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12화 (12/200)

12화 새로운 시대(2)

본인의 설계도로 본인을 낚는 것에 대한 죄책감은.. 사실 딱히 없었다.

아니, 진짜 죄책감이 안 느껴지는데 죄책감이 느껴진다고 억지로 말할 수는 없잖아. 엄밀히 말하자면 속이는 것도 아닌데.

그냥 거기에 끌려서 찾아오면 좋고 아니면 그냥 거절하기에는 좀 많은 금액 불러주고 데려오고..... 뭐 그런 거지.

아무튼 간에, 브라우닝이 포섭된다면 개인화기 걱정은 없다. 기관총, 소총, 아무튼 뒤에 총 붙는 모든 물건은 Made by 브라우닝으로 전군을 도배해버리고 대포 정도나 독자설계로 생산하면 충분하다.

아무튼 간에 브라우닝은 가스 작동식 설계를 세계 최초로 만들어낸 인간이다. 한 20년 뒤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즉 브라우닝이 있으면 좀 많이 나간 이야기지만 반자동 소총 개발 같은 것도 노려볼 수 있다는 소리다. 아직이야 볼트액션으로 충분하긴 하지만 충분히 고려할 문제다.

‘지금 급한 건 단총신 기관총이지만.’

개틀링이나 미트라예즈 따위로는 제대로 된 참호전이 안 된다. 내가 맥심이 몇 자루만 있었으면 파리에 들어오기도 전에 프로이센군 20만 따위 죄다 거름더미로 바꿔줄 수 있었는데 결국 시가전을 치러야 했잖은가.

대포야 지금 기술자들 갈아서 주퇴복좌기라는 개념을 야포에 적용시키라고 갈구고 있고, 한 몇 년이면 개발할 확률이 높다. 뭐 21세기 정보화시대도 아니고 19세기에 20년이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닌데 야금술 문제로 못 만든다거나 그러지는 않을 테니....

하지만 그런 것보다 중요한 건 프로이센을 외교적으로 포위하는 거다.

지금 프로이센이 무림 공적 신세가 되지 않는 유일한 이유는 비스마르크의 능수능란한 외교술이다. 솔직히 그 인간은 돌연변이 맞다니까. 외교적 수단이란 걸 DNA에서 전부 누락시키고 그 자리에 군사적 능력을 채워서 만들어진 독일인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위대한 외교관이라 불러줄 만한 인간이니까.

전투는 결국 전략의 승리를 확인시켜주는 최종작업일 뿐이다. 전투로 전략의 불리함을 뒤집으려는 시도는 역사상 단 한 차례도 성공한 적이 없다. 나폴레옹부터 추축국까지 전투 몇 번을 이긴다고 이미 지고 들어간 전략적인 상황을 극복할 수는 없다는 건 증명되어 있다.

‘사실 나폴레옹 3세도 그 전략적 상황에 끌려들어간 거지, 거기 끌려들어간 이상 좆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어, 그래도 프랑스가 아직 프로이센보다는 좀 더 나은 국가체급을 이용해 치킨 게임을 걸었으니 지정학적으로 불리한 프로이센이 먼저 다이를 걸어버린 거지....’

애초에 프로이센을 상대로 전략적 승리는 보불전쟁이 터지는 순간부터 나폴레옹이 돌아와도 불가능했다. 그걸 다시금 깨닫자 쓴웃음이 절로 났다.

‘내 상대가 그런 괴물딱지라면, 당연히 동원할 수 있는 패는 다 끌어다 써야지.’

먼저 내가 내걸 수 있는 패는?

하나씩 따져 보면, 우선....... 결혼이 있겠다.

난 미혼이고, 약혼자도 없다. 그리고 반 프로이센 동맹을 위해서라면 국민들은 뭐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으니, 내 결혼이 동맹 체결의 포석이라고 언론플레이를 좀 해 주면..... 가능.....하려나.

이건 국민들 반응을 모르겠으니 좀 보류, 그 다음은 역시 무기공급이다.

프랑스제 샤스포 소총은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주력화기인 퍼거션 캡 강선 머스킷은 물론이고 드라이제 소총보다도 우월하다, 대포는 크루프에 비해선 떨어지지만 오스트리아나 바이에른이 가진 것보다야 낫겠지.

