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39화 (39/200)

39화 전쟁의 톱니바퀴

“폐하.”

혼돈에 빠진 파리 시내를 내려다보는 나에게 장교 하나가 다가왔다.

“보고해라.”

“오스만 제국이 러시아 제국의 최후통첩을 내정간섭의 여지가 있는 일부 조항을 제외하고 수용하겠다고 했습니다.”

“러시아 제국이 절대 받아들일 리가 없지. 전쟁은 필연이군.”

“그렇습니다.”

“동원령을 미리 내려놓은 게 다행이군,”

“라마 5세는 저희의 제의를 받아들였습니다. 네덜란드와 미국과의 협상은 진행 중입니다만, 미국 측은 아마 받아들일 것 같습니다. 네덜란드는 확실치 않지만......”

“유대인 봉기는?”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미 무기들을 대량으로 풀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도 이탈리아 방면에 병력을 집결시키고 있습니다.”

“러시아 제국은 이참에 발칸을 확실하게 손에 넣으려고 들 거고, 남미에서 적 공세를 붙드는 일은 되면 좋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나는 한 방향을 가리켰다.

“독일 전선에서는 일단 수비로 일관한다. 해군력을 총동원해 개전 직후, 런던을 친다.”

잔 다르크급은 모두 비밀리에 집결하는 데 성공했다. 야음을 틈타 기동해서 집결했으니 아직 제대로 된 잠수함도 없는 시대에 수상함과 마주치거나 스파이가 있지 않은 한 걸렸을 리는 없다.

“두 번째 트라팔가는 없다.”

우선적으로 영국을 탈락시키고 전력을 다해 독일과 싸운다. 이 시대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잔 다르크급이, 세계 최초의 드레드노트들이자 최강의 비대칭전력이 우리에게만 있는 상황에서는 가능하다.

***

“중령님.”

“뭔가?”

제7비행대대장은 고개를 들었다.

“진짜 전쟁 나는 겁니까?”

“분위기를 봐서는 그렇겠지.”

프랑스 제국은 이미 거국적인 전쟁준비에 돌입했다.

사실, 프랑스에서 주요 정치세력들이나 시위대가 프로이센에 대한 보복을 부르짖기는 했지만 진지하게 전쟁을 원하는 사람들의 수는 그렇게까지 많지 않았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이 끝난 지도 오랜 시간이 지났다. 파리 공방전이 끝나고 양측이 휴전협정에 조인한 게 1873년, 정식 종전이 1874년이고, 삼국동맹 체결이 1877년, 형이 결혼한 게 1879년.

그때까지만 해도 프랑스의 복수심은 진짜였지만 1881년 잔 다르크가 진수되고 프란츠 요제프 1세가 사망할 때를 기점으로 프랑스에서 진심으로 복수를 외치는 자들의 수는 크게 줄어들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냥 복수심이 시간에 희석된 것이었다.

전쟁이 현재진행형도 아니고 총성이 멎은 지 8년이 넘어가는데 복수심을 불태우기에는 삶이 너무 팍팍했다.

그리고 정치 지형 변형 같은 다른 이슈도 많았고. 프랑스인들이 여전히 복수한다고 떠드는 건 굳이 말하자면 시끄러운 소수, 정치적 이슈로 부채질을 해대는 것에 가깝다.

“그런데 지금 그놈들이 죄다 군대에 끌려가고 있잖냐.”

사지멀쩡한 남자라면 40대 50대여도 국민위병, 프랑스판 예비군에 편성되는 프랑스의 강도 높은 전시 징병제가 유지되는 이상 어지간히 늙은 60대 이상의 정치인이 아닌 이상 죄다 일반적으로는 징병 대상이다.

물론 국민의회의 의원들은 의원직을 유지하는 동안 군 복무 의무가 면제되지만, 면제된다고 진짜 안 가는 순간 정치 생명은 단두대에서 싹둑싹둑 잘린다. 특권 포기 선언하고 가지 않으면 다음 선거에서 누구도 안 뽑아줄 거다.

왜? 안 그러면 국민을 기만하고 우롱한 게 되니까. 평소 혓바닥으로 쌓은 업보가 되돌아온 셈이다.

그 아랫급들은 인지도도 낮으니 숨어버리려 할지 모르지만 프랑스 정부는 비밀경찰까지 동원해 이들의 신원을 확보하고 모병소로 끌고 가고 있었다.

“저렇게 한다는 건 이미 전쟁을 결심했다는 거다. 아마 이렇게 된 이상 러시아는 오스만이 최후통첩을 받아들일 리도 없지만, 아무튼 최후통첩에 어떤 답을 주든 간에 침공할 결심을 하고 있다고 봐야겠지.”

러시아의 최후통첩은 사실상 제국의 해체를 요구하는 수준, 유럽 전체에서 고립무원이라면 모를까 영국과 독일이라는, 최후에 비벼볼 구석이 있는데 러시아의 최후통첩을 순순히 받아들일 가능성은 없었다.

