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13화 (13/200)

13화 새로운 시대(3)

세계 최초의 근대식 비밀경찰을 굴린 국가는 프랑스다.

언제? 내 아버지란 양반 때.

그리고 내수용을 조금 고쳐서 대외용으로도 바꾸는 일은....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아니, 사실은 빡셌다.

하지만 그래도 기존에 외무부가 정보수집하던 게 없던 건 아니다. 무엇보다 명색이 유럽을 선도하는 열강 중 하나인 프랑스의 내공은 아마 영국 바로 다음 급은 되지 않을까.

게다가 사실상 우리가 부추긴 상황이기도 했으니. 정보 수집의 난이도는 내려갔으리라.

이상조짐을 보고 얻는 것보다 우리가 부추긴 게 있는데 저쪽이 그거에 어떻게 반응했냐는 걸 확인하기는 훨씬 쉬우니까.

한 마디로 예스냐 노냐를 확인하는 게 길게 듣는 것보다 쉬운 거다.

즉, 우리는 영국보다 더 빠르게 정보를 수집하고 그 정보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이 경우헤 한해서는.

“러시아가 전쟁을 결심했습니다, 러시아 제국 군부가 비밀리에 발칸의 슬라브인들에게 무기를 지원하는 정황을 포착했습니다.”

“슬라브인들이 들고일어나면 오스만이 개입할 거고, 오스만이 개입하면 기독교도들을 탄압한다는 이유로 이미 충분히 준비를 마친 러시아가 출병하겠군,”

전쟁을 미리 준비했다가 치는 것이니 아무리 대영제국이라도 초동 대응은 분명히 늦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번에 러시아가 발칸을 완전 병탄해버려도 이상하지 않다. 이미 유럽의 환자 오스만은 원 역사에서도 박살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까.

영국 대사가 달려오겠지만, 우리도 할 말은 있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나 됐느냐, 우리는 우리 피해 수습하기 바쁘다, 니들이 프로이센 채권 사줬던 건 우리를 적대했던 거 아니냐 등.

뭐, 그러면 그 동안 기술쇼핑이라도 해야지.

“폐하, 깜빡하고 말씀드리지 못했는데, 말씀하셨던 총기기술자가 도착했습니다. 존 브라우닝이라고...”

“당장 들어오라고 하시오!”

***

나랑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청년이 성큼성큼 들어왔다.

“프랑스인의 황제, 나폴레옹 4세 폐하를 뵙습니다.”

떠듬떠듬 프랑스어로 말하는 그에게 나는 영어로 답했다.

“영어로 이야기해도 좋소, 짐은 영어는 물론이고 여러 언어에 능통하니,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해서는 그쪽이 더 좋겠구려.”

놀란 눈빛이다, 프랑스 황제가 영어도 잘 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걸까.

“짐이 보낸 설계도는 잘 받아 보았소?”

“예, 그 설계도를 현실에 구현할 사람이 필요하시다고...... 그런데 누가 그린 것입니까?”

“내가 직접 그렸소,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 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짐은 사격을 즐기오, 특히 권총 속사를 좋아하지, 그런데 권총을 쏠 때, 그 가스의 압력으로 나뭇잎이 흔들리고 반동으로 손이 아프다는 걸 느끼면서 생각했소, 이 가스의 압력과 반동으로 탄피를 배출하고 재장전해 완전자동으로 사용 가능한 물건을, 미국의 개틀링이나 프랑스 제국의 미트라예즈보다도 훨씬 나은 무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반은 사실이다. 경험 자체는 브라우닝 본인의 것과 하이럼 맥심의 것을 짬뽕했지만, 어쨌든 간에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다가 브라우닝 경에 대한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소, 10살에 폐품을 모아 작동하는 총을 혼자 조립하고 14살에는 완벽한 실제 크기 대포 모조품을 만들었다는 천재 건스미스를.”

“과찬이십니다.”

“짐은 그대의 천재성을 믿소, 그대가 세상을 영원히 바꿔놓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소.”

“........”

