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소용돌이(5)
“뇌프사또와 바스토뉴 방면의 네덜란드군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독가스 공격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독가스에 대한 방호수단이 제대로 없는 건 전 세계가 마찬가지다.
이 시대, 화학무기라는 개념이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시대의 독가스는 손수건에 오줌을 묻혀 입과 코를 틀어막으면 방호가 가능할 정도로 원시적이다.
당연하지만 방독면이 군 필수품도 아니다. 사실 그 방독면이라고 해서 제대로 된 물건도 아니지만.
“병사들에게 응급 대처법을 전파하고, 쓸 만한 방독면을 빨리 개발해서 보급해야겠지, 네덜란드군이 막대한 피해를 입은 건 독가스가 준 심리적 충격 때문일 가능성이 높으니. 가용한 방독면은 최우선적으로 저지대 방면군, 그 다음으로 알자스-로렌 방면군에게 지급하도록.”
“알겠습니다.”
나는 곧장 물었다.
“지금 이탈리아 전선군의 진격 속도는 어떤가?”
“충분히 괄목할 만합니다. 이탈리아군은 유의미한 방어선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으며, 빠르게 붕괴하고 있습니다.”
회전문 효과.
RTS 식으로 말하자면 적들과 한타를 하기 위해 모든 병력을 끌어다가 한타 싸움에 투입했는데 적의 견제용 병력이 본진에 아무런 제지도 없이 들이닥쳐서는 일꾼을 학살하고 테크 및 생산 건물을 터트리고 다니는 꼴이다.
상식적인 상황이라면 일부 병력을 분리해서 대응시켜야 한다. 그러라고 있는 것이 예비대니까. 그리고 실제로 증원되고 있다.
그 병력이 지금 축차투입, 축차소모의 전형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
“가용한 해군 항공대 비행선들을 총동원해서 이탈리아 내륙의 모든 철도망을 파괴해, 특히 난코스 지역을집중폭격해라. 복구가 쉽지 않도록.”
시간을 벌어야 한다.
“육군 항공대는 정찰과 공격을 병행한다. 지금까지는 정찰에 주력했지만 모든 상황에서 가능해 보인다면 즉각 공격하라, 표적은 마찬가지로 적 열차를 비롯한 이동수단 및 기동로 등.”
최대한 적의 전력을 깎아내린다.
그리고, 적의 기동을 최대한 지연시킨다.
전차가 없는 이상, 참호를 파고들어가면 그들의 승리다.
***
마르세유, 프랑스 제국 병기창 마르세유 연구소.
마르세유에는 프랑스 제국의 병기창의 중요 연구소가 있다.
특히 이곳에서는 참호전의 극복을 위해 프랑스 육군 수뇌부가 요청한 ‘육상함’의 한 일파를 연구하고 있었다.
-털털털털털털털.......
“멈춰! 멈춰! 엔진 꺼!”
잠시 시끄러운 소란이 나더니, 장교 몇이 다가갔다.
“이거 기어가 맛이 갔어, 무게중심이 맞물리지를 않아서 토크가 제대로 전달이 안 되는 거 같아.”
“해결책은 있습니까?”
“트랜스미션 설계를 다시 하든가, 무게중심을 어떻게 바꿔보든가. 엔진 위치를 옮겨야 하나?”
그들이 연구하는 것은 ‘장갑 트랙터’였다.
무한궤도로 기동하는, 가솔린을 사용하는 엔진을 이용해 동력을 얻으며 장갑을 두른 트랙터.
일단 임시로 장착되어 있는 무장은 브라우닝이 개량하고, 잔 다르크급의 부포로 쓰이는 대구경 전기구동식 개틀링이 2연장으로 달렸다.
물론 구경이 상대적으로 좀 작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브라우닝이 기초를 짠 것, 미국의 개틀링 박사가 개발했던 원본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신뢰성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더해 소구경 대포가 양현에 각 한 정씩, 마지막으로 일반 소구경 기관총이 총 네 정이 장착되어 사각이 없는 화망을 구성하고 있다.
21세기의 전차가 마땅히 가져야 하는 하나의 포탑과 하나의 주포 등과는 아득히 먼 형태지만, 바로 그렇기에 참호전에 적합하다.
순수히 참호전에 의해, 참호전을 위해 탄생한 형태. 그렇기에 10년 내에 반드시 도태될 형태.
