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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보나파르트-22화 (22/200)

22화 게임 체인저(2)

프랑스 해군의 최고 기밀 프로젝트, 오를레앙 프로젝트는 신형 전함 건조 계획이다.

우선 조선소와 건함 인프라의 대거 확장, 이는 영국과 타국들의 신경을 뒤집을 정도는 아니었다. 좋든 싫든 프랑스도 영국 바로 아랫급은 되는 해군 강국이었고, 다른 나라들도 그거 하느라 바쁜 건 똑같았으니까.

공황 극복을 위해서라도 정부 지출을 늘리는 게 필요했고, 명분은 식민지 개척, 실제로 프랑스의 적극적인 식민지 개척 열의를 생각해보면 딱히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기술 제휴라면서 5년 전에야 간신히 박사학위를 딴 스웨덴 공학자를 굳이 스카웃해간 이유는 아무도 몰랐지만. 굳이 알 필요도 없었다.

그 과학자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는다 해도 5년 내에 증기 터빈을 개발하고 1년 뒤에는 시제품을 만들고 3년 뒤에는 그 구조 그대로 21세기에도 쓰일 물건을 실용화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밖에 몰랐으니까.

그걸 프랑스 정부 차원에서 강력하게 지원해준다면 그 시일을 한참 단축할 수도 있을 터였다.

그리고 주 함포로 예정된 14인치 포, 이것도 딱히 특이한 물건은 아니었다.

이 시대 전함들의 주포는 12인치가 평균이지만, 독일처럼 11인치를 쓰는 동네가 있는가 하면 미국처럼 13인치가 표준인 동네도 있다. 14인치 포는 이미 미국에서 남북전쟁 때도 열차포로 굴려졌을 만큼 흔하지는 않아도 이미 있는 물건, 기술적인 난이도는 높지 않았다.

다만, 중요한 건 그 탑재 수량이었다. 대부분의 전함은 2연장 주포탑 2기만 탑재한다. 독일은 3기를 탑재해 주포 6문을 탑재하는 걸 시도해 봤지만, 부포 화력이 약해진다고 주포탑 1기는 도로 철거했다.

그런데 프랑스는 14인치 주포를 3연장 9문을 탑재하는 과감한 도전을 시도했다. 3연장 포탑이 과거에 시도된 전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상당히 급진적인 시도였다. 거기에 기계식 계산기를 군용으로 개선해 탄도계산을 해 주는 사통장치가 장착되어 높은 명중률을 기대할 수 있다.

그리고 방어구획, 집중방호체계를 도입해 두터운 갑판장갑을 비롯해 집중방어이론을 적극 활용한 새로운 설계가 적용되었다.

이러한 완전히 새로운 설계의 전함은 일종의 거대한 모험이었고, 동시에 성공만 한다면 전 세계 해군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틀 터였다.

그러나 당장 건조에 들어갈 수 없는 이유는 그야말로 수두룩했다.

제일 먼저 조선소 문제.

이 신조전함의 무게는 3만 톤급으로 예상되는데, 이런 괴물딱지급의 전함을 건조할 조선소가 프랑스에는 없다. 그래서 처음부터 새로 지어야 한다.

거기에 이런 거함을 건조해본 경험도 없고. 취역하려면 아직 먼 물건이기는 하지만, 만만한 비교대상인 타이타닉의 경우는 대충 4만 6천톤의 배수량을 가진다, 하지만 그건 여객선, 이건 군함이다.

지금 어지간한 철갑함들도 1만 톤급 넘는 게 드물다. 전쟁 끝난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났지만, 보불전쟁 직전에 취역한 르두터블은 세계 최초의 전금속제 전함이며 이놈이 9700톤이다.

말이 길었는데, 그러니까 한 10년 연구하면서 느지막이 만들어야 한다는 거다. 젠장. 아직 영국의 해석기관을 활용한 기계식 컴퓨터도 미완성이기도 하고, 장갑도 국산화해야 하고, 완성된 건 포밖에 없냐 어떻게, 그마저도 3연장 포를 계속 시험해야 한다.

즉, 내가 무엇보다 만들고 싶은 이 아름다운 전함이 항해를 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다행히 아직 전쟁을 시작할 때까지는 10년이라는 기한을 두었고, 동맹국들도 동의했다.

나는 1급 기밀에 해당하는 그 전함의 설계도를 바라보았다. 마치 머나먼 옛날의 고성이자 예술작품과 같이 아름다운 그 함선에, 비밀리에 정해진 전함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잔 다르크.’

배는 흔히 여성으로 지칭되는데, 시대 그 자체인 대영제국의 패권을 무너트리고자 하는 프랑스의 여인으로써는 퍽 어울리는 이름 아닌가.

그녀가 건조될 10년이란 시간이 지나면 유럽의 질서는 근본부터 변해 있으리라.

