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47화 (47/200)

47화 소용돌이(1)

“알제리인들은 1870년대 이래 프랑스인들을 증오하고 있고 프로이센과 영국에 적극 협조하고 있네, 우리가 들어가 봤자 저들은 강력하게 저항할 거고, 무엇보다 전쟁을 더 끌면 문자 그대로 남 좋은 일에 불과해. 알제리는 포기하는 게 낫네.”

“....... 태평양의 패권을 노리시는 겁니까?”

“영국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선물이겠지, 모든 바다와 파도를 지배한다는 대영제국의 진출이 가로막힌 셈이니, 그리고 이번에 식민지를 크게 늘린 네덜란드를 견제하는 것도 가능해.”

쭉정이는 다 걸러낸다. 알제리는 아깝기는 해도 이미 알제리인들의 증오를 1870~1880년대의 대기근 와중에 제대로 사 버린 이상, 그리고 한 번 뺏긴 이상 되찾아오더라도 제대로 통치가 되기는 어려울 터.

차라리 알제리와 태평양 패권을 교환하는 게 낫다.

"기아나가 함락됐댔지, 그쪽은 포기한다. 대신 식민지 함대를 동원해서 태평양 지역을 공략한다. 뉴질랜드부터 시작하지."

한편, 러시아 제국의 요구는....... 솔직히 말해서, 이건 무슨 미련 곰탱이...... 아, 곰 맞구나. 아무튼 간에 미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발칸 전체를 먹어치우고 콘스탄티노플까지 가져가겠다.

그래, 거기까지는 그렇다 치자. 극동에서는 진짜 미쳤냐는 소리밖에 안 나온다.

러시아 제국이 공유해 준 자신들이 요구할 ‘최소조건’을 본 외무부의 관료들과 나는 기함해버렸다.

“조선과 일본을 점령했으니 현지 왕실을 축출하고 동군연합으로 만들겠다고요? 폴란드와 핀란드처럼?”

“니콜라이 2세가 요구했다는데, 진짜 미친 것 아닙니까?”

“조선 인구가 폴란드보다 많을 텐데, 핀란드는 말할 것도 없고.”

내가 말하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말릴 의리는 없었다. 우리나라 국력 낭비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들 국력을 낭비해 주겠다는데 누가 말려.

니들이 배가 터지든 말든 내 알 바냐. 하여튼 니콜라이 2세든 빌헬름 2세든 미련한 게 누가 사촌 아니랄까 봐 똑 닮았어.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인도 부분이지.”

인도 제국 전체도 아니고 인도 서부 해안 지대에 길다랗게, 칠레처럼 나라 하나 만들겠다는 거지만, 거기가 21세기에도 인도에서 GDP 가장 높은 동네이며 인도 부왕령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일부분이다.

“그 조건 때문에라도 영국은 결사항전을 택할 것 같습니다만.”

“협상의 여지는 있다. 영국이 이스라엘의 항구사용권을 가진다거나, 아니면 정 못 받아들이겠으면 제 3국의 보호가 아니라 영국의 보호를 받는 수준으로 타협할 수도 있겠지.”

“그러면 결국 영국에게 있어서는 인도 부왕령의 행정구역을 두 개로 나눈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럴 리가 있나.”

나는 피식 웃었다.

“유대인이 전 세계를 주무르고 있다는 건 과장이라고 해도, 막대한 금융 능력을 이용해 적지 않은 수준의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건 사실이다, 특히 미국에서.”

그리고 미국은 돈이 많다. 진짜로 많다.

사실, 이미 미국의 국력은 유럽 전체를 뛰어넘은 지 오래다.

미국 스스로를 포함해 이 사실을 아무도 모를 뿐이지.

“미국의 유대계 자본들이 대량으로 자금을 퍼붓고, 거기에 그곳에 사는 이들 자체의 절박함까지 더해지면, 영국도 쉽게는 다시 못 되찾을 거다.”

“미국........의 일부인 유대계 자본만으로요? 아무리 이번 패전으로 영국의 국가신용도가 크게 흔들렸다지만 거기까지 가겠습니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기에 되는 거다.

“어쨌든, 마지막은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이탈리아 북부를 병합하고, 아예 사보이아 왕가 따위는 나라 없는 왕조로 만들어서 쫓아내면 좋겠지만, 그건 전황 따라서 판단해야지.”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요구 조건들을 발송하고, 회신을 기다리도록 하지, 뭐, 결론은 이미 싸우기도 전에 나온 것 같지만.”

