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화. 꽃비가 내린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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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보라가 걷어지자마자 하벨은 배에 얼음을 꽂은 에른스트를 그대로 바닥에다가 내던졌다.
얼어붙은 에른스트가 빠르게 바닥에 얼굴을 박으며 부서질 때, 하벨이 물을 타고 위로 올라 아래로 떨어지며 우산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바닥이 움푹 패고, 에른스트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에른스트의 신체 일부 중 바스러지는 부분만이 재생이 느려지자 놈은 그 부위만 빼고 재생했다.
'용용아!'
하벨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칼리우스를 불렀다. 허공에 어렴풋이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게 느껴졌다.
칼리우스와 마법사들의 마법이었다.
하늘에 마나가 가득 찼다.
거대한 뭔가가 일어나오고 있었다.
그때, 검은 연기가 에른스트에게서 흘러나왔다.
"멍청한 놈!"
쩌어어억.
마나를 먹으며 틈의 세계가 열렸다.
하나.
셋.
일곱.
점점 열리는 그 안에서 대신들이 튀어나왔다.
꿈틀거리며 에른스트는 웃음을 터트렸다.
"죽어라! 그때와 마찬가지로! 빌어먹을, 용왕!"
소리를 지르며 대신들 뒤로 에른스트가 물러섰다.
과거와 똑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걸 보며 에른스트는 상처를 보았다.
회복이 여전히 훨씬 더뎠다.
하벨은 그저 우산을 땅에 박은 채로 서 있었다. 그 모습에 에른스트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저 우산에 찔렸던 곳이 아팠다.
무척이나.
'정말 끝까지 기분이 더럽네.'
하벨은 틈의 세계에 나온 대신들을 보며 우산을 세게 움켜쥐었다.
그때와 똑같은 무기를 쥔 채로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웃겼다.
'내가 또, 죽을 것 같은가?"
하벨이 손을 펼치자 손아귀에 세 개의 반영구 정화제가 회전하고 있었다.
우산에 박아 넣듯이 반영구 정화제를 덮었다.
쿵.
하벨은 그 우산을 다시 땅에 짚었다.
"나를 배신한 이들이여, 듣거라!"
용왕의 외침에 대신들은 달려오다 말고 본능적으로 일어나는 두려움에 몸을 떨며 그대로 멈췄다.
하벨의 가면 너머로 번져가는 푸른빛이 옷을 적시는 빗줄기처럼 에른스트의 깊은 세뇌를 두드리고 있었다.
에른스트는 모르는, 어인족과 체결한 맹약이 그들을 흔들었다.
"너희의 죄를 안다면!"
과거와 달랐다.
"너희의 죄를 부끄러워한다면!"
다시는 저 무기가 자신을 향하는 일은 없을 테지.
"너희를 세뇌한 그 힘에서 당장 벗어나 나를 공격하는 적을 향해 검을 들거라!"
쏴아아아.
빗줄기가 그들 위로 더 거세졌다.
툭.
툭툭.
어깨를 두드리는 소리 같기도 하며 기도와 함께 나지막이 울리는 종소리 같기도 했다.
어두운 통로에서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하는 빛줄기에 대신 중 일부는 눈을 떴다.
흐리멍덩하던 눈빛이 돌아오며 그들의 시선은 하벨을 향했다.
그 위로 기억이 스며들자 가장 먼저 밀려온 건 참을 수 없는 죄책감이었다.
이 손으로, 자신의 손으로 용왕을 죽이지 않았던가.
"…요, 용왕님!"
"제가, 제가……."
"쉬잇."
하벨은 금방이라도 오열할 것 같은 그들의 죄책감을 위로하지 않았다. 그저 잠깐 억눌렀다.
"지금은 복수의 시간이야. 너희 적은 누구지?"
"에른스트… 입니다."
깨어난 대신들은 손에 쥔 무기를 꽉 쥐었다.
참을 수 없는 감정에 더 크게 외쳤다.
