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겨울, 끝(3)
파리, 프랑스 제국.
오랜만에 보는 듯한 파리의 분위기는 꽤나 밝았다.
곳곳에 삼색기가 휘날리고 있었고, 황제가 자신의 개인 문장으로 삼은 월계관과 로렌 십자가가 삼색기 가운데 박힌 깃발들도 곳곳에 보였다.
프랑스를 휩쓸고 있는 애국주의 물결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모습이었다.
황제는 프랑스 그 자체와 맞먹게 여겨졌고, 황제에 반대하는 것은 비애국적인 것으로 몰렸다. 국내 정치를 의회에 떠넘김으로써 본인이 국내에서 비판받을 여지 자체를 남겨두지 않은 덕이었다.
실정에 대해 비판을 한다면 의회를 때리지 황제를 때리지는 않으므로.
황제는 군무를 맡고, 그 군이 전쟁에서 무패를 기록하는 동안에는 황제의 권력이 흔들릴 리는 없었다.
그리고, 삼색기 가운데에 드문드문 다른 깃발도 있었다.
“저거, 오스트리아-헝가리의 국기 아닌가?”
“예, 그렇습니다만...?”
“..... 잠깐만, 젠장, 그게 오늘이었어?”
포슈의 머리에 한 가지가 스쳐지나갔다.
조만간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황제 루돌프가 프랑스를 방문할 예정이었다는 것, 물론 전선 사령관들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지만, 하필 급하게 그가 파리로 상경한 시점과 딱 맞아떨어졌다면 그건 문제다.
국뽕에 가득 찬 프랑스인들은 동맹국의 국가원수를 뜨겁게 환영해주기 위해 군집을 이루고 있었고, 장성기를 휘날리는 관용차가 파리 시내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몰려든 것도 필연이었다.
시민들이 몰려들기에 앞서 피냄새를 맡은 피라냐마냥 기자들이 달려들었다.
“포슈 장군님! 라인 공세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군사기밀입니다.”
“포슈 장군님! 여기 한 번만 봐주십시오!”
“장군님! 현재 독일인들이.......”
“운전병!”
“예?”
“밟아!”
***
<세계로 뻗어나가는 프랑스의 기상!>
<나도 프랑스인이 되고 싶다! 전 세계에서 우러러보는...>
오글거려 미치겠다.
내가 쓰라고 한 기사지만, 그래도 오글거린다. 젠장.
내가 국뽕 유X브 같은 거는 딱히 본 적은 없지만, 내 전생에 지인 중에 그런 데 푹 빠져서 시간만 나면 그거나 보는 사람이 하나 있었기에 대충 레퍼토리는 꿰고 있다.
그리고 그 국뽕을 가뜩이나 국뽕 좋아하는 프랑스에 온갖 언론을 통해 투하한 결과, 프랑스에 몰아치는 애국주의 광풍은 무서울 정도였다.
“부럽네.”
내 생각을 끊어먹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면서 봤는데 너에 대해 욕 한 마디라도 했다가는 사람들이 찢어죽일 기세던데?”
“너희는 안 그러냐?”
“영 안 좋아.”
루돌프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이탈리아를 직접 먹는 건 포기해야 할 가능성이 높아서.”
“왜?”
“마자르 놈들이.”
“마자르? 아, 헝가리?”
“자기들 지분이 줄어들까 봐 지랄을 하더라고.”
“크흠, 황제가 지랄은 좀.”
“지랄 지랄 지랄 듣다 못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욕 좀 해도 되지 뭐. 담배 있냐?”
“안 피워, 몸에 안 좋다더라.”
“의사가 그러는데 적당한 담배는 몸에 좋다고......”
이런 개소리를 들을 때마다 지금이 19세기 말이라는 거 강제로 상기하게 된다, 젠장.
“아무튼 간에 난 안 피워, 잠깐만, 시종 좀 부르지.”
“됐어, 그럼 혹시 위스키는 없냐?”
“아, 위스키는 없고 꼬냑은 있는데 괜찮아?”
“꼬냑 좋지.”
나는 시종을 부른 뒤 몸을 깊숙이 묻었다.
“헝가리 왕국이 지랄을 하더라, 아무래도 이탈리아의 완전병탄은 포기하고 영토 일부만 삼킨 뒤 괴뢰화해야 할 것 같아.”
“이탈리아인들의 저항도 장난이 아니겠지, 복안이라도 있어?”
“예전에 조베르티인가 하는 인간이 이탈리아에서 주장한 게 있다던데, 교황을 의장으로 하는 연방체로 이탈리아를 통일하자고 했던가? 아무튼 교황을 사이에 끼워놓고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괴뢰화하는 수밖에는 없을 것 같더군, 일단 사보이아 왕가는 확실하게 축출해야겠지만.”
사보이아 왕가는 이탈리아의 정신 그 자체, 그들이 영토를 가지게 하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력을 남겨 놓는다면 그들을 주축으로 이탈리아인들은 다시 오스트리아에 도전할 것이었다.
