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소용돌이(4)
이탈리아-프랑스 국경지대.
개전한 국가들 간에 실질적인 전투가 벌어지지 않고 있던 국가는 여럿 있다.
러시아와 프로이센이라거나, 아니면 프랑스와 이탈리아라거나.
프랑스군은 영국과 프로이센이라는 끝판왕급 상대와 양면전선을 펼치고 있었고, 이탈리아 역시 신무기로 중무장하고 밀고 내려오는 오스트리아-헝가리라는 절대 경시할 수 없는 상대와 국운을 건 공방전을 펼치고 있었다.
그랬기에 프랑스는 이탈리아를 찌를 틈이 없었고, 이탈리아는 프랑스가 공세를 취하지만 않는다면 그걸로 만족하고 있었다.
게다가 오스트리아 전선에서의 병력 소모가 극심했던 탓에 이상하리만치 조용한 프랑스 전선에서 병력을 빼돌리는 경우도 제법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훈련도가 떨어지는 소수의 병력만 남아 있는 상태.
그리고, 그들을 향해 프랑스의 40만 대군이 남하하기 시작했다.
***
산레모, 이탈리아 왕국.
현재 프랑스 제국의 병력은 대략 380만에 달한다. 이 중 상비군이 80만, 나머지 300만은 긴급 소집된 예비군이다.
그러나 이탈리아 전선에 동원된 병력은 모두 정예도가 높은 상비군이 대부분, 예비군의 비중은 없지는 않았으되 매우 낮았다.
전쟁 전 병력의 절반 가량을 이탈리아로 빼돌린다는 것에 군부가 우려한 건 당연한 귀결이었으나, 예비군만으로 전선을 채워도 뭔 짓을 해도 프로이센군은 참호선 못 뚫고, 반대로 프랑스군도 프로이센의 참호선을 못 뚫는다는 결론이 나오자 예비대 상당수를 이탈리아 전선으로 빼돌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공세는 격렬했다. 오합지졸에 가까운 상태였던 이탈리아 수비병력으로는 상대할 수 없을 만큼.
“장군님! 장군님!”
이탈리아군 사단장은 파스타를 우물거리다가 꿀꺽 넘기고는 물었다.
“무슨 일인가?”
“프랑스...... 프랑스군이 쳐들어왔답니다!”
“뭐?”
“프랑스가 맹포격을 퍼붓고 있답니다! 최소 사단이나 군단급 공세입니다!”
“무슨, 말도 안 돼! 다시 확인해 봐! 프랑스가 왜 쳐들어와!”
그들의 지휘관의 말에 부관은 ‘그야 우리랑 프랑스가 서로 선전포고를 교환했어도 진작 했으니까요!’라고 외치고 싶었다.
물론 그들의 지랄맞은 상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것이 무운장구의 길......이기는 했지만 생각해 보니 가만 있으면 프랑스군의 포로로 끌려갈 판이다.
그래서 부관은 그냥 말하기로 결정했다.
“그야 우리와 프랑스가 전쟁중이니 쳐들어온 거 아닙니까!”
“그게 말이 안 된다고! 프랑스는 지금 영국도 끝장내지 못했고 프로이센의 공격에 방어만 급급하다고 들었는데!”
방어만 급급한 게 아니라 어차피 당분간 창과 방패의 싸움에서 창이 이길 가능성이 없다는 걸 아는 프랑스군 수뇌부에서 공격을 안 하는 것이었지만, 어찌되었건 외부의 시선으로는 그랬다.
“그리고.....”
그 순간, 저 멀리서 포성이 들렸다.
-콰앙!
“뭐, 뭐야?”
“이거 중포 포성 아닙니까?”
그러고 보니 그 비슷한 소리를 이전에 들은 적이 있다. 어디서 들었더라.
‘함포?’
그러나 여긴 해안가기는 해도 함포탄이 닿을 거리는 아니었다.
그러면........
-콰앙!
이번엔 가깝다.
“당장 움직이셔야 합니다! 뭐라도 하십시오! 제기랄!”
“뭐, 뭘 해야 하지?”
부관은 몇 초간 저 백돼지새끼를 권총으로 쏴죽이고 자기가 지휘할까 고민했지만, 지금 사단장이 뒈지면 저항할 수도 없다.
아니, 이미 프랑스군이 여기까지 포탄을 날려대는 시점에서 진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큰 폭음이 들렸다.