"에른스트가 저희의 적입니다!"
"놈이 용왕님의 적입니다!"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정신 차려 이 멍청한 새끼들아!"
정신 차린 대신들은 후회의 눈물을 흘리며 아직도 이 세뇌에 벗어나지 못한 동료를 향해 소리쳤다.
자신들이 무슨 짓을 했는가.
걷잡을 수 없는 죄책감에 몸이 이렇게 떨리는데.
"용왕님을 죽여놓고, 또 용왕님을 죽이러 앞에 선다고? 제발, 정신 차리라고!"
"이제 와서 용왕에게 붙겠다니? 용왕을 죽인 건 너희야."
에른스트의 빈정거리는 말이 정신 차린 대신들의 마음을 세차게 쥐었다.
"닥쳐어!"
대신은 손에 쥔 무기로 에른스트를 찔렀다.
화악 올라온 분노로 이가 떨리고 온몸이 떨려와 참을 수가 없었다.
푸욱!
"…하."
에른스트는 어처구니없는 사실에 실소를 퍼부었다.
푸욱!
하나가 아니었다. 여러 개의 무기가 자신을 관통했다.
이것도 배신이라고 기분이 더러웠다.
"이 거지 같은 놈들이!"
에른스트가 검은 연기를 퍼트리고, 아직도 세뇌에서 깨어나지 못한 대신들이 깨어난 대신들을 찔렀다.
서로가 서로를 찌르는 혼란스러운 광경이 펼쳐졌다.
정신을 차린 대신은 웃었다. 그 웃음이 후회하는 그들에게 빠르게 퍼져나갔다.
자조적인 웃음이면서도 동시에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우린 죽지 않는다, 멍청한 새끼야! 네가 우릴 이렇게 만들었으니까…!"
검은 연기가 그들을 갉아먹어도 다시 돌아왔다. 더 빠르게. 순식간에 나아서는 다시 에른스트를 비웃었다.
그 웃음이 조금은 섬뜩하게 다가오자 에른스트는 주춤거리는 다른 대신들을 바라보았다.
대신들이 적이 된다는 사실은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럼 저들이 적이 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죽지 않는 자가 적이 되면 얼마나 끔찍할까.
"영원한 삶을 원한다고 나한테 매달린 건 너희야! 너희가 원해서 한 짓거리를……."
"아니! 나는 원하지 않았어! 결코, 결코, 원하지 않았다고, 빌어먹을 자식아!"
세뇌에서 깨어난 대신은 악착같이 소리쳤다.
"용왕님만이 우리의 왕이셨다! 우리가 지켜드리지 못한 이 가여우신 분을 어떻게 배신하겠는가!"
"개소리 집어치워, 에른스트! 처음부터 네놈은 용왕님을 도울 수 있다고 우리에게 말하지 않았던가!"
울분이.
죄책감이.
걷잡을 수 없이 넘실거리는 감정을 깨어난 대신들은 소리치고 또 질러냈다.
그들 중 누군가가 손에 검을 쥔 채 두려움이 가득한 시선으로 하벨을 바라보았다.
"…그저 용왕님을 돕고 싶었습니다. 모든 걸 희생한 용왕님에게 무엇이라도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단지… 그뿐이었습니다."
천천히 분위기가 바뀌는 걸 하벨은 느꼈다.
깨어난 대신들이 꺼낸 후회로 가득 찬 저 말은 하벨에게 있어 그저 가벼운 바람처럼 스치고 갈 말뿐이었다.
하벨은 칼리우스와 마법사들이 완성한 마법을 바라보았다.
"물러서."
하벨의 명령에 대신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대로 붙잡고 있겠습니다!"
하벨은 더는 명령하지 않고, 그저 두 정령왕을 불렀다.
"아라야. 이안."
[응응!]
[말씀하십시오.]
하벨의 부름에 아라와 이안이 대답했다.
