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61화 (61/200)

61화 의화단 운동(1)

유럽에서의 총성은 멎었다.

프랑스는 승전의 주역이 되어 유럽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 러시아는 실무진의 비명과는 별개로 이번 전쟁의 결과 새로 획득한 영토들을 지도에서 바라보며 흡족해하고 있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이탈리아에서 거둔 쾌거에 축배를 들었으며, 네덜란드는 이 전쟁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다 얻었다며 식민지들을 재정비했으며 아일랜드 공화국은 독립을 자축했다.

그러나, 패자들은 이를 갈았다.

연합왕국은 바이킹 시대 이후 최초라고 할 수 있는 본토 상륙 허용에 이를 갈았고, 아일랜드군이 브리튼 섬 전역에서 저지른 만행에 분개했다.

식민지를 여럿 잃어버리고, 심지어 지브롤터까지 빼앗긴 데다 대영제국 왕관의 보석인 인도 식민지에 큼지막한 스크래치까지 났다. 게다가 군비증강에 제한까지 받았으니, 대영제국은 이 수모를 벗어나기 힘들 터였다.

북독일 연방은 패배한 국가들 중 사정이 제일 나았다. 라인란트와 자를란트 공업지대를 빼앗긴 건 분명히 엄청난 타격이었지만, 북독일 연방의 실질적인 지배자들인 융커들의 기반인 동프로이센은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다.

다만 남독일 연방의 형성으로 인해 독일의 완전한 통일이 한 걸음 더 멀어졌다는 데에 안타까워할 뿐이었다.

물론 무거운 배상금과 해군력에 대한 제한이 걸렸다고는 하지만 그 제한도 제법 넉넉한 축에 들었고, 배상금도 못 낼 수준은 아니었다.

한 번 민족주의가 불붙은 이탈리아인들은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지배에 반항하기 시작했다. 물론 반항하는 족족 기관총과 야포를 퍼부어 짓밟았지만, 아무튼 이중제국의 지배는 여러모로 쉽지 않을 전망이었다.

졸지에 러시아에 흡수합병된 국가의 시민들 가운데 이를 기꺼워하는 이도, 반발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반발하는 이들은 반란을 일으켰으나 러시아에게 무자비하게 짓밟히고 있었다.

물론 무작정 짓밟기만 한다고 수습이 가능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

“누구게.”

“치워.”

“........”

“치우십시오, 황녀님.”

“야, 애늙은이, 그렇게 재미없게 굴래?”

“시끄러..... 누나.”

제 누나와 투닥거리는 소년, 프랑스 제국의 황태자 샤를 외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방해꾼을 쏘아본 뒤 책에 다시 빠져들었다.

“뭐 읽는데.”

“전쟁론.”

“어..... 그게......”

“카를 폰 클라우제슈비츠의 글.”

단답한 황태자는 페이지를 넘겼다.

“애늙은이 씨, 너 그거 이해는 하세요?”

“이해해.”

슬그머니 황태자의 어께 위로 고개를 들이민 황녀는 이마에 주름을 잡았다.

“뭐야, 프랑스어 아니네?”

“독일어 원서다.”

“독일어 할 줄 아는 건 아는데 원서 읽을 수 있을 정도였어?”

“그 정도 배웠으면 누가 못 해, 누나가 게으름부린 거지.”

“야, 너 말 다했어?”

“저리 가.”

귀찮게 구는 누나를 밀어낸 샤를은 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가서 이야기도 좀 하고 좀 그래라, 너 사람이랑 대화한 지 얼마나 됐어?”

“2초.”

“나 말고!”

“시끄러.”

샤를은 누나가 떠들건 말건 조용히 복기를 시작했다.

이미지화된 수많은 텍스트들이 복잡하게 조합되어 수십 가지 영상을 만들어내었다.

상당 부분은 그의 상상력이었지만, 나머지는 모두 사료에 근거한 것이었다.

‘오늘날의 전쟁은 참호전.’

포병화력이 극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포병이 참호전을 타개할 결정적인 카드가 되어주기는 어렵고, 공군 역시 마찬가지다.

