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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령사 가문의 막내가 되다-405화 (405/415)

405화. 꽃비가 내린다(4)

* * *

하벨은 잠깐 물보라에 휘감겨 칼리우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에 칼리우스를 지키고 있던 여하가 다가오다 멈칫거렸고, 헤레스와 넬시아가 눈을 크게 떴다.

"…자, 잠시만요!"

"너한테서 피 냄새가 나."

넬시아가 하벨의 상처를 바라보다 멈칫거렸다.

[많이 아파?]

[에른스트가 널 공격한 거야?]

[괜찮아?]

[아프지 마. 죽으면 안 돼.]

정령들의 걱정까지 한 번에 쏟아지자 하벨은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조금 아파요.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넬시아의 손아귀에 반영구 정화제가 들려 있자 하벨은 실실 웃었다.

"이게 누님을 지켜줄 거예요."

"잠시만요, 도련님. 진통제만 놔드릴게요. 시간을 뺏지 않아요."

헤레스가 얼른 의료용 도구가 든 가방을 꺼냈다.

"봤어, 헤레스? 네가 해냈어. 오미너스는 완전히 지워졌으니까."

"아직 기뻐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 더 속상합니다."

헤레스는 속상한 마음을 드러냈다.

오미너스가 사라진 걸 보았다. 하지만 그 중심에 하벨이 있는 걸 왜 모를까.

"누님."

하벨이 넬시아를 불렀다.

"곧 누님이 옮겨준 반영구 정화제를 쓸 겁니다. 미리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요."

"나도 인사는 나중에 받을게. 상황은 나쁘지 않아. 아직 아무도 죽지 않았으니까."

넬시아가 하벨을 끌어안았다.

"하벨."

"네."

"죽으면 안 돼. 나랑 약속해."

"약속해요."

"미안해. 누나가 너무 미안해."

넬시아는 속상했다. 하벨을 붙잡고 싶었지만, 한계가 보였다.

하벨이 안 되면 안 되는 이 상황이 너무도 미웠다.

"그런 말 하지 않아도 돼요. 이건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걸요? 이 세계에서 나는, 따스함을 다시 느꼈어요. 행복함을 다시 손에 넣었으니 돌려주는 것뿐이에요."

"이번에는 꼭 너한테 달려갈게. 약속해."

벌써 눈물이 맺힌 넬시아의 눈물을 닦아준 뒤에 하벨은 가면을 벗고 배시시 웃었다.

"용용아."

하벨은 손을 뻗어 칼리우스를 쓰다듬었다.

"…도련님."

시원함이 몰려오자 칼리우스는 고개를 올렸다.

"도련님… 이야? 피 냄새가 나. 너무 짙어."

칼리우스는 비틀거렸다.

얼마나 많은 마나를 퍼붓고 있는지 몰랐다.

"이제 괜찮다는 말을 하러 왔어. 잠깐만 쉬어도 돼, 용용아."

"하지만 내가 멈추면."

하벨은 책을 쥔 칼리우스의 손을 토닥였다.

"네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걸 잊지 마."

"괜찮소……? 피가 필요한 거라면."

"너한테 자꾸 이 말만 하게 되네. 모두를 지켜줘, 여하야."

"걱정하지 마시오. 오히려 기쁘오."

여하가 활짝 웃었다.

"꼭 나도… 하나가 된 기분이오."

이제 외부인이 아닌 것 같다는 말에 하벨은 참 기특했다.

"넌 원래 하나였어, 여하야."

손을 뻗어 여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제 갓 왕이 된 존재를 위해서라도 자신이 힘을 내야 했다.

"용용아."

"응……?"

식은땀까지 흘리고 있는 칼리우스의 모습에 하벨은 마음이 아팠다.

"잘했어."

"잘했어?"

"그래."

하벨은 73%까지 올라간 모습을 보며 다시 칼리우스를 쓰다듬었다.

"내가 가면 20초 세고 마법을 멈춰. 알겠지?"

"도련님 나……."

잠깐 고개를 내렸다가 다시 올리니 하벨의 아름다운 눈동자가 보였다.

칼리우스의 눈꼬리에 눈물이 맺혔다.

더 잘하고 싶었다.

더 멋진 마법을 펼치고 싶었는데.

"나……."

에른스트가 제 마법을 먹어가는 게 느껴졌다.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어."

"물론이야. 너는 할 수 있어."

"정말로. 잘할 수 있어."

"알아. 넌 대단하니까, 용용아."

칼리우스가 꽉 감았던 눈을 뜨자 눈동자가 타오를 듯 빛나고 있었다.

활짝 웃는 하벨의 미소가 보였다.

그가 물보라에 둘러싸여 사라졌다.