그리고 설령 오스만이 최후통첩을 받아들이더라도 영국은 러시아를 공격할 거고, 당연히 프랑스는 영국에 선전포고할 거다.

그리고 빌헬름 2세가 그 상황에서 프랑스에게 싸움을 안 걸 가능성은 상당히 낮았다.

그때였다.

“대대장님!”

정보참모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뭔가?”

“사령부에서 암호화 전문입니다. 전령이 들고 왔고, 해독이 진행 중입니다.”

“.......”

이 상황에서 전령이 들고 올 정도로 고도로 암호화된 전문이 올 까닭은 하나밖에 없다.

“부관.”

“예, 대대장님.”

“전 병력 소집해, 출타자 빠짐없이 불러들이고 장비 체크해, 그리고 암호 복호화 진행하고.”

“알겠습니다.”

프랑스 제국의 암호화 체계는 미국 독립 전쟁 시기 만들어진 제퍼슨 디스크에 기초하고 있다.

구닥다리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제퍼슨 디스크는 2차 세계대전기의 유명 암호체계 ‘에니그마’의 기초가 되었을 정도로 대단한 암호다. 또한 제퍼슨 디스크 암호를 파훼하는 방법 역시 2차대전기 영국의 블레츨리 파크의 앨런 튜링을 위시한 암호해독팀이 알아내기 전에는 아무도 몰랐다.

그리고, 해독된 전문의 내용은 현장의 모두가 예상하고 있던 것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프랑스 제국 대육군 최우선 송신문>

<특별 긴급전문 81AE3DP-74>

<발신 : 프랑스 제국 대육군 참모본부>

<수신 : 육군항공대 1사단 1연대 7비행대대장>

<제목 : 황색 깃발 작전>

<분류 : 1급 기밀, 열람전용>

<내용 : 러시아 제국은 4월 30일을 기해 오스만 제국에 대한 침공을 결정. 이에 프랑스 제국 역시 오스만 제국, 그리고 프랑스 제국에 선전포고할 것으로 예상되는 그레이트브리튼-아일랜드 연합왕국에 대한 선전포고를 국민의회와 황실에서 의결, 4월 30일 자정을 기해 공식화할 예정, 단 프로이센에 대한 선전포고는 프로이센이 참전하지 않을 가능성이 제기된 바 승인 대기 상태임을 유의할 것. 단 프로이센군이 접근해올 경우 적대행위일 가능성이 극도로 높은 바, 자체 판단 하에 공격을 허가한다.

4월 30일 자정을 기해 황색 깃발 작전 개시, 영국 해협에서의 군사작전이 예정되어 있음, 제7비행대대는 타 부대와 함께 상공에서 잔 다르크, 나폴레옹, 리슐리외, 라파예트, 마리안 및 그 호위함대로 구성된 샤를마뉴 함대에 대한 항공 엄호와 정찰정보를 제공할 것>

<1급 기밀을 비밀취급인가가 없는 인물에게 무단 유출할 경우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군법에 따라 즉결처분될 수 있음을 유의하라>

<전문 끝>

***

대영제국, 런던, 해군성.

“여러 첩보를 종합한 결과 프랑스가 군사행동을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

프랑스 제국은 여러 차례 전신을 통해 러시아와 통신을 했고, 이 전신선, 그리고 러시아의 암호체계 중 상당수는 영국군에 의해 도청되고 있었다.

프랑스가 아무리 내부 단속을 잘한다고 해도 호흡을 맞추기로 한 러시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정보가 새나가는 걸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프랑스 제국이 본국에 선전포고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쯤 준비가 상당 부분 진행되었을 터. 이미 여왕 폐하와 내각에서는 전쟁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북독일 연방 역시 5월 1일을 기해 프랑스와 러시아에 선전포고하기로 이야기가 되었고, 전군에 4월 30일까지 프랑스군의 공격 기도에 대응할 준비를 마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특히 칼레를 틀어막는 게 우선이며, 본토함대를 총동원해 프랑스 해군을 격멸한다.”

물론 이 대전쟁의 수레바퀴를 막고자 발버둥치는 이들이 없지는 않았다.

프랑스 제국에서는 국민의회 내에서조차도 러시아에 프랑스의 지원을 확약하는 데에 반대하는 의원이 3분의 1에 달했으나 선황의 죽음에 대한 복수, 그리고 삼국동맹의 파탄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로 선전포고안이 의회를 통과했다.

대영제국의 내각에서도 선전포고에 반대하는 위원들이 절반을 넘었으나 빅토리아 여왕의 의지가 확고했고, 무엇보다 삼국동맹이 수면 위로 드러난 이상 외교적 수단을 이용해 러시아의 지중해 진출을 막는 게 불가능하며, 이는 인도 상실로 직결될 것이라는 공포로 인해 전쟁이 결의되었지만, 여전히 포기하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대영제국의 외무부도 그들 중 하나였다.

***

파리, 프랑스 외무부. 4월 28일.

