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폭풍 전의 고요(2)
“...........”
나는 묵묵히 땅을 바라보았다.
현기증이 일었다.
‘실수했다.’
그래, 아주 큰 실수했다.
‘어쩐지 계산이 이상해서 좀 찝찝하더라니....’
무슨 실수냐고?
피임 실패했다.
다시 말해, 내 아내가 임신했다.
물론, 혼인 관계인 부부가 아이를 임신한 거야 축하할 만한 일이다.
문제는 아직 내 황후가 10대라는 거지.
당연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다. 주변에서는 괜찮을 거라고 이야기하지만, 이 시대 사람들 말은 솔직히 믿지를 못하겠으니, 마약이 감기약으로 팔리는 세상에서 괜찮을 거라고 한들 곧이 들리겠냐고.
‘내가 그래서 스물 넘기 전에는 애 가지지 않으려고 했는데.’
내가 21세기에 듣기로는 조산이 위험하다고 했단 말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다들 10대 후반에 애 가지는데 뭐가 문제냐고 하겠지만 그래도 찝찝한 건 변하지 않는다.
결혼을 정치적 이유 때문에 일찍 했지만 그래도 내가 그녀를 아끼지 않는 게 아닌데.
하지만 알렉산드라의 행복한 표정을 보면 그 말이 나오다가도 기어들어간다.
그래, 괜찮겠지,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아이 이름은 어떻게 지을까요?”
“으음.......”
진지한 고민에 빠지려는 차에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아들이라면 빅토르가 어떠냐?”
“빅토르요?”
“그래.”
"그건 좀......... 차라리 르네는 어때요."
사실 프랑스에서 르네는 남녀 공용 이름이기는 한데.
“르네라.”
"그럼 아들이면 르네, 딸이면 엘린 어때?"
"으음........"
조금 떨떠름한 반응인데? 아니 어머니, 아들의 작명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드십니까?
“..... 뭐 좋다.”
뭡니까, 한바탕 싸우기 싫어서 져 준다는 느낌은, 아니 그렇게 치면 빅토르도 르네랑 오십보백보거든요?
물론 속으로만 중얼거렸으니 들릴 리는 없었겠지만, 어찌되었든 간에.
“애가 차는 것 같은데요?”
“몇 개월이나 됐다고 벌써 차? 과장은.”
“찰 때 된 거 맞다. 너도 이맘때쯤부터 차기 시작했어.”
2차 침몰. 아니 어머니가 내가 그랬다는데 내가 어떻게 반박하냐.
“루이 녀석은 지금 학기중이라서 오지는 못했지만 축하한다고 전해달라더구나.”
루이는 기어코 그랑제콜 사관학교에 들어갔다. 거기서 눈물이 쏙 빠지게 구르고 있는 모양이던데, 니가 선택한 입대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주님께 아이와 산모 모두 건강하게 태어나게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단다.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다, 너희 둘은 아직 젊으니 딸을 낳는다고 해도 또 낳으면 될 것 아니더냐?”
뭐.....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도 산모가 잘못될 확률이 21세기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높으니 그게 좀 걱정되어서 그렇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이 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더라도 성패는 하늘에 달려 있다는 거니, 나도 할 수 있는 만큼은 준비해 놓고 그 다음은 하늘에 맡겨야 할 터.
내가 원 역사에 있는 인물로 환생했고 역사 속에서 원래 나와 결혼했을 인물과 결혼해서 역사대로 애를 낳았으면 모를까 원 역사에서는 사산되었을 애로 태어나서 엉뚱한 사람과 결혼하고 자식을 낳게 되었으니 불안할 수밖에.
물론 그렇게 따지면 한도 끝도 없는 게 맞기는 한데...... 그래도 사람 마음이란 게 또 그렇지.
***
글라이더.
엔진의 힘을 빌리지 않고 활공 비행을 하는 모든 항공기를 의미하며, 엄밀히 말하면 종이비행기도 글라이더의 분류에 속한다.
그 역사도 오래된다. 가장 오래된 성공 기록은 886년에 안달루시아에서, 그리고 근대에 들어서는 1632년에 오스만 제국에서 첼레비라는 과학자가 3358m를 비행했다는 기록도 있다. 좀 더 가까운 기록을 따지면 1849년에 현대적 항공기의 기초를 닦았다고 할 만한 새로운 종류의 글라이더가 영국에서 짧은 비행이나마 성공한 바 있다.
