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7화 (7/200)

7화 보불전쟁(3)

파리 주변에는 성형 요새를 연상시키는 모양의 참호선과 철조망들이 얼기설기 설치되었다.

기관총은 없어도 볼리 건, 미트라예즈는 있었고, 설령 미트라예즈를 쓸 수 없다고 해도 다수의 대포와 국민위병들이 있었다.

지뢰가 곳곳에 매설되었고, 초보적인 윤형철조망까지 설치되자 제법 전장 분위기가 났다.

대포는 있지만 기초적인 주퇴복좌기조차 없는 구닥다리, 뭐 어쩔 수 없다. 세계 최조의 주퇴복좌기 장착 야포는 1897년에 프랑스군에 의해 제식채용되었으니까. 그 다음이 독일이었을 거다.

하지만 명백히 독일의 크루프 야포가 프랑스군의 현용 야포보다 우월한 성능을 지녔음은 명백하고, 이는 숫적 우위와 방어의 이점을 활용해서 막아봐야 했다. 그마저도 충분하지 못할까 참호를 파서 병사들의 사상자를 최소화했다.

기관총은 없다. 세계 최초의 기관총인 개틀링 포는 참호전 등에서 사용하는 게 가능한 물건이 아니고, 애초에 프랑스군이 운용하지도 않는다.

대신 흉갑을 걸치고 산탄총과 권총, 둔기 등으로 중무장한 척탄병, 내가 이름붙이기로는 충격보병들이 있었다. 지상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개인호와 땅굴 등에서 싸울 이들은 우리가 숨겨놓은 비수였다.

‘비수라고 하기는 뭔가 아쉽지만.’

역시 맥심을 만들어야 했다.

맥심 기관총과 주퇴복좌기 야포만 갖춰도 한동안은 걱정 없을 텐데.

***

몰트케는 한숨만 푹푹 쉬었다.

베를린에서의 독촉은 가면 갈수록 심해졌다. 이러다가는 진짜 공황이 올 수도 있다면서 악을 써 대는 비스마르크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쓸 만한 군함이라고 해 봐야 장갑함 몇 척에 잡다한 소형함들밖에 없었던 프로이센의 원죄인 것을, 그마저도 프랑스 해군의 과감한 군사행동에 사실상 군함이 남은 게 없었다.

게다가 오스트리아-헝가리도 얼마 전까지 전쟁을 치른 사이답게 적대적이었으니, 프로이센의 경제는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정도였다.

“아직도 점령하지 못했나?”

“적의 포격이 뜸해졌습니다. 포탄 탄약이 바닥나는 게 아닌지......”

“포탄이 바닥나든 총탄이 바닥나든 간에 저들이 결사항전하면 귀찮아진다, 나폴레옹 3세는 반드시 사로잡아야 해."

“국민총동원령이 내려졌고, 파리로 국민위병들이 결집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집결한 규모는 대략 25만, 오합지졸입니다만 숫자 자체는 무시할 수준이 아닙니다.”

프로이센 왕국의 군대는 120만, 그 중 예비군이 90만, 정규군이 30만이다.

그리고 이전에 있던 프랑스군 정규군이 약 50만, 그 중 상당수를 궤멸시키기는 했지만 여전히 상당수가 요새 등에서 저항하고 있고, 거기에 후방에 있는 병력과 의용군 등을 끌어낸다면 약 40만 정도는 더 동원할 수 있다.

즉 파리 방어에 투입될 수 있는 병력만 65만, 저 안에서 여전히 저항하고 있는 스당의 12만 병력을 포함해 잔존 프랑스군이 약 40만.

화력에서도, 병력에서도 여전히 프로이센이 우세하기는 하지만, 프랑스는 방자의 입장인 데다 전쟁이 길어지면 힘들어지는 건 프로이센이다.

"사흘."

"........."

"사흘 내로 스당을 무너트린다."

무리한 요구다.

하지만 동시에 몇 안 되는 성공의 길이다.

성공의 가능성보다는 그 편익을 생각해야 할 상황에까지 몰렸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는 전부 다 칼날 위를 걸어온 프로이센의 원죄였으니.

***

나폴레옹 3세는 모르핀 주사를 맞았다.

숨 쉬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신이시여.’

차라리 죽여주십시오.

그런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고통스러운 순간순간이었다. 모르핀이 없으면 생각이란 걸 할 수조차 없었다.

문자 그대로 배가 찢어지는 고통, 불로 달궈진 쇠꼬챙이가 창자를 찔러대는 고통 속에서 모르핀을 맞아도 정신이 또렷할 정도로 고통스럽고, 속이 메스꺼워서 식사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어제부터인가 근육에 경련까지 오기 시작했다.

‘못 버티겠군.’

“폐하, 열이.......”

“.........”

“파상풍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빨리 치료를 받으셔야....”

“지금 병사들에게 쓸 의약품도 부족하지 않던가.”

“하지만......”

“그들에게 쓰게.”

“폐하.”

“난 늦었어. 솔직히 말하면 자네가 날 한 방 쏴주면 좋겠네, 머리를 깔끔하게.”

