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소용돌이(3)
“대대장님.”
경례를 붙인 젊은 장교를 본 대대장, 필리프 패탱은 경례를 받아 주며 말했다.
“무슨 일인가? 막심.”
“기동명령입니다.”
“그래, 우리도 전선에 투입될 줄 알았지, 어디인가?”
“일단 1800까지 전 병력을 메스 역에 집합시키라고 합니다만.....”
“메스? 후방이잖나.”
“명령은 분명히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메스라, 그럼 열차를 타고 어디로 간다는 거일 텐데......”
과거의 프랑스군과는 다르다.
오늘날의 프랑스 제국군은 군을 개편하면서 모든 장교들에게 창의적인 사고를 요구했다. 지휘관이든 참모든 간에 다를 게 없었다.
원래라면 이런 판단은 사령관인 포슈 장군이 생각해야 할 일이지만, 중대장 이상급이면 전부 전략적인 사고를 할 줄 알아야 한다는 황제의 강력한 명령이 있었다.
메스는 철도 요충지, 따라서 메스로 집합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것은.....
“베이강 중위, 귀관이라면 어딜 치겠나?”
“예?”
“제리 놈들을 상대로 공세로 나서지 않은 것도 제법 되었지.”
“그렇습니다.”
“지금이라고 사령부의 방침이 바뀐 것 같나?”
“......아닐 겁니다.”
전략의 기본은 망치와 모루, 모루 역할을 맡을 보병대와 고속기동을 할 기병집단.
그리고 그들, 39자전거보병사단은 기동집단이었다.
기동집단의 보충을 할 때 기병연대 대신 선택된 자전거보병연대, 기병집단은 분명 전통적이고, 고속기동이 가능하다.
그러나 참호전의 시대, 철조망과 기관총의 등장으로 기병은 사형선고를 받았다. 철조망을 뚫을 수 없고 기관총에 박살날 뿐인 데다 기마보병으로써 보병에게 속도를 높여주는 수단으로 쓰이더라도 더 나은 것이 있었다.
자동차는 아직 비싸지만, 그 대신 자전거가 있다.
던롭이 타이어를 발명한 이후 자전거는 프랑스 제국 기동집단에게 있어 필수품이 되었다. 도로를 통한 고속기동으로는 자전거만큼 좋은 물건이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말처럼 사료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병사들의 다리힘으로만 움직인다. 망가지면 수리부속 등이 필요하지만 말은 어디 고삐나 안장 등이 필요하지 않던가? 게다가 자전거를 배우는 시간과 말을 타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면 명백히 전자가 우위에 있고, 열차에 태워서 수송할 때 말은 전용 객차가 필요한 데 비해 자전거부대는 병사는 병사대로 객차에 우겨넣고 자전거는 대충 화물칸에 쌓아두면 된다. 부피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기병대를 자전거부대로 대체할 이유는 많은데 기병이 자전거보다 나은 점은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이제 와서 철조망과 기관총 앞에서 카라콜을 할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렇기에 자전거는 프랑스 기동 집단의 주력 장비로 채택되었다.
물론 기병연대들은 남아 있다. 주로 후방 신세고, 주력 자리는 내준 뒤지만.
추후 전차가 개발되면 아마 기갑부대로 개편되겠지만 아직은 먼 일.
그러나 아무튼 간에 기동집단은 앉아서 쳐맞기만 하면 되는 보병사단들보다는 훨씬 비싼 존재였고, 당연히 전선엔 나갈 일이 없었다. 참호전 와중에 기동집단을 들이밀어봐야 육편이나 될 판이니 공격이 아니라 만리장성을 쌓아놓고 우주방어를 하기로 결정한 프랑스군이 기동집단을 실전에 투입할 일도 없었다.
그러나 이 기동집단들에게 후방으로 아예 빠져서 철도역에서 대기하라는 건 아예 다른 일이었다.
어딘가에서 분명 공세를 준비하고 있다는 의미니까.
“어디일 것 같나?”
“너무 광범위합니다. 다만 이 근처는 확실하게 아니겠지요.”