그리고, 프랑스 대육군에서도 글라이더를 연구하고 있었다.
유선형에, 동체는 천을 씌운 철골로 만들고 날개는 나무에 천을 씌워 만든 글라이더들이 알제리의 해안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가장 멀쩡해 보이는 글라이더도 꼬리날개 부분에 제법 손상이 있었다. 당연히 비행 실패와 추락의 흔적이었다.
“제기랄.”
실패 횟수가 세 자리를 슬슬 넘어가기 시작할 것 같았다.
“필리프 대령님.”
“몇 초 날았냐?”
“그래도 이번에는 제법 오래 날았습니다. 20초요.”
착륙에 실패해서 그렇죠, 부관은 현명했기에 그 말은 삼켰다.
뭐, 경착륙도 착륙은 착륙이다. 추락도 하강은 하강이듯이.
프랑스 제국은 항공기의 개발을 독려하고 있었다. 물론 아직 벤츠를 비롯한 본격적인 내연기관 자동차 엔진이 개발되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했지만, 프랑스군은 내연 기관보다 먼저 비행기에 대한 기초개념을 잡으려 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게 이 글라이더 연구였다. 글라이더를 만든 뒤, 글라이더에 엔진과 연료통을 달면 그게 동력 비행기라는 발상이었다.
물론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서 엔진과 연료통 무게에 해당하는 비슷한 형상에 비슷한 무게추가 들어가서 무게중심을 잡고, 심지어 더미 연료탱크에는 바닷물을 채워서 무게중심을 맞추는 등의 깐깐한 실험이 필수적이었다.
물론 중간에 연료통을 비워준다거나, 아니면 물과 기름의 무게 차를 고려해야 한다거나 하는 것도 문제가 제기되었지만 그렇게까지 정밀하게 만들 여력도 없었고,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는 의견도 많아 결국 기각되었다.
거기에 엔진의 기초 시험은 어느 정도 진행되었고, 충분한 가동시간과 신뢰성을 보이는 엔진을 만드느라 본토의 연구소들도 밤낮없이 뚝딱거리고 있는 판국이었다.
“그냥 알루미늄 좀 달라고 해서 그걸로 날려볼까?”
“알루미늄이 요즘 싸졌다지만 그렇게 막 쓸 정도로 싸지는 않지 않습니까.......?”
“그럼 종이라도 쓰든가!”
알루미늄의 전기분해 제조 공정은 완성되었지만, 아직은 알루미늄이 비싼 편이었다. 사실 21세기에도 철보다는 비싸긴 하지만, 우선 세수가 급했던 프랑스 정부가 알루미늄 생산을 독점하면서 세금을 부과한 게 가장 큰 문제-그래도 세금을 포함해도 기존보다는 한참 싸지만-였지만, 그걸 감안해도 아직은 빙정석의 수입비용이나 전기분해를 할 때 드는 비용이 비싸다, 전기가 오죽 많이 들었으면 프랑스 정부가 아예 알루미늄 공장을 세울 때마다 부속 발전소를 하나씩 만들 정도였다. 이 시대의 발전소의 용량이 그리 크지 않다는 걸 감안해도 엄청난 것이다.
게다가 알루미늄 공장은 아직 몇 곳 없었는데, 이는 당연하지만 초기 투자 비용이 막대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알루미늄 사업은 엄청난 노다지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만, 프랑스 정부는 알루미늄 생산기업들을 비상장회사로 유지하고 황실이나 재무부, 그 외 신원이 확실한 프랑스 내 저명인사나 기업 등의 투자만 받았다.
당연히 기술유출을 극도로 경계했기에 시행한 조치였다.
아무튼, 그래서 알루미늄이 싼값은 아니었다. 물론 프랑스 대육군이 요청한다면 세금 안 떼고 상대적으로 싼 값에 대량공급을 받을 수야 있겠지만 그래도 아직 막 쓸 물건은 아니다.
“종이.... 종이섬유를 쌓은 다음에 압착하면 제법 쓸만하지 않을까요? 캔버스도 쓰는데요 뭐.”
