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러시아-튀르크 전쟁
“...... 돌겠네 진짜.”
튈르리궁에서 나는 머리를 감싸쥐었다.
‘이런 문제가 막힘없이 처리되는 나라니까 대영제국, 대영제국 그러는 거였구나.’
보통, 내가 읽은 소설에서 19세기에 떨어지면 드레드노트 건조는 국룰이나 다름없었다.
특히 정부지출을 늘려서 공황을 극복해야 하고, 국민들의 복수 여론까지 충족시켜야 하는 나로써는 건함경쟁을 촉발시키는 게 딱히 아쉬울 일은 아니었고.
무엇보다 영국과 적대할 확률이 높은 상황에서 왕립해군을 상대로 빅엿을 선사해주는 건 전혀 나쁜 계획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냉엄한 현실이 내 앞에 놓여졌다.
첫째, 그만한 배를 건조할 조선소가 없다. 인프라 자체가 부족하다.
건조기술도 솔직히 만전이라기는 뭐시기하고, 노하우는..... 말하자니 비참해진다.
둘째 문제, 쓸 만한 강재를 생산할 수 없다. 적어도 프랑스 기술로는 안 된다.
이 시대에 드레드노트에 쓰기 적절한 품질의 강철을 생산하는 동네가 둘 있다.
그 중 하나가 프로이센이고 다른 하나는 영국이라 문제지. 하필 내가 적대하기로 마음먹은 상대들이네? 망할.
그래도 아직은, 러시아가 돌출행동을 벌이기 전, 그러니까 러시아-튀르크 전쟁이 러시아의 완승으로 끝나고 베를린 회담이 열릴 때까지는 영국의 뒤통수를 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그게 내가 드레드노트 개발을 서두를 수밖에 없게 된 핵심 이유다.
조만간 영국과의 관계가 깨질 텐데, 그 전까지 땡겨올 수 있는 건 다 미리 땡겨와야 하니까.
드레드노트의 핵심 기술은 넷이다. 주포, 장갑, 증기터빈, 사통장치.
그 중 주포는 어떻게든 가능하다, 주포탑 수를 줄이는 대신 3연장 3문이다.
전함의 3연장포가 한동안 도입되지 않은 이유가 있기는 하다, 그리고 그게 후발주자들에게 엿을 먹여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
2차대전사를 예전에 훑어보다가 알게 되었는데, 3연장포를 쏘면, 포신 사이에서 간섭 현상이 일어나서 포의 명중률이 개판이 된다, 이거 때문에 일본 등 이걸 해결할 방법을 못 찾았던 국가들은 전간기 내내 연장함포만 쓰고 3연장포를 못 만들었다.
어떻게 해결하냐고? 3연장포의 왼쪽과 오른쪽 포를 쏜 뒤, 약간의 시차를 두고 가운데 포를 쏘면 된다. 이 방법을 못 찾아서 일본이나 프랑스 등이 그 개고생을 했고, 만약 영국이 모양새만 보고 우리 3연장포를 따라해서 자국 군함에 장착하면 참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겠지?
물론 다른 이유도 있다.
배 크기 줄여야 한다...... 우리 능력으로는 도저히 포탑 대여섯 개씩 장착한 드레드노트 만들 견적이 안 나온다.
증기터빈은 뭐, 파슨스 경 물건이 유명하지만 스웨덴의 구스타프 드 라발이라는 양반도 거의 비슷한 시기에 증기터빈을 만들었으니 대체품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진짜 문제는 사격통제장치다, 컴퓨터도 없는 시대에 이걸 어떻게 만들지.
‘사통장치... 사통장치 하면 컴퓨터인데, 컴퓨터.... 노트북, 랩탑, 반도체.... 트랜지스터, 폰 노이만, 젠장, 뭐 도움되는 거 없나? 최초의 컴퓨터가 뭐였지? 에니악? 콜로서스? 진공관 만들기는 이른 시대인데 그 전에도 기계식 컴퓨터 비슷한 거 있었지 않나? 파스칼이 만들었나? 아니, 그건 계산기잖아, 톱니바퀴 계산기.... 응?’