독일 상대로 공세를 가할 만한 곳은 벨기에, 아니면 알자스-로렌이다. 그런데 메스로 이동하라고 했으면 확실히 알자스-로렌은 아니고, 벨기에일 가능성이 제법 있었다.
“적지 않은 규모의 병력이 잉글랜드로 가지 않았습니까? 혹시 스코틀랜드를 마저 떨어트릴 생각일지도 모르지요.”
“스코틀랜드라, 하긴 칼레까지 열차로 가는 거라면 가능성이 있겠지.”
세부 공세 진행 방향은 당연히 대대장급은 모른다. 사단장쯤은 되어도 알까 모를까 하는 수준이었으니.
“아무튼 부대원들 전부 준비시키게, 1800이라면 아직 시간이 제법 있기는 해도 미리미리 한다고 해서 문제될 건 없으니.”
***
“이탈리아로 공세를 가한다.”
“예?”
모두가 당황한 표정으로 앙리 장군의 입을 바라보았다.
“사령관님, 이탈리아라니요? 제리 놈들을 공격하는 게 아니었습니까?”
“이미 알자스-로렌부터 저지대까지 참호가 쫙 깔렸는데, 저 독일 놈들이 까마귀밥이 된 걸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나? 참호에 정면으로 들이박자고? 폐하께서도 절대 반대 의사를 내비치셨네.”
“그렇다면 어디로.......”
“말했잖나, 해안을 따라 이탈리아를 침공한다고.”
“장군님, 이탈리아는 산악지대입니다. 설마 알프스를 넘으시겠다는.....”
“방법이야 여럿 있을 수 있다. 니스 방면의 평야를 통해 넘어갈 수도 있고, 그게 어렵다면 해로를 이용해서 코르시카를 통해 사르데냐를 강습할 수도 있다. 그도 아니면 스위스를 압박할 수도 있겠지.”
이탈리아를 치게 길을 내놓으라고 말이네.
“아무튼 간에 알프스를 돌파하는 건 정말 최후의 수단이네, 게다가 이탈리아군의 주력은 전부 이곳, 이탈리아 동북부, 알프스 남쪽에 있네, 비토리오 베네토에서도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고. 따라서 우리 군이 서쪽에서 기습할 거란 걸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태라는 거지.”
실제로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총알 한 발 아직 주고받지 않았다. 문자 그대로 그랬다.
프랑스는 개전하자마자 영국과 북독일 연방을 상대하느라 바빴고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를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죽을 맛이었으니까.
“이곳, 니스에서 이동해 국경을 넘어서 항구도시를 한 곳이라도 확보하면 우리의 승리네. 가장 거리상으로 가까운 건 바도 링구아지만.....”
“너무 작지요.”
“그래, 제노아까지는 확보해야 작전이 안정적이 될 걸세.”
현재 제해권은 프랑스의 것이다. 이탈리아 해군이 아무리 발악을 해도 그들의 전드레드노트급은 잔 다르크급을 상대할 능력 자체가 없다.
그리고 지상군을 진격시켜 항구도시를 하나라도 확보하고 해군을 통해 해군육전대와 육군을 계속 밀어넣으면?
더 나아가 프랑스군이 진격을 거듭해 밀라노나 피사 등까지 진출하게 되면 동북부 이탈리아에서 열심히 싸우던 이탈리아군 주력은 포위 위협 때문에라도 남하할 수밖에 없고, 이는 이탈리아 전역 전체에서의 완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공세금지명령 때문에 개점휴업 중인 기동집단을 투입할 곳으로는 나름 적절한 셈이다. 참호전이 지독하다고는 해도 아예 공세 자체를 안 벌이고 참호에만 붙박여 있으면 사상자는 극히 적은 수준에서 억제될 테니까.
“폐하께서는 이탈리아 공세에 여러 가지 효용이 있다고 하셨네, 첫째로 공세가 잘 풀린다는 전제 하에 이탈리아를 전쟁에서 사실상 탈락시킬 수 있네, 이탈리아 북부가 무너지면 이탈리아 왕국은 문자 그대로 끝장이야, 그리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본격적으로 프로이센 남부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지.”
