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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보나파르트-1화 (프롤로그) (1/200)

1화 프롤로그

“진짜 엿같다, 진짜.”

나는 입 안에 초콜릿을 쑤셔넣었다.

뭐, 단 걸 먹는 게 담배보다는 건강에 좋을 테니까, 뭣보다 기분이 더러워질 때라도 단 걸 안 먹으면 진짜 기분이 개같아져서 말이지.

“요즘 뭐 안 좋으신 일 있나 봐요.”

“말도 마십시오.”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말을 걸어왔던 알바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제 할 일을 계속했다. 뭐, 이것도 내가 여기 하도 자주 와서 얼굴 꽤 익혔으니까 나온 말이겠지.

“세상 참 개같다.......”

뭐, 인간이 다 그런 것들이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다 그렇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엿같은 건 변하지 않는다.

“다를 게 없어.”

나는 초콜릿 바를 물어뜯었다. 하지만 동시에 쓴웃음이 나왔다.

“에휴, 내가 욕해봐야 뭐하겠냐.”

“뭔가 하실 수도 있죠.”

아까 그 알바생이었다.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결국 이 나라가, 더 나아가 세상이 돌아가는 기본 원리가 그 모양인데 저 혼자 앉아서 욕해봐야 뭐해요, 저도 이번 일만 마치고 다 때려치우고 농사나 지을까 싶어요, 아버지가 물려주신 텃밭 정도는 있으니까요.”

“그런가요?”

“그런데 일 안 해요?”

“다 끝냈고 지금 손님도 없으니 이야기하는 거죠 뭐. 점장님도 안 계시는데. 그리고 그냥 넘어가기는 좀 그렇잖아요, 하루이틀 오신 것도 아니고...... 거의 3년? 4년? 그렇게 오셨는데.”

“그러고 보니 또 그렇네요, 하.”

여길 다니게 된 지도 벌써 4년인가.

그 4년 동안 뭐 한 게 있나 싶으면 막막하다.

그 예전에 누가 그 말을 했는지는 잘 생각 안 나는데, 이 말이 진짜로 와 닿는다.

꿈은 커다란데, 현실은 시궁창이다.

나름 최선을 다해서 발버둥쳤고, 내가 뭔가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은 적도 있었다.

무지에서 온 어리석음이었다.

조금 머리가 트인 뒤에 깨달은 것은, 한 가지 문제는 다른 문제들과 쇠사슬처럼 연결되어 있었고, 한 가지 일의 파급력은 다른 나라까지 당연하게 미쳤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알렉산더가 자르듯이 해결해버린다? 헛된 꿈이었다.

수습을 하려면 그걸 하나하나, 막대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해결해야 하는데, 이건 현실에서는 거기에 뒤따르는 저항이 너무 뿌리깊게 박혀버려서 최면어플이라도 안 들고오면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겠고, 차라리 해결을 보려면 과거로 돌아가서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게 되기 전에 호미로 막아버리는 게 최선이다. 그 호미로 막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을 거고.

“황제쯤 되면 모를까, 이거 다 뒤집어엎을 능력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어요. 사실 그것도 이런 조그만 나라 황제가 아니라 한두 세기쯤 전으로 가서, 정말 세계 질서를 논할 수준 되는 제국의 황제쯤은 되어야 뭐 시도라도 해볼 수 있겠죠.”

“해보면 되겠어요?”

“제가 황제 해볼 수 있겠냐고요? 우리나라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아니, 뭐 대통령 하다가 친위쿠데타 일으켜서 황제 한 인간도 있으니 불가능한 건 아니겠습니다만, 혹시 나폴레옹 3세라고 아시나 모르겠네. 뭐, 제가 대통령까지 갈 수 있는 것도 이니고, 애초에 황태자로 태어나면 모를까.”

“으음.... 나폴레옹 3세는 좀 어려운데요. 그 아들뻘로 해드리면 모를까. 황태자도 괜찮다고 하셨죠?”

“대부분의 사람은 모르...... 잠깐, 뭐라고요?”

내가 잘못 들었나?