“습기는.”
“겉에 알루미늄 같은 거 붙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
“대령님?”
“그럴듯하네. 시제품 만들어와.”
“예?”
“만들어오라고. 애들 필요한 만큼 데려다 써도 된다. 3일 주지.”
그렇게 부관은 상관의 심사가 뒤틀려 있단 걸 파악하지 못하고 괜히 신나서 입을 잘못 놀린 것에 대한 죗값을 야근으로 톡톡히 치르게 되었다.
***
1882년 1월 21일, 비스케이 만, 라 로셀.
-콰아아아!
귀청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소음에 고막이 터질 지경이었다.
“젠장, 저래서 조종사가 귀나 안 먹겠나?”
“귀마개 씌워서 태웠습니다!”
“뭐라고?”
“귀마개 씌웠다고요!”
세계 최초의 펄스제트 엔진을 단 글라이더가 굉음을 내면서 지면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저거, 괜찮겠지?”
저 펄스제트 엔진은 구조가 미치도록 간단하지만, 저놈의 리드밸브가 얼마나 속을 썩였는지 아는 입장에서는 살이 떨리는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괜찮습니다, 저 설계랑 재질로 15시간 연속 가동에 성공했었습니다.”
“제기랄, 그게 문제가 아니야, 엔진을 장착하고 저놈을 날려보는 거 처음이잖아. 그 전에는 글라이더로만 비행했고.”
나중 가서는 공중에서 엔진이 꺼졌을 때 활공하는 테스트를 한다면서 열기구에서 저놈을 집어던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열기구랑 충돌해서 추락하는 사고도 있었고, 이로 인한 순직자도 있었다.
당연하지만 기밀 프로젝트였기에 열기구를 이용한 포병 훈련 도중 예상치 못한 강풍으로 추락해 즉사했다는 변명만 유족에게 위로금과 함께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앙리 장군에 황제 폐하까지 여기 오셨네, 만약 여기서 대형사고라도 난다면.....”
연구진들의 등에 진땀이 흘렀다.
‘제발 성공해라.’
차라리 무인 상태로 몇 번 실험했다면 안심이나마 되련만, 이건 그 특성상 무인 상태로 실험할 수가 없어서 조종사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리고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쌍발로 달린 펄스제트 엔진이 빠르게 점프대를 통해 항공기를 이륙시켰다.
글라이더 형태의 비행기가 지상을 박차고 올랐다.
높이, 그리고 더 높이.
“성공...... 성공이야?”
그리고 그들은 보았다. 선회하는 항공기를.
세계 최초의 인간의 동력 비행이었다.
사실 그 의미는 크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미 글라이더든, 열기구든 간에 하늘을 날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많았으니까.
게다가 펄스제트 엔진의 특성상 속도 조절이 굉장히 까다로웠고, 착륙할 때는 글라이더 착륙하듯이 아예 엔진을 끄고 활강 착륙을 해야 했기에 정말 ‘자유롭게’ 하늘을 날았다고 보기에는 어폐가 많았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간에 그들은 성공했다.
지난 몇 년간의 노고가 낸 성과에 모두가 환호했다.
얼마 뒤, 성공적인 착륙을 한 비행기에서 청년 한 사람이 내렸다.
황제가 그 청년의 앞으로 향했다.
“정말 훌륭하네! 정말 대단해,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를 치하하고 싶으나 적절한 말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아 아쉬울 뿐이네, 그저 그대들에게 박수를 보낼 수밖에.”
나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대의 이름이 무엇인가, 조종사?”
“알베르, 알베르 대위입니다!”
“아니, 이제부터 귀관은 중령이네, 이번 성공에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으니, 여기에 참가한 모든 이들에게 1계급 특진을, 그리고 알베르 중령을 비롯해 핵심 인물들에게는 2계급 특진을 명하는 바네! 조만간 훈장 수여도 준비되어 있으니 기대하고 있게나!”
나는 즐겁게 웃었다.
하지만 동시에 알고 있었다. 10년이 되지 않아, 저 비행기는 무기를 달고 수많은 사람들을 살육하게 되리라는 것을.
아니, 애초에 그러기 위해 만들어졌음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