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3화 (3/200)

3화 황태자(2)

“아버지, 막시밀리아노 1세에 대해서는 어찌 처우하실 것입니까.”

“프랑스로 망명하게 해주겠다고 이미 제안하지 않았더냐.”

그 말에, 내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망명이라니요, 애초에 프란츠 요제프 이중제국 황제의 동생씩이나 되는 사람이 도망갈 구멍이 없어서 탈출하지 않았겠습니까.”

스스로도 조금쯤 부끄러웠는지, 나폴레옹 3세는 말을 얹었다.

“다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더냐.”

“........ 아버지. 막시밀리아노를 사지로 밀어넣은 건 아버지이십니다.”

“..........”

“아버님은 루이가 같은 상황에 처한다고 해도 방관하시겠습니까.”

“나 역시 그를 위해 기도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현실을 살아야 하지 않더냐.”

“그가 죽도록 놔둔다면 보나파르트 황실의 명예는 바닥을 길 것입니다!”

“명예보다는 국가를 위한 실리가 더 중요하다. 너같이 현명한 아이가 그것을 모를 리 없지 않으냐.”

“설령 전쟁에서 패배하더라도 국민들이 우리를 잊지 않는다면, 그리고 국민들이 우리를 여전히 명예롭게 기억하고 지지한다면 제위는 되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명예를 포기한 순간 우리는 그 무엇도 아니란 말입니다!”

나는 속은 냉정하지만 목소리는 뜨겁게 연기했다.

1864년, 나폴레옹 3세는 멕시코에 개입해 오스트리아 제국의 대공 막시밀리아노 1세를 황제로 추대해 친프랑스 멕시코 제국을 세우려고 했다.

그리고 남북전쟁이 막 끝난 미국이 길길이 뛰자 은근슬쩍 빤스런했다.

문제는 이때 멕시코 제국의 상황이었다. 막시밀리아노 1세는 내전에서 이길 뻔했지만 프랑스가 발을 빼면서 결국 혁명군에게 사로잡혀 총살당한다.

그 와중에 혁명군에게 잡힌 막시밀리아노 1세의 석방에 도움을 달라며 애걸복걸하던 그의 아내를 냉정하게 내치고, 결국 남편이 처참하게 살해당하면서 아내인 벨기에의 스테파니 공주는 미쳐버렸다. 심지어 오빠인 레오폴트 2세조차도 자기 여동생을 내쳤다.

그녀는 전 유럽의 동정을 받았고, 합스부르크 가문에서는 프랑스의 행태에 분개했고, 영국과 기타 다른 국가들에게 욕을 먹었을 뿐 아니라 프랑스 국내에서도 이건 아니지 않느냐는 비난 여론이 빗발쳐 나폴레옹 3세의 지지율이 폭락했다.

얼마 안 가서 보불전쟁이 터지고 나폴레옹 3세가 폐위되면서 일단락되지만.

하지만 내가 아버지에게 정면으로 대든 건 단지 정의감 때문이 아니다. 물론 그게 옳기 때문에 아버지와 대판 싸우고 틀어졌다는 게 패륜 소리 안 듣기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아버지가 인간 같지 않은 짓을 해서 아들이 반발했다는 게 왕자의 난보다는 좋게 들리지 않는가.

아버지와 대립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이면, 그리고 우리 둘의 관계가 크게 틀어졌다는 사실을 어필하면, 나폴레옹 3세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싹 다 내 지지층으로 긁어올 수 있다.

그리고 나폴레옹 3세는 적이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외교도 개판이고.

국내의 정적들만 문제가 아니라 영국과도 벨기에 문제로 척을 지고, 독일어권 국가들과도 사이가 나쁘고, 외교적 고립을 자초하다시피 했는데, 후계자가 대놓고 ‘나는 아버지와는 다릅니다!’ 이러고 있으면 혁명이 터져도 내 편을 좀 더 들어주지 않을까?