나는 무릎을 탁 쳤다.
“해석 기관!”
해석 기관, 영국의 천재 찰스 배비지가 만들.....려다가 자금과 여러 문제로 끝내 못 만들고 설계도만 남기고 죽었고, 21세기에도 여러 이유로 아직까지 못 만들어진 물건.
로그 함수였나 뭔가를 풀겠다고 만들어졌는데, 아무튼 복잡한 수학 계산을 하라고 만들어졌다. 그리고 탄도계산도 수학이다.
즉 사격통제장치는 계산기여야 하고, 해석 기관은 계산기다.
‘물론 그대로 갖다 쓸 수는 없겠지만, 프랑스 학계 사람들의 지적 수준이 낮은 건 아니니까, 이걸 포병들이 계산하는 방정식을 빠르게 계산하는 용도로 설계를 변경하라고 하면 충분히 가능하겠지, 돈이야 국가에서 주면 되고, 인간의 힘으로는 구동이 안 돼서 증기기관을 써야 한다고 했지만 군함에서 쓸 테니까 엔진 동력 일부만 전용해도 충분히 가능하지!’
된다, 이건 된다.
나는 신이 나서 앙리 장군을 불렀다.
“.......그러니까 해석 기관이라는 걸 사오면 된다는 겁니까?”
“아니, 그건 실물이 없네, 찰스 배비지라는 사람이 만들어서... 그 사람이 죽었던가? 아무튼 간에 설계도랑 미완성품만 있을 텐데, 그거랑 관련 자료 싹 사들인 뒤에 긁어다가 아카데미에 넘겨주면 되네, 아카데미의 석학들이 그걸 포병들이 사용할 수 있게끔 개조해줄 테니까.”
할 수 있냐고? 몰라.
그래도 황제가 갈구면 뭐라도 어떻게 되지 않을까. 원 역사의 드레드노트도 전자 장비를 쓰지는 않았을 테니 뭐 비슷한 장비 쓰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신형 14인치 함포 개발도 독촉하고, 영국에서 고급 선체 제작용 철강도 수입하고, 스웨덴 쪽에 그 구스타프인가 하는 기술자와도 접촉해봐야 하고 말입니다.”
“...........”
내가 앙리 장군을 너무 부려먹는 것 같긴 하다.
근데 어떻게 해, 필요한데.
“미안하네, 하지만 짐이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장군이 경밖에 없음은 알지 않나.”
“전 육군입니다. 차라리 육군 관련 일을 맡겨 주시지.......”
“육군 문제는 여유를 두고서라도 해결할 수 있지만, 해군, 특히 강재 공급과 기술자 초빙, 해석 기관 문제 등은 몇 년 내에 전부 해결해놓지 않으면 앞으로도 해결하기 어려울 걸세.”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앙리 장군이 나가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러시아 제국의 폭주는 예상 못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예상보다 좀 빨랐을 뿐.
그렇기에 당장 만들 능력이 되든 못 되든 영국 외의 선택지가 없는 기술들은 미리미리 모아놔야 한다.
오스트리아-헝가리, 러시아를 끌어들이는 문제는 오스만이 박살난 뒤에 해도 되지만 기술 도입은 누가 뭐래도 시간이 걸리는 만큼 미리미리 시작해야 했다.
남은 시간은........
‘최대한 긍정적으로 봐도 길어야 5년, 짧으면 2년 혹은 그 미만.’
시간이 진짜로 없었다.
***
영국, 런던.
“러시아 제국이 오스만에게 최후통첩을 보냈습니다, 세르비아와 불가리아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으면 24시간 내에 전쟁을 개시하겠답니다.”
“세르비아인들과 불가리아인들이 무장봉기를 일으켰습니다, 오스만 제국은 강경진압을 천명한 상태입니다, 분명 러시아와 연계되어 있을 겁니다.”
“러시아 공사를 여기로 호출하고 의회를 소집하게, 여왕 폐하께는 보고드렸나?”
“지금쯤 소식을 들으셨을 겁니다.”
