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23화 (23/200)

23화 파문(1)

영국, 런던.

“우선적으로 삼국동맹을 깨놓고 프랑스의 힘을 빼놓는 게 유일한 방법입니다.”

디즈레일리 총리의 앞에서 브리핑이 이어졌다.

“삼국동맹은 세 축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이 중 가장 약한 고리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지.”

“오스트리아-헝가리는 발칸을 잃었습니다. 여러 신뢰할 만한 정보 출처를 조사한 결과, 이를 주선한 이는 나폴레옹 4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이 거래로 명백히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손해를 보았고, 이는 프랑스가 어디에서든 벌충해주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가능했을 겁니다. 이는 두 곳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독일 방면, 그리고 이탈리아 방면입니다. 여러 정보를 종합한 결과 이탈리아와의 전쟁이 발발했을 경우, 프랑스가 오스트리아-헝가리를 지원하고 북이탈리아 지역을 되찾는 것을 돕겠다는 전제조건을 걸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런 의혹을 공개하면 이탈리아인들은 반드시 전쟁을 선포할 겁니다.”

“프랑스는?”

“동맹의 유지를 위해서라면 무리해서라도 도울 겁니다. 그리고 이탈리아는 지원이 없다면 높은 확률로 패배할 것입니다. 이 경우 프랑스가 국력을 회복할 시간을 추가로 벌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삼국 동맹이 더욱 돈독해질 것이고, 현 상황을 타개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겠지, 일단 우리는 국력의 소모 없이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건 매력적이네만, 프랑스와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유대를 깰 수 없다면 시간벌이 이상도 이하도 되지 못할 거네, 이건 예비 계획으로만 남겨두지.”

“여론 선동은 효과적으로 먹혀들 가능성이 낮습니다. 북독일 연방이 저질러놓은 짓이 있으니 말입니다. 이중제국과 프랑스 모두 북독일 연방에 대한 적대감이 굉장히 높습니다.”

“극동에서 러시아를 찔러볼 수는 없나?”

“어느 나라로 말씀입니까?”

극동이라면 세 개의 국가가 있다. 청, 조선, 일본.

일본에서는 사무라이들에게 주던 녹읍이 폐지되고 이제 막 폐도령이 내려져 국내 불안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었고, 조선은 이제 막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었다. 청나라가 러시아의 발목이라도 잡아주리라고 기대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고.

즉, 저 셋이 힘을 합쳐 싸워도 러시아의 카자크 기병이나 이길까 의문이었다.

“어느 나라든.”

“이미 일본에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만.....”

“그걸로는 모자라네, 홍콩에 연락을 넣어, 지원은 얼마든 해줄 테니 조선이든 일본이든 간에 최대한 영향력을 넓히라고, 극동의 상황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시선을 1년이라도 붙잡아놓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네.”

“알겠습니다. 일본뿐 아니라 조선 쪽에도 신경을 쓰라고 홍콩총독부에 연락하겠습니다. 오히려 그런 용도로는 조선이 좀 더 낫겠죠, 아무래도 육로로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까.”

장기적인 압박이 아니라, 그 나라가 완전히 망하게 되더라도 단 한 번 러시아의 성질을 정면으로 긁어 시선을 붙잡아놓는 용도라면 영토가 붙어 있는 게 낫다. 바다를 건너야 하는 일본보다야 조선이 러시아에게 더 구미가 당길 테니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전하게. 그리고 스페인을 움직여 프랑스의 관심을 끄는 건 어떤가? 프랑스가 이탈리아 일에 개입할 정신을 남겨두지 않은 상태에서 이탈리아와 이중제국 간의 전쟁을 발발시키면 양국의 관계 악화가 가능할 듯 한데 말이네.”

“어떤 방식으로 말씀입니까?”

“스페인의 정치세력들을 충동질해 나폴레옹 4세에게 스페인의 왕관을 바친다고 해 보게, 프랑스는 한동안 스페인을 병합하고자 적잖은 수고를 기울이지 않았나. 그 상황에서 이탈리아가 이중제국을 공격하게 유도하면 어떻겠는가.”

“가능하겠습니까? 이미......”

스페인에는 이미 멀쩡히 보르본 왕조가 들어서 있다. 아직 2년밖에 유지되지 않은 체제였지만 이제 와서 보나파르트에게 왕관을 바친다느니 어쩌니 하는 게 쉬울 리 없었다.

