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45화 (45/200)

45화 리벤지 매치(4)

저기 파리에서 전쟁을 지휘하고 있는 황제는 아쉬워할 일이지만, 아직 전차가 만들어지기에는 시대가 좀 이르다.

20년쯤 뒤에 일어난 원 역사의 1차 대전에서도 온갖 고장으로 인해 전차병들을 개고생시킨 게 최초의 전차다. 아무리 나폴레옹 4세가 악으로 깡으로 돈을 붓고 기술자들을 야근시킨다고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래도 한 10년 정도는 기술력을 앞당겼으니 거기에 만족해야 할 터, 물론 그가 진짜 만족할 만한 전차는 1930년대 기술력은 충족되어야 만들어지겠지만, 그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무튼 간에, 기술은 대부분의 경우 거의 공평하다,

익을 만큼 익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는 게 아니듯, 어느 황제가 제트전투기를 수십 년 일찍 강림시키려는 야심찬 계획은 비행을 성공시키고 전투비행단을 설치하기까지 했음에도 온갖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실패작으로 판명되고 좌초된 것처럼, 참호를 돌파할 수단은 내놓으라고 해서 쉽게 내놓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결론만 말하자면, 프로이센의 군대가 내놓을 수 있는 수단은 피와 살로 납을 막아내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을 기관총의 총구 앞에 무식하게 밀어넣는 것 뿐이었다.

물론 슐리펜도 멍청이는 아니었다, 맹포격을 가해 참호와 철조망, 지뢰밭 등의 장애물들을 무력화하려고 시도하고, 병사들이 사격에 노출되는 시간을 최대한 짧게 줄이려 공격용 참호를 팠다.

물론 프랑스군 역시 충격보병 동반한 공병대를 동원해 맞참호를 파들어가고, 포격이 날아오면 기관총을 탈거해 숨어 있다가 적 병력들이 공격을 개시하기 전에 다시 장전하고 기관총을 갈겨댄다.

슐리펜 입장에서야 상대가 기관총을 다시 장착하거나 하기 전에 병력을 돌파시키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장교나 부사관들의 역량 문제 그런 차원이 아니라 제대로 된 통신수단의 부재라는 시대적 한계였다. 이건 문자 그대로 양측의 타이밍이 잘 맞기를 신에게 빌어야 하는 문제였다.

설령 엄청난 행운이 따라 참호선을 돌파한다고 해도 그 뒤에도 참호선이 또 있고, 1선 참호는 이미 죄표 다 따놓은 포병대가 포를 겨냥하고 있다.

수학적으로 최대한 많은 피를 빨아먹기 위해 설계된 방어선은 아직도 더 많은 피를 기대하고 있었다.

-까악! 까악! 까악!

까마귀가 하늘을 날면서 한 더미 쌓인 시체들을 내려다보았다.

곳곳에서 포성이 울렸다, 땅에서 천둥번개가 칠 때면, 계속해서 먹이가 늘어날 거란 신호였다.

두 발로 걷는 생명체, 인간들이 참호선 뒤에 와글와글 모여 있었다.

까마귀가 보기에, 뾰족한 투구를 쓴 이들은 요 근래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네 발 동물, 말에 탄 인간들도 한가득했다.

최대한 포화에 노출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기병대를 이용해 기관총 포화를 돌파해보겠다는 자포자기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덕분에 프로이센 기병대는 나폴레옹 시대에도 안 두르고 다녔던 전신갑주에 마갑까지 두르고 나왔다. 까마귀 입장에서는 뭐가 번쩍번쩍해 보였다.

자신이 환장하는 그런 것이지만, 까마귀는 조류 중에서도 굉장히 머리가 좋은 축에 들어간다, 저기 가면 무사하지 못하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고, 동시에 조만간 자신이 주워갈 수 있게 될 것임을 알고 있다.

까마귀는 참을성을 발휘했다.

“프로이센 만세!”

“지크 하일!”

“황제 폐하 만세! 돌격!”

포성이 그친 직후, 병사들이 돌격하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빠르게, 빠르게.

까마귀는 천천히 고도를 낮췄다.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

그리고 다시, 총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사람과 말이 바닥에 나뒹군다.

얌전하게 죽지 않는다, 고깃덩어리로, 육편으로 파쇄된다.

사람과 말이 튀어나온 내장더미에서, 일말의 존엄도 없이 몸을 뒤틀며 비명을 지른다.

머리가 단번에 부서지거나 목이 부러져 죽은 이들은 행운이었다. 자기 피가 고인 웅덩이에 얼굴을 쳐박고 익사하는 이들도 있었으니.

