리면 말 바로 바꿀 거면서 웃기고 있네.’

“러시아 제국이 연합군의 보급에 적극 협조해주시는 것에 감사를 표합니다. 혹시 보급품이 부족하다거나 할 경우, 나폴레옹 4세 황제 폐하께서는 타이완 총독부에게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을 명하셨고, 대량의 보급물자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최소한 탄약과 의약품, 식량 정도는 끊어지지 않을 겁니다.”

‘니들이 이럴 줄 알고 보급물자 준비해놨지, 거리야 좀 멀어지겠다만.’

“북독일 연방 역시 칭다오 조차지에 물자가 어느 정도 있습니다. 민간인 구호에 필요하다면 기꺼이 조력하겠습니다.”

“대영제국 역시 탄약과 식량을 인도 부왕령의 지원을 받아 홍콩 총독부에 추진해두었습니다. 유사시 언제든 사용이 가능한 상태입니다.”

8개국 중 서로를 진심으로 신뢰한 국가는 단 하나도 없었기에 모두가 밑장 하나쯤은 숨겨뒀으니, 이것이 국제정치였다.

한편, 러시아 제국은 현재 은근히 곤란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중국에서 이권을 더 뜯어낼 작정으로 좋다고 달려들었지만 군을 배치하고, 보급하고, 명령을 내리는 과정에서 온갖 문제가 발생해서 극동에서의 작전부터가 쉽지 않을 지경이었다.

먼저 해군의 동원도 곤란했다. 지난 1년 전쟁에서 발트 해, 흑해, 극동 지역 전부에서 러시아 해군이 독일과 영국에게 막대한 타격을 입어서 사실상 궤멸당했고, 전쟁이 끝난 지 5년도 안 된 마당, 유럽의 새로운 트렌드가 된 성녀급 전함을 새로 건조하기는커녕 연안경비라도 할 수 있을 정도로 해군력을 복원하기도 힘들었다.

자존심이 있어서 보급로 보호를 혼자 떠맡기는 했지만, 만약 북양함대가 작정하고 덤볐다면 장담할 수 없었으리라, 물론 그 직후 북양함대는 전함만 24척을 끌고 온 열강들의 함대에게 물고기 주상복합주택 꼴이 났을 게 뻔했지만.

그러나 중국 각지의 군벌들은 모조리 중립을 지키는 상황이었고, 적이라고 해 봤자 서태후의 명령을 받는 오합지졸 청군과 머릿수만 많은 의화단뿐이었기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영국과 독일에서 직도입한 장비로 중무장한 북양함대, 특히-동형함들이 빌헬름스하펜에서 종전 직전 프랑스군의 수중침투로 인해 줄줄이 착저, 장기 수리에 들어가게 되는 개망신을 당하기는 했지만-북독일 연방에서 여전히 주력함으로 굴려지는 작센급 방호순양함의 개량형인 정원과 진원을 비롯한 북양함대의 군함들은 심각한 군함 부족에 시달리던 러시아 입장에서는 아쉬운 대로 해군력을 벌충할 수 있었다.

특히 거의 공백이나 다름없는 극동함대의 전력을 채워줄 수 있다는 점을 높이 산 것이다.

더하자면 영토를 더 뜯어내 봤자 소화시킬 수도 없는 판이기도 했고. 그냥 배상금 및 이권이나 넉넉하게 챙겨가는 게 러시아에 있어서는 최선이었다.

그러나 나머지 7개국이 모조리 미적지근하게 반응하자, 러시아군도 슬슬 뒷골이 땡겼다.

무력시위를 하자니 새로 얻은 극동 영토도 아직 안정화가 안 되었고, 2만 명도 간신히 유럽 러시아에서 쥐어짜서 보낸 병력이었다. 그 병력이 극동으로 오는 과정에도 온갖 문제들이 발생한 걸 감안하면 더 많은 병력은 무슨 일이 있어도 보내는 게 불가능했다.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완공되기라도 한 게 아니고서야 말이었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가 슬그머니 포기하려고 할 때 의외의 지원군이 등장했다.

“뭐, 북양함대를 전리품으로 가져갈 국가가 달리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러시아가 가저갈 배상금에서 감가상각만큼 상계해야겠지만 원한다면 가져가지 못할 것도 없지 않습니까?”

회의장에 앉은 각국의 공사와 장성들은 다 경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그 소리를 한 건 러시아의 동맹인 프랑스나 오스트리아-헝가리도 아니고 다름아닌 대영제국의 토마스 공사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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