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폭풍 전의 고요(5)
“루이 나폴레옹 소위, 전입 신고합니다.”
“아.”
단장 로베르 중령은 간신히 표정 관리를 했다.
본인 군생활이 아주 대차게 꼬였다는 생각이 절반, 그리고 호기심이 절반이었다.
루이 나폴레옹, 나폴레옹 4세의 유일한 형제.
자기 형이랑 대판 싸워 가면서 기어이 사관학교를 들어가서 4년간 뺑이친 끝에 수료하고 임관했다는데..... 왜 하필 첫 보직이 여기지?
뭔가 악의가 느껴질 지경이었다. 가뜩이나 여기는 기피보직인데.
문자 그대로 미친놈들이나 지원하는 병과. 그 이름은 항공이어라.
프랑스군이 운용하는 펄스제트, 속칭 다쏘(d’assault : 공격) 엔진은 신뢰성이 개차반이라서 언제 하늘을 날아다니다가 바닥으로 꼬라박을지 모른다. 이딴 병과에 지원하는 놈들이 미친놈이 아니고 뭔가, 전시도 아니고 평시에도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데.
프로펠러와 피스톤 엔진 만드는 것보다 훨씬 쉽고 싸게 만들 수 있는, 문자 그대로 동네 대장간에서도 생산과 수리가 가능하고 연료는 도시가스든 석유든 닥치는 대로 받아먹는 대가로 엔진 수명은 100시간에 불과하다. 교체는 10분이면 충분하지만.
예전에는 그게 더 심해서 12시간도 못 버티기도 했고. 재수없으면 용접 부위가 찢어져서 추락할 수도 있다. 프랑스군의 유일한 항공기, 미스테르(Mystère) 시리즈가 글라이더를 기반으로 개발한 물건이다 보니 어찌어찌해서 활공해서 착륙할 수는 있지만, 위험한 건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종 난이도가 쉽고 훈련과 양산이 편한 데다 무엇보다 하늘을 난다는 데에서 오는 로망이 엄청나다 보니 매년 항공 병과에 지원하는 미친놈들은 꽤 많았다.
그런 이들 가운데 황족은 없었지만.
로베르 중령의 경우는 그런 로망과는 관계없이 그냥 행정사무 능력이 뛰어나다고 비행단장 직을 맡게 된 것이라서 자기 부하들의 광기에 휩쓸리지는 않았지만, 동시에 통제 역시도 힘겨워하는 인간상이었다.
“으음..... 그래, 혹시 비행 훈련은 받았나?”
“열기구 비행은 해 봤습니다.”
에라이 진짜.
로베르 중령은 욕을 할 뻔했다.
하기야 사관학교가 해주는 비행 훈련이라면 포격 좌표 딸 때나 쓰는 열기구가 최대이기는 했을 거다. 그래도 프랑스 대육군의 항공대는 적잖은 인원이 글라이더 비행 경험 비슷한 건 있었지만, 그런 경험이 없다면 처음부터 교육시키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젠장, 사관학교에서 했어야 하는 일을 왜 현장에서 하고 있는 건데.’
사실 당연한 일이다. 공군사관학교나 비행학교가 없으니까. 정확히는 만들 계획은 있는데 교육 커리큘럼 같은 것도 제대로 짜여지지 않았다.
사실 공군사관학교가 없는 걸 따지기에는 애초에 공군부터가 없기는 했다.
“일단 소개부터 시켜 주지.”
자리에서 일어난 중령은 격납고로 걸어갔다. 격납고 안에서 유선형의 동체를 가진 전투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흔히 군용 항공기라 부르지만, 이 아가씨들의 이름은 미스테르네.”
“미스테르.”
“물론 또 개별 항공기들의 이름은 그 항공기를 타는 조종사들이 따로 붙여주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기초훈련은 내일부터 실시할 걸세, 대충 2주 정도 교육받으면 기본은 되고, 평균적으로 조종사는 두 달 정도 훈련받으면 투입이 가능하지.”
전투조종사 양성 치고는 굉장히 빠른 속도다. 사실 현대로 따지면 동력글라이더 조종과 난이도가 크게 다르지 않기에, 그리고 공중전투기동이네 뭐네 하는 게 거의 발달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지만.