지뢰가 터지면서 동료들이 쓰러져 갔지만, 그냥 돌격한다.

동료를 피하려고 하다가는 본인까지 죽는다. 쓰러진 동료가 살았든 죽었든 밟고 가야 한다.

쓰러지는 자들은 알아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하지 않는 한 전사자로 간주되는 셈이었다.

총알 한 발에 팔다리가 한 토막씩 떨어져나가 바닥에서 버둥거리는 이도 있었다.

-타타타타타타타타타!

저 지옥의 교향곡, 돌출된 기관총진지에 배치된 기관총 다수가 겨냥하고 있다가 살상지대에 들어오는 순간 퍼붓는 십자포화가 쏟아졌다.

그리고 철조망이 있었다.

악마의 장미덩굴이라는 그럴싸한 별명이 붙는다고 해서 저 면도날 철조망의 위력이 약해지는 건 아니었다. 지주핀까지 단단히 박힌 철조망은 우회하자니 접근경로가 나오지가 않는다.

-타타타타타타타타!

그리고 저 철조망 사이로 총알들이 거리낌없이 날아든다. 울타리였으면 차라리 엄폐물이라도 되었을 텐데, 몇 단, 몇 중으로 적 모래주머니 코앞까지 깔린 서로 뒤엉킨 철조망은 포격에도 쉽게 철거되지 않는, 그야말로 인간 악의의 끝판왕이라도 되는 모양이었다.

물론 인간은 학습의 생물이다.

인력으로 해체하느라 작업하는 공병들은 기관총 사수의 맛좋은 먹잇감이고, 그 탄성 때문에 끊어버리는 순간 철조망이 얽혀버려 공병들도 사상자 명단에 올라간다는 걸 파악한 프로이센군 수뇌부는 그냥 합판이든, 하다못해 아군 전사자의 시신이라도 대충 걸쳐서 밟고 통과하라고 명령했다.

물론 이 역시 죽여달라고 비는 행위였다. 일어나서, 넘어가는 순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조리 프랑스군의 시야에 노출되는 것이었으니.

-탕! 탕탕!

막 아군의 시체를 밟고 올라선 병사에게 프랑스군의 소총탄이 날아가서 가슴에 주먹이 들락거릴 만한 크기의 구멍을 깔끔하게 뚫어주었다.

하지만 그 시체도 결국 다른 전우가 밟을 발판이 되었다.

프로이센군 일부는 집중사격을 통해 어떻게든 지옥같은 기관총 사격을 극복해보려 했으나, 택도 없었다.

마침내 총성이 멎었을 때, 까마귀는 푸드득거리면서 땅으로 내려왔다.

먹기 딱 좋은 크기로 박살난 육편을 집어 입에 넣은 까마귀는 조만간 날 수는 있을까 우려해야 할 만큼 살이 쪄 있었다.

그 옆에는 최근 얼마간의 폭식으로 인간을 두려워하지도 않게 된, 고도비만이 된 시궁쥐가 돌아다니고, 파리 떼가 사방팔방에서 잔치를 벌이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면 쥐조차도 고양이만하게 살이 찌리라.

문자 그대로 시체의 산이 쌓였다. 아직 채 숨이 끊어지지 않은 젊은 청년의 푸른 눈 앞에서 그의 살을 파먹고 뼈를 오독오독 씹던 시궁쥐는 그 청년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언어의 파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머니..... 어머니......”

또 다른 한 생명이 너무나도 덧없이 끊어진다.

이 지독한 살육에 너무나도 익숙해진 프랑스인들은 한바탕 발사한 기관총을 점검한다.

그들의 눈은 말라붙어서 초첨도 잘 맞지 않는다.

처음에는 통쾌해했다.

다음에는 비웃었다.

그 다음에는 동정했다.

그 후에는 혼란스러워하기 시작했다.

전장에서 적을 죽인다는 것은 명예롭다고 포장된다.

분노라는 이름 앞에, 단체의 일부가 되어서 합법적으로 사람을 죽인다.

그들에게 죄책감을 덜어주는 것은 국가라는 시스템 안에서, 시스템의 일부라는 것으로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낼 수 있다. 그러나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그들은 사람을 고깃덩어리처럼 여기는 사이코패스와 같은 존재가 아니라, 평범한 한 사람 한 사람이었기에.

일반적인 전쟁터라면 전장의 고양감이 이를 묻어버렸겠지만, 이것은 아니다.