‘비행선은 안 될 거야. 비행선은 대형 폭탄을 투하할 수는 있더라도 너무 느려서 격추당하기 쉬울 거야, 그러면 역시 훨씬 무거운 폭탄을 싣고 멀리, 더 빠르게 날 수 있는 항공기가 필요해.’

비슷한 무기는 이미 있다. 프랑스 제국은 이미 쌍발 중거리 복엽 폭격기를 개발 완료해 실전에 배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폭장량은 500kg도 안 된다. 어뢰 하나 못 달 무게다.

포병과 마찬가지로, 기술적 문제로 참호전을 극복할 수 없다면, 역시 기댈 건 단 하나였다.

‘전차’

최근 들어 전차들도 빠르게 개량되고 있었다.

샤를마뉴 전차는 측면에 달았던 무장들을 싹 떼버리고 차체 위에 포탑을 장착하는 개량형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결국 미래에는 지상의 모든 무기체계는 대전차임무를 맡거나, 전차를 지원하거나, 전차거나, 이 셋 중 하나의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전차의 발전방향은 상대 전차를 격파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샤를은 곧장 적들에게도 전차가 있다고 가정하고, 기존의 전차들끼리 참호에서 맞붙는 광경을 상상했다.

어릴 적부터 군사적 분야에 관심이 컸던 샤를은 순식간에 문제가 뭔지 알아냈다.

샤를마뉴 전차는 결국 순수하게 대참호용으로만 만들어진 전차. 특유의 무기배치 역시 그러한 이유에서 만들어졌으나, 적에게 전차가 있고, 전차의 임무가 적 전차를 우선적으로 격파하는 것이라고 가정하는 순간 차체에 달린 무장들 대부분은 쓸모가 사라졌다.

‘아버지가 맞아, 전차 대 전차의 싸움을 벌여야 한다면 최소한을 제외한 모든 무장은 포탑에 집중시켜야 해.’

그러면......

“야!”

불청객이 또 찾아왔다.

짜증이 확 치민 샤를은 그대로 손수건을 집어던졌다.

“뭐야, 결투 신청?”

그럴 리 없다, 그냥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던졌을 뿐.

“그냥 좀 가만히 놔둬봐! 생각하잖아!”

“넌 생각이 너무 많아서 탈이야.”

“시끄러.”

니 말이 맞는데 인정하기는 싫다는 의미였다.

외향적인 누님과 너무 대조되는 탓에 성별이 바뀌어서 태어난 거 아니냐는 농담도 제법 듣지만, 그의 주변인들은 샤를이 군무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이 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전쟁은 외교의 연장선이므로, 당연히 외교에도 제법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황제의 일이 외교와 군무라는 걸 생각해보면 황제의 일을 사랑한다고 볼 수도 있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는 그의 부모의 장남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황제였다.

그렇기에, 언젠가 저 제관은 그의 것이 될 터였다.

***

“긴급보고입니다, 폐하, 청에서 비상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청?”

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톈진 조계 외에는 우리가 청이랑 연관될 곳이..... 타이완이라도 공격당했나?”

“아닙니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이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아니, 프랑스인들만이 아닙니다. 기독교도들, 백인들이 무차별 학살을 당하고 있습니다. 선교사 188명과 그 가족이 학살당했고, 수천 명에 달하는 기독교도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 혹시 그 폭도들의 명칭에 대한 정보는 있는가?”

“영국 언론에 따르면 복서, 스스로는 의화단이라고 부릅니다.”

“의화단.”

의화단 사건, 혹은 의화단 사변.

중국인들은 의화단운동이라고 애써 미화한다지만 그저 사이비 종교에 빠진 미치광이들이 계란으로 바위를 쳐댄 사건에 불과하다. 그 와중에 애꿎은 민간인들을 대량학살한 건 덤이고.

근데 저게 지금 일어날 일이 아니지 않나? 너무 이른데....라고 생각하기에는 내가 바꿔놓은 역사가 너무 많아서 의화단 운동이 몇 년쯤 일찍 일어난 것 따위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는 한다. 일단 당장 러시아에게 영토를 대량으로 뜯긴 판이니....

“현지 공사와 민간인은?”

“일단 프랑스 국적자들을 최대한 조계지 내부로 대피시키고 있지만 쉽지 않답니다. 현지 병력을 총동원했고, 타이완에 배치된 병력을 증원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청에서는 뭐라고 하나?”

