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57화 (57/200)

57화 겨울, 끝(2)

세계에 전쟁에서 해야 할 짓과 하면 안 될 짓을 모아놓은 책이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짓 목록의 상위권에 여름 다 지났는데 러시아에 기어들어가는 짓을 꼽아놨을 거다.

그리고 그 등신짓을 프로이센이 기어코 합니다! 와!

우리 입장에서는 감사한 일이지만, 프로이센군은 안타깝게도 전차를 상대하는 법을 학습했다.

***

라인란트, 프로이센, 트리어

-깡!

이탈리아 전선에서의 공적으로 얼마 전 제794연대장으로 착임한 필리프 페탱 대령은 무의식적으로 귓가를 만졌다.

귓불에서는 피가 베어나오고, 귀에서는 잉잉대는 이명이 울리고 있었다.

“여, 연대장님!”

“안 뒈졌다.”

지휘형 샤를마뉴에 구멍이 하나 뚫려 있었다.

총알구멍을 통해 외부의 소음은 더욱 선명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쾅! 콰쾅!

독일군의 직사포격이 빗발치듯 날아와 샤를마뉴들을 격파하고 있었다. 보병들이 엄호하고 샤를마뉴 스스로도 반격을 할 만큼 했음에도 손실의 발생은 상수에 가까웠다.

느려터진 속도로 무한궤도를 굴리면서 엉금엉금 진격하는 전차들을 향해 맹렬한 사격이 이어지고 있었다,

독일군은 이미 대전차 전술을 어느 정도 학습했다. 직사포격이 가해지고, 척탄병들은 일반 수류탄이 아닌 신관 꽃은 폭약뭉치를 들고 전차에다 집어던진다.

그리고 방금 연대장 한 사람을 저승으로 인도할 뻔한 공격도 있었다.

원래 코끼리 사냥용으로 만들어진 사냥총, 엘리펀트 건의 탄두를 개조해 코끼리를 때려잡는 대인저지력보다 관통력을 중시하게 만든 대전차소총 사격이 핑핑 날아들고 있었다.

-깡!

탄환이 날아들고, 조종수가 비명을 질렀다.

“의무병! 젠장!”

조종수의 손은 더 이상 없었다. 엉망으로 짓이겨진 고깃덩어리가 붙어 있던 흔적만이 손목이 있던 자리에 남겨져 있을 뿐이었다.

4게이지(26.72mm)에 달하는 대구경 철갑탄이 뚫어버린 장갑의 틈새로 햇빛이 들어올 지경이었으니 뭐라 말할까. 물론 관통한 것은 납덩어리 안에 들어 있는 철제 탄심이었지만. 샤를마뉴 중 몇 대는 엔진이 대전차 소총들에 피격당해 아예 주저앉아 버렸다.

“적 저격수들을 처리해! 당장!”

무전기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으니 죽어라고 깃발을 흔들어댄다, 기관총 사수 하나가 비명을 질러대는 조종수를 끌어내고 자기가 그 자리에 앉는다.

잠깐 주위를 둘러본 페탱은 본인도 자리를 옮겼다. 어차피 전차장은 따로 있고, 측방 포수가 없으면 포탑도 없는 이상 왼쪽에서 오는 공격에는 완전히 무방비가 된다.

그리고 자리를 옮기자마자 자신이 앉아 있던 자리를 측면 장갑을 관통한 총탄이 꿰뚫고 지나가는 걸 본 페탱은 순간 다리에 힘이 빠질 뻔했다.

“출발! 다른 놈들을 따라붙는다!”

“멈추지 마! 멈추는 순간 다 죽는다!”

물론 속도가 걷는 거랑 별로 차이도 없는 판이었지만, 그래도 멈춰선 전차는 집중공격을 받기 딱 좋은 표적이었다.

-씨이이잉! 쾅! 콰쾅! 콰콰콰콰쾅!

그리고 포격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전차와 보병들이 난잡하게 뒤섞여 있는 전장에 독일군의 맹포격이 쏟아지고 있었다.

-콰앙!

순간, 바로 옆에 있던 전차가 포격을 정통으로 맞았는지 산산조각나면서 사방으로 튀었다. 부서진 무한궤도 조각이 날아와 포수 관측창 바로 옆에 충돌해 찌그러진 자국을 남기고 바닥에 떨어졌다.