포격을 날리는 건 쉽다. 공습도 쉽다. 그런 것은 상대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된다. 얼굴 없는 마네킹처럼 상대를 대할 수 있다.

서류에 기록된 전사자 1로, 전과 1명 사살로 상대를 대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를 마주하는 순간, 그리고 그 상황에서 본인이 살기 위해서 죽인 것이 아니라 그저 일방적인 폭력을 지속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저격수들 가운데 PTSD 환자들이 많았다는 것 역시 이를 증명한다.

그 모든 판단과 책임, 심적부담을 전부 국가로 넘겨버리는 이들이 대부분이겠지만, 그것도 하루이틀이다.

제대로 수습되지도 못하고, 시체들이 썩어가는 모습을 본다. 참호선 밖으로 나가는 것은 사단장보다도, 군단장보다도 높은 곳에서 내려온 공세금지 명령의 연장선상으로 금지되었기에 프랑스군이 처리할 수 있는 시체는 참호선 안에 들어와서 죽은 시체들뿐이었다.

다가오는 족족 저격총과 기관총의 밥이 되는 프로이센군은 당연히 전장을 수습할 수 없었다.

그리고 썩어가는 시체를 보며, 인간 최후의 존엄인 무덤에 묻히는 것조차 허용받지 못하고 짐승들에게, 파리 떼에게 내맡겨진 시체들을 코앞에서 바라보면서 그들의 안에서 두려움이 싹튼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있었고, 있고, 있게 될 것, 죽음이라는 것의 무게가 그들을 짓누른다.

그 정신적 무게가 그들을 짓누르기 시작할 때쯤, 프로이센군의 공세도 중단되었다.

***

사상 최단 기간에 최대 규모의 사상자.

그것이 프로이센군이 받아든 성적표였다. 슐리펜이 책임을 지고 사임했으며 빌헬름 2세가 피해보고를 받고 실신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수십만에 달하는 전사자와 부상자, 실종자.

전사자는 시체가 회수된 이였으며 실종자는 시체들이 벨기에의 평원 어딘가에 굴러다니는 이들이었다. 포로는 거의 없었다. 포로를 형편 좋게 잡을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누가 항복하더라도 항복하기도 전에 패닉에 빠진 상대에게 총이든 칼이든 야전삽이든 간에 맞아 죽거나, 포로 이송 도중에 포탄에 맞아 호송병들과 함께 사지가 분해되지 않으면 다행이었으리라.

그리고, 이 소식을 들은 네덜란드 정부도 결단을 내렸다.

지금 개전하지 않으면 전쟁이 끝나고, 네덜란드는 이 전쟁에서 아무것도 챙겨가지 못할 것이라고. 누가 봐도 이 전쟁은 프랑스의 완승으로 끝날 듯 보였다.

영국 본토가 짓밟혔고, 프로이센은 국경도 못 돌파하고 수십만의 시체 포대를 돌려받았다.

줄 제대로 잘못 서서 망할 게 뻔한 벨기에의 네덜란드 지역이나 영국 식민지 일부라도 얻어가기 위해서는 지금 날뛰어야 한다. 그렇게 판단한 네덜란드 정부는 삼국동맹의 합류를 선언하고, 대혼란에 빠진 벨기에 내 보급로로 네덜란드군을 대거 투입해 큰 전과를 기대하며 공세를 가했다.

그리고 개같이 박살났다.

북독일 연방이라고 기관총이 없지 않다. 프랑스는 브라우닝 기관총을 가졌다면, 영국과 프로이센은 맥심 기관총을 가졌다.

그리고 독일인들도 당연히 학습이란 걸 했고, 후임으로 임명된 소 몰트케는, 여러모로 비판받을 점이 많은 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본 걸 그대로 흉내내지도 못하는 원숭이 수준의 지능을 가지지는 않았다.

병력 부족으로 인해 막대한 후방의 피해와 보급선 파괴, 보급물자 다수의 소실과 보충병들의 피해를 감내해야 했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벨기에에 고립된 프로이센군은 프랑스군의 철조망과 기관총, 참호와 지뢰를 비슷하게나마 흉내낼 수 있었다.

아마 프랑스군이 공세로 전환했다면 프로이센군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성적표를 받아들었으리라, 그러나 프랑스 제국은 절대 공세로 전환하지 말라는 엄명을 받고 있었고, 대신 네덜란드가 피를 봤다.

하지만 네덜란드가 적대화된 이상 사실상 벨기에에 있는 병력이 보급 중단으로 전멸당하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어쨌든 간에 실질적으로 보급선이 끊어진 건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로써 대전쟁은 큰 전환점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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