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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보나파르트-26화 (26/200)

26화 파문(4)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제국.

여러 대의 마차들이 동원되었고, 수많은 병사들이 철통같이 지키는 행렬 속에서 나는 메모를 읽었다.

“앙리 장군.”

“예, 폐하.”

“이번 회담에서 확실히 해야 할 것은 공동전선이야, 러시아가 발칸과 아나톨리아 모두를 병합하고 흑해를 러시아의 호수로 만들든 말든 상관은 없는데, 대신 오스트리아-헝가리를 확실하게 달래야 하지,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이탈리아의 배를 갈라버리는 게 가장 싸게 먹혀.”

교황령 북쪽으로는 통째로 오스트리아-헝가리에게 선물해서라도 합스부르크가 우리 손 끊겠다고 나서는 건 안 된다.

한 나라의 배를, 그것도 나중에 가면 열강의 말석, 7대 열강의 반열에 들 나라의 배를 가르니 마니 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 열강들이 아예 패거리로 뭉쳐서 전쟁을 한다면 그게 가능해진다.

“이탈리아 측이 절대 앉아서 당하지는 않을 겁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이탈리아를 제압할 수 있을지.....”

"오스트리아-헝가리군이 약체기는 하지, 하지만 이탈리아도 다른 나라로 갈라져서 산 세월이 길어서 그렇게까지 조국에 충성할까 의문이네. 물론 통일 이탈리아 운동이 좀 격렬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남부는 북부 이탈리아 중심의 현 체제에 불만이 많다고 하네, 힘이 없어서 침묵할 뿐이지."

물론 발칸을 팔아치우면 좀 덜해지겠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포고문 하나 작성하느라 몇개 국어로 포고문을 작성했는지 생각해 보면 만만치는 않을 거다, 장교의 지시들을 병사들이 외국어라 알아듣지를 못하는 게 군대냐.

그 순간이었다.

-콰앙!

폭발음이 들렸다.

“뭐지?”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행렬이 멈추고 고함 소리가 들렸다.

“이 마차는 방탄입니다. 일단 안에 계속 계십시오. 제가 나가서 살펴보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가보지, 예감이 좋지 않아.”

나는 허리띠에 찔러놓은 권총을 잡았다. 존 브라우닝이 나를 위해 특별히 만들어준 물건이었다.

“예감이 좋지 않으면 더더욱 안에 있으셔야..... 제기랄.”

밖을 본 앙리 장군이 급히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폐하, 무조건 안에 계십시오!”

“............”

나는 하나를 직감했다.

‘설마? 아니, 그래도, 설마 그게 오늘이라고?’

나는 주저하지 않고 권총을 뽑은 채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내 예측이 맞다면 이 테러는 애초에 날 노린 게 아니다, 그리고.....

“제기랄!”

알렉산드르 2세가 행렬을 구경하다 부상당한 소녀를 도우려 하는 모습을 본 나는 악을 썼다.

“황제 폐하! 당장 마차로 돌아가십시오! 아니, 엎드려!”

나는 권총을 들어올리면서 빠르게 군중을 훑었다.

‘아니고, 아니고, 아니고........’

찾았다. 이상한 꾸러미를 꽃다발처럼 든 여인이 그걸 황제에게 던지려 하고 있었다.

‘인민의 의지!’

나는 그대로 권총의 총구를 지향했다.

슬로우모션처럼 모든 게 느껴졌다. 상황을 파악한 알렉산드르 2세의 모습, 권총을 겨눈 나, 그리고 폭탄을 던지려는 테러범까지.

-타앙!

브라우닝이 일일이 수제로 제작한 권총의 공이가 탄환의 뒤꽁무니를 때리고, 날아갔다.

그리고 동시에 느꼈다. 뭐가 되었든 간에 잘못됐다고.

“이런 씹.....”

권총에 장전된 덤덤탄은 빠르게 날아가 테러범을 맞췄다. 하지만 테러범은 어찌어찌 투척 동작을 해냈다. 테러범의 어께에서 피가 뿜어졌다.

모든 물건을 던질 때, 사람은 어께를 사용한다.

회전하며 날아간 탄환이 영구 공동을 남기고 팽창해 근육 조직과 뼈를 찢어발기는 것 뿐 아니라 물리적 충격량만으로 이 투척 동작에 변화가 생기지 않을 리 없었다.