“아직 정보가 부족합니다, 일단 현지 공사가 최대한.......”

“청의 지원을 기대하지 말도록, 즉시 러시아와 공조해서 톈진 조계지의 민간인 구출과 의화단 진압 작전을 준비하라고 하게.”

원 역사에서 광서제는 최대한 이를 수습하려 했지만 본인부터가 허수아비인 판에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서태후는 아예 의화단을 지원해서 유럽 전체에 선전포고를 해버린다.

그렇게 될 거란 걸 뻔히 알면서도 방관할 수는 없지.

“연합왕국, 이중제국, 북독일 연방, 미합중국에도 연락을 취해라, 청국의 수뇌부가 의화단에 동조하는 것으로 보이니 자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서로 협력할 필요성이 있을 거라고. 그리고 태평양함대와 현지에서 동원 가능한 외인부대, 해군 육전대, 식민지군도 총동원해서 타이완으로 이동시켜, 명령만 내리면 즉각 군사작전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해, 아니, 현지 공사와 제독 등이 논의해서 사후추인을 받아도 된다고 구두통고하도록.”

“알겠습니다.”

지구 반대편의 문제를 실시간으로 처리할 수는 없다. 무슨 GPS랑 위성전화가 보급된 시대도 아니고 기껏해야 전신이니까.

따라서 상당한 재량권을 현지의 총독, 공사, 제독 등에게 줄 수밖에 없다. 특히 이건 촌각을 다투는 문제니까.

“유럽 국가들이 집결하면.....”

반드시 참전할 국가들을 보면 우리, 프랑스, 그리고 영국, 러시아는 이권 때문에라도 반드시 참전할 거다. 미국은 지금 대통령이 다름아닌 제국주의자 매킨리라는 걸 생각해보면 당연히 참전할 터,

북독일 연방도 빌헬름 2세 성격상 절대 가만있지 않을 거고, 이중제국도 병력을 보내긴 할 터, 거기에 참가할지 아닐지 모를 국가로는 네덜란드와 스페인까지.

“본토 병력 중 파병할 병력을 선별하도록, 브라우닝 백작에게 말해서 신병기들 중 실전 테스트가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장비들도 차출하고....”

“폐하.”

총리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전쟁을 생각하시는 겁니까?”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네, 두고 보게, 청나라는 반드시 우리에게 무기를 겨눌 거야, 아니, 우리만이 아니라 전 유럽에.”

나는 비웃었다.

“국제사회에서 멍청함은 곧 죄라는 걸 알게 해줘야 하지 않겠나.”

내가 굳이 21세기에 유행했던 착한 짱X는 죽은 짱X라거나 하는 말들을 끄집어내지 않아도, 의화단이 하는 짓만으로도 저놈들은 당해도 싸다.

“세상을 살다 보면 말을 도무지 안 들어먹는 놈들이 있거든? 그런 놈들은 좀 죽도록 패줘야 돼.”

농담이 아니라 20세기건 21세기건 간에, 좋게 좋게 말로 넘어가고 싶어도 끝까지 주먹을 부르는 개인, 단체, 기타 등등이 있더라.

그런 놈들을 정신차리게 하는 방법은 군대를 쓰든 돈을 쓰든 아니면 다른 방법을 쓰든 간에 물리적으로 흠씬 두들겨주면 정신을 차리더라. 배후중상설 돌던 독일이 나치 독일로 진화하자 뮌헨 협정이라고 말로 대화하려고 했는데 기어코 매를 불러서 동서로 갈라져야 했잖아?

저놈들도 딱히 다르지 않다.

“중국인들은 말이네, 일종의 특이한 민족성이 있어, 세상이 다 자기들 밑인 줄 아는 거지, 그냥 자기가 아닌 다른 모든 사람은 다 자기보다 아랫것이라는 관념이야.”

나는 세계지도에서 청을 손가락으로 푹 찔렀다.

“힘의 격차를 보여줘서, 제놈들의 그 망상이 얼마나 헛된 건지를 확실히 보여주도록, 이는 군부의 수장으로써, 프랑스 제국의 제 1시민으로써 내리는 명령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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