“교황이 상대라면 이탈리아인들도 함부로 대들지는 못하겠지, 신앙을 부정할 수는 없으니까.”
교황수위권을 생각하면 교황에 대한 공격은 배교로 간주될 가능성도 크다. 그런 리스크를 짊어지면서 교황에게 대들 자들이 있을까.
그리고 교황에 합스부르크의 영향력을 짙게 끼쳐놓아서 괴뢰화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헝가리의 반발도 무마하고 이탈리아인들의 저항도 약화시킬 수 있으리라 생각한 방안인데, 어떻게 생각하나?”
“뭐, 내가 뭐라 할 부분은 아니지, 황제는 너잖냐? 그보다 다른 게 묻고 싶은데, 너, 정말 결혼 안 할 거냐?”
“관심 없어, 누군가에 속박되는 건 지긋지긋하다, 무엇보다....”
입술을 짓씹은 루돌프는 나직이 말을 이었다.
“난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 생각은 없어.”
“피해자라고 부르는 거냐.”
“나는 그들을 혐오하지만, 동시에 나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법은 모르니까, 책임지지 못할 거라면 시작도 하지 말아야지.”
사랑을 받아본 자만이 사랑하는 법을 안다.
사랑해주지 못할 거라면, 애초에 부모가 되기를 선택하지 말아야지.
루돌프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저 즐길 뿐이다, 사실 꼭 결혼하고 싶은 여자랄 것도 없어.”
나는 묵묵히 루돌프의 앞에 놓인 크리스탈 잔을 채워 주었다.
나폴레옹 꼬냑을 단숨에 들이킨 루돌프는..
“쿨럭!”
미친 듯이 기침을 해 댔다. 그대로 뿜어버리지 않은 게 다행인가.
“크으, 죽는 줄 알았네, 뭐가 이리 독해?”
“야 인마, 꼬냑을 무식하게 그렇게 퍼마시는 놈이 어딨냐? 나도 취할 것 같아서 두 잔은 못 마시는 술인데.”
“그래도 맛은 좋네. 한 잔 더 주라.”
“하아, 저 주도도 모르는 놈.... 너 황제 맞냐?”
“솔직히 말하자면 황제가 지켜야 할 예절 따위, 관심도 없고, 합스부르크고 나발이고 지긋지긋해. 젠장, 다 망해 버리라지.”
저게 황제인지 시정잡배인지..... 나는 한숨을 쉬고는 한 잔 더 따라주었다.
아무리 가문이 좆같아서 비뚤어졌다고는 해도 너무 자유분방하게 사는 거 아니냐.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만.
‘뭐, 자유주의자들은 저런 걸 더 좋아하는지도 모르지.’
실제로 루돌프의 콘크리트 지지층은 죄다 자유주의자니까.
“전쟁이 끝나면 유럽은 프랑스와 오스트리아-헝가리, 러시아를 중심으로 재편될 거다. 우리 프랑스는 자를란트를 획득하고, 라인란트를 완충지대로 만들며 태평양에 대규모 식민지를 만드는 것, 이 세 개면 충분해, 배상금은 많이 받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베를린을 점령한 것도 아닌데 무리겠지.”
영국 본토를 먹은 김에 영국에서도 대량의 식민지를 뜯어내거나 하는 걸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뒷감당이 안 된다.
괜히 무리해서 쳐먹었다가 코올당하는 것도 곤란하고. 무엇보다 어차피 영국의 식민지 통제력은 약해질 게 뻔한 일, 산업시설이고 뭐고 본토를 쑥밭을 만들어놓고 돈과 금도 싹 약탈해놨으니 영국 본토의 역량은 바닥으로 쳐박힌 거나 다름없다.
그걸 어거지로 점령해서 영구점령을 시도? 할 수야 있겠지, 우리가 러시아처럼 배때지가 터질 확률도 급상승해서 문제지. 식민지도 마찬가지로 무리해서 뜯어오면 돈 잡아먹는 귀신이 될 확률만 높인다. 어차피 무거운 배상금을 물리면 식민지 통제력이 알아서 약해질 텐데 굳이 악역을 자처할 이유가 있나.
“배상금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만, 우리는 이탈리아 문제만으로도 골치아파. 이탈리아를 제외한 영토를 더 먹었다가는 제국의회가 뒤집어질 거다.”
진지하게 답한 루돌프의 말에, 나는 한숨을 쉬었다.
“결국 제일 많이 쳐먹는 건 역시 러시아군.”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황태자가 죽었잖냐, 지금 차르의 아버지.”
“그거야 그렇지만......”
나는 지도를 보며 코웃음을 쳤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완성된 것도 아닌데 극동 영토 경영은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궁금한데 말이야.”
“해로로 하지 않겠어?”
“해로라, 하, 그게 퍽이나 잘 되겠다. 이번에 러시아가 획득한다는 영토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아? 극동 영토만.”
“어느 정도지?”
나는 선을 죽 그었다.
