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나는 용왕이다(2)
* * *
용왕은 맛있다는 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뭘 먹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알고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네놈이 하얀 괴물인가?"
수족이 트림하며 목소리를 냈다. 역겨운 냄새가 퍼져나갔다.
"아니. 나는 용왕이다."
용왕은 자신의 존재를 정정했다.
"용왕이든 뭐든 너 진짜 맛있어 보여. 한 입만 먹어도 되겠지? 그렇지?"
수족이 날름 꺼내는 혀를 보자 용왕은 얼굴을 가득 구겼다.
"꺼지거라."
뭔가 속에서 이상한 감정이 휘몰아쳤다.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저 수족이라는 것들이 싫었다.
"아. 못 참겠어!"
수족이 달려들었다.
커다란 몸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날쌘 몸놀림에 누구도 저 수족의 움직임을 보지 못했다.
푸욱!
날을 세운 물과 용왕을 제외한다면.
물은 수족의 배를 뚫었다.
―용왕은 먹을 게 아니야!
물이 화를 냈다.
그 화는 멈추질 않았다.
푸우욱!
용왕의 눈앞에서 수족은 가시에 찔린 벌레처럼 꿰뚫린 채 그대로 찢겨버렸다.
살점이 땅으로 떨어져 나갔다.
"어……?"
수족은 동료가 죽든 말든 히쭉 웃었다.
뭔가 재미있게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물이 그대로 다른 수족에게 달려가며 날을 세웠다.
무날은 입을 벌렸다.
동그랗게 말린 물이 세운 날로 수족이 갈려나가고 있었다.
물이 수족의 목을 베고 있었다.
물이 저렇게 움직이는 모습도, 누군가 수족을 저렇게까지 압도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 않은가.
"화났어?"
용왕이 물에게 물었다. 이 또한 류아에게 배운 것이었다.
―응!
물이 대답했다.
―화났어!
―용왕이 아픈 건 싫어!
"나는 화 안 났어."
용왕은 말을 끝내자마자 고개를 돌렸다.
뭔가가 느껴졌다.
수족이 커다란 몽둥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부웅!
바람이 몰아치는 그사이에 용왕은 몽둥이가 아이의 목에 가까이 다가온 걸 보았다.
저걸 맞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감히."
아이는 지켜야 할 존재가 아닌가. 빛줄기가 자신에게 건넨 지식에 따르면 그러했다.
용왕은 손과 발처럼 원래 가지고 있던 힘을 자연스럽게 꺼냈다.
쿠웅!
아이들 주변에 물이 일어나 수족의 공격을 튕겨냈다.
조금 전과 달리 화가 났다.
"감히 누가 나의 앞에서 아이를 죽이는가?"
용왕이 분노를 토해냈다.
본능적으로 물을 끌어올렸다. 조금 전보다 매서워진 물살이 수족의 몽둥이를 부서트리고 나아가 수족의 몸뚱어리로 향했다.
태련의 눈동자가 빨라졌다.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얀 괴물도 자신과 마찬가지인 어린아이인데, 이상할 정도로 듬직했다.
수족을 붙잡은 물 위로 또 다른 물이 나와 놈을 아래로 내리찍었다.
찌이이익.
반으로 가른 그 잔인함에 아무도 무어라 말하지 않았다.
튀는 피마저 다른 수족에게 향하며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압도적인 강인함에 무날의 눈이 커졌다.
지금까지 보았던 세계에서 수족을 이 정도로 누를 수 있는 존재가 있었던가.
강했다.
위대하기까지 했다.
'…아니, 아름답다.'
무날은 물이 춤을 추는 그 모습에 넋이 나갈 것만 같았다.
"꿇어라."
용왕이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우매한 것들아."
어디에서 들었는지 몰라도 용왕은 마음에 들었던 말을 꺼내보았다.
"좋아. 항복하지."
수족들은 아주 쉽게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동자에 아이들과 같은 감정이 없자 용왕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웃고 있지 않은가.
왜 웃고 있을까.
그때, 무날이 소리쳤다.
