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의 보나파르트-2화 (2/200)

2화 황태자(1)

“형.”

“왜 부르냐.”

나는 제도용 자를 가지고 끙끙거리며 물었다.

“뭐 하는 거야?”

“설계.”

종이에는 철사를 이리저리 구부려 그 끝에 칼날을 단 물건, 흔히 면도날 철조망이라 불릴 물건이 그려져 있었다.

물론 이건 개념도다.

철조망을 처음 만든 인간이 얼마나 돈벼락을 맞았는지를 생각하면 내가 황태자든 황제든 안 집적거릴 수가 없는 분야였다.

동생, 루이 나폴레옹이 내 곁에 와서 앉았다.

“놀자.”

“형 바빠.”

“뭘 맨날 바쁘다고 그래.”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래, 저 녀석에게 있어서 나는 그냥 나 자신일 것이다. 더하고 뺄 것도 없이.

하지만 전생의 기억을 가진 나 자신에게 있어서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

그래서 껄끄럽다.

나는 대강 그려놓은 초승달 모양 기병용 개머리판 설계도 옆으로 철조망 그림을 치웠다.

“루이.”

“응?”

“난 황제가 될 거다.”

“.........”

뭘 새삼스럽게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듯 루이가 뚱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황태자가 그럼 황제가 되지 뭐가 돼.”

이미 후계자 수업이라고 제왕학, 수사학, 인문학 등등을 가정교사와 이 세계에서의 어머니, 외제니 황후에게 열심히 배우고 있는 형이 뜬금없이 큰 결심이나 한 듯이 당연한 소리를 하니 심드렁하는 걸 넘어 뭔 헛소리를 하려고 빌드업을 쌓나 싶을 거다.

“루이야, 루이야, 니 어께 위에 달린 게 장식이 아니라면 생각을 해 보렴, 우리 가문이 역사가 깊냐? 그러니까 저 영국이나 그런 놈들에 비해서 말이지.”

“뭔 소리가 하고 싶은데 그래서.”

“다른 나라들에 있어 황제든 왕이든 간에, 그런 존재들은 있는 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거지만, 우리 가문은 그렇지가 않다는 소리지.”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런 눈빛이 아프게 와 닿는다.

“그러니까 국내외의 지지를 받는 게 중요하다 이거지.”

“그걸 누가 몰라?”

나는 픽 웃었다.

그래, 당연하다면 당연한 소리지.

하지만, 나는 황제가 되고 싶었다.

황제가 되어서 칭송받고 싶었다.

한동안 잊었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황제의 자리를 자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물려받는 것과 황제가 되겠다는 결심이 선 상태에서 제위를 물려받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이야기랍니다. 루이.”

“어머니.”

루이가 벌떡 일어나고, 나도 몸을 일으켜 고개를 숙였다.

“어머니.”

프랑스 제국의 황후, 외제니가 다가와 내가 끄적거리던 걸 내려다보았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황태자가 이렇게 결심이 확고하다니, 어릴 적부터 알 수 없는 소리를 하고 이상한 기계장치나 끄적거려서 정치에는 관심이 없는 줄 알았답니다.”

농담조로 말하는 내 생물학적 어머니, 외제니 황후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언제나 관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나이가 아직 어리지 않습니까.”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는 10살의 나이에 트로이 전쟁에 참여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죠. 그리고 모든 약점이 활용하기에 따라서 강점이 될 수 있듯, 어리다는 건 때로는 무기도 될 수 있답니다.”

외제니 황후의 입에서 중요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유능하다, 나폴레옹 3세보다 더 정치적 감각이 있는 여걸이다.

그리고 그녀는 문자 그대로 태어난 순간부터 나를 봐 왔기에, 내가 충분히 이해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주저없이 말을 꺼냈다.

“황제 폐하의 정치 전략은 모든 정치 세력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내어줄 수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 자유주의, 왕정주의, 사회주의까지 필요에 따라 손을 뻗치면서 전국민적인 지지를 받아냈죠. 하지만 이는 민중들에게는 먹혔을지 몰라도, 지식인과 교양인들은 아니었습니다.”

알 만큼 아는 인간들에게는 그런 포퓰리즘이 통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어린 나이에 가치관이 형성된다는 것은 세간의 상식이고, 어린 아이를 경계하는 이는 많지 않죠, 이를 이용하면 지식인들조차도 당신에게 기대를 품게 만들 수 있습니다.”

“제가 자신들의 사상에 심취하면 제가 즉위한 뒤에는 그들에게 우호적인 정책을 펼 거라는 기대겠죠.”

“맞아요, 그렇게 된다면 적어도 한동안은 그들은 당신을 지지할 거에요, 황태자.”