물론, 일단 이놈이 참호전에 투입되려면 최소한 전장에서 굴러다닐 정도의 신뢰성부터 확보해야겠지만 말이다.
***
맥심 기관총이 불을 뿜는다.
마치 낙엽이 바닥을 구르는 것처럼, 피보라가 사방으로 튄다.
“아일랜드 만세! 영국 놈들을 전부 죽인다!”
“반역자 놈들을 전부 죽여버려!”
프랑스는 아일랜드인들을 무장시켰다.
진격에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이는 스코틀랜드에 병력을 꼬라박는 대신, 프랑스군은 아일랜드인들을 전선에 투입하고, 후방을 맡겼다.
해상봉쇄 상황의 스코틀랜드를 공격하는 데, 그리고 잉글랜드인들의 증오를 집중시키는 데에 아일랜드인들은 굉장히 효과적이었다.
아일랜드의 세 차례의 대기근.
그 중 아일랜드 대기근이라고 흔히 부르는 시기는 40년 전이지만, 가장 뒤에 일어난 기근은 20년도 채 지나지 않았다.
그 원한은 이미 뼈에 사무쳐 있었고, 프랑스는 아일랜드 공화국을 인정해 이들에게 소총과 기관총, 야포를 지급했다. 무장은 전부 프랑스군의 제식 무장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물건이고, 훈련도도 떨어졌지만, 그들에게는 한 가지 장점이 있었다.
원한.
뼈에 사무치는 원한.
감자 농사를 망친 건 자연이었지만, 그들을 굶어죽도록 만든 것은 영국인들이었다.
총에 맞아 널브러지더라도, 영국 놈들을 한 명이라도 더 죽일 수 있다면, 이런 일념으로 프랑스군이 운영하는 아일랜드군 모병소에 몰려든 인파만 남녀노소 수십만에 달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잘 싸우는 이들은 스코틀랜드에 투입되었고, 나머지는 프랑스의 보조전력으로써 잉글랜드와 웨일스에 투입되어 치안유지 임무를 맡았다.
물론, 그 치안유지 임무는 단순히 치안유지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보복에 이은 보복, 그간 프랑스 점령군을 대상으로 사보타주를 해대던 잉글랜드인들이 자신들이 하얀 황인이라 부르던 아일랜드인들에게 뚝배기가 깨지고, 그러자 잉글랜드인들은 다시 잉글랜드 주둔 아일랜드군을 공격하고, 아일랜드군은 그 몇 배로 보복하는 악순환.
그러나 프랑스군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되려 영국 주둔군을 줄이고 그 비율만큼 아일랜드인들을 더 영국에 투입하기까지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독일 상대하기도 벅차니까.
영국과 아일랜드가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어서 둘 중 하나가 씨가 마를 때까지 싸우든 말든 프랑스 제국이 알 바는 아니다. 아무리 완전하지 않은 독일이라도, 설령 덜 만들어진 소독일이라고 해도, 프랑스 제국이 오로지 프로이센만을 조지겠다는 일념으로 갈아온 칼로도 부족할지 모르는 것이 저들이다.
지금 북해에서 북독일 연방의 해군을 상대하고 지중해에서 이탈리아 해군을 상대하며 이탈리아 내륙으로 진격해 동맹을 지원해야 하는 판에 육해군 전력 상당수를 할애해야 하는 영국 주둔군을 장기유지하는 건 곤란하다.
물론 프랑스에는 잔 다르크가 있다.
문제는 잔 다르크의 핵심적 문제다.
아무리 고치고 고치고 고쳐서 기계적 문제를 줄였다고는 해도 설계상의 문제 중에 못 고칠 문제들도 있는 법이다.
먼저 막대한 배수량 낭비, 뭐 이건 성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으니 그렇다 쳐도 진짜 문제가 있었다.
뒤떨어지는 능파성, 그 원인이 되는 무게중심.
포탑의 구조상의 문제로 인해 무게중심이 위로 쏠려버렸고, 이에 대한 대책은 아직 근본적인 것이 나오지 않았다.
대형 포탑이 많아야 두 개인 전드레드노트급 전함이라면 그래도 버틸 만 하지만 일단 포탑이 세 개에, 각 포탑은 2연장 포탑 두 개를 합쳐놓은 모양새니 실질적으로는 포탑 여섯 개를 얹어놓은 꼴이다.