"수족은 절대로 항복하지 않습니다! 우린, 놈의 먹잇감이에요! 지금 놈들이 기뻐 날뛰는 게 보이질 않나요? 우리를… 어떻게 요리할지 생각하는 겁니다…!"
쳇.
혀를 차는 소리와 함께 무릎을 꿇었던 수족들이 재빨리 일어나서 달려들었다.
"먹잇감이라니? 너희는 먹는 게 아닌걸."
용왕은 수족이 달려듦에도 태연하게 무날을 보며 물었다.
"아니죠. 아닌데… 저놈들은 우리를 먹어요. 제 종족도 먹는데 우리라고 왜 안 먹겠어요? 벌써……."
무날은 말을 하면 할수록 참았던 감정이 서서히 터져 나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하얀 괴물이라 불리는 저 존재가 다정하게 느껴졌다.
"제… 부모님까지 다… 먹혔습니다. 제가 봤어요."
무날은 기어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날이 생각이 나고 말았다. 자신이 이 마을에 흘러들어온 이유를.
자신을 보호하고자 수족과 맞서 싸우다 죽어버린 부모님을.
"…그렇구나."
용왕은 담담하게 말하며 밀려드는 수족들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보려고 한다면 더 멀리 봤겠지만, 저 괴물이 누군가를 죽이는 모습이 너무도 불쾌해 지금까지 외면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용왕은 이제 외면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세계는 넓었다.
세계는 잔인했다.
보려고 하지 않았던 그 속에 저리도 애처로운 아이들이 얼마나 죽어갈지 알아버렸다.
자신이 저들을 보호하지 않았다면, 늘 직접 만나보고 싶었지만, 어떻게 만나야 할지 몰랐던 저 아이들을 떠나보내야 하지 않았을까.
죽음.
그래.
그 아득한 걸 경험하지 않았을까.
"나는, 저들을 지켜야 하는구나."
용왕은 또 알아버렸다.
아직 미성숙함에도 너무도 빨리 알아버렸다.
이 힘은 결코 그냥 주어진 게 아니라는 걸, 왜 빛줄기가 자신에게 그렇게 말했는지를, 전부 알아챘다.
수족들이 이곳에 왔을 때 입가에 가득한 피를 보지 않았던가. 누군가를 죽이고 온 게 틀림없었다.
"그게 슬픔이구나."
용왕은 어렴풋이 들려오던, 빛줄기가 사라졌을 때 자신이 느꼈던 그 감정을 계속 듣고 있었다.
"세계는… 슬프구나."
자연스럽게,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용왕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자 수족들을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흠칫.
물을 뚫으려고 손을 뻗던 수족들이 일제히 멈췄다.
몸이 덜덜 떨렸다.
속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피어났다.
"이 슬픔은 다 너희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별을 담은 것처럼 항상 이채로 가득 차 있던 용왕의 눈동자가 푸른빛으로 물들어갔다.
"너희가 품은 무자비함으로 바다가 슬퍼하고, 사람들이 슬퍼하며, 세상이 슬퍼한다."
하얀 괴물이, 아니, 저 작은 존재가 무엇이길래 수족들은 처음 느껴본 감정을 깨달아갔다.
"죽거라."
조금 전과 달랐다.
"우매한 것들아."
콰직!
수족의 몸에서 물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몸이 터져가면서 수족들은 그 감정의 이름을 알았다.
두려움.
수족이라면 모르고 있던 감정을 용왕이 깨워버렸다.
용왕은 비틀거렸다.
사용할 수 있는 힘이라는 걸 알았지만, 방금은 버거웠다.
저 물은 자신의 손과 발처럼 당연하게 있던 힘이 아니었다.
용왕은 자리에 주저앉았다.
"…괜찮으세요?"
무날이 놀라며 물었다. 하지만 다가가지 못했다.
엄청난 힘을 보았기에 섣불리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나 왜 이래?"
용왕은 콜록거리자 물이 그를 감싸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용왕! 그건 우리가 아니야!
―그건 아파!
'아. 이게 아픈 거구나.'
용왕은 손을 올려 가슴을 토닥거렸다. 무날이 조금은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지치셨나 봅니다."
"지쳐……?"
"고마워어!"
태련이 용왕에게 달려들어 그를 안았다.