"정령수를 줘. 싹 긁어모아도 돼."
이제 에른스트를 죽일 방법을 아는데 뭘 망설일까.
[하지만 그러면 순환의 길을…….]
"넘어도 돼, 아라야. 여기는 이제 장식일 뿐이니까. 내가 물이야. 다 품을 수 있어."
콰르르르릉!
하늘이 더 까맣게 물었다.
거친 소리와 함께 오직 에른스트를 향해 한 줄기의 빛이 아래로 쏟아졌다.
콰아아아앙!
보름달을 가득 담은 그 힘은 가히 천벌이라고 할 만큼 저물어가는 날을 다시 아침으로 되돌릴 만큼 압도적이었다.
콰콰콰콰!
거친 그 소리를 뚫고 하벨은 조용히 그 이름을 불렀다.
지금이 기회였으니까.
"류아야."
쩌어어억.
틈의 세계가 열렸다.
류아와 태련, 무날, 해연 등 어인족이 쏟아졌다.
하벨 주변에 떠다니는 반영구 정화제가 그들에게 향했다.
"모두 잘 들어. 이걸 손에 쥔 채로 놈을 때리기만 하면 돼. 어때, 간단하지?"
아주 무식한 방법이었나, 죽지 않는 저들한테 있어서 그 누구보다 효율적인 일이었다.
"…진짜로요?"
류아가 눈썹을 올리며 물자 하벨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여기서 거짓말을 하겠어?"
"그럼 그냥 휘두르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
태련은 벌써 쥐어서는 근질거리는 손가락을 참지 못했다.
"맞아. 놈은 삶을 먹고, 죽음을 내리는 신이었어. 놈에게 먹힌 지역이 내 물과 정령의 힘으로 복구가 되는 걸 보았거든."
"알겠습니다. 이해했습니다."
해연은 반영구 정화제를 꽉 쥐었다.
"용왕님. 괜찮으십니까, 용왕님?"
걱정부터 들먹이는 무날의 말에 하벨은 실실 웃었다.
"그럴 리가 있겠어? 아직도 아파. 장난 아니야."
욱신거림이 계속 일어났다.
어쩌면 배가 뚫릴 때의 고통과 비슷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대장. 반영구 정화제가…….]
"괜찮아, 아라야. 내가 모든 물의 지배자야. 내 힘이 들어간 이상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하벨은 씩 웃으며 다음 순간을 위해 연락용 아이템을 꺼냈다.
68%.
"죽어라. 용왕! 과거에 한 번 죽였으니 못 죽일 게 뭐가 있을까!"
"죽은 자는 말이 없어야 하는 법! 다시 흙으로 돌아가게 해주지!"
대신들이 에른스트에게 받은 그 불길한 무기를 든 채 자신에게 다가왔지만, 이를 류아가, 태련이, 무날이 자신 앞에 섰다.
쿵!
무날이 대검을 들었다.
"아무도 이 앞을 지나갈 수 없을 거다."
촤르르륵.
태련이 무거운 추가 묶인 쇠사슬을 손에 쥐었다.
"그 머리를 박살 내줄 테니까, 와보든가."
촤르르르.
부적이 류아 주변에 맴돌았다.
"걱정하지 마시고, 볼일 보세요. 신경 쓸 게 많잖아요?"
다독거리는 류아의 말에 하벨은 태연하게 연락했다.
"아버지."
<…많이 아프더냐?>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하벨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에른스트에게 향했다.
―저희… 가 말했어요.
물이 사실대로 고백했다.
"아버지. 제 상처는 중요하지 않아요. 제가……."
<중요하구나. 몹시. 그러니 그런 말을 하지 말아주렴.>
어쩐지 그 말에 통증이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아라가 화난 표정을 했다.
[맞아. 아픈 건 아픈 거야.]
<잠깐 말을 끊어서 미안하구나. 그래서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말해주렴.>
"반영구 정화제가 에른스트를 공격할 수 있는 수단입니다. 제가 정령사들에게 반영구 정화제를 보낼 테니, 일제히 공격해주십시오."