아니, 전문적인 항공대를 창설한 게 애초에 프랑스가 최초다.
다른 국가에는 그러한 조직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고, 세계 최초 같은 것에 굉장히 민감한 프랑스인들은 그런 것도 굉장히 좋아했다.
물론 현장에서 뛰는 입장에서 감상을 말해 보자면 그냥 저 망할 물건들이었지만.
***
-부아아악!
수많은 총탄이 빗발치듯 날아가 표적으로 설정된 풍선을 쏴맞췄다.
펑펑 소리와 함께 목표가 된 풍선들이 터져나가고, 다음 표적을 조준한 전투기는 그대로 표적을 갈아버렸다.
그걸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으니, 루이였다.
보통 조종사가 되지 못한 사람들이-대부분의 경우 조종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항공 병과의 비행단 소속 장교들이 부러운 눈빛으로 전투기들이 훈련하거나 시험 비행하는 것을 보는 일은 왕왕 있는 일이다.
그러나 루이는 그런 경우는 아니다. 루이는 분명히 조종사 자격증을 땄고, 기초훈련은 다 되어 있기 때문에 규정대로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전투기 한 대를 받고 비행에 참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루이는 전투기를 탈 수 없었다.
당연하다. 이 시대의 비행기는 과부제조기다.
기체가 혼자 공중분해되고, 터지고, 부서지고, 뜯어지는 비행기를 동생이 타도록 황제가 놔둘 리가 없지 않은가.
물론 루이는 타고 싶어서 지원했지만, 황제나 황태후가 눈에 흙이 들어가지 않는 이상 그 꼴을 놔둘 리가 없었다.
조종사들은 추락해 죽지 않더라도 영구적인 난청이 생기고, 운용도 불편하다. 때문에 진지하게 펄스제트고 나발이고 집어치우고 피스톤 엔진을 개발하는 게 나을 지경이었고, 실제로 개발 중이었다.
개발이 완료되면 지금 있는 미스테르는 퇴역할 예정이었다. 아무리 세계 최초로 하늘을 날고, 정비가 편하면 뭐 하는가, 공중분해되고 추락하고 난리도 아닌데.
진지하게 속도가 빠르다는 걸 이용해서 무인으로 날려보내는 자폭기로 쓰는 게 훨씬 나을 지경이었다.
어찌되었든 간에, 설령 피스톤 엔진 항공기가 실전배치되었다고 해도 황제가 자기 동생을 비행기에 타게 해 줄 일은 없었다. 열기구면 몰라도 말이다.
장가도 안 가고 있는-사실 어련히 알아서 갈 거라고 생각해서 딱히 신붓감 찾는 데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이지만-동생이 비행기 타다가 비행기 개발 초기의 숭고한 희생자 1로 기억되는 건 황실의 어느 누구도 바라지 않았다.
그 안타까움에 루이 나폴레옹은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의 첫사랑을 알아주지 않는 것인가. 저 미려한 자태에 한눈에 반해 버렸는데.
그 어떤 여자보다, 그 어떤 미녀보다, 하늘을 난다는 것에 대한 로망이 더욱 달콤하다는 걸 알아주지 않는 형이 원망스러웠다.
설령 그러다가 죽게 된다고 해도 아쉽지 않을 만큼, 천성이 모험가에 가까웠던 루이 나폴레옹으로써는 하늘을 인간이 마치 새처럼 날 수 있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도무지 숨길 수 없는 욕구로 다가오게 된 것이었다.
날고 싶다, 자유롭게 새처럼 날고 싶었다.
물론 형이 들었다면 때늦은 중2병 그만 늘어놓고 장가나 갈 생각하라고 한 소리 했겠지만, 그로써는 하늘을, 구름과 새들 사이를 날 수 있기를 갈망했다.
***
1885년 8월 1일. 파리, 프랑스.
현재 튈르리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황제가 아니라 황후였다. 이는 황제 본인도 인정한 사실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둘째를 임신한 황후의 예정일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첫 자식이 딸이었던 관계로 둘째가 아들이라면 자연스럽게 황태자다. 당연히 전 유럽의 시선이 그리로 쏠릴 수밖에 없었다.
뭐, 황제도 지금 정무가 손에 잡히질 않는 실정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그래서 저희는...... 폐하, 괜찮으십니까?”