브라우닝이 오고 신형 대포가 생산되면 기존 물자는 싹 재고품이 되는데, 그걸 동맹을 전제로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에 넘긴다. 우리 입장에서나 구식이지 저들 입장에서는 눈 돌아갈 정도의 신품들이니 당연히 환영이겠지.

‘콘스탄티노플과 발칸을 확보하도록 최소 묵인, 가능한 선에서 돕겠다고만 제안해도 곰탱이들 눈이 뒤집어지기에는 충분하다.’

우리가 방해만 안 해도 이번엔 충분히 먹을 수 있으니 가즈아~!를 외칠 불곰들이 눈에 선했다. 먹든 못 먹든 우리가 알 바는 아니다만.

‘일단은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독일을 많이 사랑한다. 그래서 독일이 많았으면 참 좋겠다.

독일이 통일되면 제일 먼저 좆되는 게 우리니까 양해 좀 부탁한다.

***

“황제 폐하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비밀리에 방문한 바이에른과 오스트리아-헝가리, 러시아의 특명전권대사는 당황스럽기까지 한 표정이었다.

‘프랑스가 이 정도로 눈이 돌아갔나? 아니, 돌아갈 만도 하기는 하지만......’

‘무기 공급에 본인의 결혼 관련 제안까지, 확실히 먹음직스러운 제안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의 황녀님과 본인이 약혼하는 방법을 생각했으나, 우리가 전쟁을 치르는 동안 기젤라 황녀님이 약혼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소, 그러니 그 방법은 보류할 생각이오.”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전권대사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분명 프란츠 요제프 1세는 복수심에 불타 있었고, 본인이 당한 굴욕을 되갚아줄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 동맹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받아들였으리라. 하지만 결혼이 코앞인데 약혼을 깨는 것도 외교적 결례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막내인 마리 발레리는 이제 고작 4세인 데다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 황후가 편애하는 딸인지라 절대로 정략혼으로 소모하려 들지 않을 거고, 황제가 공처가인 거야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막내딸에게 준 애정의 반의 반의 반이라도 황태자에게 줬으면 자살하진 않았을 텐데, 쯧.

“저희 측에는 혼처가 정해지지 않으신 공주님이 계십니다만, 이사벨라 공주님은 올해 겨우 9세신지라....... 약혼을 논하려면 3년은 더 기다리셔야 할 겁니다.”

“상관없습니다. 전쟁을 그렇게 근시일 내에 시작할 생각은 없으며. 저희도 군이 입은 피해는 복구한 뒤에야 전쟁을 시작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본국에 긍정적으로 검토해볼 것을 요청하겠습니다.”

“동맹이 정식으로 체결된다면, 귀국들에게 본국의 샤스포 소총과 미트라예즈, 그 외 화포 등을 저렴한 가격에 넘겨드릴 의사가 있습니다. 이 역시 본국에 보고하시기 바랍니다.”

“미트라예즈가 파리 방어전에서 맹활약했다는 이야기는 저희 측 관전무관들에 의해서 보고된 바 있습니다. 샤스포 소총의 성능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많이 들었죠, 프랑스 측의 진심은 저희 폐하와 내각에 즉시 전달될 것입니다.”

러시아의 전권대사는 눈에서 불꽃이 튀는 듯 했다. 프랑스까지 묵인해준다면 러시아가 발칸과 갈망의 도시 콘스탄티노플을 장악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건 영국밖에 없고, 영국은 절대 동맹국 다 떼고 혼자서 러시아를 상대할 수 있을 리 없으니. 러시아 상대로 레드코트 10만 가지고 뭐하려고.

러시아가 가장 집착하는 타이틀인 동로마의 후계자라는 이름을 증명해줄 방법, 동로마 제국의 고토 회복과 콘스탄티노플 탈환이 눈앞에 왔는데 러시아인이라면 누가 정신줄을 안 놓겠나, 가뜩이나 타타르의 멍에네 뭐네 하면서 콤플렉스 심할 놈들이.

“우리의 적은 프로이센뿐입니다. 프로이센을 적대하면 아군이고, 프로이센의 편에 서면 적입니다. 분명히 귀국의 내각에 전해주십시오, 프로이센을 편들지 않는 이상, 프랑스 제국은 결코 귀국들을 적대하지 않을 거라고.”