***

이사벨라, 아니, 이곳에서는 프랑스식으로 엘리자베트 황후라 불리는 소녀는 침상에 누운 자신의 남편을 바라보았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주선으로 결혼 이야기가 들어왔을 때 조금 이른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나쁜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이 차이가 약간 나기는 하지만 당장 얼마 전 이탈리아의 공주 하나는 15살에 36살 아저씨에게 정략혼으로 시집가는 등 이런 결혼은 상류층에서는 흔했다. 그걸 감안하면 20대의 황제와 10대 중반의 공주라는 조합은 딱히 특이한 조합이라고 할 것도 못 되었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얼굴도 꽤 잘생겼다. 로마노프 황실과 더불어 미남미녀가 수두룩하기로 유명한 비텔스바흐 왕가의 피를 물려받은 그녀의 미모도 부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유럽에서 플레이보이로 이름을 남긴 부친을 닮았는지 그녀의 기준에는 충분히 부합했다.

하지만, 허전했다.

그가 외도를 하느냐, 아니면 못할 짓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그녀가 듣기로도 그는 딱히 다른 여성을 만난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유럽에서 은근히 귀족들 간에 흔한 동성애에 대한 소문은 더더욱 없다.

그리고 분명히 그는 자신에게 충실했다. 공개 행사가 있을 때마다 그녀와 함께 나가고, 그녀의 인기를 올려주기 위한 수단을 강구하는 등 그녀가 프랑스 민중들에게 비난받지 않도록 유도했다.

사실 프랑스 민중들도 독일 여자라는 이야기에는 이마를 찌푸렸지만, 프로이센에 복수하기 위한 결혼동맹이라는 사실이 좀 강조되자 그럭저럭 납득했다.

아무튼 프랑스인들은 프로이센에 보복할 수만 있으면 영국 여자를 황후로 만들든 오스트리아 여자를 황후로 들이든 러시아 여자를 황후로 들이든 상관없었으니까.

그리고 황제는 그들에게 약속했다. 지난 프로이센과의 종전 조약은 20년을 가지 못할 휴전 조약에 불과하다고. 대놓고 본인이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보도지침과 언론 검열 제도가 시퍼렇게 살아 있는 프랑스에서 대놓고 신문에 10년, 20년 뒤의 전쟁을 운운하는 말이 올라오는데 누가 모르겠는가.

황제가 군을 증강하고 병력을 보충하는 모습은 거기에 확신을 심어 주기 충분했다. 그리고, 복수심으로 중무장한 프랑스인들은 다가올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황제에게 적극 협조하고 있었다.

어찌되었든, 그녀에겐 먼 이야기였다. 프로이센과의 전쟁이라는 대의 아래 수많은 정치 세력들의 충성을 받고, 타협하고, 압박하고, 징병법을 개정하고 국민위병이라는 이름의 예비군 동원 제도를 확충하든, 철도를 놓든 간에 군무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 그녀에게는 멀게만 느껴지는 이야기였다.

다만, 황제이기에 앞서 그녀의 남편인 남자, 나폴레옹 4세가 염려스러웠다.

말했지만, 그가 그녀에게 소홀하지는 않았다. 뭐라 흠을 잡을 구석이 있느냐고 물으면 단 한 마디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 다가갈 수가 없었다.

정신적인 교류가 충족되지 않았다. 그저 모범적인 아내와 모범적인 남편으로써의 모습을 보이지만, 마치.. 인형의 삶에 갇힌 기분이었다.

행복하게 해 주고 싶어서가 아니라 행복하게 해주는 게 의무라고 여기는 듯한 모습.

의무다, 욕구가 아니다.

분명히 다르다. 물론 그녀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왕족의 삶이란 그런 것이다. 운이 좋아 천생연분과 결혼한다면 행복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저 의무감뿐인 부부로써의 삶을 이어나가는 것.

후자에 걸렸다고 생각하면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다. 적어도 시부모로 인한 지옥같은 시집살이는 없으니까. 외제니 황태후는 양식이 있는 사람이었고, 나폴레옹 3세는 진작 죽었다.

남편은 진심이 아니더라도 어찌되었든 간에 자신을 흠잡을 데 없이 대하고 다른 이에게 눈을 돌리지 않는다.

그가 유일하게 진심을 쏟아붓는 것은 군대 같아 보였다. 얼핏 보면 새신부든 뭐든 간에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은 복수귀처럼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니 그조차도 아니었다.

황제는 군대에만 신경을 쓰는 게 아니었다. 프랑스 제국이 전쟁과 복수라는 대전제에 미쳐있어서 그렇게 보일 뿐, 그가 신경쓰는 건 국가경영이었다.

국가와 국민들을 다른 무엇보다 우선시한다는 건 성군의 조건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무엇을 위해서? 국가와 국민의 번영을 위해? 아니면 명예를 위해?

그녀의 느낌에, 그에게는 그러한 방향성이 없었다.

바람조차도 방향성이 있는데, 도대체 무엇을 위해 그는 움직이는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에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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