물론 아들에게 정면으로 반항당한 아버지 입장에서는 속이 찢어지실지 모른다. 그런데 솔직히 이건 당신이 잘못한 거 맞잖아, 자업자득입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에게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갔다.

***

황태자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서 닫혀버린 문을 바라보며 각료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황태자와 황제의 정면충돌을 똑똑히 본 자들이 너무 많았다. 아마 오늘 내에 파리 전체, 내일까지 전 유럽이 이 사건을 알게 되리라.

그때, 문이 벌컥 열렸다.

“황제 폐하.”

“앙리 대령.”

황태자의 호위책임자가 들어서자, 황제는 침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녀석은 뭘 하고 있나.”

“짐을 챙기고 계십니다. 이걸 말려야 할지......”

“짐이라.”

“황궁에 남지 않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벨기에의 샤를로트 공주님을 찾아뵙겠다고 하시는군요.”

나폴레옹 3세는 충분히 노회한 정치인이다. 그 행동이 가져올 수 있는 이득을 계산한 황제는 쓸쓸히 웃었다.

“계산한 거더냐, 아니면 정의감에 얻어걸린 거더냐.”

“예?”

대령은 알아듣지 못한 듯 했지만, 나폴레옹 3세의 명석한 두뇌는 빠르게 상황을 짚어냈다.

결국 어느 쪽이든 욕을 안 먹을 수가 없는 상황이지만, 이로써 욕을 먹는 것은 그 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녀에게 아들놈이 사죄한다면, 싸늘해진 민간의 여론은 물론이고 합스부르크 왕가의 시선도 좋게 만들 수 있다.

‘신문사를 움직여서 이야기를 키워야겠군.’

나폴레옹 3세는 입을 열었다.

“앙리 대령, 팔레 루아얄을 개방하게.”

“예?”

“그 녀석이 황궁에 더 있지 않겠다면, 거기로 가라고 해.”

팔레 루아얄, 과거 오를레앙파의 본거지였던 곳.

“하지만 폐하, 팔레 루아얄에 황태자 전하가 들어가신다는 건 적잖은 정치적 후폭풍을...”

“일으키겠지, 거기에 나와 황태자가 정치적으로 완전히 갈라섰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고, 국론은 분열될 터.”

그리고 대부분의 여론은 나폴레옹 3세보다는 황태자를 지지할 것이다. 언행이 일치하는 도덕적인 인물을 대놓고 욕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황태자는 아직 젊다 못해 어리다.

옹호의 여지가 없는 아버지가 부끄러운 자식이 부친과 의절한 뒤 아버지의 죄를 대신 사죄한다는 구도가 될 터.

즉, 프랑스 내외에 있던 자신의 반대세력 전체를 황태자의 밑으로 결집시킬 수 있다.

일반적인 군주제 국가라면 내전행이지만, 나폴레옹 3세는 느끼고 있었다.

그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허약해지고 바짝바짝 말라가고 있었다. 과연 몇 년이나 이 몸뚱아리가 더 버틸 수 있을까.

즉, 그가 죽으면 그걸 기반으로 황태자는 안정적으로 권력을 승계할 수 있을 터였다.

“앙리 대령.”

“말씀하십시오.”

“그 아이를 잘 돌봐주게.”

나는 부끄러운 아버지니까. 내 편을 무리하게 들어주면 그거야말로 정치인의 길을 걸을 아들에게는 마이너스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 대신.

“그 아이를 잘 지켜주게나.”

***

-충격! 황태자, 아버지의 죄를 사죄하다!

-나폴레옹 3세가 저지른 수치, 외젠 황태자가 대신 닦아내다.

-외젠 황태자, 더 이상 황궁에 머무르지 않는다. ‘새 거주지는 팔레 루아얄.’

-황태자, 멕시코행 의용군을 비밀리에 모집? 아버지의 잘못을 뒷수습하려는 것인가.

