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리벤지 매치(3)
“독일군의 일곱 차례에 걸친 파상공세는 모두 격퇴되었습니다.”
말이 파상공세지 기관총 사격 앞에 아무 대책 없이 기병과 보병들을 밀어넣는 축차투입에 불과했지만, 우리한테는 좋은 일이었으니 이름 정도는 신경쓰지 않기로 하자. 어디서 들었는지는 기억 안 나는데 파상공세가 병력 집중의 원칙도 무시하고 1차대전 참호전의 지옥에서 병력을 축차투입했다가 말아먹은 지휘관들을 옹호하는 수단으로 쓰였다지?
“훌륭하군. 하지만 아직 공세로 전환하기는 이르네, 자전거 사단들은 여전히 대기 중인가?”
“그렇습니다.”
2년 전, 영국의 던롭이 자전거를 상용화하는 발명을 한다.
다름아닌 고무 타이어였다.
그리고 우리는 자전거를 전군에 보급........할 수는 없어도 망치와 모루 전술에서 망치 역할을 하는 기동부대에 자전거를 지급하자는 생각을 했고, 보병사단들 다수가 자전거사단으로 전환되었다.
‘그러고 보니 이맘때였지.’
고무 수요가 급증해서 일어난 지옥도. 콩고 자유국 대학살.
그게 아마 이맘때 일어났을 거다, 레오폴트 2세가 콩고 자유국을 손에 넣은 건 몇 년 됐지만, 인프라가 전혀 없었던 탓에 수탈을 위한 철도를 깔고 지리를 조사하는 등의 준비를 하느라 1890년대에야 수탈이 시작되었지. 전쟁에 고무 많이 쓸 테니 지금 한창 수탈이 심하겠지?
“외무장관.”
“예, 폐하.”
“외무부 휘하 정보대를 이용해 콩고에 침투할 수 있겠소?”
“콩고, 말입니까?”
“그렇소, 콩고.”
나는 손을 슥슥 비볐다.
레오폴트 2세, 굳이 수식어를 붙여주자면 인간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기 아까운 쓰레기, 히틀러는 싸대기를 왕복으로 후려갈길 악마. 적어도 히틀러는 자기한테 잘해준 인간한테는 상대가 유대인이라도 사람답게 굴었지만 저 새끼는 남편 잃고 울고 있는 자기 여동생을 정신병원에 쳐박은 새끼다.
그러면서도 자기 겉포장은 엄청나게 잘 하고 있는 놈.
“콩고에서 상당히..... 도를 넘은 수탈과 학살이 자행되고 있다는 정보가 있소.”
“예?”
외무장관, 총리, 전쟁장관 등등이 모조리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 만도 하다, 비스마르크도 속여넘긴 게 레오폴트 2세란 작자거든. 물론 비스마르크가 콩고 따위에 관심이 없었다는 게 크기는 했지만.
“실례지마 폐하, 정보 출처를 알 수 있겠습니까?”
“미국을 경유해서 들어온 정보로, 가톨릭교회 쪽의 인사라는 것 외에는 말해줄 수 없소, 다만 그 신빙성이 제법 높으니만큼, 정보원들을 침투시켜 증거자료를 수집하시오, 만일 이를 폭로하면 벨기에 왕실의 도덕성에 타격을 크게 줄 수 있겠지.”
덤으로 지금 영국이 개같이 털려나가면서 참전할까 말까 간을 보는 중인 네덜란드의 등을 시원하게 떠밀어줄 수 있다.
네덜란드가 참전하면? 일단 네덜란드군은 벨기에군보다도 강하고 원 역사 독일 제국도 네덜란드군을 경시하지 않았다. 네덜란드가 1차대전기에 중립을 지킬 수 있었던 건 네덜란드를 통한 물자 수입은 필요했고, 네덜란드 정부가 친독 성향에 가까웠다는 것만이 아니라 네덜란드군이 제법 강군이어서도 있었다.
아마 프랑스도 1차 세계대전 시기에 스위스에게 독일을 치게 길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가 스위스가 길을 내주느니 죽는 게 쉽다면서 결사항전할 각오를 굳히자 괜히 적을 늘리는 게 골치아프다고 판단해 포기하는 사건도 있었지? 두 국가 모두 비슷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지금 앞만 보고 달리던 북독일 연방군은 죄다 얽히고섥힌 벨기에 내 도로와 철도 위에 갇혀있는 신세, 보급품도 제대로 전달이 안 될 텐데, 규모는 적어도 제법 견실한 네덜란드군이 후방을 기습적으로 후려치면? 벨기에 내 독일 5개 군은 그대로 전멸이고, 알자스-로렌의 2개 군과 동부전선의 한 줌 병력만 남는다.