“괜찮네.”
그러면서도 자꾸 시선이 돌아가는 걸 본 브라우닝 박사는 한숨을 쉬었다.
“괜찮으실 겁니다. 처음도 아니시잖습니까.”
"브라우닝 박사, 박사는 총을 다루지, 총에 맞아 본 사람이 치료를 다 받은 뒤에 다시 총에 맞게 생겼다고 해서 걱정이 안 되오? 아니면 한 번 전쟁을 치른 사람이 다른 전쟁에 참전하게 되었다고 해서 걱정이 안 되겠소? 내가 걱정하는 것도 같은 거요."
그 말에는 브라우닝도 제법 대답이 궁했는지 시선을 은근히 피했다.
"뭐...... 일단 맞는 말씀이군요, 하지만 일단 제가 들어본 바로는 한 번 애를 낳아본 산모는 다음 아이부터는 좀 더 수월하게 낳는 경향이 있답니다. 아마 몸이랑 머리가 아이를 낳을 때 어떻게 하는지를 첫 아이를 낳을 때 학습해서 그렇다는 이론이 있던데....."
그 순간, 어디선가 비명 비슷한 소리가 들려와 나는 벌떡 일어났다.
복도에서도 비슷한 타이밍에 소란이 일어나기 시작한 걸로 보아 착각은 아니었다.
나는 즉각 문 밖으로 뛰쳐나가서 아무나 붙잡았다. 붙잡힌 시종은 황제가 자기를 잡았다는 걸 깨닫고 즉시 고개를 숙였다.
“뭔가! 무슨 일인가?”
“황후 마마께서 진통이 시작되셨습니다!”
드디어 시작이었다.
***
“아악! 아아악!”
내가 다급하게 황후의 분만실 앞까지 들이닥쳤을 때 의사와 간호사들이 나를 가로막았다.
“비키게!”
“폐하, 기다리십시오, 어차피 들어가 봐야 도움 안 됩니다.”
의사들 사이에 서 있던 앙리 장군이 막아서자, 나는 발을 동동 굴렀다.
“아니......”
“처음도 아니시잖습니까. 폐하. 원래 초산이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상대적으로 쉽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애를 낳아 본 적이 없다 보니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남자가 애를 낳을 수는 없으니 당연히 좀 긴장을 풀어주고자 하는 농담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불안감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망할, 남들도 들어가는데 내가 못 들어가는 게 말이나 되나.”
“지난번에도 그러셨잖습니까.”
원래 왕비나 황후의 출산은 공개행사지만, 귀족 부인급, 즉 계서제에 따라 입회 권한이 있는 인사들만 갈 수 있다. 이미 어머니는 안에 들어가계시고.
그런데 그 입회 권한이 남편인 나한테도 없다. 망할. 전통이 그렇다는데 내가 뭐라 할 수도 없고. 그러니 나는 그저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죄 없는 벽이나 걷어차면서 인내할 수밖에 없었다.
“아빠......”
“엘렌.”
“엄마 괜찮은 거야?”
바깥에 앉혀놓은 엘렌이 울먹거리자, 나는 급히 엘렌을 무릎 위에 앉혔다.
“괜찮아, 괜찮아, 엄마는 엘렌의 동생 낳아주러 가신 거야.”
“동생....?”
“그래, 동생.”
무릎 위에 앉은 엘렌의 머리를 쓰다듬어 가면서 나는 내 가슴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괜찮을 거다.’
시대가 20세기 중후반만 됐어도 이 정도로 걱정하지는 않았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석탄산을 잔뜩 가져와서 분만실을 박박 소독하라고 사람들을 들볶아놓는 것밖에 없었다. 물론 석탄산 소독은 거의 20년 전부터 쓰인 방법이긴 하지만, 이거 말고 뭐 방법이 있어야지.
그러자 앙리 장군이 뭔가를 내밀었다.
“응?”
“흠뻑 젖으셨습니다. 손이랑 이마라도 좀 닦으십시오.”
그제서야 나는 온몸이 땀으로 흥건하다는 걸 눈치챘다.
“고맙네.”
앙리 장군이 준 손수건을 받아든 나는 이마와 손을 대강 닦아냈다.
그때였다.
“으아아아아아앙!”
저 너머에서 힘찬 울음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