나는 기차의 특등석에서 신문을 훑으며 피식피식 웃었다. 수행원들은 불안한 표정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전하, 괜찮으시겠습니까?”

“내가 지금 전쟁터라도 가나?”

“..... 아닙니다.”

뭐, 어떤 의미에서는 전쟁터이기는 하지.

앞으로 일어날 전쟁터를 향해 달려가고 있기도 하고.

내 몸이 향하는 곳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지만, 내 운명이 향하고 있는 곳은 보불전쟁이다.

운명이라고 하면 뭔가 웃기지만, 보불전쟁은 엠스 전보가 있든 없든 언젠가는 터질 전쟁이었다. 비스마르크는 단순히 부추겼을 뿐.

비스마르크.

이 시대의 영걸이자 한 시대의 이름으로 남은 자.

“잽싸게 만날 사람만 만나보고 바로 귀국할 건데 뭐가 걱정인가. 다른 대륙을 가는 것도 아니고 이웃 국가인데 말이지.”

전쟁을 가급적 늦추고, 대비를 더 충실하게 갖추고, 기도하고.

농담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기도다, 내가 미래지식 있더라도 비스마르크를 이길..... 소위 말하는 ‘각’이 안 보인다.

어린 나이를 이용해서 폭락하는 아버지의 지지율을 고스란히 흡수하고, 교묘한 정치적 술수가 아니라 그저 정의감과 젊은 혈기로 포장하고, 나폴레옹 3세를 싫어하는 모든 세력을 끌어안고 지지를 얻는 것까지는 어떻게 가능했다. 하지만 이 시기의 프로이센을 이기라고? 그 독일 제국군, 나치 독일군의 모태가 된 군대를?

내가 할 수 있는 건 먼저 신무기 도입, 이 시대에 가장 써먹을만한 건 역시 참호전일까. 맥심이 1883년에 만들어졌을 텐데, 원 역사대로라면 1870년이 보불전쟁 발발. 13년의 세월을 단축시킬 수 있을까?

‘안 해보는 것보다는 낫지, 특허랑 철조망 팔아서 있는 게 돈인데.’

드레드노트 같은 건 만들 돈 없긴 한데, 어차피 프로이센 해군은 병신이니까 우리 함대만 잘 운용해도 이길 수 있다. 원 역사에서도 프랑스 해군이 엄청나게 비효율적으로 싸웠는데도 해상봉쇄를 당한 프로이센은 경제공황이 올 뻔했다.

내가 해군을 꽉 틀어쥐고 지휘할 수만 있으면 좀 낫겠지. 해군 장악은 어떻게 하느냐가 또 문제기는 한데.

그 외에도 할 만한 일은 넘쳐났다. 포병 강화..... 주퇴복좌기 같은 거 만들 수 있을까? 그건 한 시간을 30년은 더 당겨야 할 텐데, 철도 운용 노하우도 문제고, 지휘가 병신같았던 것도 문제고.

‘생각을 하려 하니 첩첩산중이네.’

총이야 샤스포 소총이 드라이제보다 성능이 더 나으니 개인화기를 반자동 소총 수준이 아니면 굳이 싹 교체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 시기에 기관단총은..... 못 만들겠지? 자동화기라고 해 봤자 개틀링밖에 없는 시대인데.

써먹을 수 있는 건 다 써먹어서, 파리까지 무너질 게 뻔한 전쟁이지만 역으로 베를린을 따지는 못한다고 해도 어떻게 대등한 위치에서 협상으로 풀 입장이 되게 한다.

‘그래, 이건 그냥 첫 번째 단계다.’

오스트리아-헝가리에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막후 협상을 통해 보불전쟁 때 유사시 우리 편을 들 수 있을 상황을 만들어놓기.

보오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분명히 넘어올 거다. 빈이 함락당할 뻔한 굴욕을 그렇게 쉽게 잊지는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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