사실 하나 더 있다. 영국이라고.

근데 어차피 이 새끼들은 프로이센이 뒤질 것 같으면 200% 개입할 테니까 뭐..... 딱히 거짓말한 건 아니게 되겠지.

“물론입니다.”

이건 그 자체로 비스마르크 체제에 중지를 치켜드는 밀약이다.

3제 동맹을 붕괴시키고, 프랑스의 고립이 이루어지지 못하게 하고, 프로이센과 러시아의 사이를 갈라놓으며, 독일 제국이 성립하지 못하게 바이에른을 지원하며, 오스만 제국의 붕괴를 앞당기고, 러시아가 발칸을 차지하도록 지원하고.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기기 어렵다면, 모든 전선을 혼란으로 덮어버린다.’

독일의 패배는 언제나 양면전선에서 기인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양면전선도 아니고 삼면전선이지.

‘비스마르크, 이제 어쩔 테냐.’

***

상트페테르부르크, 겨울궁전.

“지금이 기회입니다! 폐하!”

전러시아의 황제, 폴란드의 차르, 핀란드의 대공인 러시아 제국 로마노프 왕조 12대 황제 알렉산드르 2세는 장성들의 주청을 들었다.

“크림 전쟁과는 다릅니다. 프랑스도, 오스트리아-헝가리도 우리 편입니다. 프로이센과의 동맹만 끊으면 갈망의 도시가 우리의 것이 됩니다. 지금 당장 오스만으로 쳐들어가야 합니다!”

종교계와 군부가 입을 모아 전쟁을 외쳤지만, 반대 목소리도 만만찮았다.

“폐하, 영국이 절대 가만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프로이센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며, 프로이센과의 관계가 악화되면 알렌스베렌 협정도 무효화될 것입니다. 알렌스베렌 협정이 폴란드의 불순분자들을 억누르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걸 상기해 주십시오!”

“지금은 2차 동방 전쟁을 일으키기는 너무 이릅니다. 무엇보다 흑해 함대 주둔권과 흑해 연안 도시 요새화 권리를 아직 되찾지조차 못했습니다.”

“그거야 파기하면 그만이오!”

“파기했다가는 그때는 문자 그대로 2차 크림전쟁입니다, 신중해야 합니다. 폐하! 전 유럽을 상대로 싸울 수는 없습니다!”

한 가지는 확실했다.

프랑스와 프로이센, 영국과 오스트리아를 전부 적으로 돌리려는 게 아니라면, 편을 확실히 정해야 했다.

프로이센을 지지하면 영국과 프로이센과의 충돌은 피할 수 있지만, 복수심에 불타는 프랑스는 러시아 역시 적으로 규정할 것이다. 그리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역시 마찬가지.

반대로 프랑스의 손을 잡으면, 프로이센과 영국을 적으로 돌리게 된다.

어느 것이 이득인가, 프랑스의 손을 잡으면 당장 발칸이라는 가시적인 이득이 기다린다. 오스만이 있기는 하지만 유럽의 환자를 진지하게 두려워하는 열강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 그러나 영국과 프로이센은 틀림없이 개입한다.

“프로이센은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절대로 개입할 수 없고, 영국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폐하, 지금이야말로 수백 년의 숙원을 풀어낼,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기회입니다. 용단을 내려 주십시오!”

군부의 장성들이 외쳤다.

“아직은 안 됩니다! 크림 전쟁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았습니다! 차르시여! 재고해 주십시오!”

내각의 관료들도 비명을 질러댔다.

“프랑스와 프로이센 중 굳이 한쪽 편을 들 필요 없습니다. 프랑스에게는 밀약에 동의하겠다고 답하십시오, 어차피 프랑스도 당장 동맹을 공식화할 생각은 없는 걸로 보이니 이번 기회에 최대한 빨리 발칸과 콘스탄티노플을 되찾으면 일단 프로이센은 후방을 안정화하기 위해서라도 묵인할 것입니다! 프랑스와의 약속은 천천히 지키면 됩니다.”

전쟁! 무조건 다시 전쟁! 뒷수습은 어떻게 되든 일단 따고 보자를 외치는 자들도 있었다.

결국, 차르의 결단이 내려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