“비바 랑펠로! 비바 프랑스!”
곳곳에서 함성과 함께 프랑스군이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기병들과 자전거보병연대 등을 주축으로 한 기동집단들.
그리고 그 기동집단을 보조하는 것은 대구경 열차포들이었다.
-쿠~앙!
약간 첫 폭음과 끝이 딜레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폭발음, 아마 폭압이 너무 강해서 그렇게 느껴졌으리라.
그런 폭음이 사방팔방에서 들리고 있었다. 다수의 전함 함포급 주포를 가진 열차포들이 번갈아 가면서 포탄을 쏘아낸 결과였다.
이 모든 작전은 기습 효과에 핵심을 두고 있었다.
설마 프로이센과 대치하는 와중에 이탈리아를 치지는 못할 거라는 의외성, 그리고 대규모 이탈리아군 병력이 오스트리아-헝가리에 붙잡혀있느라 훨씬 위험한 프랑스를 막지 못하게 되는 회전문 효과까지.
아무리 이 인근이 암석지대라 참호를 파기도 마땅치 않은 등 방어하기에 좋지 않은 이유들이 여럿 있다고는 하지만 기관총 진지 등을 뚫는 데에는 적잖은 희생을 각오해야 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지금 증명되고 있었다.
위장되어 있던 몇 정의 기관총이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기관총 진지에서 불을 뿜기 시작했다.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
영국제 맥심 기관총이 불을 뿜는다.
주물제 탄띠에서 빨려들어간 탄환은 살의를 띄고 달려오는 프랑스군에게 날아간다.
“컥!”
“크억!”
순식간에 병사들이 픽픽 쓰러졌다.
북방에서 일어났던 일은 이탈리아에서 다시 일어나고 있었다. 총알을 쏟아붓는 쪽과 학살당하는 쪽이 바뀌었을 뿐이었다.
팔다리가 바닥을 뒹굴고 머리를 잃은 몸이 땅바닥으로 쓰러진다. 쉴 틈 없이 날아드는 살인의 교향곡이 전장을 흐른다.
“멈추지 마! 멈추면 맞는다! 계속 돌격해! 사각지대까지 가란 말야!”
이미 선두의 병사들 중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몇은 적 기관총 진지의 코앞까지 다가가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수류탄을 탄입대에서 뽑고, 핀을 뽑아 던졌다.
-콰앙!
폭음이 울렸지만, 기관총 진지 안에서 터지지 않고 엉뚱한 곳으로 날아간 듯 기관총의 총성은 계속 이어졌다. 아니면 기관총 운용병이 잽싸게 수류탄 처치공이나 배수로 같은 곳으로 던져넣었던가.
그러나 다른 병사들도 들고 있던 수류탄을 뽑아 연신 던져대기 시작했다.
-콰앙! 콰쾅!
몇 발의 수류탄이 기관총 진지 안으로 굴러들어가자 총성이 끊어졌다.
“하나 처리했다! 전진!”
물론 당연하게도, 그 하나 처리한다고 모든 상황이 종결될 리도 없었다.
총질을 해대는 기관총좌는 몇 개나 더 있었고, 이것들이 사전 포격으로 격파되지 않은 이상 프랑스군에게는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하나는 후퇴한 다음 다시 포격을 가하는 것, 하나는 그냥 이대로 악으로 깡으로 달려들어서 때려부수는 것.
그리고 전자는 후퇴하면서 입을 피해도 피해거니와 프랑스군에게 있어서 대체 불가능한 자원인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는 점에서 절대 선택할 수 없었다.
“유탄수! 날려버려!”
-텅! 텅!
유탄 몇 발이 날아갔지만, 모래주머니 바깥에서 폭발한 유탄은 내부에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그때 포성이 울렸다.
“포격이다!”
“엄폐해!”
“씨발! 뭐야! 왜 여기 포격이 떨어지는 거야!”
“적 포격이다! 엄폐! 엄폐!”
이탈리아군의 야포 포격이 보복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빗발치듯 날아왔다. 기습당한 부대가 전멸 직전에 놓였다고 판단한 연대장이 보낸 전령이 사단본부에 도달한 것이었다.
그리고 사단에서는 즉시 사단 직속 포병연대를 움직였고, 맹포격이 쏟아졌다.