"무서웠어. 너무 무서웠는데에."
엉엉.
태련은 긴장까지 풀려 눈물을 쏟아냈다.
한 번 일어난 눈물은 주변의 아이들까지 번지며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용왕은 하늘을 보았다.
비가 내리지 않았다.
'아. 내 눈물만 비를 내리게 하는구나.'
용왕은 또 하나를 알아 기쁜 마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너, 너, 진짜 대단했어."
류아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나, 대단해?"
용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입가에 피가 나자 류아는 다급히 소매로 용왕의 피를 닦아주었다.
따뜻한 느낌이 몰려오자 용왕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아깐, 미안해."
"미안해?"
용왕이 또 고개를 갸웃거렸다.
"넌 괴물이 아니야."
"난 용왕이야."
"그거 이름이야?"
"이름?"
"나는 류아야."
"알아. 넌 류아야."
용왕이 배시시 웃자 류아는 눈을 깜박거리며 무날을 보았다.
"얘 아무래도 머리가 아픈가 봐. 뭔가 이상해."
"머리 안 아픈데?"
용왕은 제 머리를 쓰다듬자 류아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무날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어, 꼭 아이 같아. 말을 얼마 전에 배운 아이 말이야."
"난 아이가 아니야. 그런데 말은 얼마 전에 배웠어."
용왕은 대답과 함께 손가락을 빤히 보았다.
숫자가 복잡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무슨 말이야. 너는 누가 봐도……."
"류아. 실랑이는 됐어. 일단, 마을부터 가야겠어. 마을 어른들께 수족들이 왔다는 걸 알려야 해."
무날은 당황함을 숨기려 애를 썼다.
자신을 용왕이라고 하는 저 존재는 누가 보아도 아이였다. 저 존재가 아이가 아니라면 대체 누가 아이겠는가.
"마을이 뭔데?"
용왕이 묻자 태련이가 콧물을 훌쩍이며 소매로 다급히 얼굴을 닦았다.
"우리 마을이야! 커. 그리고 다들 친절해. 우리한테 밥도 주고, 잘했다고 안아줘!"
태련이 크게 웃자 빠진 이빨이 보였다.
용왕은 저들이 온 곳으로 손을 뻗었다.
"저쪽에 있어?"
"맞아! 우린 저쪽에서 왔어. 아줌마가 오늘 밥은 엄청 맛있는 거라고 했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해초 요리야!"
"저긴 다 죽었어."
용왕이 던지는 말에 활짝 웃고 있던 태련이 말을 멈췄다.
"…뭐라고?"
태련은 용왕이 꺼내는 갑작스러운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죽었어."
"지, 지금 뭐라고 말하는 거야?"
재차 입에 올린 그 말에 류아가 기겁했다.
"쟤들이 다 죽였나 봐."
눈을 깜박거리며 말하는 용왕의 말에 무날은 제 몸이 떨리는 걸 느꼈다.
계속 느끼고 있었지만, 용왕은 어딘가 이상했다.
마치 죽음을 처음 듣는 아이처럼 반응하지 않는가.
죽음이 판을 치는 이 세계에서 그게 가능할까.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아이들을 지켜주세요."
무날은 터무니없는 부탁을 꺼냈다.
"그럴 거야."
하지만 용왕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아이는 지켜야 하는 존재라는 걸 방금 알아버렸다.
"그런데 너도 아이야. 같이 가."
용왕이 싱긋 웃자 손을 뻗자 물이 솟아올랐다.
"가자."
하얀 괴물은, 아니, 용왕은 다정한 목소리를 내며 무날에게 손을 뻗었다.
기적이 이런 걸까.
저 아이들 중 가장 연장자였기에 언제나 어른이 되어야만 했던 무날이 입술을 세차게 깨물었다.
"…네."
왠지 또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 * *
쿵.
용왕은 자신의 가슴에 커다란 소리가 나는 걸 들었다.
뭔가 무거웠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까지 말을 하지 않던 아이들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죽음이 땅에 내려왔다는 걸 알리듯 붉게 물든 피가 웅덩이를 만들어 걸을 때마다 '찰박'하고 소리가 났다.
