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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보나파르트-28화 (28/200)

28화 성녀(1)

우리 소중한 동맹국의 집안싸움을 보면 참..... 집안꼴 막장으로 돌아간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막장 부모에 시월드에 패륜에.... 내가 아니라 누구라도 합스부르크 가문에 내 딸 보내고 싶진 않을 거다. 그쪽 여자를 우리가 데려오는 거면 모를까. 그런데 어린 시절 가정교육이 중요하다는 걸 생각해 보면 합스부르크 가문의 황녀를 데려와도 그 여자가 딱히 정상적이리라는 생각은 안 든다.

어디 사랑받고 자란 집안.... 그래, 뭐 합스부르크 왕가에 집안은 많으니까 그런 집안도 있을 거다. 자식들도 사랑으로 보듬어주는 그런 사람이 부모라면 아내든 며느리로든 괜찮은 상대지. 물론 난 지금 내 아내로도 만족한다만.

그런데 최소한 프란츠 요제프 일가는 아니다.

사랑받을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사랑하겠는가? 사랑받아본 적 없는 사람은 상대에게 장미꽃을 내밀어야 할지, 아니면 칼을 내밀어야 할지도 모를 텐데.

상대를 칼로 찌르는 것이, 혹은 슬퍼서 구석에서 웅크려 울고 있는데도 위로 하나 없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그 사람이 불쌍하기는 한데 우리 집안에 들일 생각은 없다. 내가 모든 인간을 책임져줄 필요는 없고, 그게 나와 혈연관계도 없는 황족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사람의 천성과 성격, 성향이란 건 타고나는 것이 제법 큰 비중이 있겠지만 어려서 머리가 말랑말랑할 때 받은 교육도 그만한 비중은 있겠지."

원래 사람은 살아가면서 조금씩 마모되면서 변하는 법이다. 그러나 어릴 적에 겪은 경험과 고정관념은 쉽사리 바꾸기 어렵다. 그 경험은 자신의 뇌리에 깊숙히 남아 사람의 행동원리를 규정하기에.

과거에 자신이 잘못 알고 있었다는 걸 인정하면 자신이 그간 잘못된 정보에 기반해 행동하여 잘못을 저질러 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경우가 나이가 들수록 늘어간다. 그리고 사람은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받아들이기보다는 떠넘길 수 있다면 떠넘기는 존재다.

그러다 보면 자신의 눈 앞에 있는 것을 부정하게 되고, 그만큼 강하지 못하다면 스스로 창조해내는 법, 얼마나 많은 이들이 확증편향에 시달렸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합리화를 해 왔던가. 그런 걸 생각하면 참..... 인간을 상대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직업적으로든 일상적으로든.

아무튼, 저 꼬라지 안 나려면 나도 잘 해야지, 그래도 내 어머니인 외제니 황태후가 내 아내 시집살이를 지옥으로 만들 사람은 아니고, 사이좋게 잘 지내는 모양이니 그거 하나는 다행인 것 같다.

저 집안 꼬라지의 책임은 한 51%는 조피 대공비..... 그러니까 이제 막 즉위하는 루돌프의 할머니한테 있고, 죽은 프란츠 요제프랑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가 한 24%랑 25%씩 나눠가져야 할 거다 아마.

다르게 말하자면 내 아들이 루돌프 Mk.2가 되지 않으려거든 저 집안 인간들이 한 것과 정확히 반대로 해야 한다는 거지.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다, 집안에 신경을 더 많이 쓰는 것, 저 누덕누덕 기워진 오스트리아-헝가리라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언어도 제대로 안 통한다, 발칸 영토를 러시아에 팔아넘기면서 행정적 부담이 많이 줄기는 했겠지만 황제가 조율해야 할 문제가 한둘이 아니라는 것도 문제다.

그 부담은.... 막말로 러시아 차르나 영국, 이탈리아의 왕이 짊어져야 할 업무 부담은 싸대기를 양쪽으로 후려칠 정도라는 정도만 알아두자.

프란츠 요제프 입장에서는 빡센 근무 끝에 시발시발 소리를 하면서 집에 돌아왔는데 화기애애한 가정은 어디 가고 애 우는 소리랑 어머니가 아내 갈구는 소리만 들려와 봐라. 어머니한테 대거리해서 아내 지켜줄 자신은 없어서 아내한테 참으라고 하니 아내가 울화병이 나서 애들 내팽개치고 집을 나가버리네? 집안 꼬라지 참 잘 돌아간다.