칼리우스는 마나를 모으며 속으로 20을 셌다.

하벨을 위해, 자신이 펼칠 수 있는 가장 강한 마법을 펼칠 생각이었다.

처음 하벨을 만났을 때 펼쳤던 시간을 건드리는 마법을.

* * *

"이안."

하벨은 돌아오자마자 이안을 불렀다.

[예, 용왕이시여.]

"아라야."

[응응!]

아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실체화를 하자. 너희가 곧 마법사들의 표적이 될 거야. 무섭겠지만, 해야만 해."

[이 몸은 괜찮아! 지금 용용이가 엄청 힘내고 있는 걸 이 몸은 알아! 이 몸도 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용왕이시여.]

하벨은 아라와 이안에게 손을 뻗었다.

둘의 정령수가 자신에게 스며들었다.

촤르르르륵.

바람이 몰아쳤다. 그 속에 지독한 악취가 흘러들어왔다.

땅이 썩어가는 게 느껴졌다.

자연이 움직이고 있는 게 피부로 스며들었다.

왼쪽에는 더욱 용맹한 모습을 한 이안이 한층 부드러워진 갈기를 품으며 포효했고, 오른쪽에는 크기만 커진 아라가 꼬리를 흔들었다.

두 정령왕이 모습을 드러내자 자연이 환호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법사들이여!"

하벨은 물을 통해 목소리를 펼치며 방향을 지시했다.

"그대들의 마법은 내게 향하거라! 내가 표적이다!"

누구보다 찬란한 표적이 필요했고, 그게 바로 자신이었다.

칼리우스의 마법이 멈췄다.

하벨은 당장 우산에 박은 반영구 정화제를 움직였다.

번개를 쏘아낸 그 힘은 에른스트의 복부를 아주 두껍게 뚫어냈다.

"…크흑!"

에른스트가 비명을 토했다.

정령까지 실체화할 줄이야. 에른스트는 이안을 사납게 노려보았다.

"왔다."

하벨은 모든 나라가 보내는 신호를 받았다.

사방에서 물보라가 일어났다.

레놀드.

코스모피안.

이 두 나라의 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방이 가득 차는 광경은 그토록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바안 전하."

하벨은 바안을 불렀다. 물이 바안 옆에 있는 인어족에게 자신의 말을 알려줄 테니 하벨은 말을 이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말 이외에 무얼 말할 수 있을까.

수족이라는 공통의 적에 대항해 어인족과 사람이 힘을 합쳤던 그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와 닮았다가 생각하며 하벨은 내쉰 숨과 함께 잠깐 그 생각을 지워나갔다.

"넌 나랑 가자, 에른스트."

하벨이 물보라에 함께 휘감겼다.

74%.

앞으로 26%.

* * *

하벨의 물보라 가라앉기도 전에 이안이 나무들을 향해 명령했다.

[비키거라!]

나무들이 스르르 움직이며 자리를 비워나갔다.

누가 보아도 자신들이 이쪽에 왔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에른스트가 꿰뚫린 우산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순간, 하벨이 아라를 불렀다.

[아라야!]

아라가 하벨을 하늘로 번쩍 올려주었다.

[날아라, 대장!]

하벨은 하늘로 오르며 룬델을 바라보았다.

"공격하라!"

룬델의 외침에 티에라 가문의 정령 기사들도, 헤스트리아 왕국의 정령사들도 반영구 정화제를 손에 쥔 채 정령과 호흡을 맞췄다.

자연의 힘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표적인 자신이 허공에 있기에 바람을 타고, 마법이 날아왔다.

[더 빨리 오거라!]

이안이 공격 속도를 올리고자 바람을 일으켰다.

수많은 마법 속에 정령들의 힘이 합쳐지자 하벨은 눈이 다 아플 정도였다.

하지만 즐거웠다.

바람과 불과 땅과 번개 등 여러 가지가 뒤섞인 모습 자체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땅이 거대한 고래처럼 입을 벌렸다.

하벨은 놈을 꿰뚫은 번개에 불을 붙이며 아래로 내던졌다.

에른스트에게 신의 은총이 쏟아져 검은 연기를 퍼트리려던 놈의 행동이 멈췄다.

"…제기라알!"

불쾌한 힘에 에른스트는 언성만 높였다.

[여길 밟아, 대장!]

아라가 말했다.

하벨에게서 흘러나오는 이 엄청난 힘 덕에 조금만 손을 휘저어도 자연의 힘이 거대하게 몰려왔다.

아라는 허공에 하벨이 밟을 수 있게 공기를 멈추며 벽을 만들어냈다.

쿠웅!

하벨은 그 벽을 밟고 아래로 향했다.

중력이 하벨을 짓눌렀다. 아라의 힘이었다.