[원래 반영구 정화제는 다른 정령들의 말을 듣지 않아. 대장이 바꿨대! 이 몸은 그게 엄청 대단하다고 생각해.]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 알려주렴.>
"제 물도 넘겨줄 테니, 반영구 정화제에 제힘을 넣고 정령수를 넣어 사용하면 됩니다. 속성을 바꾸는 거나 모습을 바꾸는 등의 조절은 정령이 해야 합니다."
아마도 자신이 사용하는 것보다 위력은 약하겠지만, 정령사의 힘이 하나하나 합치면 위대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네 힘을 넘겨줘도 괜찮더냐?>
"물은 어디든지 있으니까요. 괜찮아요. 진짜 힘은 이제 거둬들이려고요."
혹시 몰라 여러 나라에 자신의 힘 일부를 놓고 온 적이 있었다.
그걸 거둬야 할 때가 왔다는 걸 자신도 느꼈다.
"아버지. 저와 한 약속을 기억해주세요. 꼭이요."
하벨은 제 할만 남기고 그대로 끊어버렸다.
뒤쪽에서 물보라와 함께 사람들이 나타나는 게 보였다.
"왔어요?"
하벨은 크로니안을 반겼다.
크로니안의 입이 벌어졌다.
저 빛줄기는 대체 무엇인가. 뼈도 못 추릴 공격이 아닌가.
그리고 틈의 세계가 대체 몇 개인지, 왜 인간이 있으며 자신들끼리 싸우는 건지 아무것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간단하게 말할게요. 저기 빛줄기를 맞고 있는 놈의 이름은 에른스트입니다. 아, 샤넬리움 레놀드였죠. 어쨌든, 놈이 틈의 세계를 만들었습니다."
하벨은 계속 회복하면서 악착같이 다가온 대신의 주변에 물을 불러일으켰다.
"여기 놈이 쥔 아주 불길한 무기 보입니까? 이걸 쥔 놈이 우리의 적입니다. 그 외에는 아군입니다. 내가 준 물이 둘 다에게 영향이 있기에 정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물을 날카롭게 세워 대신들을 찔렀다.
푸욱!
피가 튀자 하벨은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정신을 차리게 해주려 세뇌를 풀려고 했지만, 그게 잘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만 했고, 선택은 익숙했다.
어정쩡한 마음이 언제나 더 큰 희생을 불러일으킨다는 걸 알기에 자신의 감정과 달리 단호해야 했다.
"…죽기, 싫어."
대신이 손을 뻗었다. 살려달라 울부짖는 그 목소리에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큰마음을 먹고 물에 날을 세워 대신의 심장을 터트렸다.
콱!
줄이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차갑게 뒹굴었다.
대신의 입 모양이 가운데로 몰렸다. 자신을 부르려고 했던 걸까.
'네오.'
무엇이 되었든, 하벨은 죽은 자의 이름을 속으로 불렀다. 그 이름을 자신이 기억했다.
"그러니까……."
크로니안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현실인지조차 헷갈릴 지경이었다.
저 인간처럼 생긴 괴물이 모래처럼 바스러져 사라졌으니, 틈의 세계에서 나온 저들이 정말로 죽어버렸다.
크로니안은 달님에게 받은 물을 각종 무기에 뒤덮어 무장한 클로저를 잠깐 보았다.
하벨은 크로니안에게 손짓했다.
그가 서둘러 다가왔다.
"틈의 세계에 나온 이들은 괴물이 아니라 인간입니다."
하벨은 목소리를 낮춰 크로니안에게 알렸다.
사기를 뒤흔들만한 사실이었지만, 알고 있어야 했다.
크로니안은 숨을 삼켰다. 순간 손이 부르르 떨려왔다.
"이 사실을 감당하셔야 합니다."
하지만 하벨은 단호했다.