“....... 농담이라도 하지 마십시오.”

“이게, 큭....... 이게 농담으로 보이나? 모르핀 좀 더 주게.”

“더 사용하면 진짜 위험합니다!”

“........ 괜찮네.”

나폴레옹 3세는 쓴웃음을 지으려 했지만, 잘 지어지지 않았다. 얼굴 근육까지 마비된 탓이었다.

“어차피 난 죽네, 그리고 이 아비가 죽어줘야, 저 아들놈과 파리 시민들이 항전의지를 불태우지 않겠나.”

아들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라는 잃더라도 되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명예를 잃으면, 그리하여 국민들이 우리를 잊으면, 보나파르트 가문은 그때야말로 최후를 맞을 것입니다!’

“그게 네 결론이더냐.”

확실히, 그들의 황제가 순교한다면, 설령 폐위되더라도 프랑스인들은 그들의 황제를 다시 찾아내어 세우리라.

‘.... 귀여운 구석이라고는 없는 녀석.’

하지만, 그래도. 그렇기에.

두서 없는 생각들을 떠올린 나폴레옹 3세는 눈을 감았다

살아나가더라도 이 고통을 계속 겪으면서 제위를 지킨다는 게 의미나 있을까. 사실 제위 유지도 간당간당한 마당에.

죽는다면, 아내는, 그리고 나의 두 아들의 입지는 더더욱 탄탄해진다. 그리고 자신 역시 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이 있다면. 스스로에게 내려진 두 축복이었다.

'한 번 더 대화를 나누었다면, 한 번 더 함께 걸었다면.'

그 아이들이 자신을 닮지 않아 다행이라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부탁이니, 내게 자비를 배풀어 주게나, 친구.”

자신을 죽여달라는 주군의 부탁에, 주치의는 이를 악물었다.

***

“지옥도가 펼쳐질 거야.”

“진작부터 각오한 일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피해를 입든, 프로이센군에게 심대한 타격을 입혀 포위를 유지하기 어려울 수준으로만 만들면 충분하다.

프로이센군이 파리를 함락시키지 못하고 시간을 끄는 동안 외부에서 불러온 군대로 프로이센군을 협격해서 저들이 퇴각하게 만든다.

프로이센군이 프랑스군의 3중 방어선을 뚫는다고 해도 파리 시내에는 이미 시가전을 대비한 바리케이트 등이 대대적으로 준비되고 있다.

설령 방어선이 충분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해 무너진다고 해도 시가전에서는 프로이센군도 사상자를 강요당할 수밖에 없고, 결국 협상을 걸어올 수밖에 없겠지.

물론 다른 이들 중 누구도 내가 협상할 의지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겠지만, 나는 처음부터 이 싸움을 협상으로 끝낼 생각이었다.

결국 이 전쟁을 길게 끌어서 좋을 일이 없다는 것 역시 명확했으니까.

그때, 전령이 다급하게 달려왔다.

"전하! 전하!"

"무슨 일인가?"

“전서구가 왔습니다.”

“전서구?”

나는 이마를 찌푸렸다.

“무슨 전서구인가? 그리고 어디에서?”

“스당에서.... 스당 요새에 포위된 주둔군의 전서구입니다.”

“참모본부에 넘겨서 알아서 처리하라고들 하게.”

“아니....... 그렇게 처리할 것이 아닙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내용이길래....”

“황제 폐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뭐?”

“황제 폐하께서 요새 내에서 돌아가셨습니다.”

“..... 그 소식, 얼마나 아나?”

“저...... 그게...... 지금쯤 참모부에 보고가 들어갔을 겁니다.”

“프로이센은? 그리고 파리 시민들은?”

“길어야 오늘 저녁쯤에는 알게 될 겁니다.”

앙리 장군의 답에, 나는 머리를 감쌌다.

“이런 젠장..........”

계산이 싹 다 꼬였다. 그렇게 생각할 때, 전령이 종이를 내밀었다.

“황제 폐하의 유언이라고 합니다.”

나는 종이를 폈다.

“필체가 좀 다른데?”

“펜을 들 상황이 아니셔서 구술하고 대필하셨답니다.”

그제서야, 나는 나폴레옹 3세의 유서를 읽었다.

-외젠에게.

-네 아버지로써 당당하게 돌아가고 싶었지만, 어려울 것 같구나.

-아들아, 네가 태어났을 때 나와 네 어머니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를 거다.

-나도 왕년에는 제법 바람둥이었지, 수많은 여인들을 스쳐지나갔지만, 그래도 네 어머니만한 여자가 없었단다. 내게는 과분한 여인이었지. 그리고 우리 둘의 결실인 너는 내게 있어서 내 말년의 축복이었다는 걸 다시 느끼는구나. 그리고 네게 있어서 나는 언제나 부족했다는 것 역시.

유언장의 전체 길이는 그다지 길지 않았지만, 어딘가가 아려왔다.

가슴 속, 안쪽 깊숙한 곳에서 미약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통증이 느껴지고, 시야가 이상하게 흐려져서 앞을 보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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