하벨을 따라 마법이 휘었다. 칼리우스와 헤레스의 힘이 느껴졌다.

바람을 타며, 공기를 가로지르는 하벨의 머리카락이 거칠게 흔들렸다.

에른스트가 내는 검은 연기가 퍼지기도 전에 바람이 놈 앞에다가 자신을 데려다주었다.

에른스트를 향한 자연의 강한 분노가 느껴졌다.

우산을 아래로 향하게 쥐었다.

푸우욱!

에른스트의 복부를 또 꿰뚫으며 하벨은 땅으로 사납게 떨어졌다.

쿵!

바람이 주변에 일어나 하벨의 머리카락이 위로 향했다

쿠우웅!

바닥이 깨지며 에른스트의 온몸을 부서트려버렸다.

흐물흐물한 오징어 같았다.

쿠우우우웅!

거센 압력이 뒤늦게 몰려와 땅이 꺼지고 흙먼지가 일어나려고 했지만, 이안이 바람을 멈췄다.

하벨은 위를 쳐다보았다.

쉬이이이익!

하벨 주변을 향해 마법들이, 반영구 정화제를 통해 빌린 정령들의 힘이 폭격처럼 떨어졌다.

투투투투투투투!

사방이 불바다가 되었고, 번개의 사납고도 웅장한 번쩍거림이 흙먼지와 뒤섞여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에른스트가 세상을 잡아먹음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연이 억눌러왔던 분노를 터트리는 것만 같았다.

포악한 소리가 귀를 잡아먹었다.

하벨은 반영구 정화제의 힘이 에른스트를 씹어먹고, 뜯어먹어 마치 사나운 이리떼들의 거센 포효마저 들릴 지경이었다.

에른스트의 몸이 씹히면 씹힐수록 굳어갔다.

"아직이다."

에르티안 왕국에 깔았던 반영구 정화제를 하나씩 움직였다.

그 힘은 놈이 흡수할 수 없는, 자신의 힘이 담긴, 놈을 죽이는 힘이었다.

도미노같이 토해낸 반영구 정화제의 힘이 두 정령왕의 손짓을 따라 날아왔다.

[땅아, 때려줘! 이 몸은 에른스트가 미워어!]

땅이 아라의 의지를 받아 거대한 거인들이 되었다.

쾅! 쾅!

그대로 에른스트를 두드려 팼다.

"아직."

하벨이 말했다.

바람이 톱니바퀴처럼 회전하며 에른스트의 몸을 날카롭게 갈아버리지만, 멈추지 않았다.

"아직!"

하벨은 계속 반영구 정화제의 힘을 끌어왔다.

파지지직!

번개가 하늘에서 내려오며 뿌리처럼 깊게 퍼지다가 한점에 모여 놈의 심장을 꿰뚫었다.

"아직이다……!"

에른스트가 누워 있는 땅에서 식물이 일어나 에른스트의 목을 조르고, 가시가 가득 솟구쳐 뚫고, 뚫으며 그의 양팔과 다리를 당겨갔다.

"네놈이 이 세상에 남긴 상처는 겨우 이따위가 아니다!"

하벨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소리쳤다.

크와아아앙!

이안이 포효했다.

이안의 머리 앞에 바람이 한 점이 몰려왔다. 강한 중력을 끌어당기며 고개를 흔들어서는 그대로 놓았다.

'…이게 아니야.'

에른스트는 굳어지고, 굳어가는 제 몸을 느끼며 부정했다.

이건 꿈이었다.

이렇게 무언가를 하기도 전에 아니, 빨아들일 생명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순간이 있는가.

이 이상한 힘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벌어지면 안 될 일이 계속 일어나고 말았다.

회복이 느려지고, 몸이 굳어지고, 갉아 먹혔다.

이런 느낌은 과거에서 느껴보았던, 그 끔찍한 힘과 같았다.

끝이 보였다.

또.

또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신은 얼마나 헤매야 하는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조차 모를 만큼 아득한 세월을 어떻게 어떻게 버텨야 하는가.

'…아니야.'

겨우 한 줌에 불과했던 자연의 힘 앞에 무너지는 사실이 현실이라면 이 얼마나 끔찍한가.

절망감이 에른스트에게 깃들었다.

무서웠다.

모든 수가 막혔다.

계속, 계속 공격이 쏟아졌다.

죽지 않는다고 하지만, 몸이 작아지고 있었다.

탈출구는 애초에 용왕이 지워버렸다.

'오지 마.'

자연의 힘이 멈추질 않았다. 계속 밀고 들어왔다.

자신을 향한 원망이 쏟아졌다.

슬픔이 내려왔다.

"…오지 마!"