뜯어먹힌 시체가 몇 구인지, 저들은 왜 죽어야만 했는지 그 이유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상해.'
용왕은 목을 긁었다.
뭔가 꽉 막힌 게 가슴을 자꾸 짓눌렀다.
―용왕, 용왕! 저기에 누가 살아 있어!
물이 말하자 용왕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괜찮아?"
용왕은 수족에게 반쯤 뜯어먹힌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아직도 죽음의 끈을 놓지 못한 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얀……."
"아저씨! 아저씨이!"
무날의 목소리가 닿자 남자의 눈동자에 다시 빛이 어렸다.
내내 기다렸다는 듯 피에 젖은 그 손으로 무날을 안으려다 망설이는 모습에 용왕은 피를 지워주었다.
"…무. 무날아."
"아저씨이. 죽지 마요. 죽으면… 죽으면 안 돼요. 네?"
"식량이 어디… 있는지 알지?"
"알아요."
무날은 흐느꼈다.
"그거 들고, 도망쳐. 여기는… 들켰어. 수족이 또 올 거야."
남자는 무날을 밀었다.
"……가."
"싫어요! 싫어요! 이건 아니잖아요……!"
무날의 눈에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여기가 내 집인데. 여기가… 내 보금자리였는데에."
"가! 얼른!"
"아저씨가 나 구해줬는데에. 난 어디로 가요?"
점점 오열하는 그 모습에 남자는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듯 무날을 껴안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
"…사랑한다."
남자의 손이 미끄러지고 몸이 땅에 힘없이 늘어졌다.
무날의 눈이 커졌다.
숨을 멈췄다.
쿵쾅쿵쾅.
격렬하게 뛰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무날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남자를 흔들고, 흔들었다.
"…일어나봐요."
대답이 없었다. 서서히 온기마저 잃어갔다. 모든 게 사라질 거라는 막연한 불안함이 무날을 덮쳤다.
"제발요……."
"죽었어."
용왕이 말하는데도 무날의 손길은 계속 이어졌다.
"죽었는데?"
이어 꺼내는 용왕의 말에 무날은 언성을 올렸다.
"…알아! 안다고!"
무날의 눈동자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죽은 걸 왜 모를까. 죽음이 판을 치는 시기에 숨만 끊어져도 아는 걸 왜 모를까.
"너 왜 그래? 왜 용왕한테 화풀이하는 거야?"
류아가 용왕 앞에 섰다.
"아저씨가 죽은 건… 나도 슬프단 말이야. 하지만 용왕은 우리를 구해줬어."
울먹이는 류아의 모습에 무날은 숨을 빠르게 토하며 소매로 눈을 닦았다. 왜 화풀이를 해버린 건지.
"…미안합니다."
무날은 다시 어른이 되어야 했다. 나머지 아이들을 챙겨야 하지 않겠는가.
어른들도 없는 와중에 용왕의 적까지 될 수 없었다.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했어."
죽음과 장례라는 단어는 이어져 있기에 용왕이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장례라는 건 어떻게 해? 나는 몰라."
화가 난 모습조차 없자 무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목숨을 구해주고 마을까지 데려다줬음에도 자신이 언성을 높이지 않았던가.
뻔뻔하다는 말을 꺼내는 게 먼저가 아닐까 싶었는데.
용왕은 오히려 깊게 생각하고 있었다.
"너도 몰라? 이러면 안 되는데. 내가 모르는 게 많아."
"…압니다."
"말해줘."
"시신을 태워야 해요. 육신을 태워서 하늘로 영혼을 돌려보내 줘야 합니다."
무날은 한탄스러웠다. 이 많은 사람을 어떻게 다 태울까 싶었다.
"그럼 너희는 식량을 구해와. 사람은 먹어야 산다고 그랬어. 난 안 먹어도 돼."
"…예?"
"내가 모을게."
"뭘 모은다는 거죠?"
"저 사람들을."
용왕이 웃었다.
그 웃음에 무날은 화를 낸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워졌다.
"다 장례를 치러주자. 그러면 이제 슬프지 않은 거지?"
용왕이 무날의 눈물을 닦아주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