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게임 체인저(1)
청년 황제는 어린 신부와 함께 신방으로 들어갔고, 다른 이들도 흩어졌다.
결혼식은 끝났지만, 총리는 묵묵히 아까의 대화를 곱씹었다.
‘북독일 연방에게는 보복하겠지만, 영국이 그걸 막아서려 들지 않는다면 영국과 싸울 생각은 없다.’
대충 그런 의미로 해석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진심일까. 그리고, 만일 북독일 연방을 무너트린 저들이 스스로 해산하지 않고 다음 목표를 정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될 것인가.
***
대영제국.
모든 파도의 지배자, 일곱 바다의 지배자.
그리고 시대의 주인.
이 시대를 무엇이라 부르던가. 빅토리아. 빅토리아 시대.
벨 에포크.
빅토리아의 즉위로 이 시대는 시작했고 그녀의 죽음으로 이 시대가 끝났다.
전쟁의 날은 도적같이 다가왔고 그 뒤로 유럽은 다시는 패권을 되찾을 수 없었다.
유럽 패권의 마지막 시대를 상징하는 국가, 혹자는 냉전기 미국과 소련의 위상을 합쳐야 당대 대영제국의 위상에 가까워진다고 평하였다.
그 비결이 합리적인 국가 구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특유의 빠른 진보 덕분이었는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강대한 힘으로 세계에 자신의 잣대를 강요하는 여왕에게 논담은 의미가 없다. 복종을 요구할 뿐. 유럽의 모든 국가가 자신에게 기어오르지 못하기를 원하는 여왕은 폭력으로 자신의 질서를 강요한다.
벨 에포크라는 질서를, 룰 브리타니아라는 질서를.
결국 여왕은 우리를 향해 총을 겨눌 수밖에 없다. 북독일 연방이 무너지면 소위 영국에게 ‘이상적’인 유럽의 균형은 근본적으로 깨어지니까.
필연적으로 러시아는 부동항을 갖게 될 것이고, 오스트리아는 이탈리아를 붕괴시키겠지.
그렇다면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강요를 거부하려면, 그 권위에 맞서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도덕? 허상일 뿐이다. 도덕적인 개인이, 혹은 집단이 역사의 승리자가 된 사례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도 도덕률에 따라 살아가는 인간은 이용만 당하다 버려지기 일쑤였다. 인간은 자신의 은인을 배신할 수 있을 정도로 머리가 좋은 짐승이고, 은혜를 베풀었다는 것은 삶에 있어서 하등 의미가 없다.
하물며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에서는 더하다.
오롯이 신뢰할 수 있는 것은 힘이다. 돈이든, 군대든, 권력이든, 결국 힘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그렇기에 나는 준비한다.
시대에서 도망치지 않는다.
도리어 시대에 도전한다.
“투척!”
-쾅! 콰쾅!
수류탄이 터졌다.
이 시대, 척탄병이라는 병과는 사라졌고 수류탄은 도태되었다. 볼트액션 소총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수류탄을 던지는 행위가 자살행위에 한없이 가까워진 탓이다.
이것이 변하여 새로운 막대형 수류탄과 지연신관식 수류탄이 등장한 것은 20세기 초, 러일전쟁의 전훈에 따라 소요가 제기되었고, 기초적인 심지형 수류탄이 발전하여 21세기에 흔히 아는 수류탄이 등장한 것은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참호전이 시작된 뒤였다.
그러나, 기술적인 부분을 따지자면 발상에서 막혀 있을 뿐, 지금도 무리 없이 개발이 가능한 수준, 나는 달걀형 수류탄의 개발을 실시했다.
내가 개발한 무기 가운데에는 철사를 변형하기만 하면 그만인 철조망 다음으로-신형 개머리판은 무기라고 하기는 조금 부족하기는 하니 제외하고-빠르게 시제품이 나왔고, 양산형이 내 눈앞에서 시범을 보이고 있었다.
수류탄 안에 든 금속 파편들이 튀어나가고, 손에서 미끄러지지 않고 폭발이 일어났을 때 적절한 크기로 부서져 파폄을 형성하도록 내면과 외면에 엠보싱 처리가 된 외피들이 허수아비를 걸레짝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총성이 들렸다.
존 브라우닝이 설계한, 이 시대 기준으로 중소구경 ‘반자동’ 소총.
림리스 탄을 사용하는 롱 리코일에 회전식 볼트를 가진 5발, 혹은 15연발 소총. 일반적인 군용 소총에 비해 위력이 약하지만, 반자동이라는 점 하나만으로 이 모든 단점을 씹어먹는다.
물론 군부에서는 위력이 약하다는 이유로 사냥에나 쓰면 맞겠다며 영 좋아하지 않았지만, 브라우닝의 다음 발명품에는 군부도 입을 다물었다.
총기 발사시의 반동을 이용해 개머리판에 추가된 몇 개의 부품으로 연사가 가능하게 만든 물건, 물론 2~3발을 쏴서 반동을 받은 뒤에나 자동사격이 가능하고 총기가 미친 듯이 흔들려 명중률이 형편없어지지만, 브라우닝의 반자동소총을 개조해서 참호나 시가전에서 휘두를 거라면 이만한 괴물딱지도 없었다.