“하지만 공격계획 자체가 너무 급하게 짜여졌고, 거기에다가 기동집단 다수를 본국에서 이탈리아로 빼돌리는 것에 대한 부담이 너무 큽니다. 이 계획대로라면 정말 얼마 없는 기병연대를 제외하고는 본국에 남는 기동전력도 없습니다. 보병사단도 몇 개나 빼돌리고..... 정말 만에 하나라도 알자스-로렌이든 저지대든 간에 뚫리면 막을 수단이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보병사단 대부분은 참호선에 투입되어 있거나 교대병력으로 대기하고 있으니 병력이 부족한 건 아니네, 게다가 참호선이 한두 겹도 아니고, 그게 다 뚫릴 가능성도 낮지, 게다가 저지대 방면은 이미 제리 놈들의 피해가 커서 진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참모본부의 결론 아니었나? 그리고 알자스-로렌은 이미 요새화가 몇 겹으로 되어 있는데 그게 다 뚫릴 확률은..... 그냥 까놓고 말해 0에 수렴하네.”
이 시대에 참호선을 돌파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해 봤자 참호선을 아예 우회하든가, 미친 듯이 포탄을 쏟아부은 다음 최대한 덜 죽기를 바라면서 병사들을 밀어넣거나, 둘 중 하나뿐인데 프랑스든 프로이센이든 상대를 우회할 수 있는 공간은 없고, 결국 포격 후 돌격 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리고 참호전 자체가 바로 그 전술을 카운터하기 위해 나왔다는 걸 감안하면 학살에 불과하다.
항공대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양측은 오래전부터 열기구를 띄워 정찰을 시도했고, 더 나아가 항공기로 정찰을 진행했다. 프랑스군은 영국 본토 강습전에서 비행선을 이용한 폭격도 시도했다.
이 열기구, 비행선, 항공기들을 때려잡기 위해 한 달이 지나기 전에 가벼운 복엽기들이 기관총을 싣고 날아오른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요격기들을 때려잡고 비행선이나 열기구, 정찰기를 보호하기 위해 전투기가 나왔다.
그러나 아직 폭격은 어려운 시대, 열기구로는 폭격을 제대로 할 수가 없고, 비행기는 제 몸 가누기도 어려워서 수류탄이나 던질 수 있으면 다행이다. 당연하지만 수류탄이나 박격포탄 몇 발로 전황을 뒤집는다는 건 환상이다.
즉 참호전을 타개할 공중지원을 할 수단이라고는 비행선밖에 없는데, 너무 느리다.
게다가 각국은 이미 비행선의 폭격을 영국 런던에서 한 번 경함하고 나서 비행선을 쏠 수 있는 무기들을 열심히 만들어내고 있었다. 폭격의 명중률도 낮은 비행선 가지고 참호전에서 재미보기 어렵게 된 이유였다.
무엇보다 비행선이라고 해서 20세기 말이나 21세기마냥 쾅 떨어트리면 참호고 뭐고 작살낼 수 있는 지진폭탄 같은 걸 운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거 실으면 이륙도 못 한다.
물론 프랑스군이 부랴부랴 400kg의 폭탄을 적재할 수 있는 쌍발 복엽 폭격기를 열심히 개발하고 있기는 하다. 설계 중인지라 아직 실전배치하려면 제법 기다려야 해서 문제지만.
하지만 그게 등장한다고 해서 전황이 기적적으로 바뀌고 그럴 가능성이 낮은 것도 사실이다.
참호전을 궁극적으로 끝내려면 전차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 어떤 국가도 전차를 제대로 만들 방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기관총탄을 견디는 장갑차량이라는 발상은 좀 있어도 참호지대를 돌파하기 위해 무한궤도를 쓴다는 아이디어를 낸 것도 프랑스 뿐이고, 그마저도 엔진 문제라거나 하는 이런저런 문제에 가로막힌 판이었으니.
따라서 본국이 좀 빈다고 해도 방어선이 뚫려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다는 게 황제의 판단이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탈리아를 침공할 수 있고, 침공할 것이다.”
목표를 달성할 능력이 있고, 그 기회비용은 적으며, 목표를 달성해서 얻을 이득도 있으니 주저할 이유라고는 단 하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