"절망했는가?"

하벨의 목소리가 에른스트의 귀에 닿았다.

에른스트는 그제야 자신이 추하게 비명을 지르고 짐승처럼 소리나 내질렀음을 알았다.

"네놈이 이 땅에 내린 오염으로, 오미너스에게 무참히 삼켜졌던 정령들의 외침이 들리는가."

자연은 순환했다.

순환하는 힘이기에 끝은 없었다.

"정령들과 같이 공명하는 정령사들의 분노가 느껴지는가."

그렇기에 정령 기사들이, 정령사가 꺼내는 힘은 결코 마를 수가 없었다.

에른스트는 오로지 쏟아지는 저들의 슬픔과 비참함, 절망감을 모조리 떠안아야 했다.

"정령은 네놈이 만들었다."

"개소리이이 지껄이지 마아아!"

비명과 함께 에른스트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한때 신이었던 자가 가장 추악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개소리라니. 세계가 합쳐서 나타난 존재가 정령인데? 처음부터 네놈을 죽이기 위해 세계가 정령을 만들었다는 걸 아직도 모르겠는가?"

'제발.'

에른스트는 계속 틈을 찾았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 틈을 발견해야만 했다.

저 정령들을 없앨 방법은 간단하지 않은가.

에른스트는 증오에 찬 눈빛으로 이안을 쳐다보았다.

모든 정령의 정점인 정령왕을 죽이는 일이었다.

다음 왕이 태어나지 못하게 자신이 흡수하면 상황은 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더 좋은 수가 존재했다.

'한 번. 단 한 번이다.'

틈만 뚫린다면 상황을 역전할 수 있었다.

에른스트는 이안을 바라보았다. 너덜너덜해진 손가락으로 이안을 가리켰다.

"너에게."

하벨은 소리가 자연의 공격에 모두 먹히는 그 공간에서 유일하게 소리를 들고 보았다.

물의 떨림을 읽었으니.

"죽음을……."

판단해야만 했다.

저 공격은 무엇도 막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물마저 아직 알아차리지 못했으니.

하벨이 물보라를 일으키던 순간, 에른스트의 손가락 방향이 바뀌는 걸 보았다.

자신이 아니었다.

아라도, 이안도 아니었다.

너덜너덜해진 에른스트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게 보였다.

절망하거라.

눈빛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하벨은 자신의 직감을 믿었다.

'…제발.'

"고하……."

에른스트의 말이 사라지고 눈앞에 룬델이 보였다.

'제발!'

룬델의 눈이 커졌다.

물이 일어나기 전에 룬델 뒤에 검은 연기가 손가락처럼 하나씩 꿈틀거렸다.

'제발……!'

당장이라도 심장을 뽑을 것처럼 움직였다.

자신이 넣어둔 물이 일어나 검은 연기를 삼키러 몸을 빼던 그때, 새로운 연기가 나오는 게 느껴졌다.

무엇이 빠른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하벨은 물을 일으키며 룬델을 밀었다.

자신을 뒤흔들 방법은 에른스트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예전부터 아주 잘 알고 있는 방법이었기에 두 번은 싫었다.

가족을.

다시는 잃고 싶지 않았다.

푸우욱!

검은 연기가 하벨의 가슴팍을 뚫었지만, 그가 일으킨 물 때문에 관통하지 못했다.

하벨이 일으킨 물이 뒤늦게 검은 연기를 잡아 뜯자마자 피가 튀며 그의 상체가 크게 흔들렸다.

룬델의 얼굴이 붉게 적셨다.

하벨이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몸이 덜덜 떨려왔지만, 하벨은 쓰러지지 않았다.

또르르 굴러온 반영구 정화제 위에 피가 떨어졌다.

그 피를 움직여 자신을 갉아먹는 검은 연기를 마저 지웠다.

"…하벨아!"

룬델이 절망을 드러내며 하벨을 향해 손을 뻗었다.

간절함이 드러난 하벨의 눈빛과 표정, 그리고 손끝마저 느리게 눈앞에 흐르고 있었다.

"아… 버…… 쿨럭!"

하벨은 일어나려다 피를 쏟아냈다. 하지만 그는 희미하게 웃었다.

룬델은 하벨을 끌어안으며 소리치고, 또 소리쳤다.

"신관을 불러오거라! 헤레스를! 제바아알! 제바아아알!"

"…멈… 추지…… 마."

하벨의 손이 스르르 룬델의 등에서 미끄러졌다.

비가 멈췄다.

주변에 올라왔던 물마저 사라지려고 하고 있었다.

"…아아."

룬델은 그대로 숨을 멈췄다.

모든 공격도 멈췄다.

"으아아아아!"

그리고 룬델은 울부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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