프랑스군의 발을 묶던 기관총진지가 이탈리아군의 포격에 박살났다. 임시로 참호를 구축하는 데 쓴 알프스 산맥의 돌멩이와 바위들이 대포알처럼 튀어올랐고, 쪼개진 돌 파편들이 산탄처럼 안의 이탈리아군을 휩쓸었다.
본래 참호는 돌로 지으면 안 된다. 나무, 모래주머니, 안에 흙을 채운 통조림 깡통, 흙벽돌, 마대자루, 폐타이어 등 다양한 재료를 쓸 수 있지만, 돌처럼 애매한 내구성을 가진 재료는 이런 파편효과를 내서 사상자를 늘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콘크리트처럼 아예 어지간해서는 손상될 일 없도록 하거나, 나무나 모래주머니, 벽돌처럼 부서지면 차라리 잘게 부서져서 어지간해서는 파편에 맞아도 다칠 일 없도록 하거나. 둘 중 하나여야 한다. 기왕이면 튼튼한 쪽이 더 좋다. 포격을 받아 박살난 엄폐물은 바로 뒤에 있을 보병전에서는 도움이 안 되니까.
물론 범선시대에 쓰던 카로네이드 포 같은 저속탄에 맞으면 파편이 크게 쪼개져서 유의미한 살상력을 가지고 있지만, 있는 고폭탄 안 쓰고 굳이 그런 물건을 쓸 이유는 더더욱 없었으니까.
하지만 참호전에 대한 노하우는커녕 참호에 좋은 재료가 어떤 것인지조차 다 누군가가 잘못 선택된 재료로 지은 참호 때문에 피떡이 되어 보면서 익혀야 하는 마당에 이탈리아군이 주변에 굴러다니는 돌을 쌓아서 엄폐호를 만들 생각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칭찬을 해줘야 하리라.
결과가 참혹하더라도 나름 시행착오라 포장해줄 만 했다.
물론 사상자 명단에 오른 당사자들은 절대 동의하지 못하겠지만.
프랑스군의 사상자도 결코 적지 않았다. 혼전 상황에서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머리 위로 쏟아진 포격은 프랑스군이고 이탈리아군이고 공평하게 쓸어버렸다.
포탄에 눈이 달리지는 않은 시대였고, 결국 프랑스군이 제법 피해를 입기는 했으나 그 결과로 이탈리아군은 방어선 형성에 실패하고 후퇴했다.
프랑스군의 전략 목표는 달성된 셈이었다.
그 와중에 발생한 사상자 가운데 누가 있었는지는 상부의 관심사가 아니었고, 병사의 죽음이 대국에 영향을 미칠 수도 없었다. 그저 그 사상자의 숫자가 작전을 지속할 만한 수준이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병사는, 전사자는, 부상자는, 후방의 서류상에서는 한낱 숫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
뇌프사또, 벨기에.
독일군은 여태껏 상당히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네덜란드군의 방어선을 돌파해야만 포위망 안에 있는 아군을 구출하든 보급을 해주든 할 수 있다.
러시아를 상대로 공세를 하더라도, 일단 저들을 어떻게 해야 한다.
그러나 네덜란드군은 이미 프랑스의 도움을 받아 방어선을 확고하게 구축하고 있다. 아군이든 적군이든, 한 번 구축된 참호선을 뚫으려면 어마어마한 사상자를 내야 하거나, 그러고도 못 뚫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그런 판을 뒤엎는 신무기 역시 준비되었다.
“방독면은 지급했나?”
“그렇습니다. 전 부대에서 지급 완료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그러면 작전을 개시하게.”
“예!”
잠시 뒤, 참호선을 향해 독일군 포병대에서 포탄을 쏘아올렸다. 언제나 같은 포격이라 생각한 네덜란드군은 참호 안에서 엄폐했다.
그리고 얼마 뒤, 네덜란드군은 강한 장뇌 냄새를 맡게 되었다.
"컥.. 컥!"
"어, 엄마!"
"이건...... 독가스다! 가스! 가스!"
"의무병! 의무벼.......컥!"
"바람을 안아! 바람을 안고 대피해!"
"멍청아! 지금 바람이 적 쪽에서 불어오잖아! 그 쪽으로 가면 총 맞아!"
얼마 뒤, 사상자들은 시체가 되어서, 나머지 병사들은 도망갔다.
물론 가스가 안 들어온 곳에 숨어 생존한 이들도 있었지만, 이들은 이내 진격해 온 독일 제국군을 막을 정도는 되지 못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 사건으로 인해 네덜란드군의 공세는 중단되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