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19화 (19/200)

19화 삼국동맹(5)

베를린 회담은 결과적으로 영국에게는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았다.

지중해 연안에 대한 요새화 금지, 다르다넬스 해협의 군함 통과 금지 조항을 얻어내기는 했으나, 결국 발칸에 러시아가 발을 들이미는 것을 막지 못했고, 되려 러시아 내에서 반영, 반독 감정만 잔뜩 부채질해놓은 꼴이었다.

뭐, 그 외에도 역사상 처음으로 유대 독립국가가 공식석상에서 인도 남부의 데칸이라는 위치까지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등의 의의가 있었지만 거기에 신경쓸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장 이 외교적 참사로 인해 정권이 교체되고 글래드스턴의 후임으로 디즈레일리가 수상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 다음 일어난 일은 대영제국 내각과 외무부에게 비명을 지르게 만들기 충분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와 러시아의 발칸 타협! 러시아, 발칸을 손에 넣다!>

러시아 제국이 영토 일부를 할양하고 막대한 현금을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안겨주는 등의 대가로 오스트리아-헝가리의 발칸 지역 영토가 러시아 제국에 판매되었다.

당연히 기겁한 영국 정부가 두 국가를 압박했지만, 또 다시 프랑스가 드러눕고 이번에는 북독일 연방조차 소극적으로 움직이는 총체적 난국이 발생했다.

아직 독일 제국-이중제국-러시아 제국으로 이루어지는 3제 동맹을 포기하지 못한 비스마르크의 입장에서 양국이 합의한 것에 함부로 끼어들어서 가뜩이나 악화일로를 걷는 대독 여론을 부채질하는 건 상당히 위험한 모험이었던 탓이었다.

물론, 그 거래의 비공식적이고 가장 중요한 내용은 발칸의 매각을 대가로 오스트리아-헝가리가 프로이센에게 전쟁을 선포했을 때 러시아 제국도 같이 참전한다는 비공식 동맹이라는 것을 비스마르크가 몰랐기에 있을 수 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프랑스가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샤스포 소총과 야포 등을 판매하고, 이를 러시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가 대규모로 사들이기 시작하자 이들의 동맹은 더 이상 숨겨지기도 어렵게 되었다.

이는 영국 외무부를 광란에 빠져들게 하기 충분했다.

런던, 내각 회의실.

“아마 제법 오랫동안 모의되었을 겁니다. 베를린 회담 이전이니 빠르면 보불전쟁의 종전 직후에서 1년 후 정도일 것으로 보입니다.”

디즈레일리는 신경적으로 답했다.

“지금 우리에게 있어 중요한 건 이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저 동맹을 준비해왔느냐가 아니야! 빌어먹을! 나폴레옹 시대가 재림하려 하고 있단 말이네!”

영국 최악의 악몽. 대륙봉쇄령이 재현될지도 모른다.

물론 북독일 연방은 여전히 건재한 상황이었지만, 만약 이들이 그 목적을 달성해서 프로이센 중심의 연방을 박살내버린다면?

“이들의 일차적 목표는 북독일 연방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프랑스 내부의 선전 역시 그렇고, 오스트리아-헝가리, 러시아에 파견한 정보원들의 보고 역시 일치합니다. 하지만....”

“북독일 연방이 망할 상황이 되면 우리가 안 끼어들 수가 없지, 그래, 그게 문제다.”

“프랑스는 이 기회에 스페인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기를 원할 가능성이 크며, 오스트리아-헝가리는 이탈리아 반도에서 과거 자국이 가졌던 지위의 회복, 그리고 러시아는 발칸의 완전 병탄을 목적했을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당연하지만 이들의 동맹은 기본적으로.....”

“나폴레옹 4세와 이사벨라 폰 비텔스바흐의 약혼도 주시해야 합니다. 나폴레옹 3세 시절에도 그랬지만, 프랑스 제국은 국가 간의 혈연을 상당히 중시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사실은 누가 누구와 결혼한다거나 약혼했다거나 어느 왕이 어느 나라 황제의 동생이라거나 이런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세 시대라면 몰라도 지금은 민족주의가 태동하는 근대다.

물론 헤센 대공국이 사위를 러시아 차르로 둬서 프로이센에 병합되는 운명을 모면하고 괴뢰국으로라도 국체를 유지하는 등 전혀 없다기는 뭣하지만 그래도 프랑스가 생각하는 것만큼 크지는 않다.

“프로이센과의 유대를 더 강화해서 이를 통해 3국 동맹을 압박하는 게 최선입니다. 일단 이들이 뭘 하든 간에 프로이센부터 제압해야 이야기가 될 테니 말입니다.”

“프로이센이 먼저가 아닐 가능성도 있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와 이탈리아의 분쟁이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자신감의 배후를 생각해보면 이미 프랑스와 러시아에게 확답을 받아두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골칫거리가 늘었다. 근본적으로 저 셋이 뭉치게 만든 건 프로이센의 원죄다.

오스트리아 제국을 일방적으로 패버려서 합스부르크가 프로이센에 대해 이를 바득바득 갈게 만들었으며, 프랑스를 상대로는 황제를 죽게 만들었고, 베를린 회담에서는 러시아의 콧털을 잡아뜯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프로이센을 망하라고 놔둘 수도 없었다. 유럽의 균형을 박살내는 일이다.