좀 더 명확하게 말하면, 전쟁 패배가 확실해진다.
그리고 콩고에서의 학살은 네덜란드의 참전에 명분을 줄 수 있다. 실리적인 건 없겠지만 뭐 어떤가? 국제사회는 다 명분으로 돌아간다.
네덜란드 놈들도 콩고물 제때 얻어먹고 싶으면 참전하겠지. 지금이 자기들 몸값을 가징 높일 수 있는 타이밍이라는 건 알고 있을 테니 열심히 양쪽을 저울질하고 있을 텐데, 그 타이밍에 콩고 대학살 사건이 터지면?
여론 때문에라도 네덜란드가 벨기에 편으로 참전하는 가능성은 완전 봉쇄, 중립은 문자 그대로 새 되는 결말밖에 안 보일 테니 남은 길은 우리편으로 참전하는 것 뿐이다.
공세 실패하고 후방병력은 앞으로 못 나가고 보급품은 기차역에서 썩어가는 그 개판에서 네덜란드가 참전한다?
나는 슐리펜과 빌헬름 2세의 위장에 명복을 빌어주었다.
“그럼 기한은.......”
“한 달.”
“예?”
“한 달 주겠소, 부족하오?”
“...... 해군 병력 일부가 통상파괴를 위해 인근에 있으니 그쪽에서 일부 인력을 차출하면 일주일 내로 침투시킬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유의미한 정보를 찾아 보내기에는 한 달은 너무 짧지 않겠습니까? 정보가 잘못되었을 가능성도 높고, 설령 진짜 학살을 한다 해도 그렇게 대놓고 진행하지는 않을 텐데 말입니다.”
외무장관의 말은 합리적이다.
그런데 레오폴트 2세가 합리적인 놈이 아니라서 그렇지.
“하지만 이번 공세의 승패가 판가름나기 전에는 폭로를 해야 하오. 그리고 내 귀까지 들어왔다는 건 상당히 공공연하게 진행된다는 의미이니, 생각보다 정보 수집이 더 쉬울지도 모르지.”
지금 군부와 외교부 인사들이 잘못 생각하는 게 있다. 이건 카틴에서 스탈린이 쏴죽인 폴란드군 장교들 찾으려고 삽질하거나 나치가 전쟁 질 거 같으니까 태워버린 홀로코스트 수용소 터 뒤지는 게 아니다. 그냥 대충 들어갔던 기자들과 선교사들 몇 명이 대량의 증거자료를 가지고 나와 폭로할 수 있을 정도로 대놓고 벌어지는 학살이라니까?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해보시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
<충격! 벨기에의 민낮!>
<콩고의 대학살!>
<고무를 위한 손목.... 위선자들이 아프리카에서 벌인 대학살!>
전 세계 신문 헤드라인을 자극적이기 그지없는 사진들이 가득 메웠다.
미국 언론에서 최초로 터져나온 폭로는 얼마 가지 않아 유럽 전역을 휩쓸었다.
북독일 연방과 영국, 벨기에와 이탈리아 등은 자국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줄 수 있는 이 소식의 확산을 막으려 했으나, 원래 선동은 한 문장이면 충분해도 반박은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자료가 필요한 법.
심지어 그 선동이 전부 팩트였으니 오죽할까.
영국에서는 애초에 의미가 없었다. 잉글랜드에 프랑스군이 발을 딛고 있는 한 소문의 차단이 불가능했고, 벨기에에서는 당장 윗동네 네덜란드에서 호외가 터져나왔으니 정보가 안 새기를 바라는 게 우스운 일이었다.
설령 확산을 막는다 해도 자국 내에서나 가능했다, 문자 그대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시도에 불과했다.