“그 재능을 우리 프랑스를 위해 써 주시오. 대가는 충분히 지급하리다, 상여를 지급하고, 연구비도 프랑스에 머무르는 한 지급하겠소, 어떤 것을 개발하든 개발 방향성을 강제하지는 않겠지만, 가급적 연구해줬으면 싶은 물건들이 있긴 있겠지. 그런 물건을 빠르게 만들어주면 보너스를 지급하겠소.”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다, 실제로 프라우닝의 눈은 급격하게 흔들리고 있었으니.

얼마 뒤, 브라우닝은 무릎을 꿇었다.

“감사합니다. 폐하.”

나는 나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프랑스의 무기 기술자 전부와 바꿔도 아깝지 않은 한 사람을 얻었으니까.

존 브라우닝, 현대식 총기의 아버지를 말이다.

***

브라우닝에게 시간과 예산을 몰아주면 뭘 만들어낼까. 굉장히 궁금한 일이긴 했지만 그 의문을 풀기 앞서서 내가 신경써야 할 일은 산더미 같았다.

일단 정말 조만간 터질 제12차 러시아-튀르크 전쟁의 승패야 러시아의 승리로 정해져 있으니 넘어가고, 첫 번째 문제는 경제위기였다.

꼭 전쟁의 후폭풍이나 그런 거 때문은 아니지만, 경제 지표가 폭락하고 있었다.

우리만이 아니었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프로이센...... 증시들이 단체로 폭락하고 있었다.

그 원인은 간단했다. 자본들의 과도한 투자와 경쟁의 결과가 낮은 순이익을 가져왔다.

더 간단히 말해, 한 30년간 쌓인 거품이 터졌다.

증시는 좆됐다.

이걸 수습할 방법.....은 있었다.

원인과 수습 방법이 모두 뻔한 케이스라서 오히려 수습이 쉽다.

군비경쟁. 설비투자. 군비증강은 전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고, 설비투자도 해야 할 일이다. 그저 그 규모만 무식하게 키우면 될 뿐이다.

“영국에서 군함 건조기술을 사오고 영입할 수 있는 인원은 최대한 영입하도록, 그리고 조선소를 비롯한 인프라도 이번 기회에 싹 깔아버리지.”

“육군 군수공장을 늘리는 쪽이 낫지 않겠습니까?”

“브라우닝 경과 병기국이 가시적인 성과를 낼 때까지는 보류한다. 어차피 기존 무기체계가 저 크라우트 놈들을 도살하기에는 영 맞지 않는 체계라는 게 증명되었으니 새로 라인을 깔아 봤자지, 철조망 생산이나 늘리도록.”

브라우닝은 개인화기랑 기관총, 병기국은 야포, 특히 주퇴복좌기 단 75mm 야포.

‘반자동소총, 여기서는 자동장전 소총이라고 해야 하나, 일단 그거랑 단총신 가스작동식 기관총, 75mm 근대식 야포 정도면 육군력은 충분하다. 탱크를 벌써 만들 기술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해군력은.....

‘드레드노트.’

근데 그거 만들 기술력이 되려나 모르겠다.

“폐하, 실은 다른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뭔가?”

“그...... 영국에서 시작된 문서가 퍼져나가면서, 이번 공황이 유대인의 음모라는 주장이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유대인의 음모?”

“예, 그것 때문에 곳곳에서 유대인들에 대한 공격과 약탈, 살인, 방화 등이 일어나서... 심지어 이를 저지해야 할 국민위병들까지 폭도들에게 동조하는 사례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나는 이마를 찌푸렸다.

괴문서라면.......

‘시온 의정서겠지.’

최악의 상황에 내가 유대인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기 위해 뿌려두었던 밑밥.

‘그런데 이 시기에 공황이 터질 줄은 솔직히 몰랐는데.....’

내 책임인가.

잠깐 생각하면서 전쟁이 애매하게 끝난 것이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지 생각해 봤지만,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간단했다.

‘내가 알 바는 아니다.’

지금 내 코가 석자다.

오스트리아-헝가리와 러시아와의 동맹을 조율하고, 루돌프 녀석 편지에도 답장하고, 젊고 정의감과 우국충정에 불타며 혈기가 앞서는 딱 그 나잇대의 미숙한 청년을 연기하고, 정치세력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상대가 바라는 것을 들어줄 수 있는 것처럼 연기하고.