무게중심을 잡기가 더 어려워졌고, 파도로 인해 기울어졌을 때 복원성이 떨어진 것은 당연한 귀결, 이로 인해 상갑판에 과적한 화물선마냥 상당히 위태위태한 상황이 상수가 되었기에 잔 다르크급은 연안을 쉽게 못 벗어난다.
유폭 위험을 감수하고 탄약고를 신설하는 등 어떻게든 무게중심을 잡아보려고 애썼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도크에 박혀서 증축도 해보는 등 여러 시도를 했지만, 기술과 경험 부족으로 인한 설계 미스는 수습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이게 폐기할 정도냐고 물으면 그건 또 아니었다. 항해 거리가 길어지거나 파도가 험한 곳으로 갈수록 당연히 위험도 거기에 비례해 상승하지만, 영국해협 정도는 충분히 횡단할 수 있고, 북해를 싸돌아다니거나 알제리까지 항해하는 건 위험해도 라구리아 해를 지나 토스카나 제도나 코르시카 북단 등으로 이동하는 것까지는 그럭저럭 가능하다.
당연하지만 캐나다까지 영국군을 쫓아갈 엄두는 내지도 못한다. 마찬가지로 프랑스 해군은 잔 다르크를 북독일연방 해군과의 교전에 투입한 적이 없다. 북해의 그 지랄맞은 파도에 버텨줄지가 의문이니까.
물론 프랑스는 북해와 연안을 접하지 않았다. 그 자리를 정확하게 네덜란드가 틀어막고 있으니까. 즉 북해에 전함이 못 다녀도 연안 방어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스코틀랜드를 프랑스군이 직공하지 않고, 알제리를 비롯한 해외 영토와 식민지들을 죄다 팔아치우거나 수비를 포기한 가장 큰 원인은. 프랑스 근해면 몰라도 나머지 지역에서의 제해권을 확고하게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아직 그 문제를 영국 정부나 다른 국가들이 알지는 못한다. 잔 다르크가 원양항해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기에는 이미 지중해에 배치된 전함들이 대서양으로 나간 적 있으니 설마 싶어할 터, 영국해협에서 대판 싸운 적도 있고. 켈트 해에서 영국 해군과 붙은 적이 있으니 사실 잔다르크가 원양항해가 불가능하다는 소리를 들어도 역정보란 생각부터 하는 게 당연하다.
지금 캐나다로 진격 안 하는 이유? 프로이센과 이탈리아도 상대해야 하고 무엇보다 북대서양을 건너가야 할 보급선이 문제라서 공세를 안 펼친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애초에 대양 건너로 군사력 투사가 어디 쉬운가? 전성기 영국도 힘들고, 미국도 2차대전 때 나치가 영국 상륙작전에 성공해서 영국이 망해버렸으면 아마 유럽 진공 작전을 아예 포기했거나, 최소한 전진기지가 될 만한 지역을 일일이 점령하고 진격하느라 상당한 시간과 비용과 병사들의 목숨이 소모되었을 거다.
우리도 굳이 캐나다까지 쫓아가서 박살을 내느니 본토 점령해놓고 상대가 협상장에 나올 때까지 본토를 짓밟고 있다가 영국 정부와 적당한 시점에 협상을 할 거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기도 하고.
애초에 사생결단 내려고 전쟁한 건 오스만이랑 러시아 둘밖에 없지 않나? 아니 뭐 우리야 독일이랑 영국 둘 다 확실하게 꺾어놓으면 좋기는 한데 그럴 국력이 없는 것에 가깝다. 우리가 무슨 미국도 아니고.
그렇기에 각국은 잔 다르크의 치명적인 약점을 모르고 있었다. 다행히도.
“태평양의 함대는 준비되었나?”
“그렇습니다. 명령만 내리십시오.”
“남태평양을 장악한다. 뉴질랜드, 타히티, 사모아.... 영국의 영토거나 영국에게 점령당한 모든 영토를 우리 것으로 한다.”
전후에 이들을 손에 넣을 것이다.
“그리고 하와이 왕국을 지속해서 압박하도록, 태평양의 온전한 통제권을 획득해야 한다.”
기존의 식민지는 포기한다.
그 대신, 태평양의 패권을 손에 넣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