“프로이센이 망하게 놔둬도 상관없을지도 모릅니다. 프로이센이 망한 다음에도 저들의 동맹이 유지될 수 있겠습니까? 프로이센이 망하면 그 세 국가에 있어서 최대의 안보 위협은 다름아닌 서로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의 후폭풍은 어떻게 합니까? 북독일 연방이 망하고 세 국가가 서로를 적대하게 된다 칩시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이미 러시아는 부동항을 확보하고도 남았을 겁니다!”

그놈의 부동항, 부동항.

그리고 결국 돌고 돌아 그레이트 게임이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당장 영국이 여기에 손을 쓸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만약 이 3국동맹을 무너트리겠다고 프로이센을 지원해서 3국을 모두 박살낼 수준으로 만든다? 그러면 그 프로이센이 유럽 대륙을 제패한 게 나폴레옹 1세에 의한 프랑스의 유럽 지배와 근본적으로 뭐가 다른가?

“차라리 적극적으로 프로이센을 적대해서 프로이센을 고립시키고 북독일 연방을 붕괴시킨 뒤 세 국가가 서로를 적대하게 만드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헝가리 둘이었으면 영국도 그렇게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을 터, 그러나 진짜 문제는 러시아였다.

러시아가 프로이센을 뜯어먹을 틈을 주지 않고 빠르게 프로이센을 토막쳐서 삶아버린 다음 세 제국을 서로 적대하게 만드느냐, 아니면 프로이센을 지원해 현재의 위태로운 형국을 지속시키느냐.

아니, 애초에 현 상황은 영국 정부의 예상을 완벽하게 벗어났다. 정확히는,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자존심에 보오전쟁이 미친 영향을 과소평가했다.

프로이센을 함께 족칠 동맹을 구하기 위해 발칸 영토를 러시아에 팔아버릴 정도로 프란츠 요제프 1세의, 합스부르크의 프로이센에 대한 분노가 컸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었다.

***

영국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면, 프로이센은 펄펄 끓는 기름을 뒤집어쓴 꼴이었다.

독일 제국의 성립에 제동이 걸린 것도 모자라 프랑스-오스트리아-러시아라는 삼국동맹이 성립되어 독일 제국의 목젖을 노리기 시작했다.

“폐하.”

“비스마르크, 대체 이게 무슨 꼴인가.”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충분히 오스트리아-헝가리를 잘 달랬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은 셋이었다.

비스마르크, 몰트케, 그리고 빌헬름 1세.

“군부는 현재 장차전에 대비한 전쟁 계획을 짜고 있습니다.”

“세 개의 전선에서 승리할 방법이 있긴 하오?”

“일단 이탈리아 왕국과의 제휴가 중요합니다. 이탈리아군이 오스트리아-헝가리를 묶어주고, 러시아의 공세를 최대한 지연시키는 한편 필요하면 동프로이센과 쾨니히스베르크를 내주면서 시간을 버는 가운데 최대한 빠르게 프랑스를 탈락시키고, 그 다음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항복을 받아낸 뒤에 남은 전력을 총동원해 러시아를 이기고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점령한다는 계획입니다.”

몰트케는 말을 이었다.

“이는 알프레드 폰 슐리펜 소장과 알프레드 폰 발더제 장군이 제안한 초안으로, 러시아의 예비군 동원, 편성, 훈련, 최전선까지의 수송은 최소 2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판단됩니다. 프랑스로 진격할 때 영국의 협조를 받으면 벨기에의 군사통행권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며, 벨기에와 네덜란드 회랑을 통해 프랑스를 침입합니다. 이는 프랑스가 스당 등 중부전선 지역에 대부분의 병력을 배치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파리는?”

“파리를 직접 공격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익에 전력을 집중, 파리를 북부에서 포위한 다음 압박합니다. 파리에서 시가전을 벌이는 것은 우리 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초래할 수 있음은 지난 전쟁에서 충분하리만치 입증된 바 있습니다.”

슐리펜 계획.

다만 상황은 달랐다. 원 역사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를 아군으로 둔 것과 다르게 오스트리아-헝가리는 3국동맹에 참여함으로써 북독일 연방의 적으로 돌아섰다.

그 대신 이탈리아, 그리고 영국을 아군으로 끌어들여 벨기에와 네덜란드 회랑을 전쟁 없이 사용하는 걸 상정할 수 있다는 건 이점이었다.

비스마르크는 얼굴을 구긴 채 자리에만 앉아 있었다. 이번 실패로 인해 그의 입지는 극적으로 축소되었고, 군부의 입김이 강해졌다.

그러나, 비스마르크는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 문자 그대로 프랑스에서 단 한 번 삐끗하면서 모든 것이 틀어져버렸다.

애초에 독일 통일 자체가 지뢰밭에서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한 곡을 추고 무사히 걸어나올 수준으로 칼날 위를 걷는 일이었기에 삐끗하는 순간 모든 게 망가지는 건 필연이었다.

마치 원 역사에서 1차대전을 미연에 막는 걸 실패로 돌아가게 만든, 그 자체로 한 치의 오차를 허용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정교해 정지 자체가 불가능했던 슐리펜 계획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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