“왕국에 불만을 품은 자들은 많네, 나폴레옹 4세는 사회주의자들에게도 나름 지지를 받는다고 했지, 그러면 스페인 내 사회주의자들을 충동질해도 되고, 아니면 농민 세력을 충동질해도 되겠지, 무정부주의자나 카탈루냐 민족주의자들은 어렵겠지만.”

“알폰소 12세가 살아 있는 한은 어렵습니다.”

알폰소 12세는 유능한 군주였다. 그가 즉위한 뒤로 빠르게 국내외 혼란이 수습되어 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왕의 피를 보고 싶어하는 이들은 스페인 내에서도 차고 넘쳤다.

아나키스트라든가, 민족주의자들이라거나, 바스크인들이라든가.

“사실 제대로 된 정부의 요청도 필요하지 않다, 필요한 건 명분이고, 그 명분을 스페인인들이 가져다 바쳤음을 프랑스와 전 세계에 알릴 수단이지.”

스페인군은 약화될 대로 약화되었지만 스페인인들이 프랑스의 지배를 쉽사리 받아들이지는 않을 거고, 결국 나폴레옹 1세 시절에 그랬듯이 저항을 지속해나갈 게 뻔한 일이고, 전쟁은 질질 늘어지게 된다, 그걸 본 이탈리아는 여론도 전쟁을 부르짖겠다,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다고 판단해 오스트리아-헝가리로 쳐들어갈 터.

상황이 그렇게 돌아가면 프랑스의 여론은 가시적인 스페인의 병합과 얻는 것 없는 이탈리아와의 전쟁 중 뭘 원할까. 말하지 않아도 아는 일 아닌가? 그 상황에서 이탈리아 왕국을 살짝 지원해주면 삼국 동맹은 파탄에 이를 것이다.

나폴레옹 4세는 정권 유지를 위해서라도 민의를 거스를 수 없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격분한 이중제국과의 동맹 단절은 정해진 수순이다.

그 다음 기진맥진한 프랑스를 프로이센으로 제압하든가, 이미 개입할 여력이 없다면 외교로 묶어놓은 뒤 북독일 연방에게 러시아와 발칸에서 전면전을 치르게 만든다. 가능하면 그 와중에 극동에서 조선과 일본을 이용해 러시아를 바쁘게 만든다. 그래봤자 전선에서 몇 개 사단 정도 빼게 만드는 게 한계겠지만.

그 결과로 러시아가 발칸에서 쫓겨나기만 한다면 모든 부수적 피해는 정당화될 수 있었다.

수단도, 방법도 가릴 필요 없었다. 그 결과로 러시아를 그 동토로 도로 쫓아낼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가치 있는 승리는 없었으니.

그리고 대영제국은 절대 한 번에 단 하나의 수만으로 착수하지 않았다.

삼국동맹? 3제동맹? 뭐가 되었든 간에 대영제국의 패권에 위협이 된다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몰락시킬 뿐이다.

제국 셋이 뭉쳐도, 대영제국의 저력에 맞서기에는 우스울 따름이었다.

***

“썩 나가라!”

고함을 지른 프란츠 요제프 황제를 등지고 청년은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청년, 루돌프 프란츠 카를 요제프, 일명 루돌프 황태자는 자신의 방에 도착하자마자 주먹으로 벽을 후려쳤다. 그러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아버지와 대화한 날 중 단 하루도 싸우지 않고 끝난 적이 없었다.

“제기랄, 그 양반처럼 늙어서 추해지기 전에 일찍 죽기나 할 것이지.”

제 친아버지에게 하는 말로는 최하급 중의 최하급, 차라리 패륜에 가까운 발언이었지만, 루돌프는 진심이었다.

그에게 의지가 되는 유일한 친구는 열여섯에 제위에 올라 전쟁을 이끌었고, 종전과 결혼 후에도 쉬지 않고 다음 전쟁을 불철주야 준비하고 있다는 건 신문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차라리 그 녀석처럼 아버지가 한 2년 전에 죽어서 열여섯에 황제가 되었다면 지금의 이 황태자의 삶보다는 훨씬 즐거웠을 것이다.

그는 이 궁정의 모두가 증오스러웠다. 그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가족인 기젤라는 여기 없으니 그는 당당하게 할 수만 있다면 이 궁정에 숨쉬고 있는 모든 이를 죽여버리고 싶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이제 와서 아버지는 원수의 다른 이름이나 다름없었고, 어머니는 얼굴도 기억 안 날 지경이니 차라리 남이나 다름없었다. 여동생 마리 발레리에 대해서도 좋은 감정은 없었다.