결론만 말해, 폭탄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다.

내 시선, 알렉산드르 2세의 시선, 테러범의 당혹스러운 시선이 모두 한 곳에 모였다.

알렉산드르 2세는 물론이고 나조차도 지나친 위치에 떨어진 폭탄, 그곳에는 세 번째 마차가 있었다. 그리고, 마차 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안 돼!”

그리고 내 의식이 끊어졌다.

***

나는 다시 눈을 떴다. 소란을 들어보니 폭탄이 터지고 길어야 분 단위의 시간이 지난 모양이었다. 아니, 내가 굴러다니는데 프랑스 수행원들이 아무 조치도 안 취했을 리 없다는 걸 감안하면 몇 초였을지도.

나는 바닥을 구르면서 놓친 권총을 빠르게 집어들었다. 몸 이곳저곳이 부딪혀서 좀 심하게 아팠지만, 피멍 이상의 육체적 피해는 없는 듯 했다. 차르는? 나보다 폭발 위치에서 멀었으니 다쳤을 리가, 카자크 기병들과 근위대가 몸으로 방어막을 치고 마차로 밀어넣는 걸 보니 안심해도 될 듯 했다.

그리고 진짜 문제는.....

“황제 폐하!”

이곳에는 세 번째 황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급하게 뛰어가서 세 번째 마차 안을 들여다보았다.

파편에 중상을 입은 프란츠 요제프 1세는 이미 의식이 없었다.

“의사! 의사!”

나는 악을 썼다.

“황제가 부상당했다! 의사 불러! 의사!”

늦었다는 건 안다. 내가 의학에 조예가 깊지는 않지만 저 꼬라지가 된 사람을 살리는 건 21세기가 되어도 헬기로 대학병원으로 이송하는 게 아니면 어려울 거라는 건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지금은 19세기다.

“제기랄......”

나는 옷가지로 상처를 틀어막아 봤지만 그거 가지고 수습될 선은 진작 넘었다.

그때, 우악스러운 손길이 나를 끌어냈다.

“황제 폐하! 당장 피하셔야 합니다!”

앙리 장군은 날 끌어내며 외쳤다.

“근위대! 젠장, 근위대! 폐하를 모셔라! 당장 출발한다!”

***

상트페테르부르크, 황궁.

나는 귀빈실에서 머리를 감싸고 앉아 있었다.

“이중제국 황제는 도착하자마자 숨지셨답니다.”

“차르는.”

“내실에 계신다고 합니다. 황후께서 황제 폐하께 빠른 대처에 감사를 표한다고.....”

“그 대처 때문에 엉뚱한 사람이 죽었어.”

“폐하의 잘못이 아닙니다.”

나는 덜덜 떨리는, 여태 화약 냄새가 풍기는 손을 감싸쥐었다.

“범인은... 아니, 알 거 없다, 인민의 의지겠지.”

“정확합니다. 여자는 입을 다물었지만 처음 폭탄을 던진 공범이 실토했다고 합니다.”

“..........”

나는 앙리 장군을 바라보았다.

“소식은 이미 퍼졌겠지.”

“예, 이미 호외가 나갔을 겁니다. 북독일 연방, 영국, 이탈리아, 본국, 오스만, 그리고.....”

오스트리아-헝가리까지.

“사상 최대의 체포 작전이 이루어질 거라고 합니다. 볼 것 없이 사형이겠죠.”

당연하다. 러시아 인민주의자가 차르를 암살하려다 동맹국 황제를 시해한 사건이다.

일단 러시아 황제까지 목숨의 위협을 실제로 받았고, 누가 봐도 차르를 노리려다가 실패한 상황이니 러시아가 배후에 있다는 소리는 듣지 않아도 러시아에 큰 외교적 승리를 안겨 준 황제가 러시아인에게 살해당했다는 것은 러시아의 외교적 입지 축소를 피할 수 없게 만들 것이다.

당장 동맹의 파탄을 막기 위해서라도 러시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에도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할 거고, 거기에 같이 휘말릴 뻔한 나한테도 뭔가 보상을 내줘야 한다. 러시아가 아무리 양아치 외교를 자주 한다고 해도 이 상황은 고집부릴 상황이 아니다.