크로니안이 클로저의 대표이기에 이 역시 책임져야만 했다.
"나는 이미 감당하고 있습니다."
희생은 언제나 하벨 자신의 몫이었다. 죽음을 감당하는 것 역시 언제나 자신의 몫이었다.
그러니 이 역시 감당할 수 있었다.
하벨은 손가락을 들어 아직 세뇌에 얽혀 있는 대신들을 가리켰다.
"저들은 나의 부하였습니다."
무겁게 내려오는 그 말에 크로니안은 하벨을 바라보았다.
순간, 달님이 너무도 위태로워 보였다.
"저들에게 마지막을 안겨주십시오. 나의 힘으로 말입니다."
부탁이었다.
너무도 절실한 부탁.
"원래라면 내가 해야 합니다. 압니다. 그러나 내가 처리해야 할 진짜 적은 저기에 있습니다. 저건 나만이 감당해야 합니다."
하벨을 자신에게 다가오는 라르웬의 발소리를 들었다.
이미 발소리만으로 그가 얼마나 다급한지 알 수 있었다.
'형님.'
라르웬은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하벨을 와락 안았다.
이미 밀려오는 온기에 많은 말이 겹쳤다.
"…제가, 이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친하잖아요."
라르웬의 목소리가 떨렸다.
"네. 물론이죠."
"많이… 아픕니까?"
라르웬은 하벨의 옷을 적신 저 핏자국을 계속 보고 있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작디작았지만, 라르웬은 결코 가볍게 보지 않았다.
계속 떨리고 있었으니.
"조금 아파요."
"정신 차리세요. 집중해야 합니다. 몸을… 함부로 굴리면 안 됩니다."
라르웬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다치지 마라, 막내야.
"알아요. 라르웬 씨야말로 다치지 마세요. 저들의 공격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다친 건 본인이면서 걱정부터 밀고 오는 저 뻔뻔한 말에 라르웬은 고개를 들어 올렸다.
화가 난 표정으로 하벨의 옷자락을 꽉 쥐었다.
제발 좀.
라르웬이 목소리를 죽인 채 입술만 움직였다.
다치지 말란 말이야.
하벨은 다시 라르웬을 안으며 자신의 힘을 불어넣었다.
이제 됐다.
이제 다 됐다.
모두한테 자신의 힘을 넘겨주었다.
악수로, 포옹으로, 자신과 접촉한 이들 모두 다치지 않게 힘을 넣었다.
'형님을 지켜줘.'
―무슨 일이든 지켜줄게요.
'모두를 지켜줘.'
―기억하고 있어요.
―용왕님을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아요.
하벨은 자신의 힘이 잘 작동하는 걸 보았다.
활짝 웃으며 뒤로 물러섰다.
"죽지 마세요."
형님.
작게 속삭이는 그 말에 라르웬의 얼굴이 가득 찌푸려졌다.
"죽지… 마십시오."
인사는 그걸로 됐다.
아라 역시 루룸과 꽉 안았던 손을 뗐다.
[이 몸만 믿어.]
[다치지 마, 아라야.]
루룸이 아라를 쓰다듬었다.
하벨은 저 멀리 칼리우스를 바라보았다. 지친 기색을 넘어 열이라도 오른 것처럼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이어 고개를 돌려 에른스트를 바라보았다.
놈이 일어나고 있었다.
땅이 썩어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싸울 장소를 옆으로 옮겨야 한다.'
이미 공터에 많은 사람이 몰렸다.
하벨은 그렇게 결정하며 류아를 불렀다.
"류아야. 물러서."
하벨의 지시에 길이 텄다.
"가시죠, 크로니안 씨."
크로니안을 향해 앞을 가리켰다.
대신들의 처리는 클로저과 틈의 세계에서 나온 어인족 중 일부가 담당해야만 했으니.
클로저가 움직였다.
그들은 사납게 움직이는 들짐승 같았다.