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보불전쟁(1)
내 생활의 패턴은 거의 반쯤 획일화되었다.
아침에 기상, 식사 후 간단히 승마를 하든 하면서 운동을 하고 방에 들어와 황태자로써의 공부를 한다, 아버지와 반쯤 의절을 했든 어쨌든 간에 나는 황태자고, 의절하다시피 했다고 해서 내 계승권을 박탈하는 건 애초에 추잡한 짓을 한 본인에 대한 역풍으로 돌아올 게 뻔했으니, 나는 여전히 황태자다.
그리고 공부를 하다 점심시간이 되면 식사 후 사람들의 방문을 받거나 정치적 행동을 하고,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여러 계획들을 세우는 등의 일을 하다 보면 그럭저럭 저녁시간이 되면 다시 식사를 한다. 그리고 식후에는 편지를 읽고, 답장을 해야 할 편지에는 답장을 한다.
그 저녁 식후 시간 상당 부분을 할애하게 만드는 것이 루돌프 황태자에 대한 답장이다. 스팸 메일마냥 계속 오는데 일일이 답장을 해줘야 하니, 제기랄.
그 외에도 할 일은 넘쳐났다.
당장 가장 큰 문제는 전쟁이니만큼 무기에 신경을 많이 써야 했는데, 맥심 기관총을 10년쯤 당겨오는 일은 쉽지 않았다. 반동을 이용해서 탄을 자동으로 장전하는 단총신 개틀링 비스무리한 걸 만들라고 주문했고, 한참을 씨름한 끝에야 그 비스무리한 걸 만들어낼 수 있었다.
물론 대량생산 체계는 쥐뿔도 갖춰져 있지 않았고,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한 단순작업으로 대량생산을 하려는 준비는 지지부진하게 늦어졌다.
그러나 시간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1870년 7월 13일, 엠스 전보 사건이 발생했다.
양국의 여론은 전쟁 찬성이 압도적이었다. 애초에 비스마르크가 깔아놓은 판이었으니. 한편, 프랑스의 벨기에 병합 논의가 언론에 흘러나왔다. 비스마르크의 공작으로 인해 영국은 벨기에의 중립을 보장하고, 영국의 프랑스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역시 복잡한 내부 사정 때문에 참전할 여건이 되지 못했고, 러시아 제국 역시 중립을 선언했다. 이탈리아는 되려 프로이센을 지지해 프랑스가 독립을 보장한 교황령을 공격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나폴레옹 3세는 1870년 7월 19일, 프로이센에 선전포고하기에 이르렀다.
***
돌겠다, 돌겠다, 돌아버리겠다.
전쟁 반대를 외칠 수는 없었다. 이 분위기에 전쟁 반대를 외치면 매국노 취급 외에는 당할 게 없으니까.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프랑스의 벨기에 병합 논의에 관련해서 ‘들어본 적도 없고, 설령 사실이더라도 프랑스의 국익에 도움이 안 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까버리는 것 외에는 없었다. 이게 영국의 반불 감정을 좀 약화시켜줬기를 빌어야겠지, 제기랄.
하여튼 외교 한 번 좆같이 하십니다 나폴레옹 3세 폐하. 이딴 식으로 외교적 고립을 당했다는 것부터가 이 전쟁은 이미 좆됐다는 걸 증명하는 거나 다름없다. 내가 열심히 스당 요새에 식량이랑 탄약을 비축해 놨고, 황태자가 하는 소리니 해군이 내 말을 좀 들어쳐먹어주기를 바라야지.
그러나, 개전 이후 한 달 동안의 전황은 내가 아는 원 역사의 전황과 한 치도 다르지 않았다. 먼저 때려놓고도 국경도 돌파 못 하고 쩔쩔매다가 역으로 침공당해 메츠 요새에 프랑스군 13만 명 포위, 구원한답시고 병력 밀어넣었다가 축차투입 후 각개격파.
그리고 나폴레옹 3세는 최전선으로 친정. 덕분에 파리는 내가 지키고 앉아 있다.
“황태자 전하, 현 상황에서....”
“육상전은 황제 폐하께서 알아서 하실 일이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건 해군의 운용이야, 우리도 준비가 안 됐지만, 프로이센도 장기전 준비가 안 된 건 마찬가지라고!”
아직 개전한 지 두 달도 안 됐다.
“하지만 전하의 명대로 움직이면 식민지를 지킬 병력이.....”
“식민지가 중요한가? 아니면 본토가 중요한가!”
내가 신경질을 부리자 장성들은 급히 꼬리를 내렸다.
“프로이센의 장갑함은 5척, 나머지는 전부 잡다한 소함정이야, 전 함대를 동원해서 프로이센의 모든 항구를 봉쇄하라고! 설마 장갑함 5척과 기타 잡것들이 두려워서 항구봉쇄를 못 할 만큼 프랑스의 건아들이 겁쟁이가 되었나?”
원 역사에서도 육지에서 승리하지 못했으면 프로이센은 프랑스의 항구봉쇄만으로도 말라죽었을 것이다.
“아닙니다.”
“그럼 시행해! 식민지를 잃더라도 이기고 본다. 그리고 국민위병과 의용군, 해군 육전대 병력을 최대한 긁어모아서 예비대를 소집하는 건 어떻게 되었나?”
