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60화 (60/200)

60화 인터라켄 협정

인터라켄 협정의 전문을 훑어본 나는 만족스럽게 미소지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1. 프로이센은 자를란트 지역을 프랑스에 양도할 것, 라인란트 지역은 라인 공국으로 독립, 프랑스의 독립보장을 받는다.

2. 연합왕국은 아일랜드의 독립을 인정하며, 20년간 120억 프랑의 배상금을 지불할 의무를 지닌다. 배상금이 지불이 완료할 때까지 지브롤터를 담보로 프랑스 제국에 제공한다.

3. 북독일 연방은 20년간 80억 프랑의 배상금을 지불할 의무를 가진다.

4. 협상국은 왈롱, 사르데냐를 프랑스가 합병하는 것을 인정하며,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합병을 인정한다. 콩고는 네덜란드 정부가 벨기에의 만행을 수습할 책임을 진다.

5. 바이에른 왕국, 바덴 대공국, 뷔르텐베르크 왕국과 함께 남독일 연방을 결성하며 바이에른을 그 맹주로 한다. 북독일 연방은 어떠한 경우에도 남독일 연방 소속국을 합병할 수 없다.

6. 이탈리아 왕국, 오스만 제국을 해체하며, 이탈리아의 모든 상황을 1847년 이전으로 되돌린다. 또한 피에몬테는 이중제국의 직할령이 된다.

7. 러시아 제국은 발칸, 아나톨리아, 페르시아, 아프가니스탄, 중앙아시아, 위구르, 몽골, 티베트, 만주, 조선, 일본 등에 독점적인 권리를 가진다.

8. 연합왕국은 인도 자치령에서 이스라엘 공화국의 독립을 인정한다. 단 연합왕국은 이스라엘 국내의 모든 항구에 대한 이용권을 99년간 유지한다.

9. 태평양의 뉴질랜드, 사모아, 타히티, 캐롤라인 제도, 사이판, 타이완 등을 프랑스 제국에 양도한다. 연합왕국은 기이아나 식민지를 콜롬비아에 양도한다.

10. 연합왕국과 프로이센 왕국은 프랑스 제국과의 잔 다르크급 전함의 배수량 총합의 비율을 100:95:85로 맞춰야 한다. 다만 이는 함선의 숫자를 제한하지 않는다.

물론, 이건 상대적으로 가벼운 조항이다.

그도 그럴 게, 우리가 영국에게 캐나다나 호주, 인도를 내놓으라거나 하지는 않았지 않나? 라인란트는 먹어봤자 배탈날 게 뻔해서 안 먹었지만 자를란트는 먹을 각이 보여서 먹은 거고.

아일랜드 독립이야 이미 이 시점에서는 상수였고, 배상금 120억 프랑은.... 무겁긴 하지만 일시불도 아니고 20년에 걸쳐서 못 낼 건 아니다. 아마 낸다면 인도 제국을 쥐어짜서 내겠지.

북독일 연방의 80억 프랑도 마찬가지, 20년간 상환을 못 할 건 아니니까.

진짜 영국 입장에서 속이 쓰릴 조항은 4번과 5번, 8번 조항으로 벨기에가 사라지고, 언제든 적국으로 변할 수 있는 네덜란드와 프랑스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것과 인도의 부유한 남서부 해안 지역이 칠레 모양으로 뚝 떨어져나갔다는 점이다. 항구 이용권은 어찌어찌 유지했지만 일단 독립한 이상 거기서 나오는 자금은 말라붙어버릴 테니까.

프로이센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조항은 6번 조항의 남독일 연방 형성이다. 오스만의 붕괴는 이해관계가 없었던 특성상 프로이센에 있어서 중요한 건 아니고 러시아의 상황을 감안할 때 실질적인 위협이라 보기도 어렵다. 이탈리아 문제는 그냥 시간을 되돌린 것에 불과하고.

오히려 7번 조항과 연계해서 보면 러시아가 체하다 못해서 배가 터질 걸 우려해야 할 판이다. 니콜라이 2세 저 인간은 뭔 놈의 땅 욕심이 그렇게 많은지.....

9항에서 나오는 태평양 패권은 영국에게 혈압을 올려주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당면한 문제는 아니다, 뉴질랜드 정도를 빼고는 영국이 실질적으로 뭘 잃은 건 없으니까.

그리고 건함 규모의 제한을 건 10항.

영국과 북독일 연방의 잔 다르크급, 그러니까 드레드노트급 전함의 총톤수를 각각 프랑스 제국이 보유한 전함들의 총합의 95%, 85%로 묶어버린 조항이다.