저들이 받아들인다면 그걸로 좋지만, 받아들이지 않고 결사항전을 외친다면..... 그 어리석음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함대를 태평양으로 투입할 수 있는가?"

"네덜란드가 우리 편으로 돌아서겠다고 약속한 이상 영국의 태평양 식민지들을 공략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그리고 유대인들에게도 물자를 좀 지원해 줘야 할 테고."

나는 씩 웃었다.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은 우리 손에 있지."

"그렇습니다."

"파운드화 좀 찍어내라고 해."

이미 영란은행 지하의 금은 우리 프랑스 제국군에게 싹싹, 아주 밑뿌리까지 탈탈 털려서 도버해협을 건너 이송되었지만, 윤전기는 여전히 있다.

그리고 그 윤전기를 돌려서 돈을 찍어낸다. 이건 위조지폐지만 위조지폐가 아니다.

흔히 생각하는 개념의 위조지폐라고 하면 중앙은행에서 찍는 게 아닌 범죄조직이 찍어낸 걸 연상시키지만, 이건 명백히 영국 정부기관이 찍어낸 파운드화다.

다만, 그 발행을 명령하고 사용할 주체가 영국 정부가 아니라 영국인 입장에서는 점령군인 프랑스군일 뿐.

그리고 그렇게 찍어낸 지폐를 인도 이스라엘 독립군에게 자금지원이라고 뿌린다. 꼭 독립군에게 뿌리는 게 아니더라도 써먹을 데는 많다. 프랑스군이 영국에 주둔하는 동안 사용한다거나.

그 돈은 무기와 교환되어 영국군을 향해 불을 뿜을 거고, 또 시중에 대규모로 풀려버린 그 돈들은 사상 최악의 초인플레이션-이미 본토가 털리고 시티 오브 런던에 삼색기가 걸린 것만으로도 화폐가치가 많이 떨어졌지만 아직 인도를 비롯한 식민지 상당수가 멀쩡한 상태고, 전쟁을 져도 영국이 완전 망하지는 않을 거라고 판단되니만큼 어느 정도의 가치는 유지하고 있다-을 영국에게 선물할 거다.

그렇게 되면? 영국인들은 한동안 같은 종류의 벽지와 화장지를 쓰게 될 것이다.

파운드 스털링 지폐로 벽을 도배하고, 지폐를 휴지로 쓰고, 지폐를 난방에 쓰는 삶.

프랑스의 생존을 위해서는 영국이든 독일이든 간에 확실하게 끝장을 봐야 했다. 다시 일어나서 우리에게 주먹을 휘두를 엄두를 내지도 못하도록.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혀야 할 때는, 그 사람이 반격조차 하지 못할 치명상을 입혀야 하는 법이다. 군주론에 나오는 말이었나? 잘 기억이 안 나네.

진짜 악랄하게 굴고 싶으면 전쟁이 끝난 뒤 폭락한 화폐 가치를 수습하느라 화폐개혁을 시행할 때 영국 정부가 화폐의 재고를 잘못 파악하게 하고, 숨겨 둔 파운드들을 대거 방출해서 영국 정부에게 2차 쇼크를 안겨 줄 수도 있기는 하다.

즉 기껏 화폐개혁을 했는데 돈이 여전히 휴짓장인 것이다. 전후 상황을 벌써부터 예측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진짜 감행하면 영국에게는 제법 경제적 피해가 클 거다.

물론 이 작업을 하려면 전쟁이 끝난 뒤에나 진행될 텐데-전쟁중에 화폐개혁을 진행할 리는 없으니-전쟁중도 아닌데 그런 짓을 벌이는 건 진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짓이니 솔직히 써먹을 짓은 못 된다.

아니면 시중에 풀린 돈의 양을 자기들 혼자 과소평가해서 자빠져버릴 수도 있지만, 그건 생각하지 않기로 하자. 살면서 남의 실수만 기대할 수는 없으니까. 뭐, 역사적으로는 원나라가 그렇게 해서 신교초랑 구교초가 사이좋게 쓰레기가 되었던가?

그리고 원래 자국 내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물가상승을 촉발시키기도 하니.... 어쨌든 영국은 꽤나 고생할 거다.