“벨기에군은 부모가 제 몫의 고무를 채취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5살 여자아이를 부모의 눈앞에서 팔다리를 잘라 살해했으며, 그 다음 살해당한 딸의 어머니를 남편의 앞에서 살해했습니다! 이것이 저들, 벨기에인의 실체입니다! 저들은 콩고를 고통에서 해방시키고 법과 질서를 확립한다고 했는데, 그들은 군대를 보내 ‘법’을 강요했고 저항하는 자들을 살해해서 ‘질서’를 확립했습니다!”
“저들은 마을에 들어가 여자들을 납치한 뒤 가족에게 고무를 여자와 교환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만일 이를 거부하면 그 여자는 즉시 강간 후 살해당했고, 남자들이 고무를 가져오면 거기에 더해 1인당 염소 2마리를 요구했습니다, 그 외에도 생산 할당량을 요구했고, 이를 맞추지 못한 자들은 손을 잘랐습니다, 그 다음에는 한쪽 팔을, 그 다음에는 참수했습니다. 그 모자란 할당량은 죽은 이의 가족이나 주변인들에게 그대로 넘어갔습니다.”
“벨기에인 관리들은 잘린 손이 가득한 바구니를 자신들이 열심히 일한다는 증거로 가지고 다녔으며, 심지어 이를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지방 행정관 중 한 사람은 하루 동안 잘린 손 1308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벨기에군은 총알의 사용처를 증명해야 했는데, 사람을 죽인 뒤 그 손으로 증명을 했습니다. 벨기에 군인들은 사냥을 한 뒤 거기에 사용된 총알 수만큼 멀쩡한 사람을 붙잡아 손을 잘랐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모은 돈으로 레오폴트 2세는 전 세계의 창부들을 끌어들였습니다. 영국 런던의 최고급 창녀촌에서 레오폴트 2세의 이름이 발견되었는데, 1달에 800파운드를 포주에게 지급하고 젊은 여자들을 꾸준히 공급받았습니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10살에서 15살 사이의 미성년자였습니다.”
사실적인 사진들이 곁들여진 폭로가 줄을 이었고, 전 유럽이 경악했다. 아니, 유럽뿐일까. 전 세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저게 사람새끼냐?”
“악마가 인간의 탈을 쓰고 세상에 나왔고, 그 이름은 벨기에인이다!”
“잠깐, 잠깐, 저건 레오폴드 2세가 독단적으로 벌인 짓이고 우리 벨기에 정부와는 관계 없습니다! 벨기에 정부는 콩고에 대해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
“니네 군대와 관리들이 거기서 대학살을 직접 수행하고 있는데 그럼 그건 뭔데!”
“저 새끼가 인간이라면 나는 예수 그리스도다!”
“레오폴트 2세가 동원한 건 벨기에 정규군이 아니라 용병들입니다! 벨기에 의회와는 관계없습니다!”
“벨기에 정규군이 그럼 콩고에 왜 주둔하고 있었냐? 개소리 정도껏 해!”
벨기에 정부와 왕실은 그야말로 집중포화의 대상이 되었다. 처음부터 반식민주의자였던 덴마크 왕국의 크리스티안 왕세자는 레오폴트 2세에게 공개적으로 비난을 퍼부었고, 대서양 건너에서도 벨기에에 대한 여론은 최악으로 떨어졌다.
레오폴트 2세는 이게 전부 흑색선전이라면서 언론들에게 강력하게 로비해 입을 다물게 하려 시도했지만, 정부 차원에서 압박이 들어간 프랑스,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 그리고 프랑스가 점령한 잉글랜드 내의 언론사들은 레오폴트 2세의 로비를 무시했다,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
현장을 직접 보고 파악하겠다고 중립적인 움직임을 보였던 이들조차도 까도 까도 끝없이 나오는 악마적인 학살의 증거들에 경악했다.
“지옥의 문은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라 벨기에의 브뤼셀에 있다!”
“벨기에인들은 몰랐다, 권한이 없다 외에 할 줄 아는 말이 없는 건가? 돈은 돈대로 받아먹고 혜택은 혜택대로 받고 그 돈이 어디에서 오는지는 관심이 없었다고? 말 같은 소리를 해야 속아줄 마음이라도 들지!”
여론은 바닥 밑의 지하로 추락했고, 레오폴드 2세 스스로도 분위기가 영 좋지 않게 돌아간다는 걸 깨달을 때쯤, 북독일 연방은 마침내 벨기에 방향에서 자신들이 끌어낼 수 있는 모든 전력을 동원해 프랑스군의 방어선에 정면으로 들이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