국내, 대외, 개인사까지 처리해야 하는데 유대인들은.....

“아마 프랑스가 제일 심하겠지만, 타국에서는 그런 움직임이 없나?”

“없다고 하지는 못하겠습니다. 특히 프로이센과 러시아 쪽에서 그런 움직임이 심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와 영국은 잠잠한 편입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확실치 않습니다, 국가 자체가 혼란스러운 와중이라서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폭력인지 아니면 그냥 무차별 폭력인지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럼 상관없다. 우리가 유대인들 탄압한다고 단체로 유대인이 엑소더스라도 해 버리면 국가 경쟁력을 깎아먹는 일이지만 전 유럽이 그러면 뭐 상관없는 일이다. 어디로 가려고? 미국? 아시아? 어느 쪽이든 간에 상관없다.

19세기는 명백히 구대륙의, 유럽만의 리그니까.

미국은 끼어들 생각이 없고, 그 외 국가들은 끼어들 능력이 없다.

그러니 유럽만 신경쓰면 된다.

유럽이 통째로 함께 퇴보하면, 결국 평행선에 불과하다.

“조선소를 짓고, 해군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시오. 지금의 위기를 해결할 방법은.....”

19세기의 열강이라면 당연히 나올 말.

“식민지를 늘리는 것 뿐이오.”

제국주의였다.

***

“세상이 미쳐가고 있군.”

백발의 노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유대인이 이 모든 것의 배후에 있다니, 철지난 음모론이 아닌가.

그런데 유대인들이 대공황을 계획한다는 음모론 서적이 출판된 지 3년 만에 진짜로 세계 경제가 붕괴해버렸으니, 혼란이 가라앉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 최종 목적이 유대인 국가 성립이라고? 그럼 더 말이 안 되지 않는가.

세계 증시를 붕괴시킨 뒤에 무슨 일이 더 벌어져야 유대인 국가가 건국된다는 말인가. 오히려 유대인들이 정착할 만한 땅은 이로 인해 벌어지기 시작한 무차별적인 식민개척에 의해 더더욱 줄어가고 있는데.

그리고, 사실 그는 유대인 국가가 건국된다 해도 부정적이지는 않았다.

유대인들은 분명 박해받았다. 그리고 그 박해는 분명 부당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자신들만의 나라를 가지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유럽에서 그들이 나라를 가지는 건 불가능해도, 어디 인도 제국의, 딱히 채산성 없는 영토 일부를 떼어 보호국으로 만든다면 못할 것도 없었다.

‘대체 언제쯤 되어야 유럽인들이 도덕을 논하게 될까,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백인이라면 마땅히 도덕을 논하는 데에도 선두에 서야 마땅한 것을. 번번이 총칼만 들이밀고 불을 지르고 때려부수고 강탈하기만 하면 그게 저 암흑 대륙(아프리카)의 야만인들과 다를 게 뭔가.’

그가 유대인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당장 그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 하나가 유대인이었으니.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대인들을 마구잡이로 린치하고 살해하는 게 정당화된다고 믿지 않았다. 다행히 이 나라, 대영제국에서 그런 몰지각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그 괴서가 처음 출판된 곳이 런던이라는건 낮뜨거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출판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언젠가 유럽 모든 국가들과 이 이야기에 대해 논할 수 있다면.’

언젠가, 국가 간의 갈등이 총포가 아니라 협상과 타협으로 해결될 수 있다면, 조금씩 양보해나간다면 모두가 웃을 수 있는데, 왜 누구도 양보하려 들지 않는 것인가.

여전히 전쟁을 부르짖으며 역대 최대의 국방비를 책정하고 군수공장과 조선소를 늘리는 프랑스, 프랑스와 배신자 프로이센 모두에게 이를 갈고 있는 이탈리아, 혼란에 휩싸인 프로이센, 러시아에서 일어난 포그룸에 대한 소식이 실린 신문을 덮은 노인은 다우닝 가 10번지의 안락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었다.

노인, 자유당의 당수이자 현직 대영제국 총리 월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은 안타까움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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