그 복수는 깔끔하게 이루어졌다. 직사포격을 가하던 야포를 향해 전차포탄들이 날아들었고, 쌓여 있던 포탄이 유폭하는 것과 동시에 산산조각난 포병들이 육편이 되어 금속 파편들과 함께 비산했다.

포격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주변 전장 전체는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삽과 곤봉, 총검이 서로 오가고, 철모를 집어던지고 주먹을 휘두르는 병사들도 있었다.

경기관총을 들고 있는 한 병사가 독일군이 쏜 탄환에 머리가 수박 터지듯 터져나간다, 키펠하우베를 쓴 독일군 장교 한 명이 목에 총을 맞고 쓰러진다.

전차들이 돌격하는 가운데 참호선을 정리하기 위한 백병전이 벌어지고, 포격이 쏟아졌다.

공격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고, 독일군이 몰려온다.

페텡은 기관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

그 시각, 전선의 다른 지역.

“방어선을 돌파해!”

사방이 적이었다. 모든 방향에서 그와 부하들의 목을 노리고 달려드는 독일군을 상대로 막심 대위는 힘겹게 싸워나갔다.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고, 총성이 울렸다. 권총을 재장전한 중위는 주변을 바라보았다.

“황제 폐하 만세! 프랑스 만세!”

“프로이센 만세!”

곳곳에서 외침이 들리지만, 모든 걸 다 포기한 듯 터벅터벅 걷는 이들, 무기를 내팽개친 이들 등도 곳곳에 보였다.

참호선에서는 계급이 없다. 그저 권총탄 한 발 더 남은 놈이 유리할 뿐.

-타타타타탕!

완전자동으로 탄을 갈겨대는 자동소총 사수들, 곳곳에서 터지는 수류탄으로 이명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곳곳에서 포탄이 날아들었다.

그때, 시야 밖에서 독일군 한 명이 달려들어 그를 걷어찼다.

“커억!”

바닥에 나동그라진 베이강 중위는 권총을 빼들려 했으나, 그 직후 상대 병사의 머리통이 난데없이 날아든 탄환에 날아가는 것을 목격했다.

-콰앙! 콰콰쾅!

다시금 포격이 사방을 뒤덮었다. 저건 아군의 포격일까, 아니면 적의 포격일까.

그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몇 분? 어쩌면 몇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으레 의식을 잃은 사람은 자신이 얼머나 기절해 있었는지를 짧은 시간 내에 파악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법이니까.

그리고 그는 눈을 뜬 순간 짧고도 강렬한, 강철의 폭풍 같던 포격이 멈췄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몸을 일으킨 베이강은 즐비한 시체들을 바라보았다.

부서져 불타는 전차, 시체 위에 시체가 겹겹이 쌓여 지층을 이룬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 군복을 입은 시신들, 곳곳에 파인 포탄 구덩이와 불타버린 나무, 굴러다니는 팔다리 한 짝씩.

그 시체들 사이에서, 독일군 한 명이 또 몸을 일으키는 것이 베이강 중위의 눈에 들어왔고, 베이강은 다급히 바닥을 굴러다니는 소총 한 자루를 잡고 견착했다. 그 틈에 몸을 일으키면서 베이강을 발견한, 독일군 하급 장교처럼 보이는 앳된 얼굴의 청년도 급히 그에게 총을 겨누었다.

두 자루의 소총이 서로를 겨누었다.

적어도 반경 수백 미터 내에는 단 두 명만이 존재하는 전장에서 둘 중 누구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고 있었다.

독일의 청년이 들고 있는 마우저 소총과 프랑스의 청년이 들고 있는 브라우닝 소총이 서로를 향해 총구를 똑바로 겨누고 있었지만, 그리고 단 한 번의 움직임만으로 상대의 숨을 끊어놓을 수 있었지만, 그들은 끝끝내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둘 모두가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사람을 몇 명씩이나 죽여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단 둘이 되자 두 남자는 서로를 향해 감히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그렇게 서로를 겨누던 총구는 조금씩 내려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위관은 기묘하리만큼 고요한 공간에서 서로의 눈빛을 보았다.

총구 너머에 있는 서로의 모습을 보았다.

북독일 연방 57보병여단의 에리히 루덴도르프 소위도, 프랑스 제국의 39사단 17연대 막심 베이강 중위도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아니, 당길 수 없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 몰랐다.