“내각에서는 프랑스에게 대영제국의 대 러시아 전쟁에서 중립을 지켜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 우리가 어떤 대답을 하게 될지 알고 있지 않소.”

외무장관이 한숨을 내쉬자, 대사가 입을 열었다.

“외상 각하. 혹시 따님이 결혼하실 때 기억하십니까?”

“.... 그렇소, 자네도 거기 왔었지.”

“예, 그때 드린 선물이 신혼부부에게 잘 쓰였다면 기쁘겠습니다.”

한참 동안, 정말 한참 동안 대사는 자신과 외무장관 간의 개인적 친분관계부터 시작해서 양국의 우호를 논했다.

“외상 각하. 부탁드립니다, 제발 동원령을 취소해주십시오. 대영제국과 프랑스의 관계는 20년 전만 해도 더 이상 좋을 수 없을 정도로 좋지 않았습니까?”

“.........”

영국 대사는 울 듯한 표정이었다.

대영제국의 외교관으로써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수십 겹의 가면의 마지막 하나까지 집어던진 영국 대사에게 남은 건 절박함 뿐이었다.

“내각도 정말 프랑스와 전쟁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자유당은 러시아가 지중해 연안에 함대를 배치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든 간에 개입하지 말자는 주장까지 하고 있었으며, 상당수의 자본가들도 전쟁에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문제는 빅토리아 여왕이 러시아와의 전쟁에 찬성했고, 프랑스의 나폴레옹 4세 또한 같은 입장이었다는 것이다. 나폴레옹 4세는 삼국동맹의 유지, 영국의 대륙 영향력 거세, 결정적으로 프랑스와 지정학적인 문제로 결코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국가인 통일 독일의 초석인 북독일 연방을 파멸시키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많은 아군을 끌어모을 수 있는 이 시점에 전쟁을 해야만 하는 판이었고, 빅토리아 여왕은 걸어오는 전쟁을 결코 피하지 않는 인물이었으니.

만일 내각이 일치단결해 전쟁에 반대했다면 빅토리아 여왕도 뜻을 접었을지 모르지만, 내각 스스로도 분열한 상태로 참전과 반대를 옥신각신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내각의 의견이 갈리는 것은 러시아와의 전쟁뿐이었고, 프랑스와의 전쟁은 모두가 반대했다. 프랑스까지 적으로 돌리는 건 대영제국에게도 적잖은 부담이었기에.

문제는 러시아와 전쟁이 벌어질 경우 영국과 독일 모두에게 이를 갈고 있는 프랑스가 참전할 가능성이 극도로 높다는 것이었다.

빅토리아 여왕 본인도 프랑스와의 전쟁은 떨떠름해하는 판국이었던지라 내각에서는 만장일치로 프랑스와 전쟁을 피할 수 없더라도 마지막 협상이라도 해 보자는 상황이었고, 대사 스스로도 전쟁만은 제발 피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결국, 대사는 무릎을 꿇었다.

“장관님.”

“대사, 뭐하는......”

“부탁입니다. 두 국가 가운데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해주십시오.”

“.........”

입술을 꽉 깨문 장관은 눈도 질끈 감았다.

그라고 전쟁을 하고 싶겠는가.

그러나 여론은 이미 끓어올랐고, 비밀리에 내각과 의회에서도 선전포고안이 통과되었다.

무엇보다, 그는 동원령을 철회할 권한도, 이미 주요 부대가 모조리 전달받은 공세 명령을 철회할 권한도 없었다.

“영불 간에 무익한 피를 흘리는 일은 수십 년 전, 나폴레옹 전쟁기의 일로 이미 족하지 않았습니까!”

대사가 아무리 그리 말한다 한들, 그로써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대사.”

장관은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선제께서 살아 계시던 시절, 본국과 귀국의 우호 관계를 벨기에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소문만으로 모조리 무로 돌린 것은 귀국의 내각이었소.”

그 뒤에는 비스마르크의 로비가 숨어 있었지만.

“프랑스 제국의 내각은 크림 전쟁기를 포함해 대영제국에게 크나큰 신뢰를 보였으나, 그 호의에 대영제국은 배신으로 답했고, 그 배신으로 인해 선제께서 승하하셨소. 그리고 이제 와서 또 다시 신뢰를 요청한다면, 세상의 그 어떤 인간이 귀국을 신뢰하겠소.”

벨기에의 배신.

크림 전쟁에서도 같은 피를 흘리며 싸워 온 영국과 프랑스의 모든 우호 관계가 사상누각에 불과했다는 것을 전 세계에 선언한 사건.

그 전쟁을 막았어야 했다.

하다못해 외교적으로 스페인의 왕위계승문제에 대해 프랑스를 지지하며, 프로이센 국왕이 스페인의 왕을 겸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형식적인 성명이라도 한 번 냈으면 프랑스와 영국의 외교 관계가 파국에 이르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모든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대영제국의 업보, 배신당한 우정과 바닥으로 떨어진 신뢰는 세계를 전쟁의 구렁텅이로 밀어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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