그녀는 나를 아들이라 부르지 않는다. 적어도 공적인 장소에서, 나를 외젠이라 부르지 않는다.

황태자. 그게 황후가 나를 부르는 호칭이었다.

자신이 직접 낳은 자식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나를 아들이나, 내 이름을 부르지 않고, 나를 황태자라 부른다.

내 권위를 세워주기 위함이었을 터, 그녀는 모르겠지만 동시에 새 가족을 진정한 가족이라 느끼기 어려운 내게 있어서는 큰 배려이기도 했다.

서로 간의 관계를 객관화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나 역시 외제니 황후에게는 최고의 존중과 경의를 보였다. 무엇이든 받은 만큼 보답하는 게 옳은 일이었으니까.

“제가 경청하는 모습을 보이고 대화의 여지가 있다는 태도만 보여도 저들이 적대하는 건 막을 수 있겠군요.”

“정확합니다. 황태자, 좌파든, 우파든, 종교계든, 왕정주의자든, 자유주의자든, 보수파든 간에 말입니다.”

알고 있는 이야기라도 이를 확인받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루이는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보다 2살이나 어리니 어쩔 수 없는 일일까.

하지만 외제니 황후도 그건 신경쓰지 않았다.

나는 제위를 물려받아야 하지만, 루이는 그게 아니니까.

내가 건강이 약하거나 정통성에 문제가 있었거나 하는 문제가 있었다면 루이도 후계자 수업을 받았겠지만, 그게 아닌 이상 괜히 정통성 있는 후계자의 지위를 흔들 이유가 없었다.

“황제 폐하께 이야기했습니다. 내일부터 황태자 역시 국무회의에 참석하십시오.”

“내일부터 국무 회의에? 그래도 괜찮습니까?”

“그렇습니다. 황태자가 어리다지만 충분히 사리분별을 하는 걸 넘어 그 능력이 결코 부족하지 않은데 미리부터 국정에 관여한다 해서 문제될 것이 없겠죠, 국정을 총괄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것 뿐 아닙니까.”

나는 그 말에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큰 기회를 가지게 되었군요,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말할 것 없습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황태자가 짊어져야 할 짐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황제 폐하의 건강이 갈수록 악화되어 국정을 보기 어려워진다는 것도 우려되고 말입니다.”

나폴레옹 3세는 지금 요로결석을 앓고 있다.

그런데 그 요로결석이 보통 결석이 아니다. 나폴레옹 3세가 죽고 나서 시체에서 꺼낸 요로결석을 살펴보니 결석의 크기가 비둘기 알만했다니까.

이거 때문에 신장에 손상이 가고, 결국 폐위된 뒤에 그게 원인이 되어 죽었지? 아무튼 지금도 그 요로결석이 있고, 국정 운영에 지장이 갈 정도로 고생하고 있다. 나으려고 별짓을 다하고 있지만.... 이미 늦었다.

그러니 나더러 그 공백을 메꿀 준비를 하라는 거겠지.

“알겠습니다.”

예를 갖추어 어머니와 동생을 내보낸 뒤, 나는 떨리는 손을 감쌌다.

본격적으로 국정에 참여하게 되면, 권력을 얻을 수 있다. 동시에 아버지가 폐위되더라도 내 권력을 지킬 가능성 역시 커진다. 보불전쟁의 뒷수습도 가능하고.

그래, 권력이다. 황제라는 권력에 더욱 가까워진다.

전생에서도 원했던 그것에.

권력을 통해 뭔가를 바꾼다. 권력을 통해 뭔가를 한다.

분명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연하다, 권력은 그 자체로 목적일 수 없으니까, 그것을 손에 넣고, 그 도구를 이용해 할 수 있는 것이 핵심이다.

손에 넣은 권력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그것이 핵심이다, 핵심이어야겠지만.....

‘글쎄.’

나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그 권력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전생에서는 분명 뭔가를 하고 싶었다. 그러지 않았으면 그 길을 걷지도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이곳에서는 의미가 없다. 이곳에 오기 전에 과거로 가서 아주 큰 권력을 쥐고 있으면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나 스스로도 그에 대해 확신하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난 뭘 하기 위해 권력을 얻어보려는 걸까.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느껴진다.

나는 아무래도 권력을 갈망하고 있는 것 같다. 손 닿는 곳에 있는 것을 움켜쥐고 싶어하는 것 같다. 손에 넣을 수 있는 건 전부 넣고 싶어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뭘 목적으로 하게 될까? 모른다. 솔직히 말하자면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 싶은 안일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니 지금은 내 눈앞에 성큼 다가온 기회를 놓치지 않는 데 주력하는 게 옳으리라.

나는 차분하게 내가 우선시해야 할 사항들을 마음 속으로 정리해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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