스당과 메츠에서 무의미하게 붕괴될 병력을 생각하면 입 안이 쓰지만, 방법이 없었다.
“.... 전하께서 내리신 명령은 분명 실행되었습니다만, 아직 속도가 너무 느립니다.”
나는 속으로는 한숨을 쉬었다.
‘그럼 그렇지, 하여튼 이 유사열강 새끼들.’
물론, 겉으로는 노발대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저 자우어크라우트 놈들도 하는 걸 왜 우리 위대한 프랑스인들이 못 하냐는 말이다!”
다른 건 몰라도 독일이나 영국과 비교해서 못하다는 소리 듣는 것만큼 프랑스인이 싫어하는 거 없을걸? 이러면 자존심 상해서라도 빠릿빠릿하게 좀 움직이겠지.
그리고 이 시대의 프로이센의 동원체계는 전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이다, 물론 프랑스가 후진적이라는 걸 부정할 순 없지만, 상대가 나쁘다.
‘파리 외곽 방어선을 더 강화하고, 또..... 젠장, 내가 진작부터 군권을 행사할 수 있었더라면.’
그랬으면 여기 있는 새끼들 6할은 진작 모가지를 날렸겠지.
***
스당 요새, 프랑스.
“그래도 어떻게 탄약과 식량은 있군.”
“황태자 전하께서 프로이센과 전쟁을 한다면 필요할 거라고 전쟁 이전부터 비축을 지시하셨습니다. 그 두 가지만은 넉넉합니다.”
하지만 병사들의 사기만은 어쩔 수 없었다. 요새사령관은 잠시 뒤, 밀랍으로 봉인한 편지를 황제에게 바쳤다.
“이건 뭔가?”
“만약 황제 폐하께서 전쟁이 터진 이후에 스당 요새에 오시게 된다면 전달해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의아한 표정이 된 나폴레옹 3세는 밀랍으로 봉인된 편지를 바라보았다.
“그 녀석이?”
전쟁 나기 직전까지만 해도 완전히 사이가 틀어져서 편지 한 통 안 보내다가 전쟁 난 뒤에야 황태자 자격으로 황제가 출정한 동안 후방을 맡겠다고 통보만 한 아들이 전쟁이 나기 전부터 자신에게 보낼 편지를 써뒀다?
황제는 일단 편지를 받아들었다.
“알겠네, 고맙군.”
***
-프랑스인의 황제 나폴레옹 3세 폐하께.
-이 편지를 읽으셨다는 건 전황이 제가 예상한 그대로 돌아가서 메츠가 조기에 무너지고, 당신이 스당에 포위당했다는 거겠죠, 이 편지를 언제쯤 뜯을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늦기 전에 보면 좋겠습니다. 이제 이 편지에 적힌 대로 잘 보십시오, 프랑스를 구할 몇 안 되는 방법이니 말입니다.
-최대한 지연전을 펼치십시오, 몰트케로써도 12만 대군이 자기 배후에 있는 걸 놔두고 파리로 진군하지는 못할 겁니다. 하루 더 버티면 파리는 방어를 강화할 시간을 하루 더 벌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 해군이 프로이센을 더 오래 봉쇄해서 프로이센의 물자가 더 빠르게 고갈되겠죠. 그걸 위해 식량과 탄약을 스당에 최대한 비축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건데, 빌헬름 1세는 절대 당신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저로써도 마찬가지 상황입니다. 저도 당신이 항복했다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당신에게 자비를 베풀 수 없어집니다, 그렇게 될 경우, 저는 당신이 죽었다고 선언하고 즉위해 항전을 이끌 겁니다. 프로이센의 경제력은 군사적 역량과 달리 우리보다 부족하고, 우리가 육상에서 결정적인 패배만 겪지 않으며 북독일 연방의 목을 해군을 이용해서 조르면 이 전쟁은 끝입니다. 그러니 항전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천하의 겁쟁이일 겁니다. 당신뿐 아니라 당신 휘하의 군대도 전부 말입니다.
-저와 프랑스는 적에게 항복한 자를 황제로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억울하면 파리로 돌아와 보시든가요. 프로이센군의 포위망을 뚫을 수 있다면 말입니다만, 설마 탄약과 식량 있는 대로 넣어놨는데 버티는 것도 못 하진 않겠죠? 장기전을 각오하십시오.
-이건 사족입니다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니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예, 저는 한동안 당신을 혐오했습니다. 한 인간을 사지로 내몰고 나몰라라한 당신을, 그 남자의 아내가 애걸하는데도 그를 위해 기도하겠다는 소리만 하고 매정하게 내친 당신에게 분노했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그 일에 대해서는 당신이 비겁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이 편지를 읽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저는 당신을 비열한 비겁자로 여길지, 아니면 적어도 조국을 사랑하는 자인지에 대해 제 평가가 바뀔 겁니다. 물론 제 평가 따위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여기실지 모르죠, 그건 당신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 모든 명예를 잃은 당신을 아버지라 부른 적 없는 제가 당신을 다시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면 전 기쁠 겁니다.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프랑스 제국의 황태자 외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