뭐 그렇다고 해도 조피 대공비가 자기 애들을 아동학대에 가깝게 굴려대는데도 못 본 척 못 들은 척 하면서 나랏일만 매달린 건 도무지 쉴드가 안 되지만. 그 아들이 나한테 보낸 편지에서 한이 줄줄 새더구만, 이웃 나라 황제한테 황태자가 보내는 편지에 셀프 패드립이 안 적힌 날이 없다는 게 말이 되나.

그런 면에서 나는 훨씬 업무 부담이 적다. 일단 대부분의 국정 업무는 총리에게 짬때렸고 외교랑 군부만 조율하면 되거든, 의회 해산권? 거부권? 진짜 이건 안 된다 싶은 거 아니면 애초에 행사할 생각 없었다.

물론 총리가 나한테 매일 형식상으로 어떻게 하기로 했다고 보고하지만 형식적인 업무고, 아무튼 간에 가정에 신경쓸 여유는 내가 훨씬 많다. 루돌프는 아예 결혼을 안 했으니 그렇다 치고.

내가 지금 가족이라 부르는 사람은 세 사람이다. 어머니, 동생, 그리고 아내.

일단 어머님은 알아서 하신다. 정치 감각도 있으시고 사람도 좋으시고.. 알아서 정치적 행보를 보이시면서 내게 국내 지지를 몰아다주고 계시니 선물이나 꾸준히 보내드리고 간혹 찾아뵈면 그만이다. 루이 녀석이야 알아서 하겠지, 애도 아니고.

즉 내가 전심전력을 다해야 할 상대는 내 아내 엘리자베트다. 그러고 보니 내 아내도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네, 같은 가문에 동명이인이기까지 하니 기분 참 거시기하다.

문제는 여러 가지다. 첫째로...... 엘리자베트는 그냥 애다! 농담이 아니라 나보다 9살이나 어리다고!

덕분에 피임에도 신경쓰고 있다. 기껏해야 주기법이지만. 사실 황후의 가장 중요한 책무가 대를 이을 후계자를 낳는 거라는 걸 감안하면 이율배반적이지만 어쩌겠어,

20세기 21세기도 아니고 19세기, 아편을 두통약처럼 쓰고 헤로인을 감기약으로 파는 정신나간 시대에 중고등학생이 임신하고 출산할 때까지 살아 있을 수 있을까.....?

모르면 몰라도 알고서 사람 목숨, 그것도 아무리 정략혼이었다지만 내 아내의 목숨을 가지고 도박하고 싶진 않다. 내가 후계자가 급해서 당장 애 낳아야 하는 것도 아닌데.

물론 이건 나 혼자만 아는 사실이다, 다른 사람이 알면, 심지어 황후 본인이라도 그리 좋아하지는 않을 테니까. 내가 대놓고 피임도구는 못 쓰고 기껏해야 피곤하다는 핑계로 주기법으로 버티는 것도 그래서고.

아무튼, 그래서 계획상 첫 애는 몇 년 더 기다렸다가 낳는 게 더 현명해 보였다. 내가 급사한다고 해도 대가 끊어지는 것도 아니고 루이 녀석이 멀쩡히 살아 있는데.

둘째는 ‘내’ 문제다.

그녀의 문제가 아니라,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내’ 문제.

‘미안해.’

휴대전화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내 귀에 환청처럼 메아리쳤다.

“후우......”

나는 얼굴을 감쌌다. 내 앞에는 알루미늄 연구 진행에 대한 보고서가 있었다.

아직 알루미늄은 굉장히 비싼 재료다. 나는 안 쓰지만 연회가 열리면 나폴레옹 3세는 손님들에게는 은식기를 내주고 자기는 알루미늄 식기를 써서 부를 과시했을 정도다, 나는 그냥 은식기 쓴다만.

그리고 나는 빙정석과 전기분해라는 키워드를 알고 있었다. 따라서, 내가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일단 키워드를 던져주고, 죽어라고 갈구면, 뭐가 되었든 나온다.