“제기랄, 대체 저 곰탱이들이 뭘 믿고......”
내각은 대혼란이었다. 글래드스턴은 침착하게 명령을 내렸다.
“무력행사는 최후의 수단이네, 프랑스와 프로이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외무부에 연락하게, 유럽 각국이 연계해서 압박하면 러시아가 한 발 물러나겠지.”
러시아는 명백히 외교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상태다. 현 차르는 치세 내내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유일한 성과는 프로이센과 관계가 개선된 것이었는데, 그 프로이센도 지금은 군 병력에 피해가 적지 않은 상황이니 새로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꺼릴 터.
글래드스턴은 유럽의 평화가 지켜지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버킹엄 궁전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
프로이센, 베를린.
“지금 뭐라고 했나? 러시아가 발칸으로?”
“예, 그렇습니다.”
비스마르크의 얼굴이 굳었다.
그동안 최악일지 모르는 상황에 대해서는 익숙해졌다 생각했건만, 이 상황은 비스마르크가 예상했던 상황 중에서도 최악에 가까웠다.
순식간에 비스마르크의 머릿속에서는 상황이 짜맞춰졌다.
러시아가 남하하면 오스만은 러시아를 막을 힘이 없다, 순식간에 무너질 터, 그리고 그걸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좋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영국과 프랑스,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는 것은 다르게 말해 프랑스가 현재 몰아넣어져 있는 외교적 고립에서 자력으로 탈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
프랑스가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나면 프로이센 주도의 독일 제국은 끝장난다. 지난 전쟁이 결말을 못 내고 어정쩡하게 끝남에 따라 독일 제국의 선포를 미루어야 했는데, 만일 프랑스가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나면 제일 먼저 프로이센과의 문제를 정리하려 들 터.
최악의 경우에는 절치부심한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인해 독일의 통일이 성공을 목전에 두고 실패로 끝날 가능성도 높았다.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언제 실패했지만 나름 노력했다 따위의 평가를 받기 위해 지금까지 그들이 노력해 왔던가. 그들의 모든 희생에 대한 정당한 대가는 단 하나, 통일 독일 제국의 성립뿐이었다.
그리고 독일 제국이란, 프랑스의 외교적 고립이 지속되지 않으면 언젠가 붕괴하게 된다.
프랑스가 외교적 고립을 타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유럽 국가들의 갈등이 증폭되어 열전으로 치닫는 것이다.
‘막아야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발칸의 갈등이 증폭되어 프랑스를 구원하고 독일 통일을 미완의 과제로 만들어버릴 지경이었다.
다행히도, 발맞춰줄 국가가 있었다.
위대한 평민 글래드스턴이 이끄는 대영제국.
글래드스턴은 그의 정적 디즈레일리와는 다르게 결코 무력을 통한 해결법이 국제 분쟁의 궁극적이고 비가역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믿는 자였다.
그라면 분명 발칸 문제도 외교를 통해 해결할 것을 요청하리라.
그리고, 프로이센이 그 옆에서 함께할 것이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지난 전쟁에서의 피해가 아직 회복되지 않은 건 상관없다. 평화조약의 잉크가 아직 마르지도 않은 상태만 아니었다면 지금도 프로이센군은 프랑스를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 프랑스가 개혁에 미쳐있다고는 해도 그 효과가 아직 드러날 시기는 아닌 데다, 지난 전쟁에서 입은 피해를 비교해 보면 피해 규모가 프랑스 쪽이 프로이센보다 훨씬 크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명백했다.
평화조약을 어기고 명분 없는 전쟁을 일으키게 되면 외교적 고립은 필연, 프로이센에게 좋을 게 하나도 없으니 여론에도 불구하고 보불전쟁의 마무리를 짓지 않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군사력이 멀쩡하더라도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
군사력의 강약과 관계없이, 전쟁의 발발 그 자체가 그들의, 프로이센의, 독일 통일의 실패를 담보하는 것이므로.
“대영제국 공사를 즉시 호출하게. 그리고 공사를 만나기 전에 국왕 폐하부터 알현해야겠네! 어서!”
“알겠습니다. 재상 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