당연히 전함의 정의 역시 세부조항을 통해 꼼꼼하게 정의해서 말장난을 할 여지를 차단했지만, 지금 영국에게 가장 골치아픈 건 개함 배수량의 제한은 없다는 점이다.

배는 클수록 좋고 주포는 클수록 좋다.

그런데 배를 키우자니 수량이 줄어든다, 함선 수의 감소는 자칭 모든 바다와 파도 지배자인 대영제국에게 있어서는 치명적이다.

반면 식민지라고 해봤자 아프리카에 조금밖에 없는 프로이센은 아마 양보다는 질을 고를 터.

그리고, 한 가지를 더하자면 프로이센은 자국의 함선 건조 시설은 멀쩡하지만, 영국은 아니다.

적어도 본토에 있는 건, 특히 전함이 건조 가능한 대형 도크나 전함을 둘 수 있는 부두 같은 건 꼼꼼하게 부숴놓고 가져갈 수 있는 건 다 본토로 옮겨놨으니 아마 복구하려면 제법 돈 좀 써야 할 거다.

그런데 프로이센은 멀쩡히 전함 건조 가능하네? 어?

당연히 영국과 프로이센 간에 분쟁을 촉발시키기 위한 포석이다.

빌헬름 2세가 이번 일로 쫓겨나지는 않을 거다, 순무의 겨울도 없었고, 전쟁은 1년만에 끝났다. 뜯긴 거라고 해 봤자 자를란트와 라인란트고, 이들은 기존의 프로이센과는 꽤나 괴리된 지방이다. 바이에른을 비롯한 남독일 국가들은 애초에 북독일 연방 소속도 아니었고.

아무튼 간에 혁명이 터져서 군주가 쫓겨나기에는 충격이 너무 약했다는 거다. 게다가 러시아 상대로는 제법 잘 싸웠고.

‘내가 프로이센 사람이라면 자국 정부보다는 프랑스가 너무 셌고 영국이 너무 못 싸웠다고 욕할 것 같은데.’

배상금이 좀 아프기는 하겠지만 못 모을 것도 아니고. 아니, 오히려 배상금을 모으기 위해서라도 식민지를 개척하고 해군을 증강할 가능성이 높다.

어차피 전함이 없어서 배수량도 넉넉하겠다 빌헬름 2세의 성향상 전함들을 찍어낼 거고, 이는 영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거기에 식민지에서도 충돌하면 말 다한 거지.

우리는 식민지 추가로 늘릴 생각 없고,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식민지 늘릴 처지가 아니고, 러시아는.... 이 상황에서 식민지 만들겠다고 하면 미련하다는 차원을 넘어선 거다 진짜. 두마나 보좌관들이 단체로 병신도 아니고.... 아니, 최소한 현재 러시아 군부는 병신이구나.

물론 지금의 이 병신스러운 행보는 범슬라브주의랑 종교적 문제, 러시아의 자존심 문제 등이 좀 복잡하게 얽혀있기는 한데,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 지나면 저놈들 정신도 제법 돌아올 거다.

어쨌든 그런고로 영독동맹은 빌헬름 2세가 왕위에 앉아있는 한 반드시 깨진다.

겉보기에는 상당히 관대하지만, 이 배수량 조항이 영국과 독일을 분쟁시킬 것이다. 게다가 양측의 전력도 비슷할 거고.

이유는 간단하다, 원래 같은 배수량이면 배수량 작은 거 2척보다 큰 거 한 척이 더 나으므로, 실질적인 전력은 프로이센이 영국을 해군력으로 압도하는 상황이 연출될 가능성이 높기에.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식순이 거의 끝났고, 하이라이트인 서명 시간이 되었다.

나는 그대로 종이에 서명했다.

인터라켄 협정의 체결 순간이었다.

***

프랑스, 파리

<최근 들어 1년 전쟁이라 불리게 된 전쟁에서 승전을 거둔 프랑스 제국은 보나파르트의 이름 아래 단결했을 때 프랑스 제국이 어떤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었다. 나폴레옹 1세 폐하의 시대 이래 온갖 수모를 감내해야 했던 프랑스 제국이 다시금 유럽의 중심으로 부상....>

나는 신문 기사를 읽다가 피식 웃어버렸다.

<사설 - 러시아의 동맹 무임승차, 과연 이대로 괜찮은가?>

“무임승차라.”

“뭐라고요?”

“아니야, 여보.”

나는 신문을 넘기면서 피식 웃었다.