그저 맥이 풀리고 지칠 대로 지쳐, 재와 진흙과 피의 반죽을 온몸에 덕지덕지 붙인 채로 서로를 너무 오래 먼지를 쐬고 지칠 대로 지친 탓에 물기 하나 없이 말라붙은 눈으로 바라볼 뿐.

두 사람은 마침내 동시에 총구를 완전히 내려버렸다.

재와 연기로 어두워진 하늘의 두터운 구름을 뚫고 태양의 빛이 두 사람이 있는 자리에 내려앉고 있었다.

***

페르디낭 포슈 장군은 심기가 상당히 불편해 보였다.

“보고하도록.”

“21보병사단이 트리어에 도달했습니다.”

“...........”

군단장과 사단장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말이 트리어다.

트리어는 공세 개시 전 아군 최전선에서 고작 7km 거리였다.

그 시간과 사상자를 내면서 고작 7km밖에 전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비트부르크는?”

“12군단이 독일군과 맞서고 있으니 좀만간 함락될 겁니다.”

“이다르-오베르스타인과 카이저슬라우테른은?”

“현재 접근 중입니......”

이다르-오베르스타인, 공세 개시 전 최전선부터 15km, 카이저슬라우테른, 26km,

“폐하께서는 마인츠와 코블렌츠까지 진출하기를 원하셨네! 그리고 모든 작전도 최소 40km 전진을 계획했고! 7km? 10km도 아니고 7km? 하루에 1km씩 갔나? 그 느려터진 샤를마뉴도 2시간만 주면 8km는 가네! 일주일이 넘게 뭐 하는 짓이야!”

마인츠까지는 81km, 코블렌츠까지 84km를 진격하지는 못해도 일주일을 통으로 썼으면 그 반이라도 갔어야 할 거 아니냐는 갈굼에 군단장과 사단장들은 유구무언이었다.

독일군의 방어선이 강력했다고 변명하기에는 작전 계획 단계에서 충분히 가능하다고 자신감을 내비친 것은 그들이었으니까.

정찰 정보가 병신같았습니다? 아랫것들이 잘못했습니다? 그런 변명이 통할 상황이 있고 아닐 상황이 있다. 지금은 명백한 후자였다.

“파리에서는 현재의 졸전에 굉장히 심기가 불편해하고 있네. 이번에 추가배치될 전차가 전부 손실되더라도 라인강 서쪽에 독일놈을 남겨놓지 마!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자리를 일어난 포슈의 뒤를 부관이 따라갔다.

“저, 사령관님, 현 전선에서 가용한 전차의 수량에 변동이....”

“얼마나 되지?”

“전장에서 회수된 452대에 다음 주까지 도착할 242대, 총 674대입니다. 이 중 전장에서 회수된 전차들은 해체해서 부품으로 전환하거나 수리해야 할 양을 감안하면 4주 내에 전력으로 전환할 수 있는 수는 그 3분의 1 정도로 보입니다.”

“3분의 1이면 150여 대인가, 4주? 4일 내로 동원 가능한 숫자는?”

“간단한 정비 후 전선에서 사용 가능하다고 판정된 전차가 60여 대 내외입니다.”

부족하다.

“파리에서 몇천 대쯤 더 보내주면 좋겠군,”

독일군의 저항도 저항인데 전차의 비전투 손실이 단어 그대로 미쳐 돌아간다. 정비도 빡세서 아예 창정비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차의 보유량과, 전선에 투입할 수 있는 전차의 수는 같은 개념이 아니었다.

게다가 대전차무기가 발전하는 속도는 전차가 발전하는 것보다도 빨랐다.

“놀렛 소령, 귀관이라면 전차의 비전투손실을 줄이기 위해서 어떻게 하겠나?”

“죄송합니다, 전 포병 병과인지라.”

“신경쓰지 말게, 하도 답답해서 해 본 소리니까.”

한숨을 푹 내쉰 포슈는 쓴웃음을 지었다.

“결국 피와 강철로 돌파해야 한다는 의미지, 아니, 그 강철이 충분하지 않은 판이니 피와 살인가.”

이번에 파리에 가면 사령부에게 전차를 못 얻어내도 항공대, 특히 지상지원이 가능한 비행선 전력은 꼭 얻어내겠노라고 다짐한 포슈는 부관에게 파리로 갈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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