무엇보다 알렉산드르 2세는 치세 내내 러시아의 외교적 고립을 벗어나려고 발버둥친 인간이고.

“배후가 있다는 소문이 돌 겁니다. 오스만, 프로이센, 영국.........”

“북독일 연방 정부는 가능성이 없어, 영국도 황제 암살이라는 리스크를 생각하면 말도 안 될 일이고, 오스만이 배후라면 말은 되지만 그놈들이 그렇게 유능할까. 인민주의자 테러단체가 배후일 가능성이 매우 높지, 이전에도 차르 암살을 시도한 전적이 있으니.”

그래도 냉정하게 보면 그런 소문이 돈다는 것 자체가 이득이다. 프로이센이든 영국이든 간에 차르 암살미수와 이중제국 황제의 암살 배후로 지목받으면 꼼짝없이 유럽 공공의 적 등극이니, 한동안은 뒷공작 같은 걸 자제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추모 열기가 가라앉을 때까지는 테러를 규탄하고 이중제국과 러시아에게 위로를 전하는 일 외에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을 터.

게다가 루돌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내부의 대표적인 친불파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분명 국익에는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사람이 죽었는데 그렇게 주판이나 튕기고 앉아있는 건 인간으로써는 욕먹을 일이다. 하지만 정치인이라는 족속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계산기를 두드릴 터.

하지만 적어도 난 그러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들어왔다.

러시아 제국 최고 집행 위원회 의장, 사실상의 재상인 미하일 로리스멜리코프 백작이었다.

들어오자마자 무릎을 꿇은 백작은 고개를 깊이 숙였다.

“경호의 실패로 인해 작금의 사태를 발생하게 한 것에 대해 깊이 사죄드립니다. 원래는 바로 제가 찾아뵈었어야 하지만.......”

바로 오지 않은 이유는 짐작간다. 오스트리아 대사랑 대화하느라 그랬겠지.

“차르께서는 무탈하시오?”

“큰 부상은 없으십니다. 현재 주치의들의 치료를 받고 계십니다.”

“불행 중 다행이구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테러 배후는 인민주의자들이 맞소?”

“예, 그렇습니다. 그들 모두는 대가를 치를 것입니다. 그리고 황제 폐하의 경호 역시 훨씬 강화할 예정입니다.”

“이번 회담에서 안 그래도 프랑스 제국 정보부와 오흐라나 간의 교류를 제안하려 했었소, 사실 차르 암살 미수 사건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 않소? 큼지막한 사건만 해도 3번은 일어났던 것으로 알고 있소만.”

“...... 사실입니다.”

“우방국의 국내사정이 복잡해져서 좋을 일은 없으니, 서로 돕고 살자는 차원에서 제안하려 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협상은 이번에 하기는 어렵겠구려.”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한 가지 조언을 하자면 체포된 이들의 가족과 친구도 면밀하게 감시하라고 하고 싶소, 다들 한 번 이상 체포된 자의 아내, 동생, 친구잖소, 결국 반역자들은 끼리끼리 모이는 법이지, 한 번 잡은 반역자를 풀어주는 것도 문제고, 유형을 보내기보다는 차라리 묻어버리시오, 죽은 반역자는 탈출하지 못하지 않소.”

이번에 나한테 총 맞은 여자는 이미 체포된 혁명가의 아내였고, 아직...... 안 태어났나? 레닌의 생년월일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레닌만 해도 현 황태자 알렉산드르 3세가 차르가 된 뒤 암살을 시도한 이력이 있는 형을 두고 있다.

“연좌제는 야만의 상징이지만, 개인적으로 볼 때 혁명을 운운하는 불온사상은 예외요, 그건 페스트 같아서 주변까지 물들이니, 곰팡이를 없애려면 곰팡이가 보이는 부분만 없애서는 모자라고 그 주변의 보이지 않는 곰팡이까지 도려내야 퇴치할 수 있는 법이오.”

“명심하겠습니다.”

“... 나 역시 러시아는 조속히 떠나겠지만 바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 빈으로 가리다. 열차는 러시아 제국 정부의 배려를 부탁하겠소.”

“물론입니다. 최우선적으로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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