15발짜리 탈착형 탄창을 쓸 수 있는 버전은 이걸로 개조해서 참호전 돌격대에게 지급하고, 5발짜리는 일반병에게 지급하면 될 터.
그리고, 내가 무엇보다 신경쓰던 물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타!
완전자동으로 강력한 탄을 갈겨대는 기관총이 허수아비들을 박살내고, 표적삼아 세워둔 철판을 관통하다 못해 반으로 잘라버렸다.
1878년식 브라우닝 기관총의 첫 등장이었다.
박살나는 표적들을 보던 장군 한 명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저 무기가 그때 스당에..... 메츠에, 파리에 있었으면.”
나는 그 장군의 중얼거림에 군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나도 심정은 비슷했으니까.
저게 있었다면 파리의 그 지옥같은 시가전을 벌일 것도 없이 간단히 프로이센군을 도살할 수도 있었을 터.
이곳에 있는 자들이 사리분별도 못 할 멍청이들은 아니었기에 이 무기가 등장했다는 것이 전황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지까지를 완벽하게 예측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이 무기를 도입하는 걸 반대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시연된 무기들은 수류탄을 빼면 전부 브라우닝의 발명품들이었지만, 이번에는 전혀 다른 물건이 시연되었다.
포성이 울리고, 먼발치에 있는 표적들에 포탄이 쏟아졌다. 재장전 속도도, 명중률도, 사거리도 이전에 비해 확연히 올라간 신형 포였다.
프랑스 제국 육군 병기국의 역대 최고 걸작인 75mm ‘나폴레옹’ 야포. 세계 최초로 주퇴복좌기를 장착한 야포이며, 본래 포병 장교였으며 포병을 잘 다룬 것으로 유명한 내 종조부 나폴레옹 1세를 기리기 위해 붙은 이름이다.
세계 최초의 근대식 야포라 할 만한 이 중포들이 일제사격을 가하자 순식간에 표적으로 선정된 요새화된 진지는 산산이 부서졌다.
진지 안에 있던 허수아비들은 아예 잔해도 찾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이전에 비해 압도적인 연사력, 명중률, 화력, 사거리 등을 선보인 나폴레옹 야포들은 앞으로 프랑스 제국의 포병대의 표준 화포가 될 예정이었다.
나는 그 화력에 박수를 보냈고, 몇 초 지나지 않아 귀빈석에 있던 모두가 기립박수를 보냈다.
“폐하, 이 무기들을 당장 양산해야 합니다! 이 무기들로 무장한 대육군이 프로이센과 싸운다면 이번에야말로 베를린을 함락시킬 수 있을 겁니다!”
몇몇 장군들은 극도로 흥분해서 당장이라도 뛰어나갈 기세였다.
“물론 그럴 걸세, 이 장비들은 프랑스 제국의 제식 장비로 즉시 채용되어 대육군의 주력 장비가 될 거야.”
“무조건적으로 그래야 합니다. 비용이 얼마가 들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이 포의 설계는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보물이다. 어느 정도였냐고? 2차대전 때 미국의 그 유명한 M3 리와 셔먼 75mm 버전의 주포가 각각 이 포의 미국 생산 버전과 그걸 조금 장포신화 한 물건이었다. 심지어 독일군도 포가만 새 걸로 바꿔서 그대로 대전차포로 썼던 게 이 75mm 야포다.
거기에 원시적이라지만 그 브라우닝이 만든 반자동소총-몇 가지 조건이 갖춰지면 자동사격 개조도 가능한-이 갖춰지면 지상군은 전차의 개발을 진지하게 논해야 할 상황이 오기 전에는 문제없다.
참호전이 보편화될 때를 대비해 전차를 만들기 위한 트랙터 연구, 그리고 동력 비행기 개발에 투자하고는 있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라이트 형제가 비행을 하려면 아직 제법 시간이 남아 있지만, 일단 내연기관은 이미 개발된 상태니 기본적인 기술은 이미 준비가 끝난 거나 다름없다.
그리고 드레드노트, 게임 체인져.
곧 현실로 나올 그 괴물은 아직 설계도 위에만 존재한다. 일단 2만 톤 이상 3만 톤 미만의 배수량을 가지는 것-애초에 3만 톤 넘는 괴물딱지를 만들려면 건조할 도크와 운용할 부두도 없다-과 11인치 주포를 위시한 무기체계 등이 확정되었지만, 스웨덴 과학자와 접촉해 시작한 증기터빈의 개발이 지연되는 등의 문제, 장갑판의 안정적인 공급 문제 등이 걸림돌이라서 아직 진수, 더 나아가 전력화에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측되었다.
하지만 언젠가 드레드노트가 전력화된다면.
여왕은 자신의 권위가 깨어졌음에, 그녀의 질서를 짓밟고 선 새로운 누군가가 있음에 경악하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