지금 알루미늄은 각국이 알루미늄을 이용한 조형물을 만들어서 자국의 부를 과시하는 데 쓰인다. 미국 국회의사당의 돔도 알루미늄 코팅을 하는 게 논의되었고 만국박람회 때 동상들의 창 끝에 알루미늄박을 씌운다거나 하는 게 국력의 과시 수단으로 쓰인다. 21세기에는 싼티난다고 까일 일이지만.

따라서 알루미늄 대량생산 기술을 일찍 발명하면? 떼돈이 기다린다. 당연히 국책사업이 아니라 내가 보나파르트 가문의 개인 재산을 이용해서 하는 사업이다.

빙정석을 비밀리에 매입하는 건 꽤나 빡셌지만, 일단 보안을 지키면서 작업을 하자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성과가 있다는 보고에 나는 억지로 미소지었다.

그리고 그 다음, 신종 철강 양산. 신형 전함의 장갑판으로 쓰기 적합한 고급 압연강판의 개발은 순조로웠다.

물론 내가 전함의 장갑판으로 쓰기 적합한 철을 알 턱이 없다.

하지만 프랑스 해군은 안다. 왜? 프랑스 해군이 청년학파 때문에 병신 이미지가 있어서 그렇지 함선의 건조 노하우는 일부분 영국보다 우월한 부분도 있거든. 이건 프랑스 왕국 시절부터 내려온 전통이다. 원래 해적놈들은 함대를 박리다매하는 경우가 많았거든. 한 마디로 질보다 양을 택했다는 말씀. 프랑스랑 스페인은 그 반대로 전통적으로 양보다 질이었고.

즉 프랑스 해군에게 ‘함대에 철갑함 더 만들어줄 테니까 예산 투입해서 전금속제 군함에 쓰기 적합한 아주 고급진 철강 생산 기술 좀 뽑아내 봐라’ 하면 알아서 제독들이 왈왈 컹컹 멍멍대면서라도 이게 좋다 저게 좋다 하면서 테스트도 해 보고 견적을 낸단 말이지, 높으신 분이 이래서 좋다.

14인치 주포 개발은 상당히 골때린다. 원래 나는 전함 주포가 통짜로 뽑아내는 물건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가열, 단조, 절삭, 열처리, 담금질...... 그냥 19세기까지 만들어진, 프랑스라는 유럽 열강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금속 가공기술이 총동원됐다고 봐도 된다.

아무튼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서 그렇지 못 만들 물건은 아니고, 전함이 핵무기급 전략병기라는 걸 감안하면 시간과 비용은 감수할 수 있다.

부포로 사용될 신무기의 개발은 거기에 비해서는 굉장히 순조롭고, 시제품의 신뢰성 문제가 조금 걸리지만, 이것도 기술자들을 갈아 가면서 개선하고 있고, 기관총 완성해놓고 범프스톡 소총을 잡고 어떻게든 명중률을 개선해 보겠다고 발버둥치고 있던 브라우닝까지 소환했으니 어떻게 되겠지. 그러니까 그거 그냥 총알분무기라니까 그러네.

총기의 신 존 브라우닝에게 시간과 예산을 주면 총포 분야, 최소한 개인화기에서는 문제가 없다. 이런 게 치트키지.

물론 브라우닝이 전함 주포 같은 건 너무 규격이 다른 이야기니까 도움을 못 줄 가능성이 높긴 하다, 그래도 뭐 한 번 구경이나 시켜주기라도 하지, 혹시 아나? 브라우닝이 무슨 획기적인 신형 주포를 뚝딱 설계해줄지. 부포 문제 끝내면 주포 쪽에도 잠깐 가 보라고 해야겠네.

영국제 기계식 톱니바퀴 계산기를 개선한 사통장치는 이미 기본적인 개발은 끝났다. 이젠 비밀유지랑 사통장치의 세팅에 필요한 데이터 축적이 문제지.

마지막으로 증기터빈, 이게 생각보다 오래 걸리더라. 그래도 이것도 시제품 생산 단계까지는 왔으니까 1년 내에 끝날 것으로 보인다.

길게 주저리주저리 늘어놨지만, 결론은 하나다.

드레드노트, 이곳에서 잔 다르크라 불릴 신개념 전함을 만들기 위한 모든 기본 기술은 등장했거나, 조만간 등장할 것이라는 것.

그렇게 되면 이제 남은 건 개념적인 혁신뿐이다.

성녀가 등장하면, 비스마르크는 자신의 모든 전제가 무너진다는 것에 절망하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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