<러시아 제국은 지난 전쟁 내내 어떠한 기여도 하지 않았으면서 막대한 영토를 손에 넣었다. 이는......>

뭐, 나부터도 이 기사의 문제점을 집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러시아가 회담장에서 영토를 가장 많이 뜯어간 건 폼이 아니었다. 거의 대부분의 배상금을 우리 몫으로 돌리면서 얻어낸 거였지. 아마 지금쯤 러시아 제국 재무장관 세르게이 비테는 온 세상을 저주하고 있지 않을까.

둘째, 러시아도 제법 피를 흘렸다, 발트함대는 러일전쟁 직후마냥 전멸했고 흑해함대도 영국과 독일을 상대하며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지상군 피해도 마찬가지다. 정확한 사상자 규모는 아직 집계가 안 끝났다. 물론 그 피 대부분이 무의미했던 건 맞지만, 동부전선의 병력이 러시아의 동장군에 박살나면서 프로이센이 항복을 결정했고, 프로이센이 망해버리자 영국도 더 여력을 잃고 백기를 들었다는 걸 감안하면 전혀 한 게 없다고 하기는 어렵다.

물론 러시아 ‘인’은 한 게 없는 게 맞다. 러시아 최고의 명장인 동장군과 진흙장군이 잘 일해줬지.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당장 지도가 크게 변했다는 게 문제다. 국민들도 이런 복잡한 행정력이니 배상금이니보다는 눈에 딱딱 들어오는 지도 색이 더 확 와 닿을 거고.

“폐하, 브라우닝 백작이 오셨습니다.”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되었나? 들어오라고 하게.”

다크서클이 선명한 브라우닝을 본 나는 피식 웃었다.

“커피를 내오도록, 브라우닝 백작, 요즘 괜찮나? 그 새로운 도구들 말이네.”

“제법 생산현장에서도 익숙해졌습니다. 그 고-노고(Go-No Go) 게이지, 게이지 블록은 굉장히 독창적이더군요, 그리고 버니어 캘리퍼스.... 이걸 왜 지금까지 안 썼는지 의문입니다.”

고-노고 게이지, 흔히 고노 게이지라고 하는 것과 게이지 블록이 만들어진 건 의외로 꽤 늦은 시점이다. 버니어 캘리퍼스는 수백 년 전부터 있긴 했지만 이걸 산업현장에서 사용한 적이 없었고.

이 세 가지 도구를 산업현장에 도입하자, 가장 큰 효과를 본 건 정밀공작의 난이도가 한참 내려갔다는 점이다. 그리고 브라우닝은 병기국장이고, 무기, 특히 기관총 종류는 이 시대 정밀공작 분야의 끝판왕 중 하나다.

더 간단히 말해, 기관총의 생산성이 확 올라갔고, 고장나는 경우도 줄어들었다.

“신형 다연장로켓발사기는 솔직히 실패작으로 보입니다. 화력 낭비가 너무 심합니다.”

“그래도 성능은 화끈하잖나, 적 대포병사격을 피하기도 용이하고.”

“여러 발을 동시에 착탄시킨다고 해도 집탄율이 떨어지는 게 문제입니다. 화력과 기동성은 좋지만 야포 등을 근본적으로 대체하기는 무리입니다.”

“애초에 그런 목적으로 개발, 생산한 게 아니니까, 차량이랑 로켓포를 조합해서 쓰는 것도 괜찮겠군, 차량화 로켓포병이면 마차를 쓰는 것보다야 낫겠지.”

“한 번 쏘고 나면 초연이 너무 심해서 적 포병대에게 표적을 제공해주는 꼴이니 최대한 빨리 이탈해야 합니다. 차량을 쓰면 말이나 인력보다는 훨씬 낫긴 하겠죠.”

“그.... 독일제 자동화기 분석은 어떻게 됐나? 전선에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소량의 시제품이 자네 자동소총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 그거, 지금쯤이면 양산되어서 제식장비일 것 같네만.”

못 했다고 말해도 할 말은 없다. 내가 병기국을 좀 심하게 부려먹는다는 인식은 있거든.

“했습니다. 구조는 토글 액션, 사용탄은 9mm라서 그다지 빠른 연사속도를 보이지는 않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영국의 맥심 기관총의 작동구조를 많이 본딴 흔적이 있더군요, 권총탄을 빠르게 연사하는 장비라는 건 인상깊었지만 고장나기 쉬운 구조입니다.”

“대응할 수 있는 무기를 만들어줄 수 있나?”

“당장 전쟁이 나는 것만 아니면 됩니다. 훨씬 나은 놈으로 뽑아드리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