“페르시아, 아프가니스탄, 영국령 발루치스탄 지역, 중앙아시아, 티베트, 위구르, 몽골, 만주, 조선, 일본..... 넓어도 너무 넓어, 인구수야 중앙아시아와 티베트, 위구르, 몽골까지는 어떻게 카자크를 이용해 통치할 수 있겠고 발루치스탄은 영국이 통치하던 방식 비슷하게 하면 어떻게든 끌어갈 수 있겠지, 그런데 만주와 조선, 일본은 그런 주먹구구식 통치로는 절대 안 돼.”
어디서 스탈린이 복선화된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함께 떨어져서 모조리 강제이주시키고 디바이드 앤 룰을 실천한다면 모를까. 근데 그게 되겠냐?
“유럽도 골치지, 아나톨리아와 발칸만으로 아마 러시아의 통제력의 한계를 시험해야 할 텐데. 극동 영토까지 뜯어냈으니 이거 버틸 수 있겠나?”
중세 시대도 아니고 말야.
러시아는 이미 스스로에게 사형을 선고한 셈이었다.
***
북해, 유럽.
샤를르트 코르테급 방호순양함 한 척과 그 뒤를 따르는 두 척의 구축함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수준급 성능을 지닌 코르테급은 지금까지 프랑스 제국이 북해에서 독일 해군을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동시에 태평양을 들쑤시는 데 가장 크게 공헌한 함급이었다.
함대결전에서는 순양함이라는 체급도 있고, 무엇보다 잔 다르크급이 있었기에 묻혔지만 이런 통상파괴전에서는 방호순양함 중에서도 상위권에 해당하는 코르테급의 전투능력이 빛을 발하고는 했다.
“정찰 결과 지금도 빌헬름스하펜에는 장갑순양함 5척에 잡다한 소형 함선들이 있다고 합니다.”
“좋아, 완벽하군.”
함장은 여유롭게 답했다.
방호순양함 한 척으로 장갑순양함 5척을 정면으로 상대하는 건 자살 지망자나 할 짓이지만 이건 그런 게 아니니까.
오히려 항구 내에 최대한 적함이 많을수록 좋았다.
“함포는?”
“152mm 주포 6문, 119mm 부포 2문 모두 정상작동하며, 57mm, 37mm 속사포 도합 18문 모두 지금은 정상작동합니다. 기관총 중 6문은 현재 분해해서 점검 중이며, 2정은 즉시 사격 가능합니다, 어뢰발사관은 몇 시간 내에 작동이 가능할 것 같답니다.”
3문 있는 수선하 어뢰발사관은 불운하게도 북해의 파도에 침수되어버렸고, 현재 전력을 다해 수리중이었다.
이들은 작전의 예비장비였지만, 필수적이지는 않았다. 따라온 구축함들이 있었고, 원래 계획은 그들이 진행하는 것이었으며 방호순양함은 그저 엄호 임무를 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래도 문제가 생겨도 임시변통할 수 있는 장비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인 법이다.
“일단 최대한 수리해 두도록. 작전 개시는 예정대로 진행하겠다.”
딱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이 작전은 원래 지중해에서 이탈리아나 영국 해군을 상대하기로 했던 작전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었다, 이 때문에 북해의 자연환경을 딱히 고려하지 않았고, 그래서 예정보다 목표에 더 가까이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 정도?
덕분에 발각 확률이 수직상승했다.
“저놈들이 긴장을 풀고 있으면 좋을 텐데.”
물론, 전적으로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상식이 있으면 저 상황에서 태평하게 있을 리가 있는가.
***
“함장님이 준비하시랍니다.”
“기다려, 금방 간다.”
북해, 그것도 겨울철의 북해에 사람이 빠지면 익사하기 전에 저체온증으로 골로 간다.
그렇지만, 불가피하게 물에 뛰어들어야 하는 순간이 있었다.
독일 해군을 타격하기 위해 프랑스 해군은 새로운 장비를 만들어냈다.
물이 통하지 않는 드라이 슈트 잠수복. 물론 성능은 미지수기에 이게 있더라도 가급적 최대한 항만에 근접해서 내려야 했다.
최대한 물 속에 짧은 시간 동안만 들어가 있도록 하기 위한 프랑스군의 노력이었다.
대형 어뢰에 탄두고 뭐고 다 빼고 연료를 꽉꽉 채워놓은 물건을 타고 잠입해서, 시한폭탄을 목표 아래에 장치하고, 육지로 올라가서 사전에 협력자가 준비한 안전가옥에 숨어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버틴다.
무장도 폭탄을 가져가느라 권총과 단검 정도로 가벼웠고 탄약도 얼마 챙기지 않았기에 식량과 무기를 묻어둔 안전가옥에 도달하기 전에 걸리면 죽은 목숨이었다.
그 전에 걸리면? 어디 다른 데 숨든가, 아니면 악으로 깡으로 국경을 돌파하거나.
“자칼 팀, 작전을 개시하라.”
주사위는 던져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