그녀가 그에게 뭔가 잘못한 것은 없지만, 그녀 자체가 혐오스러웠다. 이유는 간단했다. 어머니는 자신과 기젤라가 그토록 갈구하던 것을 그녀에게만 주었다.

어머니로써의 애정을.

자기 배 아파 낳은 자식이 맞기는 할까 의심이 때때로 들 정도로 엘리자베트 황후는 자신의 자식들에게 무관심했지만, 유일한 예외가 여동생 마리 발레리였다.

그야말로 금지옥엽처럼 애지중지하고, 공공연히 이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삶을 살게 될 거라는 소리를 운운하는 소리를 들으면 피가 거꾸로 솟았다.

뭐? 굴뚝 청소부와 그녀가 결혼하기를 원하더라도 그녀를 지지해주겠다고? 그럼 그는 뭔가?

그와 기젤라가 다른 여자 자식이기라도 한가? 그래, 그렇기라도 하면 납득할 수 있었다. 아니잖은가, 그는 적자로 황태자이잖은가. 그녀가 우리 남매를 낳았잖은가.

그들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뭐 잘못한 게 있는가? 그렇다면 그는 고칠 수 있었다, 눈물로 사죄해서 어머니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면 했을 것이다, 무릎을 꿇으라면 꿇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다. 그와 그의 누이가 어머니에게 버림 받은 것은 그가 잘잘못을 따질 수도 없을 정도로 어렸을 때였다.

실제로 그 둘이 자신의 생모에게 버림받다시피 한 것에는 그의 할머니이자 그의 어머니에게 있어서 시어머니였던 조피 대공비의 잘못이 한 90%에 그의 아버지 프란츠 요제프의 잘못이 약 10% 정도 섞여 있었지만, 루돌프 황태자는 그런 내밀한 사정까진 알지 못했다.

그저 원망만을 키워갈 뿐. 차라리 마리 발레리가 없었다면 이게 어머니인가 보다, 어머니란 인간이 원래 그런 여자인가 보다 하고 체념하고 살았을지 모른다.

모범적인 어머니라 불릴 만한 프랑스의 외제니 황태후의 이야기를 들으면 속이 쓰려오긴 했지만, 그래도 그러려니 하고 살았을지 모른다.

그녀만 없었다면.

여동생 마리 발레리라면 어머니가 그야말로 껌뻑 죽는 걸 보았을 때 루돌프의 분노는 마침내 임계점을 넘었다.

자식을 사랑해줄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면서,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자신과 자신의 누이를 지옥 한가운데 방치하고 여행이나 다니면서 인생을 즐기는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 체념과 달관에서 증오와 분노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다 똑같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을 받는 막내 여동생은, 잘못한 건 없지만 꼴보기 싫었다. 그나마 그녀가 그에게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기에 여동생을 공연히 괴롭힌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의 친구의 조언도 도움이 되었다.

네가 느끼기에 너의 부모가 최악의 부모라면, 그들보다는 나은 인간이 되라는.

개새끼가 너를 향해 짖는다고 해서 너도 개를 상대로 짖어댈 필요가 없다는 조언을 처음 읽었을 때 루돌프는 그야말로 정말 오랜만에, 정확히는 기젤라가 궁전을 나간 뒤로는 처음으로 폭소했다.

그 조언을 계속 기억하기에 루돌프의 인내심이 아직 기적적으로나마 유지되고는 있었지만, 주먹이 절로 부르르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아.......”

파리로 가볼까. 짐을 여행가방에 넣고, 단출하게.

친구와 속이 다 풀릴 정도로 미친 듯이 코냑을 들이키고 만취해버리고 싶었다. 종교적으로는 만취할 정도로 마시는 자는 죄인이라지만.

‘나한테 죄 짓고 사는 사람도 멀쩡히 사는데 내가 죄 짓지 말아야 할 이유가 뭔데?’

장담컨대 교황한테 이 말을 해도 교황도 쉽게 대답 못 할 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킬킬댄 루돌프는 몸을 기댔다.

물론 파리로 가는 것도 상상뿐이었다, 무엇보다 그의 친구는 그를 상대해줄 정신도 없을 가능성이 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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