어디 한번 역사상 최대 기록 한 번 찍어 봐야지, 초인플레이션 최고기록이 2차대전으로 쑥밭이 되고 헝가리의 경제를 조져버리라는 스탈린의 명령을 받은 소련군이 군표를 남발하는 바람에 초인플레이션이 터져서 15시간당 물가가 2배, 1달에 1.3'경'배씩 뛰는 미친 사태가 벌어졌었지?

우리도 대영제국 경제 한 번 조져 보자, 물론 영국은 식민지도 있고 하니 헝가리보다는 상태가 나을 확률이 높아서 그 정도로 막장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 같다만.... 그래도 확실하게 분질러 놓을 수 있을 만큼은 분질러 놔야 하지 않을까?

영국 경제가 좆돼놔야 나중에 필연적으로 이어질 건함경젱도 어떻게든 미뤄놓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

한바탕 회의를 끝내고 돌아오자, 아이들이 날 반겨준다.

벌써 뱃속에 셋째를 가지고 있는 아내는 웃으면서 날 맞아줬다.

“여보, 잘 하고 왔어요?”

“물론이지.”

나는 군복을 벗어서 대충 던져놓았다. 각국 군주들이 흔히 입는 복장인 훈장이 잔뜩 달린 대원수 군복을 벗고, 편한 복장이 된 나는 샤를을 내 무릎 위에 앉혔다.

“샤를, 오늘도 공부 잘 했니?”

“네!”

“그럼 아빠랑 놀까?”

“애 버릇 나빠져요.”

“무슨 소리야.”

나는 샤를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면서 대답했다.

“지금 안 놀아주면 나중에 가서 후회하게 될 걸?”

“아빠! 나 모험 이야기 들려줘요!”

“음, 그럴까?”

“뭐가 재밌단 건지 모르겠는데.......”

내가 심심풀이로 끄적여 놓은 SF 소설의 원고를 보고 엄청 졸라대서 이야기를 좀 흥미 위주로 풀어서 해 줬는데, 좋아서 죽으려고 하더라.

역시 기술이 좀 더 발전하면 스타워즈를 찍고 스타크래프트를 만들어야겠다. 물론 내가 죽은 뒤에는 절대 속편 못 만든다는 조건으로.

“천 년 뒤에, 인류는 창백한 푸른 점을 떠난단다, 한때 지구라 불렸던 창백한 푸른 점은 지구를 호시탐탐 노리던 악마와 외계인들과의 기나긴 전쟁 끝에 초토화되었고, 여러 행성간 식민지들도 대부분 파괴되자 은하 전체가 생존에 부적합하다고 판단한 엘리자베스는 인류를 이끌어 항해를 나서지.”

“엘리자베스는 몸이 없는, 유령 같은 소녀란다. 수많은 기계들을 움직일 수 있고, 세상의 그 누구보다 똑똑하고, 영생불사하는 그녀에게는 사명이 있었어, 바로 모든 인간들을 지켜내는 것이었지. 그것은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창조하면서 부여했던 사명이란다.”

“함대는 총 열세 척이었지, 엘리자베스가 탄, 강력하고도 거대한 기함 한 척, 그리고 12척의 거대하지만 기함보다는 작은 배들. 엘리자베스가 탄 기함에는 작아지고 빛을 잃어 검게 변해버린, 그러나 여전히 강력한, 한때 태양이라 불렸던 존재가 그녀가 우주를 항해하도록 힘을 주고 있었단다.”

“다른 열두 척의 배들은 배가 고팠단다, 태양의 힘을 이용해서 배고픔을 느끼지 못한 엘리자베스와는 다르게 그들은 배가 고팠거든, 그러자.......”

“그거 엑소더스(Exodus) 이야기 변형한 거 맞지? 어째 숫자도 딱 열둘이고.”

“대충 넘어가.......”

나는 샤를에게 이야기를 해주고, 샤를은 눈을 반짝이면서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였다.

“폐하, 쉬시는데 죄송합니다. 급보입니다.”

“뭔가?”

“북독일 연방이 협상을 거부했습니다. 아직 해볼 만 하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 후.”

한숨을 푹 쉰 나는 몸을 일으켰다.

“사령부에 나가봐야겠군.”

“즉시 준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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