“딱 170년까지는 가능하겠네요, 황제는 아니고 황태자로 해야겠지만요. 한번 하고 싶은 거 다 해보세요.”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냐고 물으려는 찰나, 눈앞이 깜깜해졌다.

***

“...... 어? 언제 가셨지?”

창고에서 나온 아르바이트생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먹고 남은 포장지 쓰레기가 탁자 위에 남겨져 있었다.

평소에 뒷정리 깔끔하게 하고 다니던 단골손님이 쓰레기를 그대로 놔두고 갔다는 사실에 약간의 의문을 품었지만, 아르바이트생은 금방 까맣게 잊어버렸다. 일이 바빴던 것이다.

‘급한 전화라도 받으셨나 보지 뭐.’

그냥 그런가 보다 할 뿐이었다.

***

이제 말하지만, 난 책을 제법 많이 읽은 편이었다.

어릴 적에는 도서관에서 많은 책을 읽었고, 집에도 책이 많았다.

나중에 가서는 웹소설도 읽게 되었다. 특히 이런저런 흥미진진한 소설이 내 눈을 매혹했고, 매일 특정 시간에 소설이 올라오기만 기다리다가 2시간쯤 전에 올라온 오늘 하루 쉬어가겠다는 휴재공지에 허탈해하고는 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여러 번 나온 게 있었다.

소위 말하는 빙환트.

빙의, 환생, 트립.

원 역사에 있던 인물이 되는 건 빙의고 죽었다가 살아나는 건 환생이며 내 몸이 고스란히 과거나 이세계로 떨어지면 트립이라고 한다더라.

그럼 이건 환생인가 빙의인가.

단골 편의점의 알바생이 내 가슴을 장난치듯 툭 밀고 나서 의식이 없어졌는데, 170년 전의 과거, 전혀 다른 인물이 되어 있었다.

외젠, 외젠 보나파르트. 1854년생.

보나파르트.

너무나도 유명한 이름 아닌가?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고 외치면서 전 세계 사전에 본인 이름을 박아넣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성 아닌가.

물론 나폴레옹 시대에 관심이 좀 있는 사람이라면 본인의 가족들 대부분이 솔직히 나폴레옹만 다른 씨가 아닐까 의심될 만큼 트롤링을 일삼았다는 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프랑스의 첫 황제가 된 이후, 프랑스의 황제는 마지막 황제가 폐위되는 순간까지 보나파르트였다. 실질적으로는 두 명밖에 없기는 했지만.

나폴레옹 1세, 그리고 나폴레옹 3세.

나폴레옹 1세야 다들 알지만 프랑스의 초대 대통령이자 마지막 군주라는 특이한 칭호를 가지고 있는 존재임에도 나폴레옹 3세는 대부분의 사람이 모른다.

그리고 그런 나폴레옹 3세의 장남. 프랑스 제2제국의 황태자.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부여받은 신분이었다.

‘내가 나폴레옹 3세 이야기했다고 진짜 나폴레옹 3세 아들로 만드냐.’

일단 내가 누구 몸을 뺏은 건 확실히 아니다. 왜냐고? 원 역사에서 나폴레옹 3세의 적자는 하나뿐이었는데 지금은 형제거든.

나, 외젠 보나파르트와 2살 밑의 동생 루이 보나파르트. 그러니까 둘 중 하나는 분명 원 역사에 없었던 놈이라는 건데 내가 원 역사에 없었던 놈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겠지?

“어머니!”

루이가 쪼르르 뛰어가는 게 보였다. 나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어머니를 맞이했다.

“어머니, 오셨습니까?”

“그래요, 몸이 좋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괜찮아졌나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외제니 황후는 달려든 루이를 안아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빛은 조금 쓸쓸해져 있었다.

그야 그렇겠지.

그녀는 나를 낳았지만, 나는 그녀의 아들이라고 부르기 어폐가 있으니까.

물론 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이 그런 사실을 알 가능성은 전혀 없지만, 그럼에도 어머니의 본능이라는 게 있다는 걸까.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어리광을 부릴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게 설령... 전혀 손색 없는 헌신적인 어머니를 슬프게 한다고 해도, 나는 내 주변을 돌아보기 너무 힘들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동생을